[장편]세하의 위상력 -9-
이케아라 2015-05-24 6
찢어지는 소리, 부서지는 소리, 뚫리는 소리. 온갖 불길한 파쇄음이 미국의 도시 한가운데서 울려퍼지며 사람들의 고막을 지배한다.
이곳은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에 위치한 애너하임으로, 차원전쟁때 대부분이 파괴됐던 탓에 복구된지 얼마 안된 신도시중 하나다. 이런 평범한 도시에서 전쟁터에서나 발생할법한 전투음이 들리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자면, 나라의 도시가 대부분 그러하듯 평범하게 인도를 걸어가며 자신들만의 생활에 집중을 하고 있던 국민들이 차원종출현 경보를 듣자마자 질서 정연하게 대피를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원종들을 처치하기 위해 출동한 클로저들의 전투를 보게 된 것이다.
아무리 위상력억제기의 성능이 대단하다고 해도 차원종과의 전쟁이 끝난지 20년도 안된것과 최근에 일어난 데미플레인 사건때문에 사람들의 위기적응 의식이 놀라울 정도로 대단했다.
카강!!
쿠과과광!!
무거운 질량을 지닌듯한 물체와 병장기의 마찰음소리. 만화나 영화 속에서 가상으로밖에 볼 수 없었던 전투가
아**트 도로와 근처의 건물들을 분쇄시키며 시야를 가득 채우자 사람들은 저마다의 시선으로 눈 앞의 소녀와 차원종들을 바라보게 됐다.
"하아앗!"
검은색 코트와 목 주위를 감싸듯 가득 나있는 하얀털. 마치 검은 양을 연상케하는 복장으로 몸을 치장한 소녀 이슬비가 자기 주위에 떠있는 나이프를 투척하고 있었다.
그녀의 위상력이 담겨져있어서 분홍색으로 빛나는 수많은 단검이 차원종의 몸을 도륙하듯 날아가자 공격을 받은 차원종이 분노를 터트리듯 포효를 내지른다.
"크워아아아아아!!"
트룹보다 더 큰 체구를 지닌데다가 그런 몸을 보호하듯 걸려있는 방어구, 어깨에 올라가 있는 얄미운 스케빈저를 대동한 차원종 마나나폰.
약 3m가까이 되는 중형차원종이 주먹을 휘두르며 슬비의 몸을 뭉개려했다.
바위마저도 단번에 분쇄해 버릴듯한 차원종의 주먹을 훈련생 시절부터 몸에 익힌 반사신경과 위상력컨트롤로 아슬아슬하게 회피한 슬비가 왼손에 들려있는 단검을 땅에 박았다.
"화염폭발!"
"크어아아아아아아아!!"
단검에 뿜어져 나온 거대한 화염이 마나나폰의 몸을 통째로 불태운다.
거대한 단말마를 내지르며 고통을 호소하는 차원종과, 그런 괴물을 유린하고 있는 소녀.
피난중이었던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거의 다 같은 생각을 머리속에 담은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가장 성가셨던 차원종인 정예마나나폰을 처리한 슬비가 숨을 고르며 아직 대피중인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리자 발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도 않았을터인 누군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슬비의 귓가에 닿았다.
"monster..."
(괴물...)
자신들이 대피해야되는 직접적인 원인인 차원종을 지칭한게 아니라 괴물을 학살하고 있는 인간을 노린듯한 두려움이 섞인 중얼거림. 남들과 확연히 다른 능력을 지닌 자신을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말을 듣자마자 슬비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자조섞인 미소를 지었다.
'딱히 영웅이라고 불릴 생각으로 클로저가 된건 아니었지만... 이건 좀 슬픈걸'
그동안 자신들을 꺼려하던 사람들은 많이 봐왔다.
하지만 일반인 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평범한 사람처럼 대해줬던 특경대 대원들과 유니온의 사람들과 자주 어울렸던 탓일까.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버린 자신을 향한 두려움과 모멸의 감정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비탄의 감정을 곱씹으며 주변을 둘러보고있었을때,낮선 외국인의 음성이 슬비의 귀에 걸려있던 통신기에서 흘러나왔다.
