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만약 제저씨가 안경을 벗는다면. -이슬비편: 프롤로그-

Maintain 2015-05-07 8

나한테 아들이나 딸이 있다면 무슨 기분일까.

어렸을 때 곧잘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전쟁 시절 민간인들을 대피시키거나 이미 죽은 사람들을 수습할 때마다, 줄곧 그렇게 생각했다.

자식이 있는 부모님은, 절대 자기들이 먼저 대피하는 법이 없었다. 자신들은 어떻게 되도 좋으니, 부디 이 아이만은 살려 달라고. 반드시 아이들이 먼저 대피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자신들도 대피를 했었다. 그러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큰 상처를 입거나, 아예 죽는 경우도 더러 봤었고.

시신을 수습할 때도 그랬다. 한 번은 차원종들이 안에서 자폭을 한 덕분에 큰 건물이 대파된 적이 있었다. 

문자 그대로 완전히 붕괴. 안에 있던 차원종은 물론이고 사람들도 많이 죽어서, 생존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던 사건이었다. 형체도 못 알아보게 망가진 차원종과 민간인의 시신이 뒤섞여 있어서, 담이 큰 베테랑 요원들도 치를 떨었던 그런 참사였지. 지금도 그때 맡았던 그 피 냄새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서, 지금도 선지 같은 건 건강 문제를 떠나 입에도 못 댈 정도다. 내가 그럴 정도였는데, 신입 요원들은 어땠겠나. 구토와 혼절은 기본이요, 심지어 그게 트라우마로 남아 은퇴까지 한 사람도 있었다고 하는데.

아무튼 그런 지옥에서도, 생존자는 있었다. 그 중에선, 부모님이 목숨을 각오해서 잔해를 몸으로 막은 덕분에 생존한 아기도 있었다. 아기는 자신을 덮은 부모님 아래에서, 세상 모르게 곤히 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기를 싸고 있던 강보 안에 있던 폰에는. 문자가 띄워져 있었다. 우리는 너를 사랑한다, 부디 누가 이 아이를 발견하면 이 아이를 잘 부탁합니다, 대충 그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많은 사람들이 울었다. 그 누님도, 수습이 끝나고 홀로 술을 마시면서 목놓아 울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행이 그 아이는 지금 다른 가족에게 입양되서 잘 살고 있는 것 같지만.

하지만 어째서였을까.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슬프지도 않았다. 왜 다들 저렇게 슬퍼하는 거지? 전혀 알 길이 없었기에, 그래서 슬프지도, 눈물이 나오지도 않은 것 같다. 

누님이, 그런 나에게 말해줬었다. 너도 나중에 네가 목숨을 다해 지켜야 할 사람들이 생긴다면, 지금의 이걸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런 말을 하면서, 누님은 나를 품에 안은 채 다시 울었다. 

목숨을 다해 지켜야 할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내게 생길까? 아니, 정확히는 그러고 싶은 사람이 한 명 있긴 하지. 하지만, 그 사람은 나보다 훨씬 강한걸. 그러니까, 내가 지켜줄 필요도, 이유도 없어. 

그럼 내게 아들이나 딸이 있으면 그걸 알 수 있을까? 하지만 그건 영원히 이루어지지 못할 일이겠지. 내게 그런 게 생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렇게,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은 계속 흘렀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내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르는 채.





"그럼 제이 아저씨! 나중에 봐요~"
"그래, 너도 수고하라고 은이. 시간나면 연락해." 

차원종들의 출현도 뜸해졌고, 확실히 예전에 비해선 시간이 많이 남는 게 사실. 그런 날엔, 마찬가지로 한가한 사람끼리 만나서 놀다 오는 게 제일인 것 같다. 예전엔 시간이 남으면 그냥 혼자 틀어박히는 게 좋았는데. 나도 조금은 변한 걸까.

그래서 은이를 만나 카페에 갔다오는 길이다. 하루 적당량의 커피는 몸에 좋다는 연구결과도 있고, 그리고 뭣보다 카페에 가기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은이도 이제 곧 다른 곳으로 전근간다고 하니, 그 전에 이것저것 같이 즐겨 줘야지. 좀 있다 세린이한테도 전화나 한 통 줘야겠다. 요즘 많이 힘들어 보이던데. 아, 그나저나.

