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아] 유니온 관리요원의 자료수집 上.

인센디어리 2015-04-22 2



안녕하세요. 여기 앉으면 되나요? 아, 저는 커피 한 잔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런 자리를 갖기에 앞서 카페인으로 마음을 좀 차분히 가라앉히는 게 필요할 것 같아서요. 아시다시피 꺼내기 쉬운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상당한 시간이 흐르기도 했고, 그다지 떠올리고싶지는 않은 기억이니까. 여기 나오기 전에 몇 번이고 정리했는데도 아직도 두근거리네요.




.....




네, 감사합니다. 덕분에 말이 훨씬 더 잘 나올 것 같네요. 그럼 시작해볼까요? 우선 제 소개를 다시 한번 하겠습니다. 소개라고 해봐야 과거에 용병이었다는 것 뿐이지만요. 지금은 은퇴하고 손 털었지만. 아, 현 직업이 뭐냐라. 글쎄요. 뭘까요? 



익명을 조건으로 여기에 나왔고, 또 과거 기록은 전부 깔끔하게 세탁했으니까 찾기는 아무리 유니온 관리요원 분이시라고 해도 어려우실 겁니다. 그런 눈초리로 쳐다** 마십시오. 갑자기 그 빌어먹을 차원종 녀석들이 나타나 차원전쟁이 벌어지고 나서 종결된지 겨우 몇 년 뒤 였습니다. 복구가 진행되고는 있다지만 세계는 아직 황폐했고, 유니온이 자리잡고 클로저들의 재편성과 치안 유지, 난민 관리, 그리고 큰 불은 껐다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차원종들의 위협.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구요. 특히나 저처럼 가진 거 없고 뒤에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용병으로 뛸 수 밖에 없었지요. 설마 성실하게 일해서 벌어먹고 살라는 FM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으시겠지요? 지금이야 아니라지만, 제 몸 지키기도, 자기 목숨 부지하기도 힘든 시절에, 돌봐줄 가족도 남아있던 친구도 없었던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뭐, 개개인의 가치관에 얽힌 윤리관에 대해서 요원님과 토론을 하려고 이 자리에 나온 건 아닌데요. 설교하시고픈 마음은 알겠는데, 접어두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렇죠. 감사합니다. 저도 요원 님 같은 미인과 이런 '쪽'으로 얼굴 붉히고 싶지 않아요. 침대 위에서라면 또 몰라.....네? 또 성희롱하면 체포하시겠다구요? 죄송합니다.



여튼 어디까지 했더라. 네. 제가 용병이었다는 이야기를 했죠. 옛날이나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용병이 하는 일은 별 다를 바 없습니다. 고용주가 의뢰하면 총을 쥐고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지요. 그 대가로 돈을 받구요. 경호라던가 운송 같은 임무도 있었지만 결국 근본적으로는 그런 거니까. 제가 이래뵈도 이 바닥에서 오래 구른 놈이라, 여러 임무를 해결하는 동안 죽지 않고 잘 살아남았어요. 아시겠지만 이 직업 기대 수명이 그리 길지 않아요.



주로 분쟁지역, 넓게는 전 세계를 돌아다녔지만 역시 가장 인상 깊었고 가장 죽을 뻔했던 곳은 아프가니스탄이었네요. 생각해보면 그 땐 아직 햇병아리였던 제가 어떻게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남았는지 의문이에요. 물론 제가 실력이라던가 타고난 운이 좋았던 것도 있었지만, 가장 큰 요인은 제가 살면서 가장 찾아보기 힘든 훌륭한 대장을 위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누구냐구요? 그건 말할 수 없어요. 나중에 설명드리죠.



사족이 길었네요. 제 이야기를 이리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요원님이 원하시는 정보를 드리기 위해섭니다. 그 여자. 그 ***.....죄송합니다. 잠시 실례. 



......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쳤네요. 앞서 말씀드렸죠?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진정시키기가 쉽지 않아요. 용병 짓 하면서 온갖 험한 꼴 다 봤지만 그런 생 ***년...아니, 그런 ** 여자는 처음봤어요.



마음 속 깊이 묻어두고, 이제는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요원 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바로 떠오르더군요. 몇 년 동안 그렇게 고생하면서 잊으려고 했는데.....영상이 재생되듯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그 날은 학교의 학생들을 인질로 잡은 테러리스트들을 때려잡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지요. 눈이 동그래지셨네요.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모르시나 본데, 그 때 과연 어떤 범국제적 단체가 선진국도 아닌 그런 개발도상국의 오지에 있는 학교에 병력을 보낼 여유가 있었을까요? 



