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는 양떼 -14-
PhantomGIGN 2015-04-19 6
*[주의] 전편이 있습니다.
전편을 보시면 이해가 더욱 잘 되실겁니다.
이 작품은 '엘세이드' 와 'PhantomGIGN' 의 합작입니다
[흩어지는 양떼 -1-]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436
[흩어지는 양떼 -2-]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sn=1459
[흩어지는 양떼 -3-]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7&n4articlesn=1469
[흩어지는 양떼 -4-]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3&n4articlesn=1574
[흩어지는 양떼 -5-]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609
[흩어지는 양떼 -6-]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633
[흩어지는 양떼 -7-]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4&n4articlesn=1652
[흩어지는 양떼 -8-]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4&n4articlesn=1701
[흩어지는 양떼 -9-]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sn=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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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너무 무리한겁니다. 걱정 하시지 않으셔도됩니다. 독에 대한 중독이나 이상상태, 도핑등의 그 어떠한..."
의사의 침착한 목소리가 채 끝나지도 않았지만, 슬비는 안심했다는듯 짧게 한숨을 쉬었다.
일단 그녀에게 있어서 그것만큼 더 안도감을 주는 단어는 없었고,
또한 아직 움직일 수 있는 그녀와 유리만이 밤을 세워가며
세하의 옆에서 손을 꼭 붙잡고 울었다는것은 비밀중에 비밀이었지만,
그 행동에 대한 결과로써 피곤해질대로 피곤한 머리가 그 이상의 복잡한
사태 파악을 반쯤은 거부했다는것도 이유중 하나였다.
"하아...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지금 이세하 요원의 뇌파 수치와 세포의 자가회생과 분열이 급격히 일어나고있습니다.
아무래도 제1차 변이가 시작된것 같습니다.
조금 주의하시며 위상력을 사용하시면 좋겠군요.
나중에 본인에게도 말하겠지만 동료로써 전달 부탁드립니다. 저는 바쁘니 이만."
흰 가운을 떨치고 일어서며 의사는 차분히 청진기를 비롯한 몇가지 진료도구를 이동식 케이스에 집어 넣었다.
이런 급박한 중환자실에 왕진을 다니는것이 처음은 아니라는것을 증명하는듯 믿음을 주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슬비의 마음은 편하지가 않았다.
"잠시만요, 제1차 변이가 시작되었다고요? 머리색이나 홍채색도 바뀌지 않았는데요?"
"글쎄요, 세포의 급작스런 변화에 대한 외부적인 반응은 개인차를 두고 나타나니, 조금 기다려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제1차 변이에 대한 반응이니 다른것은 걱정치 않으셔도 됩니다."
제1차 변이.
정식 명칭으로는 세포분열급속화에 따른 노화의 급진적 가속이라는 언뜻 보면 매우 알기 난해한 말이었기에
그녀로써는 기초적 지식만 가지고 있었고,
이것은 그다지 위험한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연스럽고, 클로저로써는 숙명이라 할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위상력을 많이 사용하다 보면 세포가 기형적인 변이를 일으키게 되며, 홍채와 머리색이 변하는 결과가 나온다.
개인차는 있지만, 근육의 구조가 미세하게 바뀌거나 피부색이나 면역력 저하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데다가 극소수의 사람만이 겪는 불편함이었다.
계속 사용하다 보면 2차, 3차의 변이가 일어나며, 그럴수록 육체는 노쇠하는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지만 클로저, 아니 위상 능력자의 모두가 그렇듯 겉모습이나 근력에서의 차이는 없었다. 말이 세포 노화지,
일반적으로 그들의 외모는 위상력의 발현 시기부터 천천히 변화한다.
너무 천천히 진행되는 노화였기에 굳이 예를 하나 들어본다면
지금 잠든 세하의 어머니인 알파퀸 서지수의 외모는 나이에 비해서 한참 젊은 수준에서 머물러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3차의 변이가 일어나게 된다면 근력은 평범한 사람들과 비슷한 정도의 수치로 하락하며,
그때부터는 외모만 변화가 없다 싶을 뿐이지,
다른 모든 생체시간은 정확하게 진행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클로저 은퇴요원들이 산전수전 다 겪고 난 3, 40대에 많이 몰리는 일이 발생했으며,
이들은 부족한 근력을 위상력으로 강화시키는 방식을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1, 2차 변이에서는 색만이 유일한 변화의 척도였기에 그다지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녀 역시 제 1차 변이를 겪었기에, 그것이 어떠한 고통이나 육체에 부하를 주지 않는다는것을 잘 알지만,
그녀는 다른 관점에서의 걱정을 했을 뿐이었다.
