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클로저스 - The BEAST 3/3
layer21 2014-12-2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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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유니온 본부 상황통제실, 감춰진 차원문 파괴작전 개시 하루 전
“감춰진 차원문 파괴 작전의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데이빗이 말했다. 그는 대형 화면 아래 마련된 단상 앞에 서 있었다.
유정은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널찍한 복층 구조의 상황통제실은 열을 맞춰 앉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부분 작전에 참여하는 이들이었고, 유정과 낯이 있는 사람도 적지않아 서로 눈이 마주칠 때 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감춰진 차원문’ 파괴작전은 서울 유니온의 거의 모든 인력이 동원되는 초대형 작전이었다.
유정은 다시 심장이 쿵쾅거리고 속이 거북해졌다.
“작전은 크게 세단계로 나뉩니다. 이쪽에서 문을 여는 오프닝, 팀을 전환하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스위칭. 그리고 다시 문을 닫는 클로징. 이 중 대량의 위상력 투사가 필요한 오프닝과 클로징 단게에 서울의 상급 클로저 전원이 나뉘어 배치됩니다. 또한 이하 등급의 클로저들은, 오프닝 과정에서 파문이 일 경우를 대비해, 기존과 같이 서울 전역에 분산 배치됩니다.”
유정의 옆자리가 또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보나마나 유리와 테인의 수다일 터였다. 검은양의 팀원들은 전혀 긴장한 구석을없이 제 각기 페이스를 유지했다. 졸음, 호기심어린 두리번거림, 그걸 부추기는 맞장구와 감탄사. 오직 슬비만이 그에 아랑곳않고 작전 설명을 경청하고 있을 뿐이었다.
유정은 왠지 맥이 빠져 거북한 속이 좀 편해졌다.
“그럼, 이번 작전의 총 지휘는 김유정 요원이 나와 구체적인 사항들을 설명하겠습니다. 김유정 요원.”
유정이 자리에서 일어나 데이빗의 자리에 섰다. 잠깐 짧은 박수가 이어졌다. 그 와중에 유리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보이며 환소성을 질렀다. 슬비가 그녀의 입을 막기 전까진.
“먼저, 이번 작전의 가장 위험한 구간이라 할 스위칭 단게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오프닝 후, 차원문은 완전 개방된 상태로 클로징 단게 전까지 방치됩니다. 전환에 필요한 시간은 대략 일분. 차원문의 크기에 비레하는 차원종의 크기를 추산한 결과, 분석팀은 ‘등급 외’ 차원종까지도 진입해 올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몇몇 클로저들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모두 1차 차원전쟁을 겪은, 그 악명을 알고있는, 이들이었다.
“이 최악의 가능성에 대비해 유니온 상부는 ‘발뭉’의 사용을 허가했습니다. 그로써, 승산은 있는 셈입니다.”
누군가 손을 들어 질문했다.
“하지만, 상급 클로저들은 모조리 오프닝과 클로징에 배치됐는데, 누가 그걸 사용하나?”
나이가 지긋해 뵈는 그 사내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이미 소문이 난 것을 유정도 알고 있었다.
“베를린 유니온에서 온 비스트 특무요원이 사용할 겁니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괴물이라고 불렀다. 비스트가 발뭉을 사용하게 될 거란 이야기 뿐만 아니라, 대학로에서 유정이 밝힌 사실들도 이미 유니온 내에 파다했다. 상황통제실이 수군거림으로 들썩였다.
“비스트에게 발뭉을 맡긴다고요?”
작전 일주일 전, 데이빗이 그녀를 불러다놓고 다짜고짜 던진 말이었다. 데이빗의 사무실엔 그녀말고 안나 크루거도 함께였다.
“안나는 그러길 원해. 그렇지만, 벌써 자네에게 지휘권을 맡긴 입장에서 맘대로 결정할 순 없는 일이라서 말이지.”
“안되요. 지휘권자로서 판단하기에 비스트는 작전 수행에 부적합합니다.”
이번엔 그녀 차례라는듯, 데이빗의 시선이 안나를 향했다.
“발뭉은 해당 작전과는 별개로 독립된 운용을 하게 되있어요.”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죠? 제게 사용자를 선택할 권한이 없단건가요?”
