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스-초단편/이슬비] 여왕The Queen
나예령 2015-05-06 4
[클로저스 - 초단편 / 이슬비]
여왕
The Queen
《…………》
“아아, 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비가 내렸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쏟아지는 비가 그 울음소리를 모조리 묻어버린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는다.
그 정도로 장대한 빗소리였다. 모든 것을 파묻어버릴 기세로 떨어지는 빗소리에, 모든 것을 감추어버리는 우막의 베일 아래 소녀는 자신의 몸을 감싼 채 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동료도, 친구도, 그 무엇도.
“이세하…….”
그녀가 친애했던 소년도.
“서유리…….”
그녀를 감싸주었던 활기찬 소녀도.
“미스틸…….”
독일에서 온, 이상하리만치 강하던 소년도.
“제이 씨…….”
차원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던, 의지할 수 있었던 사람인 그마저도.
모두가 사라졌다.
모두가 쓰러졌다.
남은 건, 그녀――――이슬비 한 명뿐.
유니온 소속 클로저 팀, 검은양은 전멸했다.
슬비는 눈을 들었다.
그그긍 소리와 함께 다가오는 커다란 손이 보인다. 뼈만 남은 앙상한 골격을 가진 그 손, 실로 거대하다는 말 이외에는 표현할 길이 그리 많지 않은 손을 바라보던 슬비의 눈에 노염怒炎이 깃든다.
그러나, 손은 다가오지 않고 그녀의 머리 위에서 멈춘다.
마치, 내리는 비를 가려주듯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슬비는 그 손의 주인을 바라본다.
“헤카톤케일……?”
용의 군단의 전 군단장, 옛 용.
헤카톤케일.
유럽지구를 단 사흘 만에 불바다로 만들었다고 하는, 차원종 대군 10만에 필적하는 힘을 지녔다는 차원종이다.
그런 차원종이 어째서 그녀를……?
헤카톤케일의 목소리일까. 그녀의 머릿속으로 누군가가 글씨를 새겨 넣듯이, 상대의 사념이 전해져온다. 사물과 소통하는 능력을 가졌던 미스틸테인과 달리 슬비에게 그런 종류의 위상 능력은 없다. 그렇기에 고통이 밀려들었다.
그 고통은, 흡사 머리를 쪼개고 그 안에 칩을 집어넣는 것 같은 느낌.
뇌를 누군가가 헤집어대는 것만 같은 극통이었다.
【……자질이 보이는구나…… 인간 소녀.】
무슨 뜻일까.
헤카톤케일의 사념이, 슬비의 머릿속으로 파고든다.
【힘이 필요하지 않은가…….】
힘?
필요하다.
상황을 이 지경까지 몰아붙인 그들을 징치하기 위해.
그녀가 사랑한 이들을 죽게 만든 그들을 박살내기 위해.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차원종에게까지 그 힘을 받으면서까지 복수하고픈 생각은…….
‘아니.’
슬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렇지 않다.
그녀에게는 힘이 필요하다.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그들에게 복수할 힘이 필요하다.
그녀 혼자로는 유니온이라는 거대한 조직에 대항할 힘이 부족하다.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에게 패한 위상 능력자에게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슬비는, 세하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그리고는 가지런히 눕혔다.
천천히 일어난 슬비의 머리 위를 가린 헤카톤케일의 손이 빗줄기를 막아준다. 거세게 쏟아지던 비가 그 손에 가로막혀 가느다란 이슬비로 변한다.
그녀에게 세례를 내리듯, 부슬부슬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슬비는 쓰러진 이들을 모두 한 곳으로 모았다.
“미스틸…….”
눈을 감은 미스틸테인은, 여전히 천사 같았다.
작은 몸으로 커다란 창을 휘두르며, 그들을 든든하게 보조해주었던 작은 전사이자, 작은 천사. 한국의 문화에 그다지 익숙하지는 못해서 웃음을 주기도 했었던 미스틸테인의 작은 몸은 정말로 너무나 가벼웠다. 그 얼굴에 묻은 핏자국이, 빗소리에 씻겨나간다.
가녀린 그 몸이, 너무나도 가련하다.
미스틸테인의 젖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세하의 곁으로 돌아와 미스틸테인을 눕힌다. 곱게 뉘인 아이의 모습은, 남자아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곱다.
눈물이 고였다.
“미스틸, 미스틸…….”
아아, 아아아…….
다시 눈물이 터지고, 울음이 터지고, 겨우 겨우 억눌렀던 감정이 다시 터져 나오고 만다.
복수감으로 억눌렀던 눈물이 다시 솟구치고 만다.
헤카톤케일의 사념이, 슬비의 머릿속에 울린다.
【어떤가… 인간 소녀……. 힘이, 필요하지 않은가…….】
헤카톤케일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슬비는 눈물을 훔쳤다.