클로저를 보낸다? 차원종 저지에도 부족한 고급 인력을 그런 데 쓸까요? 돈 조금 쥐어주고 저희 같은 소모품들한테 일 맡기는 게 훨씬 남는 장사지요. 특히나 우리 대장님은 학생들과 아이들을 상대로 테러를 저지르는 놈들은 가차없어요. 자청해서 그 임무를 맡겠다고 나서셨지요. 저를 비롯해서 다른 부대원들은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그런 리스크도 크고 보수도 낮은 임무를 왜 떠맡으시냐면서 속으로 불평했지요. 물론 딱 한 번만. 



다들 대장님을 워낙 존경해서 그 분의 명령이라면 불 속에도 뛰어들 때였거든요. 물론 지금도 그럴 수 있지만요. 여하튼 임무는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그 테러리스트들은 한 마디로 관심종자들일 뿐 실전 경험은 적었던 건지, 여태껏 상대해온 적들에 비해 비교적 쉽게 각개격파할 수 있었지요. 좀 귀찮았던 적은 옥상에 있던 저격수였는데, 우리 대장님이 돌격 소총 하나 들고 가서 끝내버렸지요. 안 믿겨지죠? 저도 그래요. 



문제는 그 다음에 있었습니다. 총성이 멎고 나서 일단 적을 제압했다고 생각하고, 인질들을 찾기 위해 학교 내부를 수색했는데 아이들이 도통 안 보이는 거에요. 하필 시간 대도 밤인데다가 학교를 중심으로 마을이 빙 둘러싸고 있어서 찾기도 힘들었지요. 시간을 지체하면 적 측의 지원군이 올 여지도 있어서 하는 수 없이 2인 1조로 나뉘어 수색을 계속했습니다. 제가 행운아였던 게 대장님하고 한 조가 되었지요. 이유야 제가 가장 신참인게 이유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다행이다 싶었어요. 그러지 않았으면 죽었을 테니.



조를 짜서 수색을 시작한지 그렇게 한 십 분 쯤 흘렀을까? 갑자기 무전기에서 비명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오로지 비명소리만. 설령 적이 매복하고 있었더라고 우리 쪽에서 응사하는 사격 소리가 날 법도 한데 비명소리 밖에 나지 않았어요. 저와 대장님은 **듯이 마을을 뒤졌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찾아냈지요. 마을에 수확한 곡식을 보관하던 창고.....그 앞에 저희 부대원들 시체들이 가득 쌓여있는 걸.



사지가 멀쩡한 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된 시체더미 들 앞에는 왠 여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웠던 걸로 기억합니다.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은색 머리칼, 어둠 속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나있는 이목구비와 이 쪽을 거만하게 응시하는 자색 눈동자. 검은 라이더 자켓에 안 쪽에는 위 쪽이 풍만하게 올라와있는 하얀 티셔츠, 그리고 바지는 마찬가지로 검은 청바지였는데 유려하게 곡선이 진 몸에.....아, 이런 이런. 제가 여성 분들이 가장 싫어하는 행동 중 하나를 했네요. 사과드리도록 하죠. 



그녀가 바로 요원님이 말씀하신 자가 맞을 겁니다. 요정 같은 외모도 외모였지만, 무엇보다도 그 곁에 저런 여자가 들 수 있는 것조차 의심되는 거대한 낫이 떡하니 있었거든요. 위상 능력자들은 다 그런 특이한 무기를 쓰는지는 모르겠는데,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무엇보다 날 부분에 묻어 있는 시뻘건 핏자국은.....음.....제 동료들과 인질들의 것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이니까 한가하게 외모를 묘사할 수 있는 겁니다. 그 때 당시는 그런 끔찍한 광경을 보고 올라오는 구토가 올라오는 걸 간신히 참고, 괴성을 지르며 총을 쏘면서 그 여자한테 돌진했었습니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하더라도 때로는 티격태격하고, 때로는 울고 웃으며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전우들. 네. 돈으로 움직이긴 했지만, 우린 모두 대장님 아래서 같은 뜻으로 움직이던 전우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모두 머리통이나 팔 다리가 잘려나간 채 누워 있으니 몰려오는 패닉과 분노로 제정신이 아니었죠.



정신이 들었을 때는 대장님이 무턱대고 달려나가던 제 목덜미를 잡아채서 뒤에 던져놓은 뒤였지요. 달려나갈 때 앞에서 뭔가 번쩍이던 섬광은 그녀가 휘두른 낫이었습니다. 총을 쥐고 있던 제 왼팔은 이미 날아가서 땅바닥에 경련하고 있더군요. 전신을 덮쳐오는 불로 지지는 듯한 아픔에 전 당장이라도 의식의 끈을 놓고 싶었지만, 그러면 우리 대장님은 어떻게 되나하고 걱정하는 마음 때문에 그리 쉽게 편안해지지는 못했습니다. 옆에서 정신 차리라고 날카롭게 소리치는 대장님의 목소리도 한 몫 했구요. 아니면 진즉 죽었을 지도 모르죠.







