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아] 유니온 관리요원의 자료수집 下.
인센디어리 2015-04-22 2
-신규 퀘스트 목록-
[가자, 김포 공항으로!]
던전 - 활주로 돌파-
[다시 나타 난 나타]
던전 - 폐쇄된 공항 1층-
[사라진 송은이]
[정체 불명의 소녀]
특별 던전 - 비행기 인질극-
[아프간의 하얀 악마, 그리고 PTSD]
[프로젝트 : 리바이어던]
"말해! 그 이후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왜 너가 이 자리에 있는 거지?"
일갈과 함께, 이세하는 두 눈 가득 적의를 담아서 눈 앞에 서 있는 상대를 노려보았다. 오른손에 꽉 쥐어져 있는 그의 건블레이드는 이미 주인의 뜻대로 충실히 움직일 전투 준비를 마친 상태다. 감정이 만약 눈에 보인다면, 세하는 지금 그야말로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으리라.
"당신. 내 과거를. 알고 있습니까?"
그에 비해, 제 키만큼이나 커다란 크기의 낫을 자루를 어깨 위에 무겁지도 않다는 듯이 살며시 올려놓고, 세하를 조용히 바라보는 소녀는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그에게 답했다. 단아한 어깨를 타고 내려가는 긴 은발에 자색안, 그리고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S자 곡선을 이룬 몸의 밸런스는 잘 잡혀있고 특히 흉부 쪽의 둔덕이 풍만하게 솟아올라있다, 이질적으로 뾰족하게 밑으로 내려져 있는 귀와, 머리카락 사이에서 쑥 튀어나와있는 가느다란 뿔은 그녀가 동화 속의 요정인지 의심케 하는 용모다. 그러나, 초점이 없는무기질적인 눈동자는 차갑다는 느낌을 넘어서서 생기가 없이 죽어보일 정도다.
"은이 누나한테 들었어....너, 과거에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해?"
"본인에.게. 인간 개체.를. 허가.없이 살육했.던. 메모리는 없.습니다. 검색해보.아도. 나오는 데.이터는 전.무."
"......너, 기계냐, 설마?"
"네, 맞습니다. 본인은 벌처.스가 개발한 대 차원종 전투.용 안드.로이드. 코드 네임, 레비아."
분노를 숨기고 차분하게 말하고 애쓰는 세하와 여전히 대조적으로 묵묵히 대화를 이어나가는 레비아. 사람이 아니라 안드로이드라는 충격적인 사실에, 순간 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잠깐 스쳐지나간다. 그러나, 세하는 곧 레비아의 담담한 태도 자체를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다시 한 번 고함을 지른다.
"그러면! 왜 비행기를 폭파시킨 건데! 우리가 미리 사람들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다 죽었을 거 아니야! 너가 잡고 있는 무기가 어디를 향하는 지는 보고 있으라고!"
"A.I. 판단. 결과. 작전이 지.연될 경우. 민간인 및 재산 손.실.비율이 작전 속행 전보.다. 약 #%#%배. 증가할 것으로 결론. 테러리스트들. 칼바.크 턱스의 가방 소.지. 추가 차.원종 발.생 가능성 높음. 위험 요.소. 사전 차단."
".....사람의 목숨 값도 저울에 매기는 거냐?"
"대화. 무의.미. 본인 임.무 우선. 국가차원관.리부. 특수처리반. 유니온 소.속. 검은 양 팀 정.식 요원. 이세하. 물러나.길. 바랍니다. 뒤에 있.는 특경대 인.물은. 현재 PTSD를 앓.고 있는 위험. 환자. 약 1240초 전 본. 개체. 레비아에.게. 소지한 돌.격 소총으.로 무차.별 난사. 가했습니.다.
경고.합니다. 넘기십.시오. 그러지 않을.시. 본 개체에. 대한. 적대 행.위로 간주."
레비아의 눈동자는 세하의 뒤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두 다리를 땅에 딛고 움직일 생각이 없어보이는 그의 뒤에는 송은이가 정신을 잃은 채로 쓰러져 있었다. 말릴 수 없을 정도로 폭주한 그녀를 조금 전 세하가 어쩔 수 없이 기절시켰던 것이다. 살짝 고개를 돌려, 은이가 잘 눕혀져 있는지 확인한 그는 레비아를 보며 고개를 한번 흔들었다.
