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만약 제저씨가 안경을 벗는다면. -오세린편- : 질투, 그리고 실수

Maintain 2015-04-26 5

선배님이 나가시고, 나는 선배님이 드시던 죽 그릇을 설거지했다. 그 알파퀸께서 직접 만드신 죽이라...그래서인지 왠지 손 대는게 겁이 나서 그냥 선배님께 드렸는데. 다 드시긴 햇지만 영 표정이 좋지 못하셔서, 그래서 선배님이 나가시고 살짝 맛을 봤는데, ...선배님, 죄송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물이라도 조금 탈 거 그랬네요. 세하 군, 세하 군도, 많이 힘들겠구나...

-끼릭!

설거지를 마무리짓고, 수도꼭지를 잠궜다. 아무도 없기 때문이겠지.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것 같다.

앞치마로 손에 묻은 물기를 닦으면서, 거실로 나와 주변을 살펴본다. 더 청소를 할 곳은 없을까? 선배님이 오시기 전까지 끝마쳐야 할 텐데. 그래야 선배님께서 편하게 쉬실 수 있을 테니까. 침대를 정돈하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휴..."

주변을 둘러본다. 아까 전까지의 그 소란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사람 하나 없는 선배님의 집은 조용하기 그지없다. 그저 시계의 초침이 흘러가는 소리가 적막을 조용히 깨트리고 있을 뿐. 

별로 꾸민 곳 없는 수수한 집. 선배님의 집에 대한 내 감상이다. 우리 집도 별로 꾸민 곳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신경쓴 곳은 있는데. 아무래도 남자의 집이라서 그런 걸까? 남자의 집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그래도 슬비 양이 아까 말했던 건 조금 동감이 간다. 보통 드라마나 만화 같은 데서 나오는 남자의 방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 집보다 훨씬 더 깔끔할지도 모르겠다.

"...아차, 이게 아닌데."

안돼안돼. 딴 생각을 하다가 시간을 잡아먹고 말았다. 선배님이 오시기 전에 빨리 청소를 마무리지어야 하는데. 마음이 급해져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디 빠트린 곳은 없을까?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책상 위에 그릇을 하나 찾아냈다. 아까 유리 양이 사과를 깎아왔던 그 그릇이다. 깜박했었네. 그릇을 가져가려다,

"......"

그릇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복잡해져 온다. 아니, 아까부터 들었지만 잠시 잊고 있던 그 감정이, 지금 다시 들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왠지 모를 자괴감마저 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선배님의 병문안을 가기로 했을 때는, 문자 그대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선배님의 집에 간다고? 언제 이런 기회를 다시 잡을 수 있을까? 거기다 이제 이 곳을 떠나면 그 기회도 영원히 안녕이겠지. 그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세하 군이 집에서 죽을 챙겨올 때도, 슬비 양이 마트에서 주스를 살 때도, 유리 양이 노점에서 사과를 살 때까지만 해도 내 가슴은 계속 설레였다.

그리고 선배님을 다시 뵀을 땐, 정말 가슴이 두근거려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오랜만에 뵌 선배님은, 뭐랄까, 그때와는 많이 달라져 계셨다. 염색을 하신 건지 검은색으로 바뀐 머리는 멋지게 손질되어 있었고, 살짝 늘어져 있는 티셔츠도 선배님에게 잘 어울렸다.

하지만 가장 놀랬던 건 아무래도 그거겠지. 항상 쓰고 계셨던 그 노란색 안경은 어디로 간 걸까? 나중에 그 안경이 뭔가 강하게 눌린 듯 심하게 깨져 있는 걸 보긴 했지만, 솔직히 그 안경은 계속 그렇게 깨진 채로 남았으면 좋겠다. 살짝 날카로운 느낌이 들긴 햇지만, 선배님이 안경을 벗으시니... 다른 아이들이 기대하라고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아무래도 아프신 몸이시다 보니 초췌함은 어쩔 수 없었고, 그래서 다짐했다. 선배님을, 다른 아이들과 함께 오늘 하루 잘 보살펴 드리자고.
  
하지만...시간이 지나면서, 내 생각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햇다. 이런 생각 하면 안 되는데,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감정을 삭혔지만, 그 감정은 점점 더 강해져만 갔다.

죽을 데우면서 생각했다. 이 죽이 내가 직접 만든 죽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선배님께 내가 만든 요리를 맛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이 죽이 없었다면 그럴 수 있었을 텐데.