“코드네임 발뭉. 그게 차원전쟁에서 얻은 이차원의 유물인건 알지? 초기 유니온의 수뇌부는 강력한 위상력이 담긴 그걸 위험히 여겼고, 아주 엄격히 관리하기로 했어. 봉인과 봉인을 지키는 자의 초월적 권한으로 말야.”
“발뭉의 사용권한은 언제나 모든 권한에 우선하며, 그 우선됨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하다.”
안나가 데이빗의 말을 이었다.
“그게 여기에 새겨진 ‘그들’의 뜻이에요.”
그녀는 자신의 목에 맨 검은 금속테를 손끝으로 쓸었다. 테 가운데에서 생소한 표식이 주홍빛을 내뿜었다.
“그 앤 경험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통제가 되질 않아요. 저번처럼 또 그렇게 제멋대로 날뛰다간 모든게 엉망이 될 겁니다!”
유정은 데이빗에게 따졌다.
“준은 오로지 발뭉을 위해 준비해왔어요. 잘 아실텐데요. 결코 작전을 망치는 일은 없을거에요.”
“그 프로젝트는 오래전에 중단됐어야 하는 일이죠. 현장의 요원들은 물론, 서울 전체 시민들의 목숨이 걸린 문제일수도 있어요. 그런데도, 당신과 그 애의 비뚤어진 욕망이 우선되야 하나요?”
유정은 더 이상 소리지르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린 낮고 무거워졌다.
“뭐라 해도 좋아요. 하지만, 결코 타협이나 절충은 없어요. 비스트가 발뭉을 사용하느냐, 마느냐의 선택만이 있을 뿐이에요.”
소란은 계속되고 있었다. 미묘한 불안과 불편한 혐오가 사람들 사이를 떠돌았다.
“저는, 비스트 요원이 이번 임무를 수행하는데 적합하다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지금은 절 믿고 따라와 주셨으면 합니다.”
신강고등학교 검은양팀 임시본부실
“반성은 좀 했니?”
부실엔 세하 혼자였다. 대학로 사건 후, 유정은 그에게 근신처분을 내렸다. 낮의 작전브리핑에도 세하는 참석하지 못하고 홀로 부실에 남아있어야 했다. 그는 침울해 보였다. 심지어, 게임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죄송해요.”
“나한테 미안한 것 보다 너 스스로에게 미안해 하라고 벌을 주는거야. 넌 뻔히 알면서도 네 자신을 위험에 빠트렸어.”
“그 애가 자신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했을 때, 뭔가… … 뭔가 저도 그러고 싶었어요.”
세하가 고개를 숙였다.
“그래야 하는 것 같았어요.”
날이 저물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삼ㅅ마오오 귀가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유정은 잠시 그 풍경을 감상했다.
“그래서, 기뻤니?”
“네?”
“임무에 성공하고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칭찬하고 좋아해 줬잖아. 그래서 기뻤어?”
세하가 망설였다.
“… …네. 조금요. 그게 나쁜건가요?”
“나쁘다고 하지 않았어. 자신의 행동이 칭찬받으면 누구나 기뻐. 그게 당연한거고. 그렇지만, 타인의 반응에 자신의 행동을 결정지을 필욘 없어. 없다고 생각해.”
유정이 세하를 돌아보았다.
그가 자신의 어머니 때문에 부담감을 느낀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 나이 또래의 남자애에게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는걸. 아이도, 어른도 아닌 나이. 유정은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봤지만, 역시 잘 기억나는 건 없었다.
“비스트. 아니, 준. 그 애는 기뻐보이지 않더라.”
세하가 의아한 눈으로 고갤 들었다.
“너랑 같이 돌아왔을 때 말야. 그 앤 전혀 기뻐보이지 않더라고. 오히려, 불쾌해 하는 느낌이랄까.”
유정은 기지개를 켜고 몸을 움직였다.
“자, 세하군. 오늘은 이만 돌아가. 내일이 작전날인건 알고있지? 물론, 세하 군은 다른 팀원들과 달리 내일도 여기 남아 근신이야.”
“네. 근데… …”
“응?”