"어떻게 그 짧은 기간 내에 1차 변이까지 일어날만큼 훈련을 한거니..."
중얼거리는 말소리는 그녀 옆에 세하의 무릎부분에 엎드려 약간의 눈물자국이 말라붙은 뺨을 반쯤 뭉개지게 놔둔채로
곯아 떨어진 유리에게조차 들리지 않은채 방안을 떠돌았다.
부모님이 눈 앞에서 차원종에게 난자당하여 돌아가신 그 날은 때때로 악몽의 그림자가 되어 드리워졌다.
비명, 고함. 그리고 붉은.
-도망가, 슬비야!
-커헉!
붉은, 새빨간.
아마 그때 자신을 지키듯 휘감은 무엇인가는 엄마와 아빠로부터 폭포처럼 비집고 나온 그것보다 더욱 붉진 못했던것 같았다.
그리고 아마도 자신의 위상력의 색인 선홍빛은-어디까지나 자신의 추측이었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복수심의 표출인것만 같았다.
클로저들의 위상력은 자신의 성향이나 감정의 변화등에 따라 첫 발현의 위상력 색이 제각각이다.
그렇기에 그녀의 마음엔 그것이 어느새 진리로써 자리잡고 있었다.
한때 자신을 저주했고, 위상력을 혐오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고아원에 의탁되기 보다는
클로저 양성소에 제발로 들어가기를 택했으며, 몇년간의 뼈를 깎아내는 노력으로 1차 변이를 겪고 지금의 힘을 손에 넣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몇년 걸린 일을 고작 4주,
세하가 어렸을때 훈련하며 쌓은 조금의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까지 포함해서 겨우 몇주만에 변이가 일어났다면
그건 그의 노력의 증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걱정스러운 슬비의 마음은 몰라주는듯이 세하는 그저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 세하를 한참을 바라보다 슬비는 세하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었다.
"고마워... 이세하"
그렇게 슬비 귀에는 그의 심장 고동소리만이 쿵쿵, 규칙적인 안도감을 주며 들릴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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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참여 요원 총 생존 인원 10명, 복귀 명령이 떨어졌다, 모두 한 시간 후 수송 헬기를 통하여 복귀하도록 한다!"
늦어버린 밤, 살아남은 아홉 명중, 아직 그들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자들은
얼굴에 핏기가 없었다.
남은 클로저들에게 복귀명령이 내려졌고, 그들은 살아남은 자로써 돌아갈수있다는 소식에 모두가 기뻐해야만 했다.
큰소리로 그들에게 작전의 마지막 단계인 복귀를 알리는 검붉은 제복의 정예 요원이 막사의 앞에 간이식으로 설비된 조악한 단상에서 외치는것을 그저 생기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얼굴로써 답했다.
"저희, 돌아가겠네요."
"아, 그렇구나. 돌아갈것 같네."
기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만한 억양과 고통에 절어버린 인간이 내는 사실에 대한 확인은 결코 살아남았다고 하는 사실에
대해 기뻐하는 것은 아니라 단언할수 있었다.
막 부상당한 옆구리의 상처를 봉합하고 치료팩까지 부착한 제이는 마지막 전투에서
먼 발치에 동료들의 찢어지고 조각난 시신을 반쯤은 제정신이 아닌것 같이
조그마한 피묻은 손으로 그러모으던 소녀가 안쓰러울정도로
오들오들 떠는것을 보며 무언가 마음속에서 공허하게 울려퍼지는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역시 그들을 이해하고, 같이 슬퍼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죽어간 자들의 최고의 예우란것을 일찍이 차원전쟁을 통해 겪었기에,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것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기로 했다. 검은 양은 전원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으며,
이것은 모든 작전통제 규약을 무시한채로 난입한 한 특수요원의 힘에 의해서였다.