"헤에. 언니는 판단이 빠르네? 하지만 그런 멍청한 부하 살려봐야 짐 밖에 더 되겠어?"


"......"


"설마 싸울 생각이야? 그냥 가면 안 돼? 이런 곳에서 여자 용병을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거든~ 기껏해야 시체라던가 혹은 시체임에 부족함이 없는 것들만 봤지. 보아하니 남자들한테 몸 팔면서 지내는 건 아닌 것 같고, 부하들을 통솔하는 위치인 것 같은데. 대단해~ 요즘 같은 세상에."


".......질문을 하나 하겠다. 너는 우리가 사살한 테러리스트들이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부른 위상능력자 용병인가?"


"댓츠 라이트. 이 놈들이 글쎄 선금을 그저 40%만 주고 다 죽어버렸지 뭐야? 나름 범죄자되고 고생하면서 이 짓거리하는데 이러면 내가 손해지."


"여기 있는 인질들, 아이들과 내 부하들도 네가 죽인 건가."


"에에. 언니도 바보야? 당연히 내가 했지, 그러면 누가해? 이 낫 안보여? 내가 딱 질색하는게 징징대는 애.새.끼.들이랑 제 구실 못하는 남자들이야. 돈도 다 못 받았는데 그냥 가면 아쉽잖아? 그래서 그냥 다 죽여버렸어. 아이들이야 시끄러워서 죽였다지만, 언니 부하들은 그래도 쓸 만했어. 야밤에 오래 버텼다니까?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언니."


"난 질문을 하지 않았어."




"대장님.....대장님....어서...피...하셔야...."

                               서걱
데구르르


"하아. 부하 교육 좀 똑바로 시켜. 뒤졌으면 곱게 가라고. 쫑알쫑알 남이 말하는데 끼여들고 예의가 아니잖아."


철컥.


"확인을 한 거지."


"음? 설마 싸우려고? 그냥 가지 그래. 오랜만에 언니 같은 사람 만나서 기분이 좋아. 그리고 많이 죽여서 이제 귀찮아. 어차피 같은 인간 베는 것도 별로 재미 없고. 차라리 차원종이면 저항을 거세게 하니까 베는 맛이라도 있는데."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이야."


".......?"


"차원종은 인간과 다르게, 마음껏 총을 쏴서 죽여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지. 쏠 때 양심의 가책이라던가 죄책감 같은 건 느끼지 않아도 돼. 쓰러뜨릴 때 주위 피해도 그다지 고려 안해도 돼. 실컷 부수고 터트려서 무너지고 박살나도 다 차원종이 그랬다는 걸로 퉁칠 수 있으니까. 그놈들은 괴물들이니까, 태워도 쏴도 베어도 떄려도 차도 날려버려도 짓눌러도 어떤 방식으로 고통을 줘도 상관없어. 



그 빌어먹을 위상력인가 뭔가 때문에 물리적 내성을 지니고 있잖아. 상식적으로 그러고도 잘 안 쓰러지는 놈들이 인간과는 같다고 할 수 없잖아? 쓰레기 청소를 하는데 칭찬은 못해줄 망정 나쁘게 말하는 사람은 없지. 왜냐하면 우리 세상을 망가뜨린 쓰레기들이니까. 그런데, 그 쓰레기들하고 같은 힘을 쓰는 '인간'들이 있더라고? 서로 생긴 건 다른데 하는 짓은 똑같아. 자기 힘을 주체못하고 주변을 파괴하고 다니지. 


난 그런 쓰레기들을 청소하는 것도 좋아해. 그래서 여태까지 거리를 깨끗하게 해왔는데 말이야.



지금 보니, 아직 청소할 게 더 남아있는 것 같네? 헤헤."












그 뒤....그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제 희미한 의식을 유지하는 것도 힘이 들어서 말이죠. 저를 뺀 모든 게 아득히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정상적인 사고가 돌아갈 때는 구조 헬기가 저를 태우고, 그 안에 있던 이들이 제게 응급처치를 해주었을 때였습니다. 눈을 뜨자마자 바로 대장님의 얼굴이 보였어요. 여기저기 멍이 들고,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는 상처에 한 쪽 눈은 부어서 제대로 뜨고 계시지도 않더군요. 심지어는 울고 계시더군요. 축 늘어져 있는 제 손을 잡고 제 얼굴 위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요. 아마도 제가 본 대장님의 가장 못 생긴 얼굴이었을 겁니다. 하하. 하하하......아하하...


......