“전 여기서 뭘 하면 되죠? 뭘 하라곤 아무 말도 안하셔서… …”
유정은 부실문을 활짝 열었다.
“글세, 이 안에서 하고 싶은 걸 하거나, 할수 있는 걸 해보면 되지 않을까? 아, 그리고 근신은 내일까지만 이야. 모레 보자. 세하 군.”
서울 유니온 본부 상황 통제실, 작전 개시 일 분 전
“오프닝 팀, 준비 끝났습니다.”
굵은 남성의 목소리가 상황통제실의 스피커를 울렸다. 중앙 화면 한켠에도 그의 얼굴이 비쳤다. 오랜 시간 서울을 지켜온, 노련한 클로저임에도 얼굴엔 긴장감이 묻어났다.
“다른 팀들도 준비됐나요? 현장에 설비요원들이 모두 빠졌는지도 확인해주세요.”
유정이 헤드셋의 마이크를 매만지며 말했다. 실내는 상황실 요원들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후덥지근했다.
“정신없으시죠?”
유정 근처에 자리한 한 요원이 유정에게 말을 걸었다.
“현장에서 떨어져서 이렇게 모니터로만 확인해야하니 좀 갑갑하네요.”
유정은 지휘본부를 현장에 차리고 싶었지만, 안전상의 이유로 유니온 본부 내에서의 원격지휘를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어쩔수 없죠. 워낙에 차원문이 크다보니, 클로저가 아닌 사람들이야 멀찍이 떨어져주는게 도와주는 일이니까요. 아, 확인 마쳤답니다. 현장 전 팀, 준비 완료입니다.”
유정은 대형 화면의 상태 정보들을 재차 확인했다.
“네. 그럼 오프닝을 시작합니다.”
상황실이 작전개시와 명령을 전달하는 움직임과 소리로 차올랐다. 유정은 한 순간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중앙의 대형화면을 응시했다.
“오프닝 완료. 반복합니다. 오프닝 완료.”
“위상 변곡률 확인. 차원문 개방 확인. 육안 식별이 가능해집니다!”
“영상 띄워주세요.”
곧바로 화면 중앙에 둥근 원형의 차원문이 등장했다. 아무 것도 들여다 보이지 앟는 새카만 내부 지름만 7, 8미터에 달했고, 그 주위를 둘러싼 빛의 테두리를 더하면 그 크기는 족히 10미터는 될 듯 했다.
“헐. 끝내주네.”
오프닝 전 말을 걸었던 상황실 요원이 중얼거렸다. 유정도 잠시나마 넋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차원 전쟁 이후 세대인, 그녀를 비롯한 젊은 요원들은 처음 보는 크기의 차원문이었다.
“오프닝 팀, 부상자 있습니다! 탈진으로 추정.”
다른 화면에 오프닝 팀의 영상과 부상자으 숫자와 상태 정보가 표시됐다. 유정은 시간을 확인했다.
“전환 단게로 들어갑니다. 오프닝 팀의 부상자는 후방으로 빠진 후 체크하세요. 앞으로 일 분. 모두 신속히 진행해주세요.”
화면 상단에 타이머가 표시되고 숫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시선이 차원문으로 돌아갔다. 둘레를 따라 검붉은 빛줄기가 불안스레 이글거렸다.
“비스트는 어디있죠? 준비 다시 한 번 확인해주세요.”
“클로징 팀, 준비 끝났네.”
클로징 팀의 팀장이 얼굴을 드러내고 말했다.
“차원문 변동 없습니다.”
타이머의 숫자들은 모두 0을 그리고 있었다. 무사히 스위칭을 마친 것이다.
“서울의 다른 지역 상황은 어떻죠?”
“현재 파문의 영향으로 하급 차원문이 다수 발생했으나, 클로저들이 원활히 처리 중입니다.”
“다행이네요.”
유정은 문득 검은양의 팀원들이 생각났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 일이 끝나면 모두 다 같이 맛있는 걸 먹으러 가야겠어.
“이제 닫아보죠. 클로징 시작합니다.”