힘없는 한 무리의 양떼들에서 자신의 모든것을 끝까지 관철하고 결정적인 용기를 낸 한 영웅 양의 행동.
하지만 만일 돌아가게 된다면 자신들을 구해준 영웅 양이 벌을 받게 될것을 알고있었기에
더욱 그 영웅 양에 대해 걱정할수밖에 없었다.
문득 그는 바람이 차다고 느끼고는 천천히 몸을 돌려 긴급 의료실 막사의 문을 제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 밖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아무렇지 않은 듯 눈앞에서 곤히 잠들어있는 세하만이 그의 유일한 신경쓸 대상이었다.
그의 위 아래로 두 소녀가 몸 이곳저곳에 감은 붕대며 치료팩등을 신경조차 쓰지 않은채로 거의 그를 보호하는 몸짓이라 볼수 있을만큼 절실하게 그에게 매달리듯 잠들어 있는것을 보고는 그는 잠깐 헛기침을 했다.
자신의 전우들은 언제 어디에서 뼛가루가 되어갔고, 그 따듯한 손길마저 풍화되고 삭아버려 흔적조차 남지 않은
자신의 옛일을 생각하기는 너무 상황이 확고한 불안감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침대 위에 불편하게 잠든 두 어린 소녀의 모습은 그에게 형용할수 없는 그리움,
그리고 후벼파는 고통의 기억을 잠시나마 불러왔다.
그는 이내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치고는 둘에게 걸칠 군용 담요를 찾기 위해 기댄 벽에서 등을 떼려 했다.
"돌아간다면 세하는 어떻게 될까요?"
피곤. 그리고 간절한 목소리.
무엇인가에 매달리는것은 그만큼의 믿음과 확고한 지식이 있는게 아니라
본능과 마지막 불확실한 작은 희망이란것을 알려주듯 목소리는 투명했고 작았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려던 등을 벽에 다시 천천히 기대었다. 그 만큼의 가치가 있는 말이었고,
가치를 부여하고 싶은 말이었기에.
말을 고르던 그는 결국 가장 순화되고 미화된 말을 꺼내기로 결심하고나서도 한참을 고민했다.
결론적으로 그가 말을 꺼낸 것은 거의 차 한잔을 다 마시고 날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그 이우현이 왔다는 소리는 아무래도 벌을 엄중하게 주겠다는 소리겠지. 아마도 내가 보기에는 최소, 무기징역일꺼다."
유리가 이우현이란 자에 대해 잘 알리가 없었고, 그가 어떠한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 안다는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마저도 그 작은 편린을 알고 있을 뿐, 그가 도대체 어떠한 일을 하는지는 윤곽조차 잡기 힘들었다.
대한민국의 실질적 모든 권한을 통솔하며, 최소의 희생으로 대의 번영을 이끌 유능한 인재이자 군림하려 하지 않는 독재자.
제이의 **가는 말투에 유리는 무엇이라도 말해보려했지만
소용없다는것을 깨닫고는 천천히 엎드려 있던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눈에 그 백옥같은 살결에 찢어진 상처가 마치 세상엔 존재하면 안될 이질적인것처럼 보였다.
화상을 입었는지 몸의 어떤곳에서라도 성한곳을 찾기 힘들정도의 상처들이 즐비했다.
옷 역시 간편한 셔츠로 갈아입었지만, 그것은 그녀의 상흔을 충분히 가려주지 못했다.
변색된 푸른 눈동자마저 아름다움을 불러올정도로 매혹적이라 느끼지 않는 남자는 없었기에
아마 모두 그녀의 상처를 슬퍼할 것이었고, 제이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그녀가 애틋하게 세하를 한참동안 바라보는것을 지켜보며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는 세하의 처분은 최악의 결과로만 이어지지 않는다는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 자만이
그나마 조금의 휴식을 자신에게서 부여받을 수 있었겠으나,
그의 처벌에 대한 내용은 검은 양 요원 전부가 거의 확실하게 예상하는 진실이자 **올 미래였다.
한참동안 바닥을 쳐다보던 제이는 천천히, 나직하게 웅얼거렸다.
"어떻하면 좋죠... 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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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 아무도 없고, 그저 조용하기만 했다.
"여긴..."
