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복수

zlRmd 2014-12-15 0

 18년 전, 서기 2014년. 대한민국의 중심지라고 불리던 수도 ‘서울’은 철저하게 무너지고, 부서지고, 절망을 맛보았다. 정확히는 전 세계가 맛봤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세계 곳곳에서 열린 ‘차원문’에서 나타난 차원종들 때문이었다. 그 어떤 과학자도 차원문이 열린 이유를 알아내지 못하였다. 그 어떤 과학자도 차원종이 어떤 생물인지를 알아내지 못하였다.

 차원종들은 마치, 성경에서나 나오던 주가 내리는 심판처럼 철저하게 전 세계의 인간들을 유린해갔다. 인류도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차원종들에게 맞서 싸웠다. 그러나 그 어떤 무기들도, 화학 무기들 조차도 차원종들에게는 털끝만큼의 상처도 입히지 못하였다. 상처를 입히는 것조차 인류는 불가능했다. 

 난생 처음 보는 차원종들은 인간을 비웃듯이, 최고의 과학력이 집결된 신식 무기들을 비웃듯이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전 세계의 인류가 차원종들에게 더 이상 아무런 반발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나타났다. 

 극소수. 전 세계 인류를 몇 십억으로 가정했을 때, 1/100, 000의 확률이라는 극소수의 확률 속에서, 극소수의 인류는 ‘위상력’이라는 초월적인 능력에 각성한다. 그 어떤 무기도 통하지 않았던 차원종이었지만, 위상력 앞에서는 속속히 굴복해 갔다. 그리고 어쩌할 도리가 없었던 차원문을 닫기까지 한 그들을, 인류는 이렇게 칭했다. 

 문을 닫는다는 뜻에서 ‘클로저(CLOSER)’ 라고. 

 그로 인해 인류는 다시 반격의 횃불을 세울 수 있었다. 인류는 차원종들의 대대적인 침입을 ‘차원 전쟁’이라고 명명하여, 그 슬픔을 가슴에 품은 채 다시 한 번, 재기를 꿈꾸었다. 모든 생태계의 정점에 다시 서기 위해, 인류는 클로저와 함께 차원종들에게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라는 것은 극소수의 인류들 뿐. 그들에게 구해진 극소수의 인류들뿐이었다. 

 모두가 구해질 수는 없었다. 아무리 클로저라도 모두를 구하는 것은 무리였다. 많은 차원문들이 닫히고, 많은 차원종들이 죽었지만, 인류 역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고 끝없는 비극과 절망을 느꼈다. 

 신강 고등학교 2학년 E반. 국가차원관리부 특수처리반에 속해 있는 클로저(CLOSER). 이슬비 역시 12년 전, 어린 나이에 그 절망을 맛보았었다.

 그리고 지금 그 절망을 맛보여주었던 장본인이 슬비의 눈앞에 버젓이 자리하고 있었다. 예전보다 더 강력해진 위상력을 내뿜으며, 끝없는 절망을 보여주는 것처럼. 그 장본인은 그녀의 눈앞에 있었다. 

 “어이! 너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지금은 선배 클로저들을 기다리라는 명령이 떨어졌잖아!” 
 “내가 해야만 해.”
 “무슨 소리야! 우리들끼리는 저 녀석을 잡는 건 무리라고! 저 녀석의 차원종 랭크를 알기는 하는 거야? ‘보이드 디 아이드’ 차원종 랭크에서도 A랭크인 괴물 중에 괴물이라고!”
 “말했잖아. 나 혼자 할 거라고. 구경을 해도 돼. 도망을 쳐도 돼. 하지만 간섭하는 건 용서하지 않아.”
 “너 정말!!!” 

 세하의 외치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슬비는 보이드 디 아이드를 똑바로 직시했다. 그런 슬비를 비웃는 것처럼, 보이드 디 아이드는 찢어지는 웃음소리를 내었다. 

 “마지막으로 말할게. 끼어들지 마. 세하.” 
 “그러다가 진짜 죽는다고, 너!!!” 
 “상관없어.”

 슬비의 주변에서 플라잉 대거들이 하나, 둘 씩 부유하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날들을 보이드 디 아이드 쪽으로 겨눈 채, 슬비는 가녀린 입술을 열었다. 

 “목표 확인, 적을… 섬멸합니다.”

 그것을 끝으로 슬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제는 어떠한 대화도 들리지 않는다. 주변에서의 소음은 모조리 차단된다. 오로지 자신의 오감만을 극대화 시키고, 눈앞에 있는 보이드 디 아이드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슬비는 지면을 박찼다. 

