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들-프롤로그
백수광부 2015-04-26 1
비가 평소보다 음산하게 내렸다. 구름은 깊게 껴서 햇살을 죄다 가리고 있었고, 습습한 공기에 사람들의 표정도 잔뜩 젖어있었다. 처진 어깨, 빛을 잃은 눈, 무기를 쥐고 있는 그들에게 의지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잊 곧 죽음만을 앞둔 자들의 마지막 소원은 다만 이제 쉬고 싶다는 것 뿐이었다. 아니, 검은 머리의 한 소년만은 별다른 소원을 가지고 있었다.
"아, 연애한번 못해보고 죽는건 슬픈데 말이죠."
"넌 이상황에서 까지 여자생각이냐?"
포위된 서울, 남겨진 부대, 떨어진 식량과 몰려오는 차원종들, 그들의 눈 앞에는 정말 죽음밖에 없는 듯 했다. 하지만 소년의 눈 앞에는 죽음 보다는 상상속의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긴 갈색 생머리에, 사무적이면서 털털한 그런 소녀, 자유 분방한 자신을 오힐 통제해 주면서 언제나 잔소리를 하지만 언제나 다정하게 대해주는 소녀. 그런 여자가 있을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 살아남기만 한다면 왠지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고 있었다. 그런 그의 얼굴은 이상하게도 상기돼 있었다.
"야. 저 녀석 또 여자 생각한다."
"저 녀석이 아닙니다! 죠죠라고 불러주십쇼! 아니면 J라던가!"
소년의 성씨는 '조'자였다. 거기에다 그가 평소에 좋아하던 만화의 이름에 죠죠가 들어가서, 그는 그것으로 애칭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부르라고 강요했다. 그의 나이가 워낙 어리고 평소에 실없는 농담을 자주 했기에 사람들은 소년을 귀여워 해 주었다. 또한 소년이 여자를 좋아한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소년은 악의 없이 호색한이라 놀리기도 했다.
소년의 말은 긴장하고 있었던 그들을 한순간에 풀어지게 해 주었다.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하며 그들은 와 하고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침묵이 이어졌다. 경보가 울리자 그들은 귀찮다는 듯 몸을 추스리며 무기를 집어들었다. 겉으로는 덤덤한 척하면서 다들 허세를 부려댔다.
"차워종 녀석들, 박살내 버리자고!"
"좋아. 이 작전만 끝나면 치킨을 잔뜩 먹어줄 테다."
"여자친구나 사귀러 가야죠. 이 얼굴에 평생 솔로는 슬프잖아요?"
저 멀리서 짐승도 사람도 아닌 괴이한 형체가 달려오고 있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짐승일수도, 어떤 의미에서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저들 또한 자신들과 마찬가지고 전쟁에 끌려온 것 뿐이겠지, 하고 팀원들은 생각했다.
곧 전투가 벌어졌다. 한 거대한 체구의 남자는 쇠 파이프를 마구 휘둘러댔다. 어떤 여자는 총알에 위상력을 두르고 차원종들에게 쏘아댔다. 소년은 온몸에 위상력을 감은 채로 무기 없이 차원종들과 싸우고 있었다. 상당한 실력이었지만 이내 인해전술에 밀려서인지 조금씩 처지기 시작했다.
"제, ***. 귀찮군. 모두 버텨내!"
"유니온 놈들, 우리가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한걸까? 우리가 죽었다고 가정하고 그대로 작전을 짜고 있는건 아냐?"
"그럴만도 하죠. 원래 그런 놈들이잖아요."
그들은 자꾸만 뒤로 후퇴했다. 차원종들은 자꾸만 몰아쳤고, 그들이 할 수 있는건 죽거나 도망치는 것 밖에 없어 보였다. 그때였다.
"다들 숙여!"
쾅!
큼직한 폭격음이 사위로 퍼진다. 그들의 작전이 성공한 것이었다. 차원종들을 한대 모으고 원격 조작 폭탄으로 한번에 폭사. 위치와 시기 모두 완벽했다. 그들은 생존할 수 있을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연기가 사라지고 본적 없는 형태가 걸어오기 시작했다. 아니, 본적이 있다. 흔하지만 차원종들 사이에서는 보기 힘은 형태, 검정옷을 입은 은발 인간의 모습이었다.
"누나, 이놈들 머리좀 쓰는데?"
"써봤자 인간이지."
차원종들은 분명 대다수 죽어 있었다. 폭탄은 제대로 작동한 것이 틀림 없었다. 하지만 소녀, 소년의 형태를 한 그들은 그 사이에서 태연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뭐, 뭐하는 놈들이냐!"
