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1. 첫 번째 보고.
cllaryche 2014-12-1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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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 라001호.
작전명 : 노심융해.
작전목적.
위상력에 소질이 있는 인간을 폭주시켰을때 어떤 반작용이 일어나는가.
동시에 위상력에 변질을 주었을 때의 힘의 강도와 변화에 측정, 관찰에 중점을 둠.
이로인해 비능력자 혹은 구 위상능력자의 재활이 가능한가에 가능성의 척도를 알아낼 수 있음.
위상능력의 기준치를 노심으로 나타내고 폭주 척도를 융해도로 나타냄.
실험체.
신강고등학교 2학년 학생 중 위상능력에 강력한 소질을 보임에도 클로저가 되길 거부한 학생을 모르모트로 사용.
강화능력계통의 능력자였는지 신체에 약간의 변형이 일어남.
폭주레벨 2로 확인.
현재 분노조절장애, 이상성도착증, 알츠하이머 증상이 나타남.
작성자. C.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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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레고처럼 와르르 마냥 무너지는 건물들과 동물이나 식물... 아니 완전히 상식이라는 형태를 벗어난 생명체들. 그들이 만들어내는 광경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래, 아비규환.
아비규환이란 이럴때 쓰는 말일 것이다.
사람들은 비명을 멈추지 못 한채 도망칠 사람들은 도망치고 도망칠 정신이 없는 사람들은 저 인외의 존재들에게 유린당한다.
"..."
왜일까.
분명 나도 사람이며 동시에 약자다. 아비규환 속의 시체가 되었어야 정상이어야할 내가 두 다리로 서서 괴물들이 지나가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이미 죽은 걸까.
아니, 심장은 내 의견을 거부하듯 요동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흔히 하는 식상한 볼꼬집기까지 해봤지만 나는 분명 살아있으며 괴물들과 대적한채로 웃고 있기까지 했다.
그래, 웃기지 않은가.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사람들과 괴물들의 틈바구니에 껴서 영화를 보는 듯한 나의 이 상황이?
현실을 벗어난 저 장면은 마지못해 유쾌하다. 무너질 일이 없는 건물들은 볼링장의 볼링핀이며, 죽음을 생각조차 못해본 사람들은 볼링공이 되어 벽과 바닥에 찌부러진다.
그때였다.
한 줄기의 섬광과 함께 공기를 찢는 듯한 소음이 들려온 것은. 귀를 괴롭힌다는 표현이 알맞을 정도로 거친 소리가 인외의 괴물들을 덮쳐 반대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목표 확인. 적을 섬멸합니다."
[너무 무리하지마. 아직 실전에서 쓰기엔 미미한 양이잖아?]
선명한 무전음의 비아냥. 저것은 틀림없이 듣는 이를 괴롭히는 듯한 조롱이었다. 그러나 분홍머리 꼬마가 한 행위는 두 자루의 컴뱃나이프 비스무리한 물체를 양손에 거머쥐는 일이다.
내가 봤을때 저 꼬마는 도망쳐야할 쪽이다. 지금까지 죽어갔던 사람들에 비해 훨씬 외소하며 약해보였다. 살짝만 쳐도 깨진 유리마냥 가루가 되어 흩어져버릴 것만 같았다.
"어라?"
나는 저 꼬마가 도망치길 바라는 건가? 지금까지 죽어가던 사람들에겐 아무런 감정도 안느꼈으면서?
자신에게 의문을 던지는 중 다시 한번 귀를 괴롭히는 파공성이 울려퍼지고서야 좀 전에 날아온 빛 무리가 저 꼬마의 작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름답다.
마치 꽃잎이 떨어지는 듯한 모양새로 단검과 날아다니며 괴물들을 유린한다. 사람을 유린하던 괴물들은 그 사람들보다 약해보였던 꼬마에게 유린당하며 하나, 둘 쓰러져갔다.
뭐지? 이 감정은.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말이야...
"찢어버리고 싶어!"