"엿이나 먹어."
"임무 수행. 에. 적대적. 행위로 판.단. 레비아. 전투를 시작하겠습니다."
기잉-
기계라고는 생각되어지지 않는 매끄러운 움직임으로, 레비아가 낫을 휘리릭 돌려 똑바로 세웠다. 세하의 몸에 긴장감이 타고 흐르기 시작한다. 벌처스 산하라는 레비아의 말에, 그가 신강고등학교에서 차원종을 처리했을 때 처음 조우했던 한 남자가 머릿 속에 선명히 떠올랐다. 나타. 얼마 전 이 곳 공항에도 나타나서 경고를 한 바 있다. 분명히 강했던 남자가 경고를 했다. 레비아 또한 그에 준하는 강함, 혹은 그 이상일 수도 있다.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거기다 은이 누나가 휘말리지 않아야 하니까 주의해야 하겠ㅡ'
채앵ㅡ!
세하의 생각은 거기에서 끊겼다. 그가 반사적으로 위험을 직감하고 건블레이드를 위로 들어올리자마자, 굉음과 함께 그 가녀린 체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충격이 건블레이드를 타고 그의 몸에 전해져왔다. 그 자세 그대로 둘 다 각 자리에서 굳어버린 듯 정지한 0. 몇 초 후.
"날아가라ㅡ!"
캉, 카아앙ㅡ!
기합을 내지르며 세하가 건블레이드를 올려친다. 빠른 속도로 접근해서 공격한 탓인지 레비아는 피하지 못하고 낫으로 공격을 받아낸다. 대신에 공중에 높게 뜬 그녀는, 놀랍게도 공중에서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내려가면서, 이어지는 세하의 연계 공격마저 차근차근 막아낸다.
챙
불꽃이 튀면서 금속과 금속이 맞부딪치는 거슬리는 파열음이 대기를 찢는다. 건블레이드라고는 하지만, 원거리 화력을 보조하기 위해 '건'이 달려있는 것 뿐이지 본질은 어디까지나 검. 찌르거나 휘두르는 것보다는 베는 것에 특화되어 있는 무기다. 검날이 일직선으로 뻗어있기 때문에 공격 방향으로 내려치기만 하면 되는, 비교적 단순한 무기.
치이잉ㅡ! 챙강!
허나 낫은 다르다. 기본적으로 휘어져있는데다가 날이 자신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원하는 방향으로 베려면 숙련된 컨트롤이 필요하다. 그러나 레비아는 전혀 밀리지 않고 있다. 세하가 틈을 주지 않고 사정없이 내려치는 무쌍난무형 공격을 펼치고 있는 동안, 그녀는 적재적소에 낫을 휘두르면서 단 하나의 유효타도 허용하지 않는다.
슥
레비아가 땅에 막 착지했을 찰나, 그녀의 시야에서 세하의 모습이 사라졌다.
"?!"
허공에 가르는 낫 끝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자, 무게 중심이 일시적으로 한 쪽으로 쏠린 레비아가 비틀거린다. 그 뒤로 사이킥 무브를 순간적으로 재빠르게 이동한 세하가 그녀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질주'를 통해 짧은 경직을 줌과 동시에, 배후를 잡은 세하의 건블레이드가 그녀의 무방비한 등을 향해 자리를 잡는다.
쾅!
요란한 소리가 공기를 진동시키고, 푸른 색의 화염이 번쩍였다. 그녀가 잠깐 움찔했지만, 그것으로 끝. 그리고 그 사실을 세하가 깨닫는 데까지는 잠깐 동안의 딜레이가 있었고, 레비아가 역습을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자신의 공격의 턴을 놓치지 않고, 빠르게 몸을 회전시킨 그녀가 낫의 머리 부분으로 그를 용서없이 가격한다.
뻐억
"컥."
세하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토해져 나오지만, 아픔에 징징댈 여유는 없었다. 그의 몸이 뒤로 날려지는 동안, 레비아가 들고 있던 낫이 그가 날아가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게 길게 늘어난다. 옆으로 낫이 바람 소리와 함께 휙 지나가는 것을 본 뒤에, 목덜미에 섬뜩한 느낌을 받은 세하는 얼른 들고 있던 건블레이드로 바닥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콰직ㅡ
서걱.
