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와 호감도 안경(4)

사일로시빈 2015-03-21 10

3화 : 봄봄은 점순이의 계절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2008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원종을 방송으로 처음 접한다. 그들은 카메라에 희석되어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도시를 활보한다.

영화에서만 보던 3D그래픽을 잘 쌓아올린 괴물처럼 보여서, 저게 특수효과의 기술력을 입은 배우는 아닐까 의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실존하며, 손쉽게 사람을 두 쪽으로 찢고, 머리를 부수고, 내장을 밟고 건물을 무너뜨린다.


 나는 비록 고등학생이지만 직업이 있다.

그런 차원종을 처리하는 일이다. 무척 비현실적이며, 오히려 게임과도 같은 이야기다.


 놈들은 가까이서 대하면 실리콘과 고무를 섞은듯한 무기질적인 악취가 난다.

눈은 혼탁한 렌즈처럼 보이고, 털 하나 없이 매끈한 피부는 녹아내린 고무처럼 보이는 것이다.

나보다 2배는 키가 큰 놈이 내 머리통만한 철퇴를 휘두르고, 금속내음이 코끝을 스친다.

이건 방송이 아니다. 죽음이 인격을 가진 신이라면, 이 순간 내 등 뒤에 서있을 것이 틀림없다.


 트룹형 차원종은 움직임이 둔해서 오히려 처리하기가 편하다.

동작 하나하나가 크므로 첫번째 공격 후 두번째로 휘두르는 것에 빈틈이 있다.

안쪽으로 파고들어 어깨죽지에 검을 밀어넣었다. 놈이 무기를 쥐지않은 손으로 내 목을 움켜쥐려 하지만, 잡힐 일은 없다.

검끝에 모인 위상력이 파열하며 팔 한쪽이 완전히 흩어져나가고, 뒤뚱거리는 놈을 발로 차고 뒤로 도약해 다른 공격을 피한다.

기이하게도 차원종들은 시체가 남지 않았다.

무언가에 짓눌리듯 찌그러져 세포 하나하나가 타들어가면, 마침내는 빈 공간만이 남았다.


섬뜩한 기운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응축된 위상력의 탄환이 어깨를 넘어 이쪽을 향하던 스케빈저의 미간에 명중했다.

우리 팀 내에서 총을 사용하는 것은 유리 한 명뿐이다.


"아직 안 끝났으니까 정신차려 세하야!"

"집에 가고싶다-"

"오, 저기 큰 놈이 있다! 분명 실적이 왕창 올라가겠지!"

"마나나폰. 이름 좀 외워라."

"이거나 먹어라 바나나콘!"

"방금 전에 말해줬는데 틀렸어?!"


 주먹구구식으로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나와 달리 유리는 확실히 솜씨가 좋았다. 날렵하고, 날카롭다.

검도로 전국을 제패한다며 떠들던 녀석치고는 싸우는 스타일이 무척이나 자유분방하다.

하지만 가끔 의미없이 검이나 총을 돌리는 걸 보면 영화를 보면서 겉멋만 든 것 같다.

비스듬히 구부러진 도신이 놈의 오금을 긋고는 주저앉는 놈 위로 훌쩍 뛰어올라선 아래를 향해 총을 박아넣는다.

그리고는 구멍이 난 놈이 서서히 쓰러지면, 머리를 밟은 채 부드럽게 땅에 착지하는 것이다.

긴 머리를 흩뿌리면서 도신을 어깨에 걸치는 그 모습이, 전장에서 병사들과 함께 한다는 승리의 여신처럼 보였다.

예쁘다란 말보다는 보다 고귀한, 아름다운 실루엣이 폐허가 된 거리와 맞물려 이질적으로 보였다.


 물론 마무리가 어설퍼서, 늘 내가 뒤를 봐줘야했다.

마나나폰은 놈들이 사용하는 일종의 공성병기로, 스케빈저들이 근육을 전기로 강제조작해 조종하는 노예 계급이라고 들었다.