정신을 차리니 내 오른손에는 뭔가 까무잡잡하고 거대한 무언가가 튀어나온 상태였고 그 오른손을 공중에 뜬 단검 두 자루가 불꽃을 일으키며 밀어내고 있었다.
"왜 날 거부하지?"
"생존자...?"
"왜 날 밀어내냐고!"
감정이 격양돼자 내 오른손은 더 더욱 강렬하고 검게 타오르며 상대를 향해 고백하듯 다가갔다.
"그래... 너는 할 수 있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을 내!"
내 오른손을 응원하며 앞으로 나아가자 꼬마는 아까와 달리 당황한 기색으로 뒷걸음질을 친다. 괴물들을 유린할때의 기세와 다르다.
"좀 더! 조금 더 빛나봐! 어서! 아까처럼 유려하고! 화려하게 춤을 춰! 어서!"
재촉하듯 손을 휘둘러 단검을 쳐내고 높게 들어올렸다. 이 순간 나는 이 꼬마를 화려하게 찢을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있었는데...
"어라?"
쳐냈던 단검은 회전하며 멋지게 내 품을 파고들었고 마치 뱃 속에서 놀이기구가 입에서부터 튀어나올 것 같은 격통이 몸을 지배해주었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캬하하하하하! 재밌어! 잘은 모르겠지만 재밌다!"
뭔가에 취한듯 삐뚤어져가는 시야가 더 더욱 즐겁다.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는 주제에 여유있는 척하려는 내 모습이 마치 수줍어하는 소년 같아서 너무나도 즐거웠다.
"아냐, 잠깐. 난 소년이 맞아. 신강고등학교 2학년 3반 7번이잖아?"
마치 게임 속의 캐릭터를 컨트롤하던 내 정신은 어느새 지금이 집에 돌아갈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왔다.
"왜 그런데 주저앉아 있어? 흰 치마에 흙이 묻으면 이상하잖아?"
어느새 나타난 분홍머리에 자그마한 리본을 걸친 여자아이는 어째서인지 벌벌 떨며 내 배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 이거 네 물건이야? 미안, 미안. 주인이 있는 물건을 집에 가져갈 뻔했네. 이게 절도죄인가? 하핫."
기분 좋게 웃으며 두 자루의 단검을 힘있게 뽑아내자 굉장히 신기하게 생긴 살점들이 딸려나온다. 둥글고 색도 질감도 특이한게 이걸 보고 사람들은 대장이라고 하던가?
"뭐처럼이니 내 내장은 서비스로 주도록 할게."
호감있던 여자아이에게 내장을 꺼내 줘버렸더니 왠지모르게 뿌듯하다. 다음엔 고백이라도 해볼까.
"어라? 내가 왜 여기에 있었더라?"
오른손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려 했지만 시계는 온데간데도 없고 팔은 먹물에 넣었다 뺀것마냥 완전히 어둠 그 자체였다.
"떨어뜨렸나?"
어쩔 수 없지. 일단 집에 가자.
"그럼 안녕. 예쁜이. 다음에 또 봐."
만화책에서 본 것처럼 쿨하게 인사해주고 불타는 학교를 등지며 벗어났다.
이로써 내 호감도도 주가상승 했겠지?
+ + +
"다녀왔습니다."
흐음. 언제 리폼했었지? 깔끔쟁이인 내 부모가 이런 형태의 집을 용납할 것 같진 않은데.
천장은 내려앉아있고 방은 죄다 검은 화장품으로 화장이라도 한 것처럼 검은색이 곱게 발라져있다. 멀쩡하지 못한 물건보다 멀쩡한 물건부터 새어야 할 정도로 내 집은 엉망이었다.
"엄마! 아빠! 돼지야!"
하나뿐인 여동생까지 불러보았지만 아무도 답해오지 않는다. 또 나 빼고 어디 놀러갔나 보다.
"아?"