본래는 건블레이드를 내리찍는 것으로 충격파를 발생시켜 적을 모으는 스킬이지만, 이 임기응변 덕택에 그는 머리카락 몇 가닥이 잘리는 것으로 끝낼 수 있었다. 낫이 순식간에 다시 본래 크기로 줄어들면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을 보고 세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역시 머뭇거릴 때가 아니었다. 다음 공격을 마음 먹었을 때, 그는 벌써 레비아의 앞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카가가가가가가가가각ㅡ
콰아아!
레비아가 줄어든 본래 크기의 낫으로 바닥을 찍자, 1초 전까지 세하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송곳 형태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허나 그는 그것에 꿰뚫리지않았다. 뒤이어 자신을 향해 솟아오르는 기둥들을 피하면서, 그는 비스듬히 위로 뛰어올랐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 피할 각도를 좁혔기 때문에 자살 행위나 다름 없는 짓. 레비아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낫을 위로 올려친다.
쉬쉭!
그러자 낫에서 날을 닮은 모양의 보랏빛 초승달들이 형상화되어 일직선으로 발사되었다. 위상력이 응집되어 있는 그것들의 궤도 끝에는 당연히 세하가 있다. 가만히 있으면 몸이 두 동강날 판이었지만, 그는 침착하게 건블레이드를 들어서 공파탄을 발사했다. 근본이 같은 위상력인 두 에너지 덩어리들은 맞부딪치자마자 서로 상쇄되어 사라져갔다.
쿠콰콰콰ㅡㅡㅡ!!
화염이 사라지고 남은 잔재인 연기 속을 뚫고, 레비아를 향해 건블레이드를 단단히 쥐고 낙하하고 있는 세하. 그런 그를 향해 레비아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낫을 들어올린다.
차르르르
'사슬낫....?!'
낫의 머리에 해당하는 날이 끝에 사슬이 달린 채 세하를 향해 날아온다. 어찌보면 차라리 점프해서 낫을 베어버리는 것이 더 확실할텐데도 다른 길을 선택한 지극히 단순한 공격. 그러나, 그는 본능적으로 저것은 전조일 뿐, 만약 자신이 걸리면 분명 뒤에 이어질 강력한 연계 공격에 당할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당연히 세하에겐 그것에 얌전히 잡혀줄 생각이 없었다.
"받아라아아아아아아아아아ㅡㅡㅡㅡㅡㅡㅡㅡㅡ!!!!!!!!!!!!!!!!!"
씨이이이이잉ㅡ!
눈부신 빛이 그를 감싼다. 건블레이드가 곧게 앞을 향하도록 내려잡은 뒤, 자신의 위상력으로 몸과 무기를 감싼 세하는 그대로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지면에 '쏟아졌'다. 현재 인간이라고 보기보다는 차라리 떨어지는 미사일에 가까운 그에게 중간에 날아오던 사슬낫은 허무하게 튕겨나가고, 아무런 방비도 취하지 못하고 있는 레비아에게 세하의 수습요원 결전기인 유성검이 직격했다.
쿠콰앙!
허공에 위상력의 잔상이 남을 정도로 강대하게 응축된 위상력이 건블레이드 자체의 힘과 합쳐져 바닥에 내리 꽂히자, 지면이 줄 그은 것처럼 갈라짐과 동시에 레비아가 그 반동으로 위로 튀어올랐다. 세하는 놓치지 않고 같이 뛰어오르더니, 건블레이드로 그녀를 잡아 끈 다음 바로 바닥에 내리쳤다.
쿠웅ㅡ
갈라지던 바닥이 완전히 부서지고, 그 충격으로 공항 건물이 흔들리는 진동이 느껴 질 정도의 위력이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먼지 구름 속에 레비아가 처박힌 그 자세 그대로 누워있었다. 위상력을 사용해 부드럽게 지면에 내려앉은 뒤, 세하는 일단 건블레이드를 거두며 공격을 멈췄다.
"......."
여자 상대로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있어보이지만, 상대는 위상 능력자(클로저), 그것도 안드로이드다. 그것도 진심으로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힘을 조절하면서 봐주거나 그런 걸 할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다만 이 싸움 자체를 확대시킬 생각이 없었던 세하는 되도록이면 정식 요원이 된 이후 익힌 기술들은 자제하려했고, 지금까지는 그 제약을 잘 지키면서 레비아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자가진단 수행 완료. 레비아. 현 레벨 상태로 임무 속행 불가능 확인. 긴급 상황에 처했다고 판단. 마스터의 허가 없이 리미터를 한 단계 해제하겠습니다."