...........고마워요. 


미안해요. 원하는 건 그 여자의 싸우는 방식이셨을 텐데 말이죠. 우리 대장님은 알고 계시겠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전 말할 수 없습니다. 이미 양지에서 제 자리를 찾고 계신 분에게 그 때의 어두운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고 싶진 않아요. 저보다도 대장님의 상실감이 더 크셨을 테니까요. 누구보다 부하를 아끼고 사랑하셨던 분인데.....


아. 이건 도움이 될 수 있겠네요. 추후 그 여자의 행방에 대해서 말인데요. 대장님께 직접 들었으니 정확할 겁니다. 후에 제가 '뒤쪽'에서 일하면서 소문을 듣기도 했구요. 그 당시 돌던 소문입니다.



[빈사 상태, 그리고 의사도 포기할 정도로 지옥 문턱 넘기 직전의 위상 능력자들이 영안실에 들어가기 전에 어디론가로 사라진다카더라! 그들은 전부 범죄를 저지르고 수용소에 갖힌 악질 범죄자들이라더라!]



많이 양보한 겁니다, 이 정도도. 노려보셔도 소용없어요. 흔한 도시 괴담 중 하나지만 말이죠. 우리 대장님도 많이 다치셨기에 회복하시고 난 다음에야 그 여자 행방을 알아볼 수 있었는데, 어디서도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 대장님하고 그 여자하고 거기서 엄청난 사투를 벌였다는 거지요. 일치감치 주민들이 도망간 그 마을에 성한 건물이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는 걸로 하죠. 긴 이야기 듣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일방적으로 끝내는 것 같아서 불만스러우시죠? 이해해주세요. 저한테도 제 사정이라는 게 있어서요.


아. 그리고 저도 궁금한게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혹시 시환이가 어디 갔는지 알고 계십니까? 네, 김시환. 이 녀석. 아무 말도 없이 잠적해버려서, 도무지 소식을 알 수 가 없네요. 유니온이라면 혹시 아나 싶어서요.


....


모르신다구요? 후우, 알겠습니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이야, 어서 와. 강남의 영웅!"

".......언니?"

"음? 슬비야. 왜 그래?"

"아, 그냥. 언니 안색이 조금 안 좋아 보여서요. 어디 아프시나요?"

"어라, 그러니? 아닌데.....최근 복구 작업을 조금 빡세게 하긴 하지만, 안색이 나쁠 정도는 아닌 걸?"

"하지만, 뭔가 걱정이 있으실 때마다 짓는 표정을 하고 계시는데....."

"헤에. 우리 슬비가 날 이렇게 신경써주고 있었다니, 몰랐는데?"

"......그, 그런 것보다, 언니가 워낙 알기 쉬운 분...이 아니라, 항상 밝으셔서 얼굴이 어둡거나, 그런 건 금방 티가 나거든요. 언제나 신세지고 있어서 제가 도울 게 있다면 꼭 도울게요."

"아니야. 걱정해줘서 고마워. 오히려 신세지고 있는 건 나지. 나도 항상 슬비 너랑 검은 양 팀한테 감사하고 있어. 그리고 네가 말한 그런 건 아니고....."

"........?"

"그냥, 이번에 공항에 가게 되는데. 그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서 익숙한 냄새가 나서."

"익숙하다구요?"

"응. 옛날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냄새야."

".....그건, 언니의 추억인가요?"

"으음, 추억이긴 한데, 별로 기억하고 싶은 건 아니야."

"에......그런 가요. 무슨 냄새이길래.....?"

"말하면 비웃지 않기로 약속하면 말해줄게."

"약속할게요, 언니."

"슬비는 매번 진지해서 믿을 수 있다니가, 후후. 모래 냄새야."

"모래...냄새요? 모래에서 냄새도 나요?"

"그냥, 그러니까 내 느낌이라는 거야."



"흐음. 아마도 재해 복구 작업을 하다보니 공사장이나 그런 곳에 있는 모래가 날려서 그런 게 아닐까요? 전 잘 모르겠지만요."

슬비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그나마 그녀가 가장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추론을 이끌어내어 제시했다. 물론 끝에 붙인 것처럼 슬비는 애초에 모래에서 냄새가 난다는 것조차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미리 약속한 바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걸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도 없었다.


"그랬으면.....좋겠네...."

적어도, 그녀 눈 앞에서 착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송은이 경정에게는 말이다. 자꾸만 공항 쪽을 쳐다보면서 의미 모를 한숨을 내쉬는 그런 송은이의 곁에는, 안전 지역에서는 두고 다니던 그녀의 돌격 소총이 왠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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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아 보고 혹해서 복귀 하기 전에 써봤습니다~




2024-10-24 22:25:5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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