말하자면 놈들은 반드시 스케빈저와 짝을 이루며, 스케빈저는 가장 많은 수가 가장 열정적으로 인간을 사냥하는 타입이다.

시체가 불타 사라지며 남은 파편을 주우려고 고개를 숙이는 유리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달려드는 스케빈저의 미간에 칼을 박았다.

유리가 물음표를 띄우며 죽어가는 놈을 보았다.


"음?"

"좀 뒤 좀 살피면서 해라."

"왜? 세하가 늘 구해주잖아. 본좌의 등은 대협에게 맡기겠소!"

"요즘도 무협소설 보고 그러냐 너."


 또 덧니를 드러내며 해맑게 웃는다. 이렇게 시원하게 웃을 때는 머리를 헝끌어뜨리며 괴롭혀주고 싶다.


"내가 매번 널 구해줄순 없다고."

"그때는 내가 세하를 구해줄께!"

"됐다.... 너 뭐 줍냐?"

"캐롤 언니가 얘네 각질 좀 주워달랬어. 이걸 분석해서 어쩌구저쩌구를 만든다는데?"

"주, 주어가 완전히 생략됐잖아."


 녀석의 등이 젖은 것이 느껴진다. 무게를 전부 실어 기대기에 넘어질 뻔했다.

그럼에도 아무렇지도 않은듯 목을 젖히며 해맑게 말한다.


"이따가 아이스크림 먹자 세하야."

"내가 사냐?"

"아냐?"

"아닌데."

"치사해."

"네가 더 치사해."

"왜! 내가 저번에 계란말이도 해줬잖아!"

".....엉? 그거 설마 계란말이었냐?"

"아하하하하! 이리 와봐. 한 대만 때리게."


 웃으며 주먹을 날려대는 녀석을 피하고 있는데, 둘 사이로 스케빈저가 하나 날아갔다.

어째 가슴팍에 나이프가 꽂혔다 싶었더니, 아니나다를까 벽에 꽂히자마자 가스통이 터지듯 화염이 파열한다.

아연하게 불길을 바라보자니 사뿐사뿐 슬비가 걸어왔다.


"아직 임무 안 끝났는데 둘이서 뭘 노닥거리고 있니?"

"슬비야! 세하한테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그러자!"

"그래? 기왕이면 우유 아이스크림이 좋겠어."

"당연하단듯이 주문하지 마라."


 따지자니 슬비가 손목을 들어 살짝 안쪽으로 휘젓는다.

그와 동시에 등 뒤로 불길에 감싸인 상태였던 나이프가 직구로 귓가를 스치며 손으로 빨려들어갔다.

아직 손에 잔류한 창백한 위상력을 털어내며 슬비가 슬쩍 눈을 흘긴다.


"너한테 사달라고 한적 없어. 자의식 과잉 아니니?"

"하아? 나도 너한테 사준다고 한 적은 없는데?"

"아, 그러니? 유리는 사주면서 나는 사줄 수 없다는 거니?"

"무슨 소리야. 유리도 안 사준다고."

"아깝니?"
"평소에 내가 얼마나 많이 사주는데."

"나는 아니잖아."

"넌 말하지도 않잖아."

"너는 꼭 말을 해야 아는구나."

"뭘?"


 어느샌가 또 싸우고 있다. 이 녀석이랑은 정말 안 맞는다. 입만 다물고 있다면 참 미인인데.

유리가 어깨동무를 하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에이, 둘 다 너무 그러지말구! 그럼 세하가 짠돌이니까 어쩔 수 없이 내가 쏠게."

"불안한데."

"물론 난 동생들이 나만 보고 배고프다고 입을 벌리면서 매달리고 있긴 하지만...."

"무슨 제비 둥지냐."

"용돈도 세하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지만...."

"내 용돈 너한테 말해준적 없는데."

"그렇지만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아서 어떻게든 세하한테 아이스크림을 대접할게..."

"안 통해."
"안 통해?! 왜 안 통하는 거야!"


 헤드락을 걸며 매달리는 유리를 밀어 떼어놓는데 팔짱을 낀 채 빤히 이쪽을 노려보는 슬비가 있다.