멍하니 누운 자세로 천장만 쳐다보던 레비아가 중얼거렸다. 리미터 해제? 자부심을 가지는 건 아니었지만 나름 게임을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플레이 해온 세하가 그 의미가 무슨 뜻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온 몸을 찌르르 관통하는 불길한 예감에 그는 전율했으나, 이미 늦어버렸다. 완전히 부숴져버린 바닥의 파편을 헤치고, 끼기긱- 소리를 내면서 몸을 일으키던 레비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직후, 세하와 그녀의 시선이 정면에서 마주쳤다.
물끄러미 그를 보던 레비아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가더니, 마침내는 미소를 지었다.
오싹
마치 무표정한 인형 얼굴 위에 웃는 표정만 억지로 덧그려놓은 것 같은 섬뜩한 미소에, 세하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 뒷걸음질을 쳤다. 그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여 들고 있던 건블레이드를 꽉 부여잡기 전에, 시야에 레비아의 머리에 나 있는 뿔이 거무스름한 빛을 내는 것이 들어왔다. 이 상황과 전혀 관련없을 것 같으면서도 다년 간 게임 플레이어로 살아온 그의 경험이, 그걸 보자마자 마음 속에서 경종을 마구 울렸다.
그리고, 많은 일들이 짧은 시간 안에 한꺼번에 벌어졌다.
"세하 형! 괜찮아요?"
"......고마워, 미스틸.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송은이 곁을 지키고 있는 두 소년이 있다. 곤란하다는 얼굴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전체적으로 '검다'라는 인상을 주는 소년은 이세하. 그리고 자기보다도 더 커다란 랜스를 땅에 세워두고, 경계를 늦추지 않는 조금 더 앳되보이는 어린 소년은 미스틸테인이다. 그들의 주변에는 돔 형태의 녹색 보호막이 시전자를 포함해 그 안에 있는 이들을 모든 공격으로부터 따뜻하게 보호해주고 있었다.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공항 1층. 손님들의 수속을 밟는 게이트나 비행기에 타기 전에 기다릴 수 있게 해주는 라운지와 의자들, 그리고 짐을 하역하는 곳부터 푸드 코트들까지 성한 장소는 단 한 군데도 없었다. 기존에도 차원종의 습격이라던가 테러리스트들 간의 전투로 인해 엉망이 되긴 했지만, 그 때가 산소호흡기를 붙여놓은 환자였다면 지금은 그걸 확실하게 떼버린 살벌한 풍경이었다.
".....적은, 사라졌나요?"
"그래. 그런 것 같아."
한참을 주위를 살펴보다가, 아무런 기척도 찾지 못하자 세하는 땅바닥에 털썩 앉았다.
"으으. 무슨 그런 과격한 여자가 다 있냐.....꿈에 나올까 무섭다."
"우웅? 왜 꿈에 나오면 무서운 건데요?"
"미스틸 너도 꿈에 귀신 나오면 무섭잖아."
"귀신 본 적 없는데요!"
해맑게 웃는 미스틸테인을 보고 피식, 하고 웃던 세하는 문득 고개를 위로 들었다. 저 멀리 눈부신 햇빛이 푸른 하늘에서 쏟아져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폭우가 쏟아진 뒤 먹구름이 걷히고 그 사이로 햇빛이 나타나는 것처럼, 공항 내부를 커튼처럼 따스하게 비추는 햇빛을 보고 그는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기, 이제 비오면 다 새겠네....설마 나한테 수리 비용을 다 청구하지는 않겠지?"
어딘가의 관리요원이 슬슬 걱정되는 세하의 위로, 일자 형태로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깔끔하게 가운데 부분이 절단되어 뚫려있는 천장이 좋은 날씨와는 대조적으로 흉물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바닥에는 그로부터 불과 몇 미터 떨어져 있는 곳까지 천장에 있는 것과 정확히 평행선을 그리는 절단선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그어져 있었다.
"너 미쳤냐? 가뜩이나 헤카톤 케일 사건 이후 우리 입지가 개막장인데, 가만히 있어도 모자랄 판에 사고를 치면 어쩌자는 건데?"