갑자기 목이 타기에 찻장에 컵을 집어들려는데 어째서인지 컵이 너무 작았다. 마치 동생이 5살때 샀던 어린이 셋트에서나 봤었던 노란 플라스틱 컵 같았다.
"뭐, 상관없지."
작든, 크든 물을 담을 수 있으면 된다. 그 생각으로 검지손가락과 엄지 손가락을 이용해 컵을 집어 정수기 쪽으로 옮겼으나 정수기가 없다.
"아, 참. 리폼했었지."
정수기를 어디로 옮겼더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싱크대에 고여있는 물을 적당히 걸러 마셨다. 약간 시큼한게 엄마는 설겆이도 안하고 놀러가신 것 같다.
가끔은 효도도 해드려야지. 그 생각으로 수세미를 찾아 손을 뻗었지만 애꿎은 접시만 잔뜩 깨져버렸다. 아무래도 내게 가사 재능은 없는게 확실하다.
물을 마시자는 목적은 달성했기에 거실로 나오자 반즘 무너진 천장이 거슬렸다. 그래서 오른손을 들어 발코니 쪽으로 치워놓자 아버지가 아끼던 소파가 찢어져있는게 눈에 들어온다.
누가 찢은지 모르겠지만 걸리면 훈계 정도로는 끝나지 않겠지. 내가 한게 아니니 신경쓸 필요는 없지만 아버지가 들어오시면 얼른 도망쳐야겠다.
일단 불똥은 튈테니까 말이야.
"어라?"
리모컨도 작아졌네. 어쩔 수 없이 왼손으로 리모컨을 잡자 리모컨이 다시 커졌다. 어쩌면 내 눈이 나빠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주변에 이상한 일도 많이 있었으니까.
아무튼 아버지가 소파위에서 하시던 자세 그대로 완성한채 TV를 켰다.
TV를 켜자 보이는 건 모노크롬의 행진이다. TV 요금을 미납했다고 들은 적은 없는데? 즐겨보는 채널인 17번과 34번은 말그대로 흑백이다. 아무래도 방송국에서 채널을 옮겨버린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재미없고 진부한 5번 채널을 켰더니 정말 재밌는 장면이 펼쳐졌다.
과자처럼 부숴지는 건물들과 아기자기하고 흉측하게 생긴 괴물들이 뛰어다니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게 정말로 잘만든 영화처럼 보였다.
개봉한다면 돈을 주고 봐도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리얼하다. 도망치는 사람을 온몸으로 덮쳐 들고 있는 뾰족한 무언가로 찢는 모습이 CG가 아니라 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착각마저 들 정도로 박진감이 넘친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오스카 상... 아니, 이 세상 통틀어서 받을 수 있는 상은 모두 줘도 아깝지 않다.
"어라?"
감동의 여운에 젖어있는데 왠 검은 자캣을 입은 내 또래 애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애들은 다짜고짜 내가 보고 있던 영화에 달려들어 무참히 괴물들을 해치운다.
"뭐지?"
갑자기 올라오는 불쾌감은 형용할 단어를 못 고를 정도다. 한편의 명화를 싸구려 히어로 특촬물로 만들어버리는 저 존재들은 너무 불쾌한 나머지...
"아, 이런."
정신을 차리자 내 손은 Tv를 쥐어 짜버린 뒤였다. 이건 정말로 빼도박도 못하겠구만. 어쩔 수 없이 'TV를 부숴서 죄송합니다'라고 TV에게 사과하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내 방에 들어서자 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집은 화려하게 리폼한 주제에 내 방만 멀쩡히 놔두시다니. 부모님의 보이지 않는 배려에 다시 한 번 감사하며 침대에 누웠다.
"어라?"
좀 찝찝하더니 배가 붉은 액체에 물들다못해 흥건했다. 비라도 내렸었나? 씻으려 일어나려 했지만 내 이불의 하드홀딩이 너무 강력해 몸을 일으킬 수가 없다.
고로 한 숨 자고 일어나서 씻자.
+ + +
"어라?"