 유리는 슬비의 표정을 보자 뭐가 불안했는지, 또 손을 파닥파닥 흔들며 "이건 그런 거 아니야!"라고 외쳤다.

그런 거가 대체 뭐야. 농땡이가 아니라는 얘기야? 그렇지만 농땡이잖아.

거리 뒤쪽으로 폭음이 울렸다. 이렇게 시끄럽게 싸우는 쪽은 테인이로군.

테인이는 강한데다가, 제이 아저씨도 같이 있으니 걱정되진 않는다.


 슬비를 보자니 손목 한쪽이 유독 부자연스럽게 겨드랑이쪽에 파고들어간 상태였다.

허둥대는 유리를 지나쳐서 슬비에게 다가간다.


"야, 손 보여봐."

"난 신경 끄고 제이씨한테 가봐."

"어떻게 너한테 신경을 안 쓰냐."

"..........."


 슬비가 슬쩍 눈을 돌린 채 손을 내민다. 손목 부분이 심하게 부어올라 있다.

부러졌다기보다는 삔 것일테지만, 그래도 움직이지 않게 고정시킬 필요가 있다.


"하여간 몸도 약한게 자존심만 세서는. 이런 거 있으면 좀 숨기지 좀 마라."

"너한테 보여주고 싶지않아."

"동료한테는 보여줘도 된다고."

"........."


 바닥에 마침 부목으로 쓸법한 판자가 하나 보였다. 옆의 슈퍼에서 튀어나온 궤짝의 파편것처럼 보인다.

반으로 부러뜨려 대충 길이를 맞춘 뒤 가진 붕대로 어깨를 감싸며 묶어 손을 고정시킨다.

이래뵈도 유니온의 관리를 받는 클로저니까 이 정도의 응급처치는 교육을 받았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지고 회복이 빨라진 시대라고 해도,

정밀한 장비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니까 이런 응급처치는 세월이 지나도 빛이 바래질 않는다.


 붕대를 감기 위해 몸을 가까이 했을 때는 잠깐동안 슬비의 숨소리만이 들렸다.

이 녀석은 리더라는, 어른들이 강요한 직책을 위해 매번 무리를 한다.

그럴 필요는 없는데, 유리처럼 좀 더 편하게 기대도 괜찮은데 그러질 않는다.

정말 고지식한 녀석이다.


 유리는 잠깐동안 발을 꼼지락거리며 바라보다가, 먼저 지원을 간다며 도망치듯 자리를 비웠다.


"넌 좀 쉬어."

"곤란해. 차원종은 하나라도 더 죽여야해."

"팔 못 쓰면 컨트롤도 제대로 못 하잖아."

"괜찮아."

"네 몫까지 내가 할테니까."

"게임만 하는 주제에."

"안 하고 있잖아."

"..........."

"그러니까 다치지 좀 마라."

"평소엔 네가 더 많이 다치는 주제에."

"그건 간호사 누나가 이뻐서.... 아닙니다. 농담이야. 야."


 거리에서 소리가 멎었다. 교전상황이 종료된 모양이다. 주변에 무겁게 흔들리던 위상력도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만류하는 이쪽을 질질 끌며 성큼성큼 걷던 슬비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간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

"엉?"

"그런 상황을 위해 35종의 포교용 드라마 명작선을 엄선해서 녹화해놨어."

"드라마라니 평범하게 내 게임기를 가져다주면 된다고."

"그리고 매일매일 그 날의 시를 낭독해줄 거야."

"언제적 간호법이냐!?"

"마지막으론 네 게임기를 뺏고 잔소리로 하루를 마무리하지."

"이미 간호가 아니잖아!"


 슬비가 또 슬며시 웃었다. 은은하게 얼룩처럼 번지는 미소는 눈에 익을 때쯤 사라져버린다.

그러고보니 아직 안경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보이는 호감도는 62다. 그래도 처음에 비해 꽤 회복되었다.

