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세하의 위상력 -8-
이케아라 2015-05-12 5
TV나 영화같은 곳에서 특수효과를 써야 간신히 하는척이라도 낼 수있었던 초능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발휘하는 능력자 클로저. 그리고 그런 클로저들의 원활한 임무수행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 유니온본부에서 검은양팀의 관리요원 김유정이 컴퓨터를 통해 자신의 상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유니온본부에서 제공한 아득한 크기의 사무실과, 그에 걸맞는 최첨단 설비. 간단하면서도 단아한 장식품으로 가득찬 고급스런 이 곳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컴퓨터 스피커를 통해 울려퍼지며 김유정의 귓가에 닿았다.
"그러니까... 본부에서 아이들의 명예를 실추시키기 위해 타국의 방위임무를 부탁이란 형식으로 건네버렸다는 말이군."
"예... 사전에 미리 방지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깊이 고개를 숙이며 사죄하는 부하직원을 화면너머로 지켜보며 강남의 새로운 지부장인 데이비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30대 초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소름끼치는 동안의 소유자이자, 항상 여유로운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의 버팀목이 되어준 그는 어지간한 일이 아닌이상 이렇게 감정을 대놓고 표출하지 않는다. 실제로 헤카톤케일의 시체가 강남을 습격했을때도 긴장하긴 커녕 차분하게 대책을 마련했을 정도니까. 하지만 김유정의 보고를 통해 들은 내용은 그런 그의 미간을 좁게 만들 정도로 심각했다.
"유정씨. 검은양에게 부탁을 한 클로저는 누구였지?"
"예? 아... 아마 제임스 로빈이란 이름이었을거에요. 나이는 약 50대 후반으로, 제이씨와 마찬가지로 차원전쟁 생존자이시죠. 지금은 유니온본부의 S급 클로저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에 대한 정보를 더 보고해주게."
무겁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데이비드가 정보를 요구하자 김유정은 순간 당황하면서도 엘리트요원답게 착실하게 제임스에대한 정보를 말했다. 공항에서 보여줬던 백발백중의 궁술과 다른 요원들과는 격이 다른 위상력, 그의 활동이력까지. 세세한 부분까지 보고한 김유정의 말을 듣고 데이비드가 심각한 표정으로 사색에 잠겼다.
'이제 거의 환갑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현역 클로저들보다 더 강한 위상력을 지니고있다니... 뭔가 좀 이상하군.'
위상력은 보통 10살미만에 각성하고, 20살 전후에 최고치를 갱신하며 그 이후로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약해진다.
물론 제임스는 차원전쟁때부터 활약하던 1세대 클로저이기 때문에 예외라고 할 수있지만, 신체가 많이 노화된 상태라면 2세대 클로저들과 마찬가지로 위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본부에서 S급 클로저로 활동할 수있을 정도라니... 데이비드의 머리속에서 수많은 의심과 잡념이 돌아다녔다.
"아. 그리고 세하가 키텐에게 당해 병원에 입원했을때, 유니온에선 그 사실을 저희들에게 바로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세하의 입원소식을 알게 된건 제임스 씨가 방위임무를 내릴때였어요. 이것도 참고가 될까요?"
"입원소식을 알리지 않았다고...?"
자신의 머리속을 지배했던 생각이 방금전 김유정의 보고로 인해 의심에서 확신으로 확정됐다.
유니온의 간부로서 누구보다도 자신이 속해있는 조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데이비드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검은양이 복귀했을때의 후폭풍은 우리쪽에서 최대한 수습해 보겠네. 일단 유정씨는 아이들이 미국에서 부담없이 활동할 수있도록 도와주게."
"알겠습니다."
자신에게 명령을 내린 상관에게 예의바른 인사를 하며 모니터를 끈 김유정이 심각한 표정으로 책상에 턱을 굈다.
"국장님...아니 지부장님이 식사권유같은 말도 안하시고 저렇게 진지하시다니..."