-이슬비 요원. 애너하임의 차원종들은 전부 처리됐습니다. 곧 위상력억제기를 설치하러갈 기술반이 도착할테니 슬슬 본부로 귀환해주십시오.
유창하고 어려운 영어로 소식을 전달한 유니온의 통신병이 슬비에게 복귀명령을 내렸다.
핸드폰이 수백km밖에서도 통화가 가능한 것처럼 유니온에서 지급해준 통신기도 상당히 멀리 있는 거리에서도 기능을 한 것이다. 그들의 언어를 알아들은 슬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한 뒤 위상력을 몸에 둘러 사이킥 무브를 시전했다.
"으와아아아...!"
신체 주위를 맴돌며 떠다녔던 나이프와 잡동사니가 슬비의 몸을 보호하듯 회전하며 그녀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순수하게 대단하다고 생각해서 놀란건지, 아니면 공포를 느껴서 놀란건지 알 수없을 애매한 환호성을 뒤로하고 슬비는 그대로 하늘을 날아 유니온본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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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회 훈련프로그램 종료. 이세하 요원에게 10분간의 휴식을 권합니다."
아무런 감정도 담겨져있지 않은 무미건조한 전자음 소리가 세하가 있는 훈련실에서 울려퍼졌다.
이렇다할 장식품이라곤 조금도 발견되지 않는 실용적인 공간.
만화로 따지면 배경을 그리기 위해 소실점을 찍어두고 선을 대충 그어둔것 같은 간소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라고 할 수있겠지.
만화나 영화속에서 흔하디 흔하게 나오는 이런 평범한 공간에서, 세하가 대(大)자 모양으로 누운채 거친숨을 내뱉고 있었다.
"헉...! 허억...! 커헉...! 쿠헉..."
운동을 격하게 하면 숨을 쉴때마다 피를 토하는것같고 얼굴에 경련이 일어난것 같은 느낌을 많이 경험해 봤을 것이다.
폐에 있는 공기를 순환시키며 근육에 담겨져 있는 근력을 한계까지 쥐어짜낸 세하는 상당히 지친것 처럼 보였다.
그렇게 세하가 병에 걸린 환자처럼 신음소리를 내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을때, 훈련실 문의 개폐소리와 함께 거구의 남자가 방으로 들어왔다.
"이세하군. 또 그렇게 무리하게 몸을 쓴겁니까? 조금은 자신이 환자라는걸 자각해주셨으면 합니다만..."
"하하하... 죄송합니다..."
자신을 질책하는듯한 남자의 목소리에 세하가 반사적으로 사죄하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숨을 고르며 몸을 진정시키느라 바쁜 주제에 자신의 말 한마디에도 바로 반응하는 그를 보고 다니엘이 쓴웃음을 지으며 손에 들려있는 비닐봉투의 내용물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우선 이온음료라도 마셔두십시오. 그리고 땀을 닦을 수건이랑, 박사들이 지어준 약입니다. 시간이 되면 복용해야하는것 잊지 마십시오."
"아...예"
세하가 약간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이렇게 훈련실에서 한계까지 몸을 사용하며 단련을 하고 있다곤 하지만, 세하는 환자나 다름없는 몸이다.
겉으로 드러난 외상이나 신체의 운동기능을 저하시키는 상처는 어느 정도 치료가 다 됐다고 할 수 있지만 클로저한테 가장 중요한 능력인 위상력이 제대로 발현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박사들이 지어준 치료약을 먹는 동안 이렇게 몸을 움직여 반사신경을 기르고 있었던 것이다.
안정을 취해야할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굳히 훈련을 하고있는 세하를 보고 다니엘이 말했다.
"그나저나 별일이군요. 보고서에 적혀있는 내용대로라면 당신은 심각한 게임중독자라서 이렇게 클로저로써의 임무를 할 수없는 상황이라면 훈련보단 게임에 매진할 인물이라고했는데..."
"......"
악의라곤 느껴지지 않는 의아한 표정으로 말하는 다니엘을 보고 세하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확실히 자신은 게임 중독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게임을 많이 했지만, 다니엘같은 어른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자기도 모르게 양심에 가책을 느낀 기분이었다. 이대로 불편한 기분이 드는게 싫었던 세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다니엘에게 질문했다.