슬비나 유리가 내 어떤 점을 마음에 들어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 실수로 가장 가까운 친구들까지 잃는 건 확실히 바보같은 짓인지라, 좀 연구를 해보기로 했다.


 게임과 다를 바가 없다. 목표를 정하고, 공략한다. 이건 호감도라는 점수를 일정수준 이상 얻어내면 이기는 게임일 뿐이다.

호감도가 80을 넘진 않아도 그 근처에는 있어야 분위기가 부드럽다는 것은 잘 알았다.

슬비를 공략-이라고 부르기는 좀 부끄럽지만-하기 앞서 나름대로 게임을 통해서 연구했다.

덕분에 새벽 4시가 되서야 잠을 청했다.


 특정한 이벤트를 발생시키려면 일정한 호감도가 필요하고, 일정한 호감도를 얻어내려면 상대가 좋아하는 말이나 일을 해**다.

난 게임보다 유리한 점이 몇가지 있다.


첫째, 호감도가 수치화되어 눈으로 보인다.

둘째, 슬비가 뭘 좋아하는지 안다.

셋째, 이벤트를 내가 주도할 수 있다.


 고심해서 어제 인터넷을 **가며 얻어낸 성과를 조심스레 권해본다.


"야. 목요일에 사랑과 차원전쟁 촬영 근처에서 있는 거 아냐?"
"......?!"


 이 표정 봐라. 참치를 처음 먹어본 고양이 같은 표정이잖아.


"너 드라마만 ** 말고 뉴스 좀 보면서 살아라."

"오, 오, 온다고? 여기에? 와? 오는... 거야?"

"그래. 가서 운 좋으면 사인도 받을 수 있을걸. 방해만 안 하면 촬영 구경은 할 수 있다고 들었어."

"에....."

"그, 그치만... 그치만 우린 그때 학교도 가야하고, 차원종도..."

"야간촬영이야. 그래서, 싫어?"


 이 녀석은 또 그 놈의 투철한 책임감 때문에 몸이 달아도 이성을 유지하면서 가치를 저울질하려 한다.

이렇게 쐐기를 박아주면 결단을 내리기 편하겠지. 마침내 슬비가 달아오른 얼굴을 숙이며 중얼거렸다.


"....아니, 좋아...."

".............."


 위험했다. 방심하고 있었어. 그렇게 주어를 생략하면 누구라도 착각해버린다고.

이슬비한테 착각할 일은 없겠지만.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왜? 이렇게 네 취미생활에 동조해주면 너도 게임을 좀 인정해주겠지."

"여전히 하는 건 싫어."

"보는 건 좋고?"

"응."

"그럼 나 뭐할 때 구경이나 해라."

"곤란해."

"또 뭐가 문제냐."

"네가 게임기만 보니까."

"......모르겠네."


 곧 일행이 모두 합류해서 작전본부로 복귀했다. 아무래도 이번에 다친건 슬비뿐인 모양이다.

녀석은 자신보다 훨씬 질량이나 부피가 큰 물건을 옮길수록 오래 집중해야해서 빈틈이 많이 생긴다.

유리도 그렇고 이 녀석도 그렇고, 나같은 녀석이라도 뒤를 봐주지 않으면 곤란한 것이다.


 슬비의 호감도는 어느새 70까지 올라가 있었다. 좋았어. 대성공이다.

이 상태만 유지하면 부드러운 인간관계가 탄생할 것이 틀림없다.

슬비는 스타를 만나는데 어떤 옷을 입을지, 어디다 사인받을지 고민해야겠다며 이례적으로 먼저 자리를 비웠다.


 이제 남은 쪽은 유리다.

유리쪽은 역시 호감도가 60 언저리에서 머무르고있다. 아이스크림을 사주니 단번에 오르는군.

먹을 것만 사주면 낙승인가? 아니다. 유리는 겉보기에 단순한만큼 속을 읽기가 제법 어렵다.

그럼 유리가 좋아하는 건 나열해보자. 한우, 멋, 정미, 가족, 그리고 돈.