분명히 침대의 온기 속에 묶여 아무것도 못 한채 꿈 속으로 항해하던 나였을 것이다. 분명 나는 멋들어지게 리폼된 나의 스윗한 집의, 쿨한 나의 방에, 봄 향기가 나는 이불 속에서 잠들어있었다.
...라고 생각했지만 어째서인지 내 몸은 외부라고 부를만한 곳에 존재했다. 어딘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왠지 짜증나는 전철의 투박한 바퀴소리가 귀를 찔렀다.
"짜증난다고!"
저 전철이 움직이는 것 자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참을 수 없게 된 나는 오른손을 들어 전철의 머리를 찍어버렸다. 신기한 일이지만 안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기관사는 온데간데도 없고 여전히 전철은 멈추지 않는다.
이런 걸 보고 유령열차라고들 하지. 무인전철이라는 점에서 가산점을 주고 싶어졌지만 내부 디자인은 살짝 낡았을 뿐. 절대로 유령전철처럼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지. 좀 도와주도록 할까?"
손을 들어 왼쪽, 오른쪽, 위, 아래로 휘두르며 전철칸을 나아갔다.
어제 봤었던 그 꼬마가 췄던 춤을 최대한 따라하며 움직였지만 묘하게 오른쪽으로 중심이 쏠려 간혹 시야가 빠르게 회전했다.
뭐, 그래도 손에 부딫혀 부서진 전철의 잔해가 마치 꽃잎처럼 휘날려줬기에 어제 봤던 광경을 보는 듯해 기분이 조금은 풀어졌다. 나도 사내자식 주제에 너무 감수성이 풍부해 탈이다.
끝 칸에 도달했을 쯤. 이제서야 전철은 멈춰섰다. 덕분에 귀도 아프지 않아 더 더욱 기분이 좋아지려던 찰나 밤벌레자식들이 **듯이 울어댄다.
"**... **! **! 시끄러워! 시끄럽다고!"
전철 바닥을 치며 벌레들에게 닥칠 것을 종용했지만 더 더욱 요란하게 울어댄다.
"하아, 하아..."
눈 앞이 붉게 물들어간다.
"붉어? 어째서? 어라?"
일순 손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과 함께 눈 앞이 카메라 셔터가 눌러진 것처럼 잠깐 안보였다가 다시 보였다. 그러자 주변일대가 불타고 있는게 아닌가?
"...아름다워."
그 불꽃들이 전철잔해와 춤을 추는 광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벌레들도 이 광경에 감동한 것인지 울지 않는게 더 더욱 마음에 든다.
철컥.
트리거의 격철이 당겨지는 소리. 분명 차원종과 대적하던 군인들이 쓰던 총에서나 나던 소리가 내 앞에서 울려퍼졌다. 근처에 차원종이라도 나타난 걸까?
"...윤해창?"
격철의 소음을 들고 있던 물체가 낸 소음은 상당히 그리워하던 목소리다.
"어라? 내가 그리워했던가?"
"저게 슬비가 만났다는 생존자였어?"
"이 목소리는 이세하랑 선배인가? 이야, 이런데서 만나다니 우연인걸?"
아아, 저들은 나와 같은 학교, 같은 반 급우이자 한명은 같은 부에서 활약까지 했던 애들이었다. 같은 반인데 선배라고 부르는 이유는 내가 검으로 단 한번도 그녀를 이겨본적이 없기 떄문이다.
그래서 언젠가 이기게 된다면 그땐 당당히 이름으로 부를 것이라고 약속까지 했지. 이제보니 나도 꽤나 로맨티스트잖아?
"같은 반 애잖아. 이름 정도는 스스로 기억해내라구."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야. 이래뵈도 지금까지 클리어한 게임의 캐릭터 이름은 모두 외우고 있으니까 말야."
"어휴... 자랑이다 정말."
잘은 모르겠지만 어째서인지 저들은 싸구려 특촬 히어로물에서나 나올 법한 옷을 입고서 나와 대치하고 있었다.