자신이 일에대한 보고를 올릴때도 처음엔 항상 시덥잖은 농담을 늘어놓는게 자신의 상관인 데이비드 리다.
그런데 이번엔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보고를 귀기울여 들었을뿐. 농담은 커녕 쓴웃음 조차 보이지 않았다.
확연하게 뒤바뀐 그의 태도를 떠올린 김유정이 인상을 찌푸렸다.
'어쩌면 이번일은 상당히 위험해질지도 모르겠어...'
뭔가 미묘한 방향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김유정의 말이 사무실에서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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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아~ 지루해지루해지루해!!"
복구작업으로 인한 소음과 일꾼들의 거친 숨소리로 가득한 강남의 폐건물 옥상에서 한 소녀의 목소리가 하늘로 날아갔다.
순도 100% 은광석처럼 새하얗게 빛나는 은발과, 그런 머리색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어두운색의 의상.
눈가를 살짝 덮은 피빛 아이라인이 인상적인 소녀의 투덜거림에, 옆에 서있던 소년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누나. 이세하가 떠난지 겨우 몇일밖에 안됐는데 벌써 그러는거야?"
"무슨 소리야! 겨우 몇일이 아니라 몇일씩이나 지났다구! 난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물건은 항상 곁에 두고있어야 속이 풀린다는거 잘 알잖아!"
"그리고 그렇게 마음에 든 물건은 항상 부숴버린다는것도 잘 알고있지."
아무렇지 않게 누나의 투정을 받아넘긴 소년이 어깨를 으쓱이며 반박했지만, 소녀는 그런 동생의 반응을 무시하고 비운의 여주인공처럼 흐느껴 울었다.
"아~~~! 한시라도 빨리 내 낭군님을 만나러 가고 싶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나도 놓치지않고 이 안구와 사진에 가득 채우고 싶어!"
"그냥 스토킹하고 싶다고 말해. 어렵게 돌려말하지 말고."
눈가를 빛내며 두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소녀의 모습에 소년이 한숨을 푹 내쉬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소녀는 짜증난 표정으로 소년에게 따질 뿐이었다.
"어째서 아내인 내가 남편의 곁에 떨어져있어야 하냔 말이야! 대체 왜 이런 작전을 세운거야 애쉬!!"
차원종. 아니 이름없는 군단의 참모장으로 활동하며 차원전쟁에서 수많은 공적을 세운 그들이 시끄러운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정신연령이 자기보다 낮은듯한 누나의 말에 애쉬가 천천히 타이르듯 말했다.
"진정해 누나. 누나가 이세하를 그렇게 갈망하는건 나쁘지 않지만, 그녀석은 인간이야. 진심으로 녀석을 우리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이 작전이 꼭 필요해.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 곧 있으면 이세하를 손에 넣는건 물론, 가증스런 유니온을 처단할 수 있을테니까."
유니온에대한 살의와 곧 다가올 거대한 사건의 기대감이 애쉬의 눈동자에서 소용돌이쳤다.
너무나도 즐거워보이는 자신의 동생을 보고 더스트도 어쩔 수 없다는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았어... 그 대신 이세하를 손에 넣으면 내가 괴롭혀도 죽지 않게끔 튼튼하게 만들어야돼!"
빙긋 웃으며 잔인한 말을 내뱉은 더스트를 보고 애쉬도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타로트 이상으로 위험한 두명의 차원종의 심각한 대화가 강남의 상공에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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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편은 일종의 예고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분량이 적습니다.
저번 편에서도 말했듯이 제가 5월달에 제일 바빠서 올리는 간격이 좀 불안합니다만... 주 1회연재는 아슬아슬하게 가능했네요
비축분을 만들어놔야되는데 시간이 없어요 ㅠㅠ
세하의 위상력 7편이 명예의 전당에 올라갔더군요. 감사합니다 제 소설같은 장편은 안 올라갈 줄 알았는데 추천해주셔서 감사해요 ㅠㅠ 언제나 더 재밌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참고로 1~7편의 내용은 발단-전개 부분이었습니다. 이제 위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