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누군가의 기억
에라온 2014-12-19 0
언제부턴가 달린다는게 당연시 되버린 삶.
핵사부는 언제나 내 옆에 있었다.
언제였는지 모를 기억. 차원종이 눈앞에서 입을 벌린채 무언가로 날 죽이려한 기억.
꺠어났을땐 병원이었고. 난 그 사건의 기억 의외에는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다.
이름. 나이. 직업. 모든걸 알 수 없었다.
나를 보며 특수요원이라면서 도움을 주려한 사람들.
얼굴에 난 상처. 몸이 기억하는 총. 하지만..
또다시 차원종이라는 괴물구덩이로 떨어진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두렵다.
내가 기억하는 차원종은 그저 날 죽이려한 괴물일 뿐이니까.
한달간 요양기간을 가졌다. 하지만 끝까지 난 총을 쏘지 못했다.
송은이 언니는 날 보며 좀더 쉬는게 낫지않겠냐고 물었다.
모든걸 잃어버린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이제 남은건 지원 요원들이 올때까지 버틸 수 밖에 없는, 그마저도 쏘지 못하는 작은 총뿐인데.
"일단 쉬고있어. 강남에 있어. 거긴 좀 안전하니까."
송은이 언니의 명령에 따라 난 강남으로 이적했다. 전 세계가 차원종으로 미처날뛰고 있는 와중에 창고라는 명목으로 조금은 안전할 수 있던 곳이었다. 결국 고위급 간부들의 피난처였지만.
"언니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요원이면 차원종을 멋지게 총으로 쏴죽이는거 아냐? 땅땅땅 하고 말야."
강남에서 만난 소영은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여대생이었다. 요원들에게 파는 음식 덕분에 장사는 잘된다며 웃었다. 참 태평한 여자애라고 생각했다. 언제 차원종이 들어올지 모르는데 이런곳에서 웃을 수 있을까.
"그러게.. 난 뭐하는걸까?"
소영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여기서 도대체 뭘 하고있을까. 식량이나 축내는 쓰레기가 아닐까. 차라리 그냥 퇴직해서 돌아다니다가 차원종에게 먹히는게 더 낫지 않을까.
"언니. 한번 저거 타볼래요? 기분전환도 하는김에."
소영이는 오토바이를 가리켰다. 125cc의 작은 오토바이. 핵사부였다. 말을 돌리기위해 한 말이였겠지만 난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말았다.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던걸 타자는 소영의 말이 어이가 없었다. 물론 다가가서 전원을 켜자 부릉 소리와 함께 움직이긴 했지만. 알고있었냐고 묻자 자신도 몰랐다는 소영이었다.
"분명히 고장나서 버렸을탠데.. 왜 움직일까요?"
"모르겠네. 어디.."
시트에 앉아 풋레스트를 밟았다. 잘 움직였다. 연료탱크를 열어보았다. 흠집은 많았지만 연료탱크에는 이상이 없었다. 다른 구조들도 조금씩 흠집은 있었지만 그리 문제되는건 없었다.
"연료좀 가져다줄래? 이거 쓸수있을것 같아."
"네!"
소영이가 연료를 가지러 간 사이 난 다시 스텝을 밟았다. 유연하게 움직이는 풋레스트. 브레이크도 고장난건 아닌듯 싶다. 바퀴도 구멍이 나있진 않다. 도대체 이 핵사부의 주인은 왜 이걸 버린걸까.
"언니! 이거면 되요?"
소영이는 아예 기름통을 하나 가저왔다. 휘발유가 담긴 통이었다. 핵사부의 연료통을 열고 휘발유를 넣었다. 왠지 모르게 난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핸들을 잡고 스타트 버튼을 누르자 핵사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르르 진동하는 핵사부의 진동에 맞춰 내 심장이 고동하기 시작했다.
"....가자."
소영이를 뒤에 태우고 핸들을 꽉 쥐었다. 빠른 속도로 핵사부가 움직였다. 마치 내가 달리는듯이. 핵사부는 나의 스텝과 핸들에 맞춰 잘 움직여줬다. 요원들이 위험하다면서 길을 비켜서줬고 속력을 올려 더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샌가 강남 CGV 근처 도로에 나와있었다.