"일단은 차원종은 아니니 싸우지 않아도 되겠지?"
"은근슬쩍 그거 꺼내들지마. 아직 일 안끝났어."
"왜? 주변에 탐지되는 적도 없는 것 같은데."
"하아... 리더라도 있으면 던져버리라고 하는건데. 아니지, 직접 던져볼까?"
내가 보이지 않는 듯한 반응에 약간의 짜증이 느껴졌지만 오랜만에 아는 애들이기에 한 번 참았다.
"아, 어라?"
왜 참아야하지? 무엇을 참아야 하더라? 머리를 굴려 뭘 참으려 했는지 떠올려봤지만 역시 생각나지 않는다.
"어이 윤창."
"윤창?"
"해창은 저번달에 했던 게임 주인공이랑 이름이 겹쳐서 말이야. 그러니까 윤창이라고 해도 되지?"
"뭐... 네가 좋다면야."
"미안한데 잠시 동행해줄 수 있을까? 얌전히 따라와준다면 pc방에 들렸다 가줄수도 있어."
"야, 그건 니가 가고 싶은 것 뿐이잖아!"
"에이, 요즘 애들은 pc방을 미끼로 던지면 백이면 백. 다 넘어온다니까?"
"그런거에 넘어가는 건 너뿐이거든? 게다가 돈은 누가 낼건데? 너 돈 안들고 다니잖아."
"그, 그 점은 어떻게 안될까? 나중에 작전에서 사용했다고 하면..."
"총알 맛좀 볼래?"
"그거야! 그 총알을 팔면 돈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내 손은 목적했던 바를 이루지 못한채 묘하게 반짝이는 물체를 터뜨리는 것으로 할일을 끝냈다. 느낌으로 봤을때 마치 TV를 손으로 부쉈을때와 유사하달까. 안좋은 추억거리가 올라왔잖아.
"너희들 부모님이 사람을 앞에 두고 무시하면 안된다고 안가르쳐줬냐?"
"미안한 이야기지만 적과 소통을 하게 된 건 마천루 이후로 처음인데다 대화라면 거의다 슬비가 도맡아서 했거든."
이들에게서 여전히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자체만으로 날 무시하는 것 같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잖아.
"뭘 참았지? 왜? 어라?"
또 다시 눈 앞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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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 보름달만 뜬지 4일이 지났다. 무엇때문에 저 달이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지 못하는가? 그것에 대해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다.
설령 차원전쟁 전이라고 해도 가설만 넘칠 뿐 해결됐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알겠다.
적어도 확실한 건 지금 이 신서울에 어떤 이변이 일렁이고 있다는 점과 저번 출동에서 넘어져 까진 내 무릎에 대한 보험처리가 수리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이다.
"아저씨. 누나는요?"
"아저씨라고 하지 말라고 했을텐데?"
"그럼 오빠?"
"...슬비는 순식간에 보험처리가 되서 지금은 병원에서 자고 있을거다."
늘어진 썬그라스의 다리가 말해온다. 자신의 틀을 바꿔**다고. 하지만 이 썬그라스의 틀을 바꿀 돈이면 트라이쉴드 2개를 더 살 수 있다. 그 생각만으로도 이 손이 벌벌 떨리는 나 자신이 안타깝다.
"그럼 병문안가요."
"안돼. 지금은 작전중이다. 작전이 종료되면 가도록."
"가요! 지금 가요!"
쥐어박고 싶다. 이 꼬마의 머리를 한대 쥐어박고 싶지만 박았다가 되려 내 손이 다치면 보험처리가 될지도 걱정이기에 한번 더 참아냈다.
"나도 마음 같아서 지금 당장이라도 이슬비 곁에 있는 난로에 몸을 녹이며 그 병실 이불 안에 몸을 넣은채 나도 백의의 천사들에게 간호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보다 크지만... 저 안으로 들어간 두 명의 꼬맹이들이 다치면 내 봉급이 삭감될지도 모른단 말이다."
"어려워요. 잘 모르겠는데요? 이제 병문안 가는거죠?"