"다니엘 아저씨. 반유니온 테러조직은 얼마나 진압됐나요? 그녀석들을 다 잡아둬야 저희가 한국으로 돌아갈 수있을텐데..."
강남에 남아있는 차원종 잔당을 처리하고 있던 검은양팀이 다른 나라에서 체류하며 차원종들을 소탕하고 있는 이유는 유니온에서 테러조직을 잡을 때까지 자신들에게 협조를 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
팀의 최연장자인 제이는 오랜 경험을 통해 유니온에서 자신들에게 불이익을 갖다주기위해 일을 떠넘긴것이라고 생각하며 거절의 의사를 표명하려했지만, 그보다 더 빨리 팀의 리더인 이슬비가 유니온의 부탁을 수락한 탓에 지금 이렇게 팔자에도 없는 타국의 방위임무를 도맡아 하고 있는 것이다.
세하의 말을 들은 다니엘이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만 아직 이렇다할 소식은 없는 상황입니다. 확실이 테러리스트들이 완전 무장한 상태로 곳곳에 설치되어있는 위상력억제기를 부수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체포는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더군요. 기껏해야 그들이 소환한 차원종들을 처리하는것 정도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그랬군요..."
생각한것 이상으로 좋지 않은 소식을 들은 세하가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테러리스트들이 입힌 피해를 수복하는것도 벅찬데 사건의 주모자인 그들을 직접 체포하는건 불가능에 가까울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유니온에서도 이번 일을 가볍게 넘기진 않을테니 곧 있으면 좋은 소식이 올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다니엘이 격려하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지만, 높으신 분들에 대한 혐오가 강한 세하는 영혼없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한참을 우울한 기분으로 있었던 세하가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하아... 관광이라도 다니면 기분이 좀 나아질텐데..."
"저도 그렇게 하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습니다만... 당신을 비롯한 검은양소속의 클로저들은 사적인 외부출입이 금지된 상황입니다. 괜히 밖으로 나갔다가 테러조직의 인간이 저격이라도 하면 큰일이거든요."
"그리고 데미플레인 사건때문에 소란스러워 진다는것도 있죠?"
초연한 미소를 지으며 질문한 세하를 보고 다니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A급 차원종을 퇴치한것과 S급 차원종을 퇴치하는건 분필과 금강석의 경도만큼 큰 차이를 갖고 있다.
A급 차원종은 실력이 좋은 클로저들이 힘을 모으면 처리할 수있겠지만, 서유럽을 폐허로 만든 헤카톤케일이나, 이번에 강남에 출현한 아스타로트같은 S급 차원종은 유니온에 있는 모든 S급 클로저들이 힘을 모아도 쓰러트릴 수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검은양이 아스타로트를 쓰러트릴수 있었던것도 그의 고유능력인 '용의 위광'이 사라진것 뿐만 아니라 아스타로트와 같은 S급 차원종인 애쉬와 더스트에게 힘을 받았기 때문에 상처를 입힐 수 있었던 것이다.
전쟁때 죽은 유일한 S급 차원종인 헤카톤케일마저도 같은 차원종의 배신때문에 죽은것이었고, 차원종의 재앙이라 불렸던 알파퀸 서지수도 수많은 A급 차원종을 쓰러트렸지만 S급 차원종을 이긴 적은 없었으니 말 다한셈.
그런데 검은양팀은 서지수조차 해내지 못한 S급 차원종을 섬멸해버렸으니 유명해지는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이렇게 본부에 틀어박힌채 실없는 훈련과 출장임무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제 충분히 휴식을 취했으니 슬슬 훈련을 다시 해볼게요. 마실걸 갖고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그럼 수고하십시오."
인자한 미소를 지은 다니엘은 텅 빈 비닐봉투를 들고 밖으로 나갔고, 세하는 간단하게 몸을 푼뒤 스위치를 눌러 가상 훈련을 재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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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시각.