유정의 명령에 따라, 화면 속 차원문 앞에 배치된 클로저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위상력의 감소를 알리는 수치가 연이어 나열됐다. 얼마 안 가, 차원문이 작아지는 것이 육안으로 구별되기 시작하자 성미급한 요원 하나는 함성을 내지르기도 했다.
웃음이 터지고, 긴장이 풀려가는 사람들에게 유정이 한 마디를 하려는 찰나.
콰콰쾅.
폭발음과 함께 현장의 영상들이 모두 나가버렸다.
“클로징 중단! 클로징 중단됐습니다! 사상자 발생!”
상황실의 공기가 차갑게 식었다.
“현장 연결부터 해요! 상황 파악이 안되잖아요!”
유정이 소리쳤다. 클로저들의 몸에 부착된 생체 수치들과 위상력의 상태 그래프들만이 화면 한쪽에 어지러이 변화하고 있었다.
“크… … 클로징 팀이다. 갑자기 충격파가… … 역류가 발생한 것 같다.”
스피커에서 팀장의 목소리가 울렸다. 화면이 북구되고, 현장의 모습이 나타났다. 거대한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것 처럼, 차원문 주위의 모든 것들이 쓰러져 나뒹굴고 있었다.
“언인 추정중! 위상력 동조화 과정에서 누군가의 실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보다 차원문 상태는요?”
“변곡률 상승! 다시 확장되고 있습니다.”
유정이 입술을 깨물었다.
“의료팀 현장으로 넣어요! 의료팀은 실신한 요원들의 의식회복에 주력하세요. 다른 외상 피해는 무시합니다! 클로징 재개를 최우선 목표로 하겠습니다.”
유정이 단호히 선언했다.
“오프닝 팀은 사람들을 추려주세요. 힘들겠지만, 손실 인원을 오프닝 팀에서 메우겠습니다. 클로징 팀은 남은 인원으로 즉시 작업을 재개해주세요.”
스피커 너머에서 망설이는 소리가 돌아왔다.
“남은 인원만으로 진행하다간, 또 다른 피해가 일어날거야. 차라리 충원을 기다리는 편이… …”
“차원문이 복구되는걸 지켜만 볼 순 없습니다. 진행해 주세요.”
대답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유정도 과연 이것이 정말 최선의 행동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휘자였고,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차, 차원문 표면에서 새로운 위상력 확인! 상승합니다!”
오퍼레이터가 비명처럼 소리질렀다.
“차원종 추정. 곧 진입해 옵니다!”
“등급은?”
“… … 파악 불가. 등급 외, 등급 외 차원종입니다.”
그의 말꼬리는 신음처럼 스러졌다.
“클로징 팀, 당장… … 철수하세요. 현 시간부로, 차원종 섬멸을 목표로 작전 변경합니다! 통제 구역을 종로구와 인접한 모든 구역으로 확대. 대피령을 발동합니다.”
유정이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그리고, 이제껏 묵묵히 뒤편에 서있던 안나를 향해 돌아섰다.
“이제 그 빌어먹을 무기를 주시죠.”
안나가 말없이 자신의 목에 찬 금속테를 매만졌다. 그러자, 일전에 보았던 주홍빛 표식이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발뭉을 사용을 승인합니다. 투하.”
투하?
슈우우우웅쾅!!
유정이 되묻기도 전에, 커다란 굉음이 스피커를 찢었다. 동시에 현장의 화면도 자욱한 먼지로 휩싸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차원문에서 얼마 떨어진 아**트 바닥에 기다란 물체가 박혀잇었다.
서서히 먼지가 걷히며 드러난 그것은 거대한 길이의 검이었다. 검신으로 보이는 부분의 길이만 2미터가 훌쩍 넘었고, 기괴한 모양의 X자 형태로 뻗은, 아마도 날막이처럼 보이는, 부분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척 보기에도 그 검은 이쪽 세상의 물건이 아니었다.
“발뭉 궤도낙하 완료. 비스트, 네 차례야.”
안나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종로 청계광장 인근
사방은 고요했다. 준은 자신의 키의 두 배는 됨직한 발뭉을 올려다보았다.
