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레인지 어태커 프롤로그 1

얼음대갈 2014-12-14 0

되도록이면 눈에 띄지 않고, 간결하고 또한 평범하게 남에게 보이는 것.
이게 지금의 내 신조이자 신념이다. 언뜻 보면 간단해보이는 말같지만, 실제로 남들의 눈에 띄지 않고, 존재감을 옅게 바꾸는 행위는 무척이나 어렵다. 특히 나같은 녀석일 수록 더욱 그렇다. 본능은 눈에 띄고 싶어서 안달났지만, 신념이 겨우 억누르는게 내 상태이다. 날때부터 거의 모든 운동, 또는 공부는 남들보다 뛰어나고 우수하게 잘했으며 예의범절 바르고, 품행도 뛰어났다.
소위말해, 모든 엄마가 바라는 이상적인 아들이었다. 조금 가식적인 면만 빼면 정말 우수한 아이라고 나 자산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기묘한 방향으로 가치관이 성립되어갔다. 결코 틀린 방향으로 성립되어가진 않았지만, 잘 정비된 길에서 조금 어긋난듯한 방식으로 성립되어갔다. 그때부터였다. 우수하고,참한 아이임을 스스로 포기한 때가. 신기하게도 포기하기전에는 엄청난 압박감과 묘한 긴장감이 있었는데 포기하고 나니 거짓말처럼 불안한 감정들이 사라졌다.
그때 난 느꼈다.
품행 바른 아이로 커서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는것보단 나 자신을 위해 행동하자고.
난 그때까지 쌓아올린 자아를 포기하고 또 다른 나라는 자아를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무론 잘못된 길로 접어들어 비행청소년이 되거나 하는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단지, 예전보다 말수가 줄어들고, 공부나 운동 모두 평범해졌으며, 예의범절이 야무지지도 않고, 품행도 뛰어나지 않아졌다.
어디에서나 볼 법한 아이. 그런 인격체로 나는 변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내가 전보다 뒤떨어진다고 걱정이 되진 않는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예전의 우수한 아이로 돌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옛날의 나로 돌아갈일은 절대 없을것이다. 나는 지금의 나로 만족하기 때문에. 그래, 극히 평범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나로 만족하기 때문에.

초여름의 햇살이 내리쬐는 무더운 하교길.
나는 학교수업을 끝마치고 교문밖으로 나왔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마치 벌때같은 하교풍경이 보였다.
무더운 날씨 때문에 조금 일찍 하복을 입은 학생들이 여러명씩 무리를 지어 잡담을 나누면서 하교를 하고있다.
정말, 쓸데 없는 낭비이다. 혼자서 하교하면 남들에게 신경쓸 에너지가 절약이 되는데 말이다.
여느때와 다름없는 하교풍경. 그와 마찬가지로 나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혼자 터덜터덜 인도를 걸어나갔다.
좁은 인도에 여러명의 사람들이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
평범한 친사이 처럼 보이는 녀석들, 아니면 연인, 또 아니면 나처럼 혼자 하교하는 학생들.
그 옆모습을 슬쩍 흘깃거렸다. 저들하고 나와 관계점은 전혀없다.
저들에겐 저들 나름의 만족스러운 인생이 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이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좋아하는 노래를 튼뒤 사방의 소리가 차단된 것을 느끼며 길을 걸었다.
붉게 물든 보도블럭을 밟으며 다소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외톨이는 항상 혼자 걷기 때문에 걸음이 빠른게 특징이다.
자조의 의미를 담은 웃음을 짓곤 무더운 햇살을 통과해나갔다.

"도착했다..."
높이 솟아오른 마치 전송탑같은 건물을 올려다 보았다.
건축에 꽤나 공을 들였는지, 외관상으로 봐도 세련돼보이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당연하다. 이 백화점은 유명한 회사에서 야심차게 기획해 건설한 백화점이기 때문이다.
층수가 엄청나게 많아 건물내에 아쿠아리움, 워터파크, 옥상에는 놀이공원과 운동장이 있다.
그리고 그 외에는 다양한 상품들을 판매하는 매장들이 있다. 평소같았으면 이렇게 인파가 붐비는 곳은 오지 않았을테지만,
오늘은 어떻게해서든지 사고싶은 물품이 있어서 학교를 마치고 왔다.
휘황찬란한 자태를 뽐내는 백화점을 올려다봤다. 여름햇빛이 백화점 건물에 반사돼 내 눈을 직격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건물 입구를 바라봤다.
줄을 서야할 정도는 아니지만, 많다고 할 정도의 사람들이 입구를 드나들고 있었다.
어쩐지 한숨이 쉬고 싶어지는 광경이었다. 한숨을 내쉬고 입구에 다달랐다.
사람들에게 치이며 인파를 스쳐지나와 건물내에 입성하자 차가운 에어콘 공기가 나를 반겼다.