 이것은 그녀의 이야기. 그녀가 품고 있는, 그녀만이 알고 있는 과거의 이야기. 구원받았던 인류들은 알 수가 없었을 이야기. 처음부터 이렇게 됐음이 정해진 이야기. 그 장본인에게 복수를 해야 하는 그녀의 이야기다.

 - 

 12년전, 서기 2020년 2월 12일, 대한민국의 수도「신 서울」

 여전히 차원문은 열리고, 차원종들은 나타났다. 그에 따라 클로저들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차원문을 닫고 차원종들을 몰살해갔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모든 차원문과 차원종들을 몰살할 수는 없었다. 기본적인 수의 차이. 

 1분 1초가 지나가는 상황에서도 열리는 차원문과 나타나는 차원종들과는 달리, 클로저의 수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기에 모두는 구원받을 수 없었다. 

 “슬비야, 마시렴.” 

 폐건물 아래에서 꾀죄죄한 행색의 남성과 여성은 둘 사이에 무릎을 끌어안고 있는 어린 아이를 향하여 물이 조금 담겨 있는 페트병을 건넸다. 어린 아이는 뚜껑이 열린 페트병을 받아 들고 정신없이 그 물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어린 아이는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페트병에 있는 물을 모조리 마셨다. 안이 텅 빈 페트병을 땅바닥에 내려두고 곧 자신의 엄마와 아빠의 품에 안겼다. 어린 아이의 엄마와 아빠는 그런 아이의 응석을 받아주었다. 곧, 어린 아이는 잠에 빠져들었다. 

 “이제 물도 없고 식량도 통조림 몇 캔 밖에 안 남았어요. 여보.”
 “그래, 식량을 조달하긴 해야 하는데 이 상황에서는 도저히 무리야. ***! 그 놈의 클로저라는 자식들은 대체 뭐하는 거야!” 

 어린 아이의 아버지인 남성은 분한 듯이 주먹을 바닥에 내려쳤다. 손이 얼얼해 오고 껍질이 까져 피가 흘러나왔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남성은 답답함을 풀고 싶었다. 

 “……슬비가 깨겠어요.” 

 여성은 곤히 잠든 슬비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제야 남성도 자신의 딸이 잠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울분을 삼켰다. 

 이 세 명의 가족은 ‘차원 전쟁’이 일어난 2014년부터 2020년인 현재까지 차원종들에게 몸을 피하며 살고 있었다. 딸인 슬비를 낳자마자 발생한 ‘차원 전쟁’. 딸을 낳고 나서 행복한 일상을 그리던 그들에게 있어서 슬비가 태어난 날은 가장 기쁜 날임과 동시에, 가장 최악이었던 날이었다. 

 지금도 차원종이 거리에 즐비해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식량을 조달하기는 극히 어려웠으며, 마지막 물조차 방금 떨어졌다. 이대로는 필시 전부 죽을 것을 남성과 여성은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식량과 물을 찾아야 했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눈빛만으로 이야기를 끝냈다. 여성은 자신의 무릎을 베고 잠들어 있는 슬비를 조용히 땅바닥으로 내려놓았다. 남성은 슬비의 머리가 아프지 않게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슬비의 머리 밑에 깔았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은 곧 조용히 폐건물을 빠져나갔다. 마지막으로 슬비를 돌아보며, 그들은 어떻게든 식량과 물을 찾아오겠다는 다짐과 함께, 차원종들에게 들키지 않게 이동을 시작했다. 

 “엄마? 아빠?”

 그들이 식량을 찾으러 나가고 30분 뒤, 슬비는 누워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있어야 할 엄마와 아빠가 없었다. 

 “……엄… 마. 아… 빠?”

 어렸던 슬비에게는 그 상황은 충분히 두려움을 유발시키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은 어두컴컴한 폐건물. 가끔씩 쥐들이 찍찍 거리는 소리. 

 “어디 있는 거야…?”

 슬비는 몸을 일으키고 엄마와 아빠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 채, 걸음을 옮겼다. 

 말 그대로 슬비는 정말로 운이 좋았다고 해야 했다. 엄마와 아빠를 찾기 위해 정처 없이 걷기만 하던 슬비는 몇 십 분을 걸어도 차원종을 ** 못했고, 차원종도 슬비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반대로, 운이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었다. 

 막 6살이 되던 슬비의 눈앞에는 그것이 있었다. 그것은 온몸이 천사의 깃털처럼 흰색이나, 군데군데 푸른색이 섞여 있었다. 표정다운 표정은 보이지 않고, 어디가 팔이고 어디가 다린지도 제대로 분간이 가지 않았다. 양 옆에 날카로운 세 개의 쐐기가 달려있는 그 당시, 차원종 랭크 중, B랭크였던 보이드 디 아이드는— 

 찢고 있었다. 어렸던 슬비의 눈앞에서, 그녀의 부모님이라고 해야 할 남성과 여성의 육체를 너무나도 가볍게, 너무나도 간단히 찢고 있었다. 

