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게임기 (수정)

란블 2014-12-17 1

검은 색이 되었다. 가을과 봄 사이 고개를 내민 겨울의 바람이 골목길의 벽에 부딫혀 회오리친다. 회오리 치는 곳을 따라가보니 막다른 길에 두 인영의 실루엣이 얼핏 보인다. 검은 색으로 물들어있는 골목길에 노란 빛의 가로등이 깜빡거린다.

미안해, 궁금해서, 한 번 만져봤는데, 네가 재미있게 하길래, 나도, 너, 처럼..., 해보고 싶어서.

얇게 들려오는 음성에는 실이 바늘을 관통하듯 하나 하나 떨림이 느껴진다. 말을 한다기 보단 단어를 퍼즐 맞추듯 찾아 넣는 느낌이였다.

"그까짓거.., 괜찮아......"

괜찮다니, 잔뜩 주늑들어 보였던 여자아이는 살짝 의아스럽다는듯, 자신보다 20센치정도 키가 더 커보이는 남자를 올려다 본다. 그럼 그가 왜저리 심각한 모습인지 알 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까짓거' 라고 표현했던 그것은 누가 보면 정말 그까짓게 될 수 있을 지도 모르는 게임기였다. 허나, 그까짓 게임기가 그에게는 전혀 그까짓 게 될 수 없다, 라는 것을 슬비는 잘 아는듯 했다. 게임기를 손에서 한시도 놓지 않던 그였기에 그 게임기는 충분히 궁금한 물건이 될 수도 있었다.

그가 잠든 틈을 타서 한번 손에 쥐어 보았던 게임은, 그가 빠질 만큼 꽤나 흥미로었다. 사용 방법 따윈 몰랐지만 손가락을 몇번 꼼지락 거리더니 곧 미간에 주름을 잡고 집중했다. 잠시 숨을 돌리고 옆을 본 순간 자고있던 그의 앞에서 몰래 게임을 즐기던 아이는 뜨여저 있는 새카만 눈동자를 마주하곤 헉 숨을 들이켰다. 툭-.. 손에 깊게 땀이 배여있던 탓인지 손에 힘을 살짝 놓자 손에 쥐고있던 게임기는  스륵 잘도 손 사이를 빠져나가 그만 떨어지고 만다. 그리곤 바닥에 떨어진 부서진 게임기를 한 번, 그 새카만 눈동자를 한 번, 다시 그 시선을 따라 부서진 게임기를 한 번.... 쳐다보다 곧 머릿속이 하얘지는걸 느꼈던 것이다.

"아.. 전혀 괜찮지 않아보이는데."

얼굴에 미안한 빛이 역력한 슬비는 까만 남자의 얼굴을 요리조리 살핀다. 진짜 괜찮아. 라며 말하는 그의 얼굴 역시 좋지만은 않아보인다.

"내가 진짜 좋은걸로 새로 사줄게."

그제야 파란 눈동자를 마주한 까만 눈동자는 설핏 웃음 끼가 맴도는 듯 했다. 곧, 대신 소원 하나 들어줘.

"뭔데??"

드디어 그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나, 싶어 한 톤 밝아진 목소리로 묻자 방금 그의 얼굴에 서려있던 웃음은 싹 사리지곤 골목 벽 쪽으로 자신을 올려다 보는 슬비를 몰아 넣는다. 그리곤 천천히 고개를 숙여 둘의 눈높이를 딱 맞추었다. 그에 따라 올려져 있던 슬비의 고개도 천천히 내려와 딱 눈을 맞추었다. 한치의 웃음도 장난도 없었다. 뜬금 없는 그의 행동에 세하야... 작게 이름을 불러 보고는, 그제야 무언가 잘못 되었음을 느꼈다. 하지만 그래봤자 늦었을 것이다. 깜빡이던 노란 불빛 없이, 지금은 완전히 검은 색이 내려 앉아버렸으니....


안녕하세요! 어떻게 재미있게 읽으셨는지 잘 모르겠네요. ㅜㅜ 나름 열심히 썻는데...... 추운데 다들 감기 조심하시고, 그럼 저는 이만 사라지도록 할게요.
2024-10-24 22:21:0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