사람들이 많은 점은 달갑지 않지만, 이 에어콘 바람만큼은 무엇보다도 마음에 든다.
살짝 심호흡을 해서 폐를 시원한 공기로 가득채웠다.
흠씬 폐에 공기를 집어넣고 숨을 내쉬었다.
백화점 매장안에도 사람들로 가득차 여기저기 인파가 붐볐다.
이 정도의 인파라면 거의 찜질방이나 다름없는 온도가 되어버리겠지만, 여러곳에 설치된 에어콘이 공기를 냉각시키고 있는 덕분에 땀을 식힐 수가 있었다.
반짝반짝하게 잘 닦인 타일을 밟아가며 엘리베이터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갈려는 층은 3층. 계단으로 갈 수도 있지만, 이렇게 더운 날씨에 계단을 오르며 땀을 흘리긴 싫다.
엘리베이터는 내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기다려야 하지만, 어찌됐든 한줌의 재가 되는것보단 나았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다. 7층에 있었던 엘리베이터가 느릿느릿하게 사람을 태우고 점점 내려왔다.
에어콘 바람으로 땀을 식히며 표시된 숫자가 내려가는것을 지켜봤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 문을 열고는 여러명의 사람들을 배출시켰다.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 나와 같은 학생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미소를 지은채 내 옆을 지나갔다.
나는 무표정을 유지한 채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나 말고도 타는 사람이 있을줄 알았지만, 운이 좋았던건지 아무도 탑승하지 않았다.
기묘한 안도감에 벽면에 설치된 거울을 바라봤다.
언제봐도 기분나쁜 내 얼굴이 비추어졌다.
가면을 쓴듯한 표정은 항상 무표정이고, 인상은 거미라도 씹어먹은듯 잔뜩 구겨져 있다.
눈밑으로 내려온 진한 다크서클이 얼굴의 균형을 더욱 깎아먹었다.
이게 내 모습이다. 사람들에게 비추어지는 내 겉모습. 겉모습이 이렇다고 해서 알맹이가 다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언제나 기분나쁜 얼굴과 어두운 심기를 가진 나. 씁슬한 한숨을 내쉬고 눈두덩이를 매만졌다.
어제도 밤늦게 잠들었기 때문에 체력이 부족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백화점이고 뭐고 당장 집으로 돌아가서 숙면을 취하고 싶었다.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바라보는것을 그만두고 벽에 기대어 구석에 설치된 방법카메라를 바라보았다.
검은 유리안에 이리저리 렌즈가 움직이며 내 기분나쁜 모습을 그대로 담는다고 생각하니 속이 울렁거렸다.
또 다시 느껴져 오는 시선의 압박감. 이러니깐 사람이 많은 곳은 오고싶지 않은거다.
어쩐지 엘리베이터가 층을 올라가는 속도가 더딘것같았다.
문득 고개를 올려다보니 숫자는 6층을 가리키고 있었다.
곧 도착하기 때문에 벽에서 몸을 때고 문앞에 섰다. 목적지에 도달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나는 또 다시 우글거리는 인파를 보며 한숨을 쉬고나서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살 물건이 있어서이다.
그리 비싼것도 아니고, 갖고 다닌기 힘든것도 아니다.
나는 지금 백화점 구석코너에 위치한 서점에 있다.
여러개의 책장에 나열된 책들을 훑어봤다. 몇개의 책의 제목은 어딘가에서 들어본적이 있는 책들이었다.
책들을 살펴 보다가 문득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러면 안되지. 뭣때문에 이곳까지 왔는데. 한눈을 팔 수는 없지.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빠져나와 소설책들이 있는 곳에 접어들었다.
진열장에 여러 권의 소설책들이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하나의 책을 집어들었다.
이번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라이트노벨이다.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전개가 특징인 작품이다.
처음에 이 책을 접하고 나서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음 권의 내용이 궁금해져서 안절부절하다가 결국 큰맘먹고 사러오기로 했다. 수중에 있는 돈이 많지 않아서 고민되었지만, 재미를 위해서라면 그정도 지출은 괜찮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책 뒷면에 장식된 글머리를 대충 읽어보기만했는데도 다음 내용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거금 7000원을 들여가며 사는 보람이 있을거라고 확신했다.
카운터를 바라보니 점원이 무언가 생각에 빠진듯 멀뚱히 서있었다.
나는 계산을 하러가기 위해 카운터로 향했다.
그 순간 지진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강한 진동이 건물을 덮쳤다.
나는 꼴사납게도 그 진동에 견디지 못하고, 들고있던 책을 놓치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찍었다.
진열장에 놓여진 책들이 흔들리다가 이윽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점뿐만이 아니라 다른 매장도 마찬가지인지 여기저기서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가났다.
지진이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진동은 멈춰들지 않고 사정없이 백화점을 흔들었다. 책장들이 쓰러지고 한순간에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안전한 장소로 대피하기위해 일어섰다.