"다른 아이들은 지금 뭐 하고 있으려나...?"

한가하다고는 해도 언제 또 차원종이 나타날 지도 모르는 것도 사실이라, 일단은 사무실에 출근은 해야 한다는 건 좀 아쉽긴 하다. 이래서야 휴일이 영 의미가 없는걸. 애들도 그게 불만이었던 모양인지, 다들 하나같이 뚱한 표정이었다. 

나 나갈 때까지만 해도 동생은 여느 때처럼 게임을 하긴 하지만 영 재미없다는 표정이었고, 유리는 나갈 거면 자기도 좀 데리고 가 달라고, 안 된다고 하니까 치사하다고 볼을 부풀렸고. 막내는 아예 꾸벅꾸벅 졸면서 창을 손질하다가 소파에 누워서 잠에 빠졌었다. 다들 심심해 죽겠다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그런 표정들이었지. 단 한 명을 제외하곤.

"그러고 보니, 대장은 어딨지...?"

대장은 명령에 충실한 아이니까. 다른 아이들처럼 불만 가득한 표정이 아닌, 결연한 의지에 찬 표정으로 사무실에서 출동 명령을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늘은 대장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내가 출근해서 나갈 때까지 계속. 지각은커녕 아무리 몸이 아파도 결근조차 한 번도 한 적 없는 아이인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고 있자니,

-삑!

...무전? 이런. 또 출동 명령인가. 나는 무전기를 켜고 그 무전을 보낸 사람에게 말을 꺼냈다.

"아, 유정 씨. 오늘은 어디로 가면 되지?"
"아, 제이 씨. 빨리 받으셔서 다행이네요."
"출동 명령은 빨리 받아야지. 안 그러면 누군가한테 하루종일 잔소리를 받을 테니까. 아무튼, 오늘은 어디로 가면 되는 거지? 빨리 끝내자고. 안 그러면 약 먹을 시간이 지나 버리는데."
"아, 그게 말이죠...지금 연락한 건 출동 명령 때문이 아니에요. 좀...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얘기? 뭐야, 드디어 나의 매력을 알고 데이트 신청이라도 하려는 건가? 어디 가서 뜨끈한 쌍화탕이나 한 잔 할까?"
"뭐, 뭐에요 그게. 그런 거 아니에요. 슬비에 관해서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 거라고요."
"...대장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진지해진 게 느껴진다. 애들에 대한 얘기가 나오게 되면 저절로 이렇게 긴장하게 된다니까.

"자세한 건 만나면 얘기해 드릴게요. 일단 제가 말하는 곳으로 와 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무전이 끊겼다. 유정 씨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가벼운 얘기는 아닌 거 같은데. 

나는 살짝 긴장을 하며, 유정 씨가 말한 장소-아까 그 카페로 향했다. ...설마, 내가 거기서 은이랑 노닥거리는 걸 본 건 아니겠지. 제발 들키지 않았길, 가면서 오만가지 신들에게 기도했다.




...그리고 잠시 후.

"...지금 그 말, 진심이야?"
"...부탁해요. 제이 씨. 제이 씨 말고는, 이걸 부탁할 사람이 없네요."

...내가 어쩌면 여태껏 살면서 가장 어려운 부탁을 받게 된 것은, 카페에 도착해서 3분 정도 후의 일이었다.







예, 안녕하세요. 오늘도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다행이 오늘은 조금은 빠르게 글을 쓸 수 있엇네요. 원래 가기로 했던 학원이 갑자기 휴강이 돼서...빨리 시험이 끝났으면 하는 마음일 뿐입니다.
이제 드디어 중요 인물들의 루트로 넘어오게 되었네요. 검은양 팀에서 제일 먼저 뽑힌 건, 전에 예고했던 대로 이슬비 대장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원래는 생일날에 맞춰서 끝내고 싶었는데, 시간이 안 돼서 지금에서야 쓰게 되네요ㅠ
여전히 시간이 잘 안 나는 게 사실이고 아직 세부 스토리도 짜여지지 못했긴 했지만, 이번 루트부터는 조금 빡시게, 기합을 넣어 쓰고 싶네요. 글의 퀄리티가 더 높아졌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분량도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늘어날 거고요.
짧은 프롤로그라도,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다시 뵙도록 하죠.
2024-10-24 22:26:45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