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만약 제저씨가 안경을 벗는다면. -오세린편: 프롤로그-

Maintain 2015-04-15 9

"...하아..."

자명종 소리에, 눈을 떴다. ...꿈이었구나... 아쉬워라. 새삼스레 좋은 꿈을 깨운 자명종이 원망스러워진다. 하지만 오늘은 준비해야 할 게 많으니까, 일찍 일어나야지. 아쉬운 마음을 접고,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후 거실로 나갔다. 

"..."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텅 빈 거실은 몇 번을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은 아쉬운 기분도 든다. 나름 정들었던 집이었는데. 이제 이 집과도 며칠 후면 안녕이겠지. 며칠 후면 다른 지역으로 전근이니까. 잡다한 짐들은 그곳에 있는 집으로 미리 옮겨 놨고, 이제 이 집에 남은 거라고는 침대와 냉장고 같은, 정말 꼭 필요한 생활용품 뿐이다.

앞치마를 두르고, 냉장고에서 어제 장봐온 야채와 고기들을 꺼내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냈다.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넣고 볶자, 좋은 냄새가 방 가득 퍼져나간다. 그리고 속으로 기도를 올린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다 된 요리를, 밥과 함께 도시락통에 예쁘게 담아놓는다. 다들 좋아할까? 맛있게 먹어줬으면 좋겠는데. 얼마 전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데이비드 국장님, 송은이 경정님, 캐롤 요원님. 정도연 연구원님. 그리고 검은양 팀. 오늘 그 사람들에게,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부족하게나마 도시락이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었다.

특히 검은양 팀에게는 큰 신세를 졌다. 팀을 훌륭하게 이끌어주신 관리요원 김유정 요원님. 알파퀸 선배님의 아드님인 이세하 군, 항상 냉정침착했던 팀의 리더 이슬비 양. 언제나 활발하고 기운찼던 서유리 양. 어린 나이에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열심히 싸워 준 미스틸테인 군. 모두에게 입은 은혜는, 평생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제이 선배님...'

-두근.

어째서일까. 선배님을 생각하니, 마음 한쪽이 두근거렸다.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두근거림은 점점 더 커져가는 것 같았다. 

언제부터 이런 감정을 갖게 된 걸까. 아마 그때부터겠지. 내가 선배님에 대해 알기 시작했을 때...선배님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그 때부터.

역전의 용사...우리 같은 클로저들에게, 선배님은 알파퀸 선배님 못지않은 울프팩의 영웅이다. 나도 차원전쟁 때 울프팩의 활약을 보고 들으며 팬이 되었고, 그 울프팩 중에서도 가장 팬이었던 사람이 바로 제이 선배님이었다. 

물론 나는 그 모습을 직접 **는 못했다. 그때의 나는, 아직 태어나기도 전이었으니.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울프팩 팀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자랐고, 그 중에서 가장 내 관심을 끈 건 제이 선배님이었다. 기껏해야 초 6? 중 1? 그런 어린아이가 차원종들과의 전쟁에서 차원종을 물리치며 위기에 빠진 시민들을 구출했다는 그 모습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유니온에 들어가면서 관련자료와 영상도 많이 찾아보면서, 선배님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커져갔다. 제이 선배님은 대체 어떤 분이실까?

아쉽게도 전쟁이 끝나고 선배님이 은퇴하시고 난 후의 이야기를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어느새 선배님은 내 롤 모델이 되었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했다. 비록 그 분의 위상력에는 발끝도 못 미치는 위상력을 가진 보잘것없는 말단 클로저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선배님 못지 않은 클로저 요원이 되겠다. 그런 생각에 열심히 노력했다. 그래서 B급 자격을 얻어냈고, 김기태 요원님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요원님의 욕심과 잘못된 생각 때문에 신서울은 엉망이 되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당연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알고 있었어도, 힘이 없는 약한 나는 역시 아무것도 하지 못했겠지만. 그럴 때 검은양 팀이 나타났고, 선배님이 돌아오셨다. 신서울을 지키기 위해서.
 