점점 또렷해지는 눈으로 생소한 방을 한번 휙 둘러보며 자신에게 연결된 의료장비들이 눈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어제의 일이 주마등처럼 생각이 났다.
"나, 쓰러졌구나.."
조용히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 앉아 링거주사를 뺐다. 피가 찔끔 흘러 나왔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몸에 박힌 그 어떠한 이물질이라도 제거하고픈 충동은 살의와도 같이 예민했기에
차라리 그편이 덜 심적으로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벽에 걸려있는 검은 요원복을 바라보았다.
뜯겨져 나가버린 뱃지와 명찰, 그리고 신품으로 받은지 몇주 되지도 않았지만
단 한번의 전투를 겪으며 부서지기 직전의 상태를 유지한채 조심스래 옷걸이 옆에
기대어진 건 블레이드를 바라보며 그는 무엇인가가 치미는것을 느꼈다.
공포인가, 아니면 희열인가.
그에게 다시금 어제의 일이 선명해져왔다.
회색빛의 얼굴들이고통스럽도록 일그러져야만 얼굴이 크게 고함질렀고 핏자국이 비산했었던 하늘에는
그 어지러운 시야였던 공간마저 집어삼켰던 하나의 거대했던 악마의 ***였던것만큼이나 무서웠고
어두운 땅거미였던것이 진혼곡을 연주했듯가라앉으며 시체였던것들만이 오로지 삐뚤어진 함성을내질렀었고
어떠한 방해도 없는 짐승이 었던것이 그의 몸안에서 날뛰었었고 완전한 침묵속으로 이끌었다.
"...크윽."
거의 구토감마저 치밀정도로 역한 느낌이 그를 휘감았다.
그는 쫒기듯 옷을 벗었다.
너덜너덜이라고 하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성한곳 하나 없는 몸이 드러났지만
그는 신경쓰지도 않았다.
국방색의 답답한 막사를 벗어나 밖으로 나가자 마치 아무일도 없다는듯이 하늘은 투명하게 맑았다.
그 색깔이 너무나 짙푸르기에 한참을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던 그는 옆에 누군가가 다가온것을 느꼈다.
"아, 제이 아저씨."
"그래. 잘 잤나 동생?"
평소처럼 인사를 나누고는 그들은 하늘만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곧 접어드는 겨울을 맞이하려 청소했는지 한점 구름조차 없는 청아한 하늘이 시리도록 빛나고 있었다.
꼭 그만큼 둘은 적막했고, 먼저 그 조용함을 깬것은 제이였다.
"할말이 없나? 그럼 내가 먼저 말하지. 여기에는 왜 온거야? 오게되면 어떻게 될지 뻔히 알고있으면서 왜 온거지, 동생."
옆을 돌아보 지도 않았으며, 하늘을 계속 바라보았을 뿐이지만 세하의 표정과, 말투 하나하나까지
그 도화지같은 하늘에그려지듯 그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특유의, 오로지 그만큼의 말로써 영향을 줄수 있는 인간은 오로지 그만이라고 웅변하듯
축 늘어지는 목소리가 거의 당연하다시피 그에게 들렸다.
"난 아저씨나 애들이 죽을수도있는걸 보고만 있을수는 없어요."
"하아... 무모한건 누님이랑 똑같군."
제이가 한숨을 쉬자 대화는 끊겼다.
다시 한번 한참 동안 침묵이 지속되다, 이번에 그 정적을 깨버린쪽은 세하였다.
"이제 저는 어떻게 될까요?"
세하의 질문에 제이는 답을 해줄 수 가 없었다.
밤을 세워 생각했으며, 모든 일들의 끝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한결같았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역시... 그렇겠죠?"
미소짓듯-그가 아니라 그가 한 말이 미소짓는것 같이 들렸다는 이야기이다-
은은한 떨림마저 느껴지는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무언가 할말을 찾았지만, 딱히 없었기에 둘은 잠자코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잠시 제이가 고개를 내려 세하를 바라보려 했을때, 때마침 특경대 부대원들이 다가오는 것 이 저 멀리서 보였다.
"저기서 날 잡으러 오겠죠. 그리고 나는 아마 용기의 댓가를 받지 않을까요?"