검신엔 푸르스름한 빛이 은은히 흘러내렸다. 그 빛을 보고있노라면 묘하게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날막이의 위아래로는, 노랑과 검정의 경고색을 띤 보조손잡이가 여러 개가 다닥다닥 달려있었다. 인간은 본래의 손잡이론 발뭉을 집어들 수 조차 없어서였다.
마침내 내가 갖게 되었어.
“비스트, 내 말 들리니?”
이어셋을 통해 김유정이 말했다.
“네. 말해요.”
준은 raj에서 서선을 떼지 못한 채 대답했다.
“곧 차원종이 진입해 올거야. 가급적 그것을 차원문에서 멀리 떨어트려 줘. 클로징 팀이 접근해 작업을 재개할 수 있도록.”
그가 아닌 내가 주인이 된거야. 난 더 이상.
“할 수 있겠어? 어렵다면 지원을… …”
“물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전에 끝장낼거에요.”
준이 흡족한 미솔지었다. 잠시 침묵, 그리고 유정이 외쳤다.
“온다.”
“오네요.”
준의 눈이 차원문을 향했다.
검은 원형 장막을 뚫고, 마찬가지로 검은 빛의 차원종이 나타났다. 그것의 색깔은 차원문의 그것과는 달리, 번들거리는, 매끈한 질감의 것이었다. 키는 오미터 가량에 전체적인 실루엣은 인간을 닮았으나, 등 뒤로 솟은 여분의 팔 하나와 다섯장의 날개가 결코 그렇지 않음을 과시했다.
“해볼까.”
“잠깐.”
새로운 목소리가 잉어셋을 타고 준을 가로막았다.
장소 불명
“안나가 잘도 날 속였더군.”
베이빗이 말했다. 어두컴컴한 방엔 십수 개의 모니터가 늘어서 빛을 발하고 잇었다. 그 중 몇 개의 화면엔 제 각기 다른 시점에서 비춘 비스트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한쪽 끝의 화면엔 자잘한 글씨가 가득한 문서 파일의 엿보였다.
[블루로즈 프로젝트]
“아니, ‘그들’도 속인거겠지? 끝내 널 거기 세웠으니 말야. 이 년전 내려진 부적격 판정과 프로젝트의 동결. 넌 실패작에 불과했어. 비스트. 아니, 코드네임도 상실했던가? 준?”
“난 실패작이 아니야.”
비스트가 팔을 치켜올려 간신히 닿을 높이의 보조손잡이를 낚아채고는, 가볍게 바닥에 박힌 발뭉을 뽑아들었다. 그의 체구에 비견했을 때, 앞을 향해 꼬나든 발뭉은 검이라기보단 랜스에 가까워보였다. 비스트는 발뭉을 한 번 크게 휘두르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들’이 틀렸다는 걸 지금 보여주지.”
“아니. 틀리지 않았어. 명령에 불복하는 짐승은 아무 작에도 쓸모가 없으니까. 넌 실패작이야.”
“**. 데이빗. 네가 뭘 알았든 상관없어. 이걸 끝낸 뒤엔, 그들도 날 택할 수밖에 없어.”
차원종이 날카로운 포효를 내질렀다.
“유감이야. 준. 네가 이 싸움에서 승리하더라도 넌 검을 갖지 못해. 그들은 방금 전, 준비없이 이세하를 검의 주인으로 결정내렸다. 너와 안나 덕분에, 그들의 속내를 한꺼풀 벗겨냈달까. 진심으로 감사하지.”
데이빗은 연결을 끊었다. 비스트가 고함과 함께 물러섬없이 발뭉을 겨누는게 보였다.
“왕자여, 날뛰는 야수를 지켜보소서.”
그가 혼잣말을 읊조리며 킥킥거렸다.
종로 청계광장 인근
전투는, 육박전과 포격전이 번갈아 오가는 양상으로 흘러갔다.
발뭉이 닿는 근거리에선 준이 우위에 섰고, 에너지 투사체를 서로 갈겨대는 원거리에선 비교적 열세였다. 차원종의 몸 여기저기에 돋은 다섯 장의 날개엔 기묘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마치 함포처럼 그것들에서 포격이 쏟아졌다.
그러나, 무차별적 포격만으론 차원종도 이렇다 할 결정적인 우세를 점하기 어려웠다.