 “슬… 비…? 여기… 는 어떻게……?”

 몸이 찢어져 가는 상황에서도 슬비를 발견한 여성은 목소리를 내었다. 

 “도… 망가…… 슬… 비야…….”

 금방에라도 정신이 단절될 것 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내어 말했다. 어서 도망치라고. 그러나 슬비는 그 말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제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엄마? 아빠?”

 그 누구라도 그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고, 그 말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어렸던 슬비라도 지금 자신의 엄마와 아빠가 어떠한 상황인지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다. 자신의 엄마와 아빠는 유린당하고 있었다.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 압도적인 힘에 의해, 철저하게 찢겨지고 철저하게 유린당하고 있다. 

 “아… 아…… 아아아…….” 

 슬비의 입에서 울음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으아앙… 으아아아앙!!!!!!” 

 어렸던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 자리에서 큰 소리로 우는 것 뿐. 그 외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보이드 디 아이드는 그런 슬비를 발견했는지 천천히 부유하며 슬비에게로 다가갔다. 몸이 두 동강 난 슬비의 엄마와 아빠였던 여성과 남성을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친 채로, 점점 더 슬비와의 거리를 좁혀갔다. 

 “어린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지금 당장 구출 하겠습니다!”
 “조심해, 저 녀석은 B랭크짜리의 거물이다. 저 녀석은 도저히 우리만으로 상대하지 못해. 신속히 어린 아이를 구하고 도망쳐라.”
 “예!” 

 그 상황을 낮은 건물에서 이제야 발견한 두 명의 여성과 남성 클로저. 여성의 클로저는 대답하고 난 후, 곧바로 슬비를 향하여 전력질주 했다. 

 보이드 디 아이드의 날카로운 쐐기들이 슬비를 찢으려는 찰나, 순간적으로 나타난 클로저는 여전히 울고 있는 슬비를 옆구리에 껴안았다. 

 “기억해둬, 흰색. 지금은 힘이 없어 물러나지만 인류는 반드시 너희들을 몰살한다.” 

 검지를 한 치의 오차 없이, 보이드 디 아이드에게 겨눈 채, 여성은 다음을 기약하며 그곳을 탈출했다. 

 그렇게 슬비는 살아남았다. 어린 나이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절망과 비극을 맛 본 슬비는 곧 위상력이 발현됐으며, 자신을 구한 여성 클로저의 소개로 인해 UNION에 산하에 있는 관리기관에 들어가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잠재력이 낮았던 슬비는 남들보다 더 배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슬비는 매일매일, 어린 나이에서부터 남들의 2~3배 되는 시간을 훈련에만 쏟아 부으면서도 그것을 잊은 적이 없었다. 날이 가면 갈수록 그것에 대한 복수심이 더더욱 커졌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지금, 슬비는 비로소 그것을, 보이드 디 아이드를 만났고—

 슬비는 지금까지 쌓아두었던 ‘복수’의 감정을 모조리 터뜨렸다. 

 -

 “하아아앗!!!” 

 슬비가 지면을 박참과 동시에 보이드 디 아이드도 그 몸을 부유시켜 최고 속도로 슬비에게 날아들었다. 

 이 날만을 위해서 슬비는 보이드 디 아이드에 정보란 정보는 모조리 수집했다. 작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조리 모은 결과, 슬비의 머릿속에는 보이드 디 아이드의 전투방식이 모조리 담겨 있었다. 

 슬비는 그대로 높이 점프했다. 슬비의 돌발행동에 한 박자 느리게 반응한 보이드 디 아이드에게 곧바로 붉게 물들은 단검이 급박했다. 하지만 보이드 디 아이드는 그 순간, 날아드는 단검의 궤도를 파악하고 한 개의 쐐기를 내밀어 그 단검을 쳐내려 했다. 

 그러나 보이드 디 아이드에게 있어서 그것은 실수였다. 슬비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붉게 물든 단검과 보이드 디 아이드의 쐐기가 충돌하고,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의 여파로 공중에서 자세를 잃은 슬비는 미끄러지듯이 지상으로 돌아왔다. 

 보이드 디 아이드가 있던 곳에 자욱한 연기가 피어났다. 한 차례 바람이 불고 그 연기가 걷혔을 때, 붉게 물든 단검을 향해 내밀었던 보이드 디 아이드의 쐐기는 반파되어 있었다. 