"나타, 그만. 지정 장소에 가서 대기할 수 있도록. 난 레비아와 할 말이 있다."
"치잇."
찰칵.
"레비아."
"......못 죽.였어."
"이세하 말인가?"
"부정."
".......그녀말인가. 과학자들도 한심하군. 과거 인격을 일부 이끌어내는 것으로 전투력을 극대화시킨다더니, 기억마저 완전히 소거시키지 않았던 건가."
"히...히.....다음에...만나면..죽일 거야....히히....싹둑..베어버린...다...."
"........."
"잡..아서, 죽이기 전에, 나한테...했던 짓...똑..같이. 해줄 거야."
"트라우마는 의외로군. 하긴, 아프간의 하얀악마라고 불렸던 여자다. 대놓고 적으로 돌리다니, 나도 그다지 내키지 않는 일이야. 데이비드 리를 정말로 빼냈을 때는 솔직히 좀 놀랐지....단신으로 아무리 잠입 임무라도 유니온을 기만하다니.
여하튼 간에."
"죽여 버릴 거야.....죽여 버릴 거야...."
"리미터 해제의 부작용인가, 맛이 가버렸군."
벌처스 처리부대장은 의자를 빙글 돌리더니, 앞에서 가만히 서 있는 레비아를 정면으로 향한다. 이제 마스터라 부르는 자의 존재재는 안중에도 없는 듯, 아무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면서 쉴새 없이 중얼거리는 그녀를 보고, 그가 조용히 뇌까렸다.
"리셋 모드 작동."
"하읏?!"
털썩
그러자, 청아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천박하다고 생각할 정도의 교성을 흘리면서 레비아가 주저앉았다. 양 손을 교차시켜 어깨를 부여잡는 그녀의 얼굴이 희미하게 붉어지고, 체온이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갑작스럽게 **온 변화, 그리고 차츰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몸에 그녀가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사이, 어느새 의자에서 일어난 벌처스 처리부대장이 앞으로 다가왔다.
"매번 이 짓을 해줘야 하다니. 다음에는 통제 장치를 개량시켜달라고 부탁해야겠어."
"무슨......하아아앙!"
뭐라 말을 잇지도 못한 채 레비아가 신음과 함께 몸을 비튼다. 우악스러운 남자의 손이, 그러나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에 나있는 뿔을 쓰다듬는다. 결코 거칠지 않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손 끝으로 처음에는 간질이듯이 건드리다가 슬쩍 세기를 더해나간다. 위부터 아래까지 살살 어루만지자 레비아가 견디지 못하고 어지러운 숨소리를 흘린다. 이리저리 비틀거리는 그녀의 몸의 움직임에 따라 조금씩 흔들리는 가슴엔 무척이나 **가 어려있다.
"하우우...."
제작자의 취향인건지, 아니면 그것 또한 신체 기능 유지를 위해 필요한 건지, 레비아가 입고 있는 옷이 땀에 젖어드는 것을 보며 남자는 속으로 조소했다. 평소의 얼음 같은 모습과 쾌락에 젖어가는 지금의 모습의 차이는 의도한 것인가, 아니면 베이스가 원래 그런 것인가. 어차피 딱히 중요한 건 아니었다.
"인간인지, 차원종인지, 그것도 아니면 안드로이드인지. 확실하게 하라고."
즐기는 건지 알 수 없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남자는 그녀의 뿔을 만지는 것을 슥 멈추고, 레비아의 얼굴을 잡은 채 억지로 세운다. 이제는 새빨갛게 물들어져 있는 얼굴, 가까운 거리라 느껴지는 열기를 띤 거친 숨결. 시선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지만, 남자가 꽉 붙잡고 있는 탓에 강제로 한 곳에 고정된다. 이 지경까지 와버린 판국에, 가느다랗게 남아있는 이성, 아직 '인간'의 일부가 남아있는 그녀의 눈동자에 흔들린다. 이미 풀려버린 눈 안에는 망설임과 욕망이 반반씩 섞여있다.
"이후에 해야할 일은 세팅되어 있겠지."
".....네."
그러나 결국엔 굴복했는지, 레비아는 남자에게 조금 더 다가간다. 이윽고, 그녀의 표정에 환희가 섞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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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분은 그냥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