 유리를 본다. 꽉꽉 채워달라며 말해 알바생을 긴장시키며 높게 쌓은 2천원짜리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분홍빛 혀는 돌출될 때마다 마치 삽처럼 움직이며 부드러운 크림을 입 안으로 부지런히 퍼날랐다.

 

"야."

"왜?"

"코에 묻었어."

"거짓말... 에! 진짜네!"
"아이스크림은 그런다고 못 아껴먹으니까."

"그럼 휴지 줘."

"일단 사진부터 찍고."
"찍지 마?!" 

"안 찍어."

"찰칵 소리 났잖아!"

"하. 야 봐. 지웠지?"
"응....."


 물론 지웠지. 하지만 두 장을 찍었으니 한 장은 남았다. 나중에 이걸로 놀려줘도 좋을 것이다.

유리가 아이스크림을 안까지 혀로 꾹꾹 눌러담은 후 콘과 함께 와삭와삭 씹어먹기 시작했다.


"저기....슬비랑 어디 가?"

"응. 걔가 좋아하는 드라마가 근처에서 촬영을 한다 그래서."

"그렇구나. 데이트네?"

"데, 데이트는 무슨....."

"이세하가 왠 일로 그런 기특한 일을 다 해? 뭐 잘못 먹은 거야?"

"나도 가끔은 좋은 일을 해야지."

"생색내기는. 그럴 때는 멋지게 별 거 아니라고 대답하는 거야."

"미안하네, 멋지지 않아서."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를 하나 건네준다.

녀석이 지중해를 떠담은 듯 새파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음표를 던진다.


"자."

"뭔데?"

"너 캐롤 누나 만나러 가잖아. 이거 필요하다며."

"아."

"이번에 무슨 기획인지 마나나폰 각질 샘플같은걸 그렇게 모아대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무게에 따라서 추가급여를 준대서."

".......세하가 모은 거잖아?"

"응. 너 주려고."


 녀석이 조심스레 받았다. 그러고는 씨익 웃는다.


"고마워! 세하 남자네!"

"언제는 여자였냐."

"매번 그렇게 나 신경쓰고 그러면 안 된다? 우리 세하는 언제 이 누나한테서 졸업할래?"

"아이스크림을 다 먹었더니 더위라도 먹었냐."

".....흐응. 아냐. 슬비랑 잘 놀고 와!"


 기이하게도 유리의 호감도는 70과 69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덜 기뻐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성공이다.

오히려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많이 올랐으니까. 역시 실수는 만회하라고 있는 법이다.

유리는 "그럼 난 정미정미랑 영화나 보러가야지-"라며 쭉 기지개를 피고는 모퉁이를 돌았다.

그대로 가나 싶었더니 빼꼼 고개가 튀어나온다.


"아! 또 늦잠 잤다고 학교에 지각하고 그러면 안 된다?"

"뭘. 매번 네가 깨워주잖아."

"바보. 이젠 안 깨워줄테니까!"


 그러면서 또 깨워주겠지. 난 학교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지만 유리는 제법 소중히 여기는 모양이었다.

훌륭한 커리어를 쌓고싶은 4급 공무원님의 혜안일 수도 있겠다.

유리의 목소리는 다른 알람보다 훨씬 듣기 좋은 알람이었다.

하지만 역시 유리 말대로 이런 건 졸업해야할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내일 슬비랑 같이 갈 때는 또 무슨 옷을 입고 가야하지.

...아까 유리한테 물어볼 걸 그랬다.

.......이거 졸업할려면 한참 멀었구만.

하여간 나란 인간은 언제 철이 들런지.


 그럼에도,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다.

보고서를 들고가는 길에, 공연히 휘파람이 나왔다.




++


 이런 글을 쓰는데 1시간 반이 걸리는데, 1시간 반이면 집안의 냉장고를 털어 피자를 한판 만들 수 있습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영양가 없는 글을 쓰고있는 거야!


 많이 길어졌는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만간 끝낼 수 있도록 할께요!

2024-10-24 22:24:4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