왈칵 솟구치는 눈물을 닦아내고 또 닦아내며, 가슴에 구멍이 뚫려 쓰러진 유리를 세하의 곁으로 데려온다. 천천히 유리를 세하의 곁에 눕히고는, 구멍이 뚫린 자리를 애써 가려놓는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얼마나,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가슴을 꿰뚫려 쓰러지던 유리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가슴을 타고 흐르던 피가 선명하던 것이 눈에 여전히 밟힌다.
그래, 잃었다.
유리도, 항상 밝게 웃던 그녀도, 결국…….
“서유리…….”
【복수할… 힘을… 원하는가…….】
헤카톤케일은, 집요하게 물어온다.
슬비는, 제이마저 한 자리에 뉘이고는 그들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미안해… 미안해…….”
이미 대답할 수도, 대답할 일도 없는 네 사람의 시신에 시선을 준 채.
이슬비는, 주먹을 땅에 내리친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주먹이 부서져라 내리치고 또 내려쳐, 피가 철철 흐를 때까지 주먹질을 해댔다.
자신에 대한 분노.
이런 상황을 만든 상층의 인간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자기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저주.
그런 복합적인 것들이 합쳐져 분노가 도저히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울분을, 분노를 토해내다 고개를 든 슬비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헤카톤케일의 거대한 눈과 시선을 마주쳤다.
헤카톤케일의 무심할 정도로 차가운 해골 속 눈동자가 번뜩인다.
【……시간은 주었다, 인간 소녀.】
그렇게 말하는 헤카톤케일에게, 슬비는 답했다.
“……좋아.”
빠득,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킨 슬비는.
거대한 차원종, 옛 용의 군단장을 마주보며 말했다.
“내게, 힘을 줘.”
【……좋다.】
거대한 손이, 슬비를 덮는 것처럼 내려오더니 부드럽게 그녀를 감싸 쥐었다.
그러나 부드럽게 감싼다고는 해도, 그 악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
건물을 우습게 부숴버리는 헤카톤케일의 악력에 몸이 부스러지지는 않을까, 라는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그 손에 잡힌 슬비는 빗발을 맞으며 천천히 허공으로 들어 올려졌다.
헤카톤케일의 사념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나는…… 용이다. 네게, 힘을 준다…….】
그리고는 슬비가 상상하던 것 이상의 가혹한 고통이, 그녀를 덮쳤다.
온 몸을 산산이 조각내고 찢어내는 듯이, 온 신경을 불태우고 고문하는 것처럼 날카롭고 사나운 통증이 온 몸과 신경계를 마구 내달린다.
너무나도 아픈 탓에, 신경계도 몸도 한 순간 고통을 잊어버린다.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는, 외려 무고통이 되는 법이라고 했던가.
극통을 넘어선 무시무시한 고통에 모든 세포와 신경계가 타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통증은 사라지고 묘한 느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힘이 차오르는 듯한 신비한 느낌.
발끝부터 시작된 기이한 율동이 슬비의 몸을 꿰뚫었다.
【……너는… 여왕…….】
헤카톤 케일의 사념이, 서서히 멀어져 가는 슬비의 의식을 두드린다.
【모든 이의 위에…… 군림할 자…….】
.
“으음…….”
자신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꼬며, 옥좌에 앉은 소녀는 진한 붉은빛이 감도는 눈가를 슬쩍 매만졌다.
붉게 칠해진 눈가의 가장자리에 머물고 있던 소녀의 시선이, 그녀가 있는 방으로 들어서는 인기척을 향해서 돌아간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인기척을 낸 존재에게 준 소녀는 가볍게 혀를 찬다.
소녀가 있는 공간으로 들어선 존재는 인간이 아니었다.
엄청난 근육으로 이루어진 몸, 그리고 인간이 아님을 증명하는 외양은 근육질과 이목구비를 알 수 없는 그 모습으로 알 수 있었다.
소설에서 말하는 괴물, 몬스터가 그러할까?
그러나,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입을 떼었다.
“무슨 일이지? 크리자리드Crezarid.”
소녀의 물음에, 무릎을 꿇고 자신보다 높은 상위 개체에 대한 경의를 표한 크리자리드가 입을 열었다.
“군단장, 용의 전언입니다. 퀸Queen이시여.”
“용이라…….”
뱀의 군단, 혹은 용의 군단이라 불리는 세력이 존재한다.
인간들은 소녀와 그녀 앞에 자리하고 있는 크리자리드, ‘그들’을 통칭해 차원종이라고 부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소녀든 크리자리드든 그 명칭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편할대로 부르라면 부르라는 게 차원종 군단의 내심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보다도…….
소녀, 퀸은 턱을 괴었다.
군단장, 용.
용이라 일컬어지는 군단장, 즉 수장급 개체와 그 휘하에서 군단을 통솔하는 두 개체의 하이브 마인드로 구성되어 있는 차원종이라는 세력을 구성하고 있는 군단 중 하나다. 그 군단장인 헤카톤케일Hecatoncheires은 과거 인간 세계의 서유럽이라는 지역을 3일 만에 불바다로 만들었을 정도의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는 차원종이며 용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힘을 가진 자다.
지금은 인간세계 어딘가에 잠든 그 자 대신 두 명의 하이브 마인드가 군단을 통솔하고 있는데, 용이라니.