"너무 멀리 온거 아니에요? 슬슬 돌아가는게.."
"그럴까? 그럼 가자."
핸들을 꺾어 방향을 돌리자마자 어디선가 사이렌이 울렸다. 차원종의 출현. 게다가 B급이었다. 위상억제기는 가동되고 있었다. 그런데 어쨰서?
"크아아아아아아아!"
차원종들이 차원문을 뚫고 튀어나왔다. 핸들을 꽉 쥐었다. 소영이에게 고개를 숙이라고 말하고 스텝을 밟았다. 스캐빈저들이 쫒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뒤에서 폭탄더미들이 날아왔다. 빠르게 핸들을 꺾으며 더미들을 피한 나는 스텝을 최대로 밟았다.
"**!"
최대속력으로 핵사부가 달리기 시작했다. 난 죽어도 되지만 소영이만은 살려야했다. 발에 힘이 들어갔다.
"우란아 여기! 빨리!"
송은이 언니가 보였다. 이대로 조금이다. 조금만 더.. 밟으면..!
"크아아아아아아!"
공중에서 트룹들이 착지해 괴성을 질렀다. 길이 막혔다. 핸들을 꺾어 옆으로 돌렸지만 막혀있었다. 스캐빈저와 트룹들이 나와 소영이를 노려보았다. 송은이 언니가 지원사격을 해줬으나 트룹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
이대로 죽는거구나. 죽어도 상관없는 삶이었지만 죽는다는건.. 아..안돼.
"싫어!"
죽기싫어! 살려줘.. 제발. 누구나. 좋으니까! 제발.. 소영이만은..
"울지마. 짜증나."
눈앞으로 밝은 빛이 지나갔다. 트룹들이 비명을 지르며 분쇄되어갔다. 눈물이 흘러서 잘 보이지 않았다. 검은양. 그 검은옷을 입고있던 소년은 검은양을 떠올리게 했다. 블레이드를 휘두르며 소년은 외쳤다.
"빨리 튀라구. 누나. 살고싶잖아."
핸들을 쥐었다. 스텝을 밟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밟았다. 핵사부가 날아가는게 보였다. 그래. 난..
"...우란아, 괜찮아? 나 보여? 살아있어?"
눈을 뜬 곳은 병원. 아무래도 또다시 기절해버린것 같다. 핵사부가 날아가는것 까진 기억이 났는데.. 어딘가에서 끊긴 모양이다. 고개를 들어 옆을 보자 소영이가 침대에서 자고있었다.
정말.. 다행이다. 살아서..
"뭐 어쩌려고 거기까지 나간거야? 미쳤어? 새하가 없었으면 어쩔뻔했어?"
"죄송합니다.."
속터진다면서 가슴을 콩콩 치는 송은이 언니를 보자 웃음이 나왔다. 아 그러고 보니 핵사부는..?
"언니.. 핵사부는요?"
"응? 그 오토바이? 좀 박살나긴 했는데 사용할 순 있겠다던데? J라고 솜씨 좋은사람이 그랬어."
..그렇구나. 다행이야.. 정말.. 다행..
"우란아? 자? 우란아? ..자나보네. 정말 이 애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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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선우란. 난 클로저 현장 요원이었다. 어느날 기억을 잃은 난 핵사부를 만났다. 내 최초이자 최고의 라이딩. 핵사부. 차원종의 습격떄문에 박살나버린 핵사부는 J라는 사람의 도움으로 새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가벼워지고 빨라젔다. 이젠 차원종들은 따돌릴 수 있을정도의 속력이 되었다.
J는 나에게 물었다. 새 이름을 지어주는게 어떻겠냐고. 이젠 핵사부가 아니라 핵사부를 뛰어넘은 무언가라며 나에게 이름을 지어주길 바랬다. 쓰레기통에 처박혀있던 핵사부. 지옥같은 삶을 살아가던 나. 우리들은.. 서로..
"핵사부사. 핵사부사로 하자. 이녀석은 이제 핵사부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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