외국인이라는 특성을 살려 자기가 불리할땐 일부러 멍청한 척하는 꼬마다. 자신의 귀여운 외모를 이용해 남을 이용하는 법을 아는 이 놈의 미래가... 상당히 무섭다. 그래, 마치 글루코사민 가격과 맞먹는 두려움이라고 해둘까.
"그러고보니 멀티비타민더블플렉스가 다 떨어졌군. 체겸산이 남아있으려나."
"어?"
"뭐냐 꼬마. 병문안이라면 아까도 말했지만 어른의 사정이라는 놈 때문에..."
자신의 키만큼이나 큰 창을 이고 다니는 꼬마. 미스틸테인은 갑자기 돌진창 자세를 취하더니 총알처럼 튀어나가버렸다.
"하여간 요즘 꼬맹이들은 혈기왕성하다니까. 반쯤 나눠받고 싶을 정도군."
주변을 조용히 살핀 나는 멋들어지게 달빛을 받으며 주머니 속에 있던 알약통을 입에 털어넣고 옥상 계단을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부디... 내가 내려가기 전까지 일이 끝나있길 빌겠다."
+ + +
안그래도 너덜너덜했던 전철의 외벽을 뚫고 여자** 보이는 듯한 아이가 나타났다. 그 아이는 힘조절에 실패했는지 그대로 전철바닥까지 자신만큼이나 거대한 창을 꽂고는 반대쪽 전철벽에 튕겨져 부딫혔다.
"아야야야..."
"미스티?"
"위험해요!"
일어난 소년은 다짜고짜 서유리를 덮쳐서 쓰러뜨렸다. 그 모습에 잘됐다는 듯 새로운 게임기를 반대편 주머니에서 꺼내들던 세하는 눈 앞에 펼쳐지는 붉은 마방진에 또 다시 게임기를 놓쳐버렸다.
"이런!?"
반사적으로 얼굴까지 쳐든 검에 힘에 파장이 닿으며 폭발했다. 세하는 그 힘이 자신에게 집중된 것이 아닌 거대하고 광범위하게 일어난 폭발임을 깨닫고 실소했다.
만약 자신 혼자에게 집중되었다면 막을 수 있었을까? 차라리 베는 편이 더 생존률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검을 고쳐쥐고서 정자세를 취했다.
"크하아..."
윤해창.
2-C 반의 급우이자 검도부 부부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남자. 깔끔한 편이며 내려오지도 않는 안경을 억지로 올려쓰는 버릇이 있다.
그 이상의 정보는 세하의 머리 속에 들어있지 않았다. 단지 스쳐지나가던 인연중 하나라고 여겼었다.
"스쳐지나가기엔 너무 강렬해서 이젠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겠어."
진지하게 정신을 가다듬은 세하는 앞 무릎을 구부리며 눈 앞의 먼지에서 상대가 보이기만을 기다렸다.
"..."
자욱하게 일던 먼지 속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덩어리를 본 순간 튕겨나가듯 전철 바닥을 박차 그대로 하단에서 상단을 향해 직각으로 대상을 베려했으나 단단한 뭔가에 걸린 듯 불꽃이 일었다.
"사람 가죽이라는게 이렇게까지 단단해지는거였나? 이럴 줄 알았으면 과학시간에는 연금술사의 아틀리에 같은 좀 더 과학적인 게임을 했어야 했는데..."
세하는 쓰게 웃었다. 반대편에서 날아드는 주먹을 막을 수단이 없음을 직감하고서 유언삼아 농담을 던진 것이다.
"에잇!"
어금니를 악문 세하의 얼굴 옆으로 거대한 창이 지나치며 반대편의 주먹을 쳐냈다.
"어시 감사!"
믿지도 않았던 창에 감격하며 자신과 대치중인 오른팔을 스치듯 밀어베며 그대로 녀석의 몸을 베어버렸다.