퀸은 미미한 짜증을 드러내며 이마를 찡그렸다.
“용……? 용은 지금 잠들었을 텐데.”
“그는 옛 용입니다, 퀸이시여.”
크리자리드의 말에 퀸은 다리를 꼬며 말했다.
“뭐, 좋아. 말하도록……. 전언이 뭐지? 크리자리드.”
“용께서, 이번 전쟁에 개입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다는 전언을…….”
퀸의 눈이 치켜 올라가더니, 그녀의 손이 크리자리드를 향했다.
그 가느다란 검지의 끝에 모이는 차가운 빛.
“같잖은 소리로구나, 크리자리드.”
“무슨… 커헉……!”
반문하려 하던, 크리자리드의 몸을 꿰뚫는 분홍빛의 섬광.
순식간에 크리자리드의 심장을 꿰뚫고 지나간 분홍색 섬광은 바닥에 꽂히며 이내 강철색의 단검으로 모습을 바꾼다. 크리자리드는 심장 부분을 쥐어뜯으며 고통스러워하더니, 이내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진다.
“퀴, 퀸…… 어, 어째서……!”
“더 이상 들어줄 생각도, 가치도 없구나. 어리석은 뱀, 크리자리드.”
퀸은 입가를 차갑게 말아 올렸다.
그리고는, 두 개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애쉬Ash, 더스트Dust.”
두 명의 목소리가 울리며, 퀸의 양 옆으로 흰 머리의 소년과 소녀가 모습을 드러낸다.
옥좌에 앉은 퀸에게 가볍게 목례를 해 보이는 두 사람을 본 크리자리드의 목에서 그르륵 하고 날카로운 단말마가 새어나오다 이내 멎는다.
애쉬, 그리고 더스트.
【이름 없는 군단】이라 불리는 세력 내에서 수장급에 해당하는 차원종들로, 용의 군단에 있어서는 적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퀸은 중립 세력을 이끄는 수장이며 그렇기에 말 그대로 중립적인 성야을 띠고 있는 존재지만, 저 둘은 인간을 이용해 그들을 말살하려 한다. 확고부동한 적인 것이다.
죽어 사라져가는 크리자리드를 보며, 퀸이 입가를 차갑게 말했다.
“……놈을 죽여라.”
옥좌에서 일어나는 그녀를 향해, 애쉬와 더스트가 경의를 표한다.
이름 없는 군단의 수장급에 해당하는 두 차원종의 목례를 받으며 일어난 퀸이 머리칼을 흔들었다. 그녀의 머리칼이 한 차례 흔들리며 허공에 미미한 파문을 일으켰다. 허공에 그려지는 파문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힘, 위상력이 그만큼 강대하다는 반증이다.
자신의 머리칼을 넘기며, 퀸이 말했다.
“아스타로트의 목을.”
그녀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애쉬와 더스트는 확실하게 알아차렸다.
퀸.
중립 세력뿐만 아니라, 차원종 대부분이 따르는 상징적으로 여왕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과거에는 인간이었으나, 지금은 그 틀을 벗어던진 것이나 다름없는…….
눈가를 매만지며 퀸은 걸음을 옮긴다.
우아하게 허공을 밟아 나아가는 그녀의 발 아래로 위상력으로 만들어진 파문이 그려지며 그녀의 갈 길을 만들어낸다. 그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며, 퀸은 애쉬와 더스트에게 말했다.
“내게 가져오도록.”
“퀸의 뜻대로.”
고개를 숙여 보인 두 명의 차원종은 이내, 스르륵 모습을 감춘다.
퀸은 허공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밑으로 시선을 준다. 아래를 보며 작게 무어라 중얼대고서는, 퀸은 어둠 속으로 몸을 묻어버린다.
어둠이 그녀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어둠의 품에 안긴 채, 퀸은 날카롭게 치떴던 눈을 감았다.
“혼자서 싸우는 게 쉽진 않을 거야…… 리펄서Repulser(*격퇴자).”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퀸은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남은 건, 너 혼자뿐이니까.”
인류는,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유니온은 그녀의 손에 의해 무너졌다.
클래스 타입 캐스터, 전前 위상 능력자…… 퀸.
이슬비의 손에 의해서.
남은 건 오로지 단 한 명.
격퇴자, 리펄서…….
“혼자서 싸워 봐……, 류환.”
모든 걸 잃은 내 분노를, 더 쏟을 수 있다면 난 그걸로 만족이니까.
일그러진 입가에 비틀린 미소를 떠올리며 퀸은 어둠에 온전히 몸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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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 800여자 자리 초단편~!
레테님이랑 약속했으니 올립니다.
근데 왜 자꾸 서비스페이지 오류뜨는 거냐.
딥다크한 전개는 개불...ㅠ
쓰다가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잘라먹고 그냥 올린다는 게 대함정.
...이래도 괜찮은 건가, 나?!
는 아스타로트 가기 전에 슬비 빼고 전멸한 검은양팀...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