거대한 체구의 사나이가 그 만큼이나 커다란 쇠기둥을 들고 덤벼들었다. 하지만 소녀의 손가락에서부터 나온 광선에 의해 다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곤 쓰러져 버렸다. 누군가 총을 쐈지만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막히고 말았다.
"하등한 것들 주제에 나대지 말란 말이다!"
소녀는 손가락 끝을 총을 쏜 여성을 향하게 하고는 다시 광선을 쏘았다. 하지만 이내 누군가 와서는 광선을 몸으로 막아냈 다. 검은 머리카락의 소년이었다.
"오호라? 인간주제에 그정도 인거냐?"
"인간 주제에? 어디서 중이병 소설을 읽다 온 사춘기 중딩이냐. **. 형들 바쁘다. 그리고 인간이 아니라 죠죠 라고 불러줬으면 하는데."
"뭐, 뭐라고! 중딩!"
소녀는 그 말에 화가 났는지 방금 실패한 공격을 다시 쏘아댔다. 하지만 그는 그대로 공격을 주먹으로 맞받아 쳤다. 소녀는 공격을 한다고 쏴대는 것이었지만 소년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듯 했다. 심지어 그녀를 놀리를 옅는 미소까지 보였다.
"이런 힘자랑 하는 저급한 싸움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말이야. 뭐, 폭발 속에서 걸어나온건 멋있었다고 칭찬해 줄게."
"으극!"
"누나 저런 인간놈의 도발에 넘어갈 것 없어. 좀 있으면 늙어버릴 것들인걸."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세련된 몸짓으로 소녀를 막아섰다. 그렇게말하자 누나쪽인 듯한 소녀는 표정을 가다듬고는 우아한 손동작으로 머리를 쓸어올렸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 요염한 동장에 반해버렸을 지도 몰랐다.
"그래. 그런데, 우리의 임무가 뭐였지?"
"서울 잔류부대원들 중에 유별나게 강한 인간이 하나 섞여 있다. 그녀석을 포섭해 와라 였지. 아무래도 저 녀석 같은데?"
"어이. 갑자기 왜그러는거야? 나 무시해? 그럼, 내가 간다!"
소년은 온몸 특히 주먹과 다리에 위상력을 단단히 감쌌다. 일종의 위상력으로 만든 갑옷 같았다. 그리고 공중에서 한바퀴 돌아 발등으로 그들의 턱을 노렸다. 위상력은 좁은 곳에 집중 시키면 좋다는 그의 생각에 따라, 가장 위상력을 집중시키기 간단한 발등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두 은발 남매는 재빨리 둘의 위상력을 합쳐 막아내었다. 누나쪽의 광선을 주먹으로 쳐낼 정도의 위상력이었으니, 둘이 함께 막지 않으면 좀 불안했던 것이다.
"그렇게 치사하게 이대 일로 덤벼도 되는거냐?"
"한번 실력 테스트를 해 볼까?"
"누나의 공격을 막은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되지만...... 뭐, 좋아."
그렇게 말하고 두 남매는 이상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차원종을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소년는 재빨리 거구의 남자를 다른 동료들 가까이 끌어왔다. 그의 동료들은 결국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죽지 않고서야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단 것을.
소년은 그가 가진 힘을 모두 개방했다. 팀원들 중에서는 가장 좋은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순식간에 수많은 차원종을 사살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차원종들이 자꾸만, 자꾸만 끝없이 소환되었다. 팀원들의 위상력을 점점 떨어져 갔다. 소년은 위상력을 갑옷 형태로 만드는 것일 뿐이라 위상력 소모가 많지 않았지만, 다른 팀원들은 대게 위상력을 쏘거나, 그것을 무기에 둘러서 쏘는 형태였다. 때문에 점점 위상력이 떨어졌으나 회복 속도는 너무나 뎌디었다.
소년의 동료들이 하나 둘씩 쓰러졌다. 차원종들은 하나가 쓰러지면 둘이 나오고 둘이 쓰러지면 다섯이 나오는 기이한 수의 증가를 보였다. 이윽고 남은 것은 소년 하나밖에 없었다.
"어이 인간. 방금 전 그 태도는 어디로 갔나?"
소년은 이미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지만 믿을 수 없었다. 좋아하던 동료들이 전부 쓰러지다니. 땅을 강하게 내리쳐 주변의 차원종들을 쓸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빈자리가 채워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팀원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눈에선 물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들, 장난치는거지? 응? 일어나! 일어나서 저 차원종 녀석들과 싸우자고!"