베는 느낌은 분명 존재했지만 이것은 절대로 사람을 벤 듯한 느낌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쇠석상을 긋는 듯한 감각이다.
"말렉만큼은 아니더라도 이건 사람이라고 볼 수 없겠는데? 어쩌지?"
"어쩌긴 구해야지."
"아아, 10시에 이벤트 있는데."
"너어?"
검에 기대 몸을 일으킨 유리는 세하에게 진심으로 화가 난듯 언성을 높혔다.
"아... 미연시는 하지 말걸."
괜히 화를 내는 유리가 귀엽게 느껴진 세하는 마지못해 목을 가다듬고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녀석의 두 팔을 못 쓰게 막을테니 미스티랑 둘이서 어떻게 해봐."
"그게 작전?"
"그래! 이른바 매즈형 세하다!"
세하는 당당히 외치며 앞에 있는 거대한 두 팔을 그었다. 그제서야 해창 또한 세하를 인지하고 거대한 두팔을 부딫혀내는데 처음과 달리 세하는 침착하게 두 팔을 밀어내며 아슬아슬하게 버텨냈다.
"어서해!"
"미스티?"
"스피어군은 돌아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알았어. 그럼 상황봐서 도와줘!"
"응! 아니, 넵!"
자신 있게 답하는 미스티를 뒤로한 유리는 핸드건으로 세하가 밀어친 오른팔을 쏘고는 그대로 해창의 등 뒤로 돌아갔다.
"간다아!"
그리고 있는 힘껏 장검을 이용해 그 등을 벤다. 힘이 어느 정도 양팔에 집중되어있는지 등에는 타격이 들어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붉은 선이 드리웠다.
"칼등으로 3번 정도 있는 힘껏 내려치면 될 것 같아!"
"어, 어서해줘! 이러다가 조이스틱 누를 힘마저 다 써버릴 것 같다구!"
유리는 순간, 좀 더 기다릴까 싶은 충동을 받았지만 장난칠때가 아님을 인정하고 있는 힘껏 그 등을 내려쳤다.
"크아아악!"
"모두 엎드려요!"
미스티의 말과 함께 붉은 마방진이 올라왔고 이내 주변은 또 다시 화려하게 연쇄폭발을 시작했다.
"이 비겁한 놈들! 선배! 당신마저!"
"나, 나마저?"
"크아아아악!"
거대한 두 팔은 온데간데도 없어진 윤해창은 단숨에 뛰어올라 그대로 밤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목표 로스트. 임무 실패?"
"으아아. 지쳤어."
지쳤다면서 용캐 게임기를 꺼내든다. 유리는 핀잔을 주고 싶었지만 누구보다 고생한게 세하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차마 뭐라고 하진 않았다.
누워있는 세하보다는 당장 사라진 윤해창이 남긴 말이 마음에 걸렸기에 그 애가 사라진 방향을 잠시 주시하다가 미스티를 일으켰다.
"자자, 철수하자. 철수. 아, 그리고 목욕탕 갈사람."
"저요!"
"난 패스."
"무슨 소리. 다같이 우정을 나눠야지!"
"우정은 무슨. 은비도 없으니 너는 나홀로 목욕탕에를 찍을텐데..."
"그거라면 괜찮다. 너희가 내는 거라면 나도 갈테니까."
부서진 전철의 문이 움직이더니 백발백피의 남성이 쿨럭거리며 자신의 입을 닦았다. 먼지투성이인 자신들보다 깨끗한 주제에 누구보다 피곤해보이는게 흠이라면 흠이라고 할까.
"도대체 어디 숨어있다 나온거에요. 형."
"형도 금지다."
"그럼 오빠?"
"...그 패턴 지겹지 않나?"
몇 번을 더 쿨럭이던 제이는 모두에게 항변하듯 플라스틱 양 3병과 유리로 된 약 2병을 꺼내 입으로 털어넣은 뒤 우적우적 씹어 넘기고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나 해서 묻는거지만 다친사람."
제이의 맥없는 말에 재빨리 손을 든 것은 세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