 슬비는 보이드 디 아이드에게 틈을 줄 생각이 없었다. 

 “규율의 칼날!”

 낭랑한 목소리가 높게 울려 퍼지고 슬비의 주변에서 푸른색의 빛으로 된 단검이 하나하나 생성되기 시작했다. 

「GRrrrrrrr……?」

 보이드 디 아이드가 의문을 갖기도 전에, 푸른빛의 단검은 보이드 디 아이드를 향해 쇄도했다. 이번에도 폭발하는 것일까, 고민했는지 보이드 디 아이드는 쳐내지 않고 옆으로 피했다. 그리고 보이드 디 아이드가 피한 곳에는 이미 슬비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너에 대한 모든 것은 이미 간파한지 오래야. 네 랭크가 SS랭크가 된다 하여도 나는 너에게 지지 않아.” 

 그 순간, 보이드 디 아이드에 몸이 한 차례 붕 뜨더니 그대로 지면으로 내리꽂혀졌다. 내리꽂혀진 보이드 디 아이드의 몸에 수많은 금이 갔다. 

 “전자 폭풍.” 

 짧게 내뱉은 말과 함께, 보이드 디 아이드와 슬비가 있던 곳이 어두워졌다. 

 어느새 보이드 디 아이드와 슬비에 위에는 검은 먹구름이 드리워 있었다. 치직, 치직하는 소리가 먹구름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기를 느꼈는지 보이드 디 아이드는 그곳에서 빠져 나가기 위해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꼼짝도 하지 않았다. 

 「GRrrrrrr—?!」

 슬비를 중심으로 쏟아져 내리는 벼락. 오직 그녀가 있는 곳만이 유일한 안전범위였다. 끝없이 내리쳐지는 벼락은 순식간에 새하얗던 보이드 디 아이드의 갑주를 검게 태웠다. 

 “사라져.” 

 슬비는 분노를 담아, 원한을 담아, 검은 연기가 피어나고 있는 보이드 아이드를 향해 말했다. 슬비는 쥐고 있던 단검을 보이드 디 아이드를 향해 겨누었다. 

 슬비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보이드 디 아이드를 향해 겨눈 단검에서 빛이 응집되어간다. 

 「GRrrrrrrrrrrrrrrr——!!!!!!!!!!!!」

 그것만큼은 맞으면 안 된다는 것을 보이드 디 아이드는 본능으로 느꼈다. 마지막으로 발악하듯, 비명을 내지르며 보이드 디 아이드는 자신의 양옆에 달린 쐐기를 떼어내었다. 저절로 부유하는 날카로운 쐐기가 슬비를 꿰뚫기 위해 공중을 내달렸다. 금방이라도 죽을 위기를 앞둔 슬비는 그런 긴박한 상황임에도 자세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움을 잊기 위해 눈을 감고 있었다. 

 슬비는 단검의 날 끝에서, 충분한 빛을 응집했음을 느꼈다. 감겨져 있던 슬비의 눈이 비로소 뜨여졌다. 그리고 그 입술이 움직였다. 

 한 줄기의 섬광. 

슬비의 눈앞에 육박한 쐐기들을 모조리 태우며 한 줄기의 섬광은 그대로 보이드 디 아이드의 몸을 꿰뚫었다. 

 보이드 디 아이드의 몸을 이루던 중심에 커다란 바람구멍이 났다. 더 이상 비명을 내지르는 것조차도 할 수 없었다. 보이드 디 아이드의 몸이 마지막으로 떨리나 싶더니, 그대로 땅으로 떨어졌다. 

 “……정말로 쓰러트렸어.”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던 세하는 나직이 탄성을 흘렸다. 

 차원종 A랭크. 보이드 디 아이드. 수많은 클로저들과 인류를 무참히 짓밟았던 차원종을, 눈앞에 있는 가녀린 소녀는 마침내 쓰러트렸다. 

 “드디어… 드디어…….”

 그리고 그 차원종을 쓰러트린 소녀, 슬비의 입에서 울음 섞인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슬비는 힘이 다 빠진 듯, 난장판이 된 길목에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엄마와 아빠의 복수를…… 갚았어…….”

 6살의 나이에서 엄마와 아빠가 죽는 것을 보았다. 그런 그녀가 얼마나 상심했었고, 얼마나 슬펐는지 그 누가 알 수 있을까. 그 누가 이해해줄 수 있을까. 세하의 앞에서, 아니 어떤 사람들 앞에서라도 완벽한 모습을,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였던 슬비는 지금만큼은 어린아이로 되돌아간 것처럼 울었다. 






 

2024-10-24 22:21:0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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