슬비 양이 선배님에게 농담을 던지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그 딱딱한 슬비 양이 저렇게 농담을 하다니. 거기다 살짝이긴 하지만 웃기까지 했다. 선배님과 가깝지 않다면 상상도 못 할 모습인데. 나도...선배님과 저렇게 가까워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리고...유리 양이 사과를 깎아 선배님께 먹여주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찢어지는 듯이 아팠다. 나도 유리 양처럼 밝고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성격이었으면, 지금 유리 양의 자리에 내가 앉아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그런 부러운 상황도 겪을 수 있었을 테고... 뭣보다, 그 두 사람이 너무나 잘 어울려 보인다는 게 견디기 힘들었다. 

흉한 감정...그런 생각을 한 나 자신에게 혐오감이 든다.

 왜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그 아이들은 분명 그럴 뜻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데. 선배님과는 나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을 같이 알고 지냈고, 그만큼 거리도 더 가깝다는 것도 당연한 일인데. 이건, 선배님과 더 가까워지지 못하는, 나라는 못난 아이의 문제인데.

 그러니까, 이 감정을 억눌러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그리고 선배님에게 이런 감정을 보여줄 수는 없다. 그래서, 목으로 뭔가가 올라오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실 게 필요해.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져서, 아무 생각 없이 식탁 위에 올라가 있던 차가운 캔을 들고 그대로 그 내용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톡 쏘는 탄산이 목 가득 넘어가고, 몸에 있던 열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하...시원..."

캔을 입에서 떼자, 묘한 현기증이 나기 시작한다. 뜨거워진 머리에 차가운 게 들어가서 그런 건가? 

한 모금 더 마셔본다. 현기증이 더 심해진다. 다시 한 모금 더. 어느새 캔이 다 비워졌다. 

뭐지, 이건? 뭔가 이상해, 그제서야 손에 든 캔을 보았고,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KASS DRY. 5%.

"아..."

아까 전에 슬비 양이 테인 군에게 기겁을 한 게 떠오른다. 그 때 테인 군이 마시려고 햇던 게, 이 맥주였던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몸 속에서부터 머리까지 다시, 하지만 아까와는 다른 느낌의 열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뭐랄까..., 아까와는 분명히 다른데...설명하긴 힘들지만...뭔가 용기가 솟는... 

"헤헤, 에헤헤..."

왜 이러지? 왜 갑자기 실없이 웃음이 나오는 걸까? 이런 모습, 선배님께 보이면 안 되는데. 보이면 안 되는데,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거울로 내 얼굴을 보면, 분명 엄청 창피하겠지.

선배님의 침대가 보인다...저 침대 위에 조금만 누워 있으면, 조금 가라앉으려나? 그러고 보면...선배님, 침대는 딱딱하지 않으시려나...? 내가 저기 누워 있으면, 침대가 조금은 부드러워질지도...?

선배님의 침대에 누웠다...고 생각한다. 생각한다고 말한 건...익숙한 파스 냄새가 지금 내가 코를 묻고 있는 배게에서 나고 있으니까...응...푹신하고...파스 냄새도...기분 좋아...





...아, 잠깐 의식이 흐려졌네. 이러면 안 되는데...하지만, 이렇게 엎드려 있으니까, 기분이 좋아서 일어나기가 싫어...

-찰칵 

 왠지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거 같다...하지만,..기분 탓이겠지...? 선배님이...이렇게 빨리 돌아오실 리는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조금만 더... 





"어...저기...여보세요? 오세린 씨?"




예, 안녕하세요. 꽤나 오랜만에 다시 글을 쓰네요...시험준비 때문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에구, 다들 시험은 잘 보고 계시나요? 저는 8월에 중요한 시험이 있어서 그거 준비하느라 요새 굉장히 바쁘네요...4개월 남은 시간도 굉장히 빠듯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글 쓰는 시간도, 분량도 점점 짧아지는 게 확 느껴집니다. 반성, 반성.
아무튼 오세린 루트, 이제 슬슬 끝이 보이네요. 앞으로 한 두 편 정도면 마무리가 지어질 거 같습니다.
그리고 원래는 오세린 루트를 빨리 끝내고 단편 하나 쓴 다음 슬비 루트로 넘어갈까 햇는데, 아무래도 계획을 바꿔야 할 거 같네요ㅠㅠ 단편은 슬비 루트를 끝낸 다음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최대한 빠른 시간에, 다음 편으로 뵙도록 하겠습니다.
2024-10-24 22:26:0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