준은 초조했다.
믿을수 없어. 아무 것도 보인 적 없는 그녀석이라고?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그녀석이라고?
“비스트, 시간이 없어. 클로징 팀의 일부로 지원할께.”
유정이 말했다.
“안돼. 혼자 할 수 있어요.”
“차원문이 계속 확장되고 있다고! 고집부릴 일이 아니야!”
내 실력을 보여주겠어. 증명해 보일거야. 도움 따위 필요없어.
“일 분. 일 분만 기다려. 그 다음엔 이세하를 부르든지 맘대로 해.”
“뭐? 세하? 그게 무슨… …”
준은 이어셋을 거칠게 떼 던져버렸다.
어떻게든 거릴 좁혀야 해. 한 번. 한 번이면 돼.
다시 차원종의 에너지 포격이 날아들었다. 준은 발뭉을 양손으로 쥐고 방패처럼 곧추세웠다. ㄱ리고, 위상력을 확장시켜 발뭉에 부딪쳐 냈다. 그와 검의 위상력이 충돌하며, 그를 중심으로 공간의 일그러짐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준이 곧장 차원종을 향해 돌격했다. 공간 주름으로 포격을 빗나가게 하고, 정면 돌파해 승부를 낸다. 내 힘을 보여겠어.
에너지 구 하나가 발뭉의 검심에 직격했다. 둔중한 충격이 준의 온몸을 뒤흔들었다. 귀와 눈에서 왈칵 피가 터져 흘렀다. 그가 발뭉과 일으키는 반발력이 충격을 배가시켰다.
난 실패작이 아니야. 난 괴물이 아니야.
마지막 포격을 스치가며, 준의 몸이 차원종의 지근거리에 떨어져 내렸다. 순간적으로 디딤발을 비틀어 누르며 한껏 발뭉을 뒤로 빼들었다. 차원종은 포격 자세 그대로 몸통을 노출시킨 채로 엉거주춤했다. 뒤늦게 그것의 한팔이 준을 향해 날아들었지만, 그가 더 빨랐다. 발뭉이 차원종을 베었다.
손아귀에 분명한 촉감이 느껴졌다.
“난 실패하지 않… …”
끝났다고 생각한 건 잠시였다. 차원종의 팔이 준의 머릴 후려쳤다. 그는 그대로 땅바닥에 나가 떨어졌다. 광선 몇 가닥이 그의 몸 여기저기를 관통했다.
“으아아악!”
준이 비명을 토해냈다. 그가 잘라낸 건, 차원종의 왼쪽 날개 두 장과, 등에서 뻗어나온 여분의 팔이었다.
유니온 본부 상황통제실
비스트의 참혹한 광경에 유정은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다시 일어서긴 했지만, 이미 망친창이가 되있었다. 그는 더 이상 싸울 수 없을 것 같았다. 안나가 털석 주저앉았다. 유정이 이를 물었다.
“지원 팀. 돌입하세요. 비스트와 발뭉의 확보를 우선합니다. 전술 행동은 현장의 판단에 맡길께요.”
“그건 올바른 판단이 아니야. 김유정 요원.”
스피커를 통해 데이빗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팀 일부를 나눈 지원병력은 시간벌기에 불과해. 그나마도 클로징을 지연시키는 일이니 시간벌기라고도 할 수 없지. 본래대로 차원종 섬멸을 우선해야 해.”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요. 발뭉을 넘겨받아 차원종을 상대할만한 사람이 없다고요. 상급 클로저들은 모두 오프닝과 클로징 작업을 진행한 뒤라 무리에요. 내보냈다간 개죽음이 될 뿐이라고요.”
유정이 그녀답지 않게 거칠게 대꾸했다. 누구보다 현재 상황이 답답한 건 그녀였다.
“괜찮은 적격자가 하나 있지.”
대형 화면 한쪽이 바뀌며, 위에서 내려다 본 세하가 나타났다.
“그 사람의 아들. 이세하. 검은양 팀의 클로저 요원이네.”
종각역 인근 유니온 소속 전술지휘차량 내
“세하 군, 현재까지의 상황은 지켜봤겠지?”