하지만 그는 동료들이 장난을 치는게 아닌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장난도 살아 있어야 치는 것인데, 그들의 맥박은 이미 멎어있던 것이다. 백수는 정말 물밀듯 다가오는 차원종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저 오는대로 싸울 뿐이었다. 하지만 한시간이 흐르고 두시간이흐르고, 시간이 자꾸만 흐르자 그의 강철같은 체력도 바닥나기 시작했다. 이미 부족한 호흡량을 위상력으로 버티고, 찢어지는 근육또한 위상력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차원종에게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는 언제나 실전 격술을 배우면서 들은 말이 있었다. 일격을 조심해라. 그 일격을 맞으면 그것에 정신을 판 사이 이격, 삼격을 허용하게 되고, 결국엔 지고 만다는 말이었다. 그는 그 말을 몸소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팔을 스친 그 일격 후에 순식간에 허리를 찢는 이격이 들어오고 순간 수 많은 공격이 그를 꾀고 뚫었다. 수많은 진딧물 속에서 그는 그저 나약한 풀 한포기일 뿐이었다.
쓰러진 그를 향해 은발 남매는 아주 천천히, 교만을 떨면서 요염하게 걸어왔다. 그리고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 하나를 잡으려 이렇게 많은 차원종이 쓰이다니, 형재 데이터 베이스에 있는 강한 인간들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들겠어. 하지만 말야, 우리와 계약한다면 훨씬 더 강한 존재가 될 수 있어. 어떄?"
소녀는 마치 자신이 선심이라도 쓰듯이 말했다. 하지만 소년은 코웃음 짓더니 농담하듯 말했다.
"헹! 너 속옷 다 보인다?"
"죽어!"
쓰러져 있는 그의 얼굴을 소년을 사정없이 밟아버렸다. 그리고 정신을 잃은 그를 보고는 차원종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엄지를 세우고는 밑으로 내렸다. 고대 로마에서 검투사를 죽이라는 로마 황제의 명령을 뜻하는 동작이었다.
쓰러져 있는 소년은 기절한 상태에서 자꾸만 이상한 음성을 들었다. 꿈결같는 목소리는 마치 어린 남자아이가 말하는 것 같았다.
'일어나세요. 사명을 지키세요.'
"사명이 뭔데?"
'당신은 아직 사명이 남아있습니다. 일어나세요.'
"그런 오글거리는 말을 하는 넌 누구냐니까?"
'부디, 저를 지켜주세요.'
순간 그의 정신이 이상한 공간으로 날아갔다. 그곳에는 한 소년이 몸에 맞지 않게 거대한 창을 든 채로 서있었다. 목소리는 그곳에서 나는 것이었다.
"야, 너 누구야?"
"그대의 사명."
그 말을 들은 순간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사명?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눈뜨게 해 주었기에 고마웠다. 차원종 놈들이 그를 공격하기 직전이었다. 소년은 몸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넘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일어나서는 제일 먼저 달려든 차원종의 머리를 잡고는 악력으로 쓰러트려 버렸다. 그리고 파도처럼 순식간에 그들을 덥쳤다.
그의 몸에선 아무런 피로도,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주변의 차원종들을 박살내야 한다 라는 일종의 의무감만이 남아 있었다. 은발의 남매는 그것을 보고 방금 전 시도했던 인해 전술으로 다시 공격했다. 하지만 그 빠른 소환 속도보다 그의 학살 속도가 훨씬 빨랐다.
"도, 도망치자!"
"**, 인간 따위에게!"
체면 몰수하고 그들은 다른 차원으로 도망쳐 버렸다. 소년은 그것엔 신경쓰지 않고 남은 차원종들만 잡아대기 바빴다. 그리고 잠시 후, 수많은 차원종들의 시체 위에서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그의 정신은 이미 피폐해져 있었다. 잔뜩 지친 소년은 몸에서 무엇인가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질기게 살아남은 마지막 생존자는 결국 정신을 잃으며 기절했다.
그가 눈을 떳을 때는 병원 안이었다. 그는 자신의 온몸에 붕대가 감겨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붕대와 말할 수 없을만큼 커다란 고통 떄문에 그럴 수가 없던 것이다.
"어허. 움직이지 않는게 건강게 좋아. 넌 회복중인 환자라고."
"그래 확실히. 근데 넌 누구야?"
"나?"
그에게 말을 건 사람은 긴 생며리에 소녀였다. 갈색 머리카락에 생김새는 청순해 보였다. 소년은 순식간에 그녀에게 호감을 느꼈다. 소녀는 소녀다운 애교를 떨며 소년에게 말했다.
"내 이름은 김유정이야. 엄마가 간호사라서 한번 와 봤어. 네가 서울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클로저라며?"
"으... 결국은..."
"아, 미안......"
소녀는 그녀가 소년의 가장 아픈부분을 건드리고 말았다는 걸 깨달았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것은 곧 다른 모든 클로저의 죽음을 의미했으니 말이다. 소년은 잠시 어두운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소녀는 그런 소년에게 본능적인 모성애를 느낄 것만 같았다.