거의 자조하다시피, 그렇지만 억양없는 그의 목소리는 파멸을 앞둔 인간의 체념한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오로지 모든것을 예측하고 마음의 준비까지 충분히 끝마친 자만이 할 수 있는 말.
제이가 대답을 하지 못한채, 묵묵히 그의 옆모습만을 바라보고 있는 와중,
다가온 특경대 중 한명이 경례를 올려붙이며 말했다.
"이세하 특수요원님, 저희와 동행해주십시오. 체포 혐의로써, 요원님의 자발적 협조를 권유합니다."
세하는 천천히 일어서 발걸음을 옮기려다 제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미소로 한참을 그를 바라보았다.
특경대는 그가 그렇게 시간을 끄는데에도 불구하고 그를 독촉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는 한참 후 그가 마지막까지 담아두었던 말을 할 수 있었다.
"저는 역시 아저씨랑 유리,슬비,테인이를 만난걸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조용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세하의 머리카락을 건드렸다.
"이런말 하기는 좀 낯간지럽지만...친구 들 잘 부탁해요 아저씨."
차분히 발걸음을 옮기는 세하에게 무슨말이라도 해보고싶었지만 제이는 그럴수가없었다.
족쇄에 차인 짐승은 자유를 갈망하나, 결코 실현되지 못하리란것을 안다.
발버둥쳐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실이며 체념으로의 길이다.
모든것을 짊어지고 가는 저 아이를 구원하고, 도움을 주고 싶지만 자신은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족쇄로써
그를 옭아매어 더이상 그의 의지에 따른 행동은 할수 없다는것 을 알게 되었기에,
그리고 그것마저 저 소년이 마지막까지 희생한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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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비는 일찍 일어나 의무실로 향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신은 어느새 간이막사에 눕혀져 있었고, 무시할수 없는 상처도 어느정도 호전되었지만
그것을 다 확인하기도 전에 그녀가 떠올린것은 아직도 잠들어있을 세하의 얼굴이었다.
착잡한, 그리고 어찌할수 없는 어떤 감정들을 지금에서야 말하고픈 감정에 반쯤은 취하듯,
중천에 뜬 해아래를 총총 뛰어가던 그녀는 마침 그녀 쪽으로 걸어오는 제이와 마주쳤다.
"아저씨? 세하는요? 깼나요?"
침묵을 지키는 그의 행동을 불안하게 느껴졌기에 그녀는 그를 떠밀다시피 밀쳐버리며 곧장 의무실로 들어가보았다.
어제의 상처가 조금 벌어진것 같이 쓰라렸으나 그것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분명 어제까지만해도 세하가 누워있던 침상에는 아무도없다.
그녀는 잠시 멍하니 그 광경을 곱씹어보고, 다음 순간 뛰쳐나와 제이의 손목을 붙잡았다.
"세하...세하 어디있어요!"
그런 그녀에게 제이는 오늘만 해도 두번째로 어쩔수 없는 자기 혐오에 휩싸여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했으며,
당연히 그 모습을 자신에게 의지해야 할 어린 소녀에게
보여줄수는 없었기에 한참을 기다렸다 그가 꺼낸 말은 고작 조악한 단어였다.
"대장...알 잖아."
"그렇다고...그렇더라도, 이렇게 쉽게 보내주면 어떻게 해요!"
날카로움, 예리함. 높은 음색이자 전염성 높은 절규의 목소리.
문득 그 목소리가 자신을 후벼파는것을 느끼며 제이는 소리치려했다.
폭발하는, 터져버릴 듯 한 그의 무언가가 자신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그를 비집어놓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앞에 있는 소녀의 얼굴을 보자 그는 그 마음마저 굳게 다문 입속으로 밀어 넣을수밖에 없었다.
늘 침착하고 냉혹한 표정을 짓는 그녀가 자신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자 도저히 그럴수가없었다.
제이는 그저, 마지막으로 영웅 양이 한 부탁의 족쇄에 순응한 채로 조용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알다시피, 그것은 그에게 있어서 가장 최선의 방법일테니.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단어를 총 동원하여 생각했고,
그렇게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그가 한 말은 다음과 같은, 매우 조악한 단어였다.
"돌아가자,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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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랜만입니다...(안...때리실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