이 장소에 계속 앉아만 있다가는 쓰러지는 책장에 깔려 죽을지도 모른다.
일어서서 달려나갈려고 한 순간. 진동이 갑자기 멈췄다.
진동이 멈춘뒤 사태를 파악하기도 전에 조명기구들이 점멸하더니 사방이 암흑으로 둘러쌓였다.
지진으로 인해 전력장치에 이상이 가서 정전이 됐나 보다.
사방에 껌껌해 아무것도 안보였다. 나는 혼란스러워서 그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다른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가만히 있는듯 주변이 고요와 정적으로 가득했다.
"아. 그러고보니 휴대폰..."
문뜩 빛을 밝힐 도구가 생각이나서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안에 내장된 손전등기능을 키고 전방을 비추었다. 떨어진 책들과 바닥이 눈에 띄었다.
책들을 밟지 않게 조심하며 나는 조금씩 앞으로 걸어나갔다.
서점에서 빠져나와 휴대전화로 먼곳을 비추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붐비던 사람들이 어디론가 한꺼번에 사라진듯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해 고개를 갸웃거리고 여러곳을 비추었다.
이윽고 바닥을 비추자 나타난광경에 나는 한발짝 뒤로 물러났다.
여러명의 사람들이 전부 다 의식을 잃은듯 눈을 감은채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서둘러 다른곳을 비춰보자 그 많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전부 다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허둥지둥거리며 누워있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마치 시체같은 모습이라 불안해서 맥박을 확인할려고 했지만, 규칙적으로 들썩이는 가슴을 보며 안심했다.
죽은게 아니다. 단지 잠에 빠졌을 뿐이다. 하지만,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단시간에 잠에 빠졌는지 그 점이 의문이다.
상상이 가는건 지진의 여파로 쓰러졌다는 가설이지만, 역시 아무리 그래도 지진으로 사람들이 잠에 빠질리는 없다.
일단, 지금 깨어있는 사람은 나말고는 없는것 같다. 마음같아선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지만, 이 많은 사람들을 못본채 가기에는 불안했다. 조명시설이 나간걸로 봐선 이 건물에 들어오는 전기가 어딘가에서 끊어진것 같다.
그 증거로 아까전까지만해도 시원했던 공기가 지금은 뜨겁고 텁텁해졌다.
이 상황이라면 엘리베이터 전원도 안들어오겠지. 나는 휴대전화를 조작해서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뿐더러, 이 많은 사람이 여기에 방치되어있다가는 자칫하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다시한번 더 지진이 온다면 여기있는 사람들중 부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게 판단해서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내 기대를 배반하듯 수신권지역이 아니라며 통화가 되지않았다.
분명 여긴 백화점 안이다.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곳이다. 게다가 도심지 한 가운데에 지어졌는데 수신권 밖이라니 의문밖에 들지않았다. 혹시몰라 다시 한번 더 전화를 걸어봤지만, 평탄한 어조의 음성이 다시 아까전 내용을 읊었다.
휴대전화를 귀에서 때고 손전등 기능을 다시 켰다. 경찰에 연락이 안되는 이상 내가 이 사람들을 도와줄 방법은 없다.
자력으로 나가길 빌어보는 수밖에. 쓰러져있는 사람을 깨우기 위해 마구 흔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절이라도 한듯 잠에서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혹시 몰라 다른사람도 깨울려고 해봤지만, 역시 깨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정말 어쩔 수가 없다. 한 명씩 부축해서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는 방법은 있지만, 그런 번거롭고 수거스러운 노력을 할 만큼 나는 착해빠진 인간이 아니다. 조금 안됐긴하지만, 어쩌겠나. 나로써는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써보았다.
미안하지만, 혼자서 백화점에서 빠져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책은 다음기회로 미루자고 생각하고 비상용 계단이 있는곳으로 갔다.
쓰러져있는 사람들을 밟지 않게 조심하며 비상용 계단앞에 왔다. 철제 문을 열고 앞을 비추었다.
암흑으로 가득한 계단을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며 한 발짝씩 나아갔다.
보통 이런 큰 백화점이면 정전이 됐을 상황을 대비해서 예비전력을 준비해두었겠지만,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궁금한 점이 가득하지만, 어쨌든 내몸이 무사하다면 그런 의문들 따위 어찌돼도 상관없다.
몇계단을 내려와 한 계층을 내려온것을 확인하고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무미건조한 발걸음이 울렸다. 전방은 암흑으로 가득찼다. 암흑만이 가득한 공간에 규칙적인 내 발걸음소리가 울렸다.
그에 맞춰 전방의 검정색 암흑이 울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느끼는게 아니고, 정말로 울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이상하게도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빛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점점 머리가 침식당하는 기분이들어서 걸음을 멈추자 돌연, 극심한 두통이 머리속을 강타했다.
마치 뇌를 직접 쥐고 흔드는듯한 고통에 나는 정신을 잃고 계단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2024-10-24 22:20:5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