"호 혹시 언짢았다면..."
"아 아니야. 그냥 좀... 안타까웠을 뿐이야. 다들 나장 친한 팀원들이었는데."
소녀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주제를 돌렸다.
"근데 넌 이름이 뭐야?"
"죠죠. 그렇게 불러 줘."
"에이, 좀 알려 줘."
소년은 싱긋 웃기만 했다. 그렇게 둘은 친해지고 소년은 소녀와 함꼐 재활 운동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어느새 둘도 없는 절친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유정의 마음 속에는 아무도 모를 연모의 감정이 생기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더 그와 함꼐 있고 싶었고, 뭐라고 그와 함꼐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의 위상력이 더이상 전투에 나갈 수 없을만큼 줄어들었단 것이 문제였다.
"머리가 하얗게 셀 때 부터 알아야 했어."
"어? 그럼 그게 원래 머리카락 색이 아니야?"
"원래는 검정이었는걸?"
"그래도 하얀색이니까 더 멋있는 것 같아."
유정은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지만, 속으로는 펑펑 울고 있었다. 아무리 용기를 내려 해도 '좋아해'한마디가 나오질 않는 것이었다. 소년은 사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받아줄 용기가 없었다. 배운것도, 익힌것도 없는 그는 이제 모아놓은 돈하고 나라에서 주는 연금이나 받아 먹으면서 살아야 했다. 그런 비참한 생활로부터 소녀를 지키고 싶었다.
"음... 시간이 다 됐버렸네. 그럼 갈게. 언제 기회가 되면 또 보자고."
"응... 그래..."
멀어져 가는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유정은 눈에서 흐르는 홍수를 막을 재간이 없었다. 그녀는 그가 보이지 않게 되자 크게 외쳤다.
"그거 알아아? 나 너 좋아해애!"
소년은 그 말을 듣고 말았다. 하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크면서 소녀는 공부도 하고 수는도 보고, 운이 좋으면 유니온에 입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눈 앞에는 보급된 살 곳과 연금으로 연명하는 삶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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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이거 완전히 퇴물이잖아요 국장님!"
"어쩌겠나. 그냥 유정씨가 어떻게 잘 봐 주게."
"에휴우. 알았어요 알았어!"
방금 전까지 전화를 받고 있던 여자의 이름은 김유정이었다. 나름 엘리트라 불릴 만큼 공부를 해서 유니온에 입사한 뒤로, 가장 어처구니 없는 임무를 받아서 그녀는 화난 상태였다. 고등학생들로 이루워진 클로저팀을 꾸려나가라니, 이 얼토당토 않되는 임무를 수행하려고 여기까지 온 건가 싶었다.
그녀는 클로저 집합 장소로 갔다. 그냥 방이었다. 아무런 특징 없고, 그저 책걸상이 몇개 있고 텔레비전이 하나 딸려있는 그런 방이었다. 거기서 한놈은 게임기나 두들기고 있었고, 한 흰머리 남자는 책상에 다리를 걸친 채로 거만하게 앉아 있었다. 그래도 소녀 둘은 의욕에 가득찬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어서 조금은 위안이었다.
"저 빨리하고 집에 가죠. 게임해야 하는데."
"적당히 하자고. 건강이 최고니까."
"이일, 월급이 얼마나 되나요?"
"검은양 요원 이슬비, 배치를 명 받았습니다!"
둘이 아니라 슬비라는 핑크빛 머리의 소녀 한명밖에 믿을 사람이 없었다. 김유정 요원은 한숨이 나오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적당히 소개를 끝내고 밖으로 나와서는 바람을 쐬었다. 바람이라도 쐬니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았다.
"하... 그 애는 어디로 갔을까? 아무리 찾아봐도 자료가 없네. 에휴."
"그애요?"
"헉! 갑자기 사람 뒤에서 나오면 어떻게 해요!"
유정은 깜짝 놀랐다. 제이씨가 뒤에서 툭 튀어나온 나머지 괴한이라고 오해했던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은밀한 비밀을 말하는 도중이었던 터라 더욱 놀랐다.
"드, 들었어요?"
"아니 뭐, 비밀로 해드리죠."
"꼭! 꼭! 비밀로 해 주셔야 해요!"
"알았다니까요."
제이씨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유정씨는 그가 못 믿음직 했는지 울먹이며 또 빌고 빌었다. ** 손가락을 걸고 복사하고 붙여넣기하고 도장찍기 까지 한 뒤에야 그녀는 그를 믿고 돌아갔다. 제이씨는 유정의 그런 어리애 같은 면이 귀여워서 몰래 풋 하고 웃었다. 그리고 바람을 쐬며 중얼거렸다.
"당사자가 여기 있는데, 아는척이라도 해주면 않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