남자의 목소리가 세하의 한쪽 귀에 꽂은 이어셋을 통해 들렸다.
신강고 부실에 있던 그를 데리러 온 사람들이 통화시켜줬던 그 목소리였다. 남자는, 유니온이 급히 세하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었다. 세하는 유정이 그를 찾는 줄 알았지만, 그를 데려온 사람들은 장갑차량에 그를 혼자 내버려두고 사라졌다. 오직 명령이 있을 때까지 대기하라는 말 뿐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저대로라면 그는 죽을거고, 신서울은 쑥대밭이 될거야. 우린 저 이차원의 검을 넘겨받을 사람이 필요해. 비스트를 대신해 우릴 지켜줄 사람말이야. 그리고, 그 일에 세하 군이 적격이라 판단했지.”
차량 내부의 모니터엔 여전히 싸우고 잇는 비스트가 보였다. 그는 거대한 검에 지지대 삼아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그는 처량하고 위태롭다 못해 갸날퍼 보였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자넨 누구보다 강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 지금 발뭉을 다룰수 있는 건 자네 뿐이지.”
남자는 무뚝뚝했다.
“난 해야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네. 세하 군.”
“세하야?”
“유, 유정 누나? 저 말이 진짜에요?” 저 빡엔 안되는건가요?”
“그래. 그건 사실이야. 우린 지금 위급한 상황이야.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여기있는 사람들은 다 어른들이야. 네게 모든걸 짐지우려는 사람은 없어내가 말했던거 기억하지? 결정은 세하가 하는거야.”
타인의 반응에 자신의 행동을 결정지을 필욘 없다고 생각해.
세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휴대용 게임기를 넣어 불룩해진 바지주머니 위를 손가락 끝으로 더듬었다.
“세하 군이 검을 사용하기에 부족하다면, 즉시 현장에서 빼내주겠어. 아니, 유니온 일도 그만두게 해줄께. 세하 군은 어머니가 시켜서 클로저가 된거잖아? 그러니, 일단 나가.”
남자에게 소리지르는 유정의 목소리와 함께 통신이 끊어졌다.
화면 속의 비스트는 이리저리 몸을 빼며 물러나고 물러나고 있었다.
세하는 문득 그의 입술이 계속해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영상은 소리없이 움직임만 보여주ㅗ 있었다. 몇 번을 뱅뱅 돌던 비스트는 어느 순간에 차웑종을 향해 거대한 검을 내던졌다.
차원종의 에니지 포격이 여러 발 명중했으나, 검을 떨어트리진 못했다. 막아선 차원종의 한쪽 팔을 꿰뚫고도 검은 멈추지 않고 날아가 빌딩에 쳐박혔다. 그것이 비스트의 마지막 일격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본래 자신의 대검을 뽑아들고 다시 차원종에게 달려들었다.
세하는 주머니에서 게임기를 꺼냈다. 잠깐 바라보다 옆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책가방에 조심스레 집어넣었다.
“할께요. 들려요? 제가 한다고요.”
이어셋을 매만지고, 일어서서 장갑을 단단히 했다.
“유정 누나, 해보고 싶어요. 저렇게 죽게 두고싶지 않아요. 할 수 있다면, 제가 구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의 건블레이드를 손에 쥐었다.
- 끝 -
에필로그1.
“세하 군. 괜찮다면 세하 군의 게임 아이디를 알려줄래요?”
“제 게임 아이디요?”
“나중에 준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친구가 될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에필로그2.
“데이빗이 검에 대해 알아버렸다.”
“소년이 그의 수중에 있는 건 위험하다.”
“내버려 둔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다.”
에필로그3.
“이세하가 게임을 안하고 책을 읽고 있어. 양호실, 가야할까?”
“어디? 어디? 오오오, 그것도 무려 클로저 전술교본!? 저번 일로 운명을 깨달은건가!?”
“배터리 충전중이거든? 근데, 그 책 누구꺼야? 아까 침을 좀. 야, 이슬비! 때릴 건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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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엄청 길어졌네요. 프리오베 이전에 지스타 공개영상을 보고 쓰게 됐습니다.
그래서, 게임의 설정과 다소 다를수 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