세하와 다니엘이 훈련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무렵에 검은양팀의 멤버들은 S급 클로저인 제임스 로빈의 사무실에 모여있었다.
미국에 있는 각 주에 출현한 차원종을 소탕한 검은양팀은 본부에서 내려온 복귀명령을 듣고 이 사무실로 집결한 것이다.
"이봐. 왜 갑자기 우리를 소집한거지? 이번엔 또 뭘 떠넘기려고 그러는거야?"
평소에 익살스러운 분위기가 아니라 험악한 말투와 눈빛으로 제임스를 쳐다본 제이가 따지듯 말했다.
공로를 치하한답시고 자신들의 입을 막기위해 타국의 방위임무를 떠넘겨서 팀의 명예를 실추시킨 장본인한텐 예의를 차릴 생각이 없나보다.
으르렁 대는 제이를 보고 제임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떠넘기다니, 듣는 사람이 오해하겠군. 난 그저 실력이 대단한 자네들에게 초라한 미국에 보탬이 되달라고 부탁한 것 뿐인데."
"그 부탁이라는 말로 어린애들을 속여넘겨서 외교적인 문제로 발전시킨 주제에 뻔뻔하군."
"외교적인 문제라니? 강남을구하고 더 나아가선 동양전체를 지켜낸 자네들이 다른 나라에서 좀 활동 한것 가지고 어떻게 외교적인 문제가 생기겠나. 그걸 가지고 문제가 일어난다면 한국인들이 다른 나라 사람에게 배타적이라는걸 광고하는 셈인데."
능청스럽게 말을 돌리며 비아냥 거리는 제임스를 보고 슬비와 유리가 동시에 이를 갈았다.
제임스는 자신의 책임을 회피함과 동시에 한국을 놀린것처럼 들렸으니까 말이다.
점점 험악해지는 분위기를 어떻게든 바꾸기 위해서 관리요원 김유정이 정중한 말투로 질문했다.
"Mr.제임스. 저흰 당신에게 받은 부탁대로 미국에 출현하고 있는 차원종들을 섬멸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 저희들에게 본부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건 그만큼 중요한 일이 있다는 뜻 아닌가요?"
"맞네."
짧게 긍정한 제임스가 책상서랍안에 들어있는 무수한 서류다발을 꺼내 김유정에게 건네줬다.
"이건...?"
"테러리스트들의 본거지에대한 정보가 담겨있는 파일이라네. 간단하게 요약을 해놨으니 읽어보게나."
제임스의 말에 눈을 크게뜬 김유정이 빠른 속도로 글자를 읽어나갔다.
약 1분간 말없이 서류를 훑어본 김유정은 한숨을 푹 쉬며 어이없는 표정으로 질문했다.
"저희들한테 이런걸 보여주셨다는걸 테러조직을 체포하는데 협조하라는 뜻인가요?"
"기왕이면 '하라'가 아니라 '해달라'라고 해석해줬으면 좋겠군."
뻔뻔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제임스를 보고 김유정이 이를 갈았다.
처음에 테러조직은 자신들이 잡을거라고 말한 주제에 이번에도 부탁이라는 형식으로 일을 떠넘기려고 하고 있으니 짜증이 날 수밖에. 한국에서 수많은 진상 상관에게 시달려왔던 김유정이 이번 일에대한 사태를 따지려고 했을때, 옆에 있던 제이가 무심한 말투로 말했다.
"좋아. 테러조직을 잡는데 협조해주지. 자세한 사항이 결정되면 그때 말해달라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김유정의 입이 떡 벌어졌고, 옆에 있던 검은양팀원들도 당황을 금치 못했으며, 전방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제임스도 눈썹을 찌푸리며 의심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유니온에대한 불만이 가장 큰 인물일 터인 제이는 희미한 미소까지 보일 정도로 태연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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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돌아온 이케아입니다~
원래는 26일에 올리려고 했지만 주말에 올리는게 좋을 것같아서 이렇게 올려보아요.
얼른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까지 써서 여러분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싶네요.
(제 필력으로 그런게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럼 다음주에 뵈요~
기왕이면 로그인하고 봐주십시오 조회수라도 올르는걸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