선배님을 눈앞에서 다시 봤을 땐, 정말이지 날아갈 듯 기뻤다. 동경하는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다니! 그 기분은, 모르는 사람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정말, 정말로 기뻤다.

하지만, 동시에 슬펐다.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걸까, 어른이 되신 선배님은,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였다. 몸 여기저기 붕대를 감고,파스를 붙이고, 수시로 피를 토하는 그 모습은 정말 다 죽어가는 환자의 그것과 다를 게 없었다. 

특히 충격이었던 건, 그 머리색이었다. 위상력을 많이 쓰면 그 부작용 탓에 머리 색이 변한다는 거야 잘 알고 있고, 당장에 나도 머리색이 많이 옅어지긴 했다. 하지만, 세상에, 그 하얀색 머리는... 거기다 위상력도 거의 다 잃어서 내가 가진 위상력보다도 약할 정도라니. 그런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몸이 되었다는 얘기를 김유정 관리요원님께 들었을 땐, 정말로 가슴이 아파서... 하마터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어버릴 뻔했다. 선배님...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하지만 다시 전장터에 돌아오신 선배님은 그런 몸을 이끌고 임무를 다녀오시고, 김기태 요원님이 내게 손찌검을 했을 때도 나를 지켜 주시고. 항상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이런 못난 후배를 상냥하게 도와주신 선배님은, 내가 알던 그때의 선배님과 똑같았다. 그래서 더욱 동경하게 됐고, 또 존경하게 됐다. 

그런 동경은, 언제부턴가 두근거림으로 바뀌었다. 처음엔 선배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렸고, 이제는 선배님을 상상할 때마다도 두근거린다. 

그리고 이젠...꿈을 꿀 때 가끔씩 선배님이 나오시더니...그, 오늘은...꿈 속에 선배님이 나와서...선배님이, 아니, 내가,...그, 그렇고 그런...

"...아후... 창피해..."

나도 모르게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말았다. 그 꿈이 무슨 내용이었는지, 내가 그 꿈에서 무슨 모습이었는지는 아마 평생 말할 수 없을 거다. 아까 일어나서 내 속옷과 침대를 봤을 땐, 문자 그대로 부끄러워서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누가 내 자는 모습을 봤었다면, 그 사람은 날 평생동안 놀릴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새삼 궁금해지긴 한다. 혹시나 선배님은, 꿈 속에 나온 내 모습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기뻐하실까? 싸 보이는 여자라며 싫어하실까? ...우우, 더 이상 생각하면 우울해 질 거 같아...

"그래, 세린아. 더 이상 그런 생각은 관두자. 오늘은 오늘 일에만 집중하는 거야. 알겠지?"

나 자신에게 다짐했다. 그래, 오늘은 오늘 일에만 집중하자. 오늘은 그 동안에 신세졌던 분들에게 도시락을 대접해 드리는 거야. 나는 마음을 다잡고, 평소처럼 제복을 입은 다음 마지막으로 모자가 삐뚤지는 않았을까, 마무리까지 확실히 하고 도시락을 들고 집을 나섰다.




안녕하세요. 다시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일단 시작하기 전에...사과 인사부터 드려야겠네요ㅠㅠ
댓글로 유정씨 루트나 유리 루트를 다뤄 달라는 얘기가 많았지만, 애석하게도 이번 이야기는 오세린 루트로 결정되었습니다...원래 진히로인은 맨 나중에 쓰는 법이니, 조금만 양해 부탁드릴게요ㅠ 과연 진히로인은 누가 될까요.
아무튼 얘기로 돌아와서, 사실 오세린도 꽤나 제저씨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스토리 진행하면서 그렇게 느낀 건 저뿐인가요? 이번 오세린 루트는 대부분 오세린의 시점에서 다뤄지되, 제저씨의 시점에서도 살짝 다뤄질 예정입니다. 그리고 제저씨의 시점에서는...음...약간 충격적인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뭐, 이렇게 이번에도 허접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만, 이번에도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그럼 다음 이야기에서 뵙겠습니다.

2024-10-24 22:25:3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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