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스 외전 : 클로저스 인 뉴욕 -4-

이데아드라이브 2015-03-20 0

다음날


우리는 다시 사건 현장으로 찾아갔다. 매일 할당받는 순찰은 부장님께서 제외해주신 덕분에 조사에 전념할 수 있었다. 현장은 조사를 마쳤기 때문에 깨끗하게 정리되었지만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그런 현장이 아니었기에 상관없었다.


헨리가 나타난 것은 이쪽 방향이다.”


케이트는 현장 반대편에 있는 골목을 가리켰다. 그곳은 CCTV에도 보이지 않는 좁고 음침한 골목길이었다.


꼭 불량한 친구들이 있을 것 같은 분위기인데.”


아니면 음침한 마약상이라던가.”


내가 앞장서고 케이트가 뒤따라오는 형태로 우리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현장 조사를 위해 우리는 매일 입던 정식 요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있었다. 그 덕분에 주변에서 주목을 안받으면 좋겠지만...


케이트.”


왜 그러지?”


네 복장 말인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 현장 조사를 위해 사복을 입고 오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어딜 어떻게 봐줘야 정장이 사복이 아닐 수 있는 거야?!”


케이트는 요원복만 아니었지, 정말 깔끔하게 여성형 정장을 입고 왔다. 주름 하나 없는 자켓에 깔끔한 블라우스와 정장치마 아래로 흘러내리는 검정스타킹과 적당한 높이의 구두까지 정말 완벽하게 말이다!


누가 보면 대기업 면접 보러 가는 줄 알겠어.”


그래? 유니온 요원처럼 보이진 않으니 다행이네.”


그게 그렇게 들리나?”


빈틈없고 꼼꼼한 그녀의 성격은 매우 좋은 편이지만, 융통성 없는 부분이 여기서도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다음번엔 미국 드라마라도 보여주면서 사복의 좋은 예를 들어줘야 하나? 라고 생각할 때, 이 골목길의 토박이 친구들이 말을 걸어왔다.


어이, 거기 샌님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어깨도 넓게 벌어진 건달 한명이 내 앞을 가로막더니 순식간에 주위에서 대여섯명이 우리를 둘러쌓았다. 아무래도 상습적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 같았다.


길 좀 비켜줬으면 좋겠는데?”


여긴 처음이야? 지나가고 싶다고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고.”


내 앞을 가로막은 건달의 리더처럼 보이는 사람은 자신의 체격을 최대한 활용해 내 앞에 바짝 붙어 내려다보며 겁을 주려 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건달들도 나와 케이트에게 겁을 주려 했지만, 우리는 그다지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 동네 자주 있나봐?”


그렇다면 어쩔건데.”


우리가 사람을 좀 찾고 있어서 말이야.”


얼굴이 가까운 김에 난 사진을 꺼내서 그에게 보여주었다.


이런 사람을 찾고 있거든. 혹시 못 봤어?”

이 앞에서 죽은 헨리의 사진을 보여주자, 그는 얼굴 표정이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확 굳었다. 예상보다 해매지 않고 잘 찾아온 모양이다.


뭐야, . 경찰이야? 아니면 도장에서 보냈어?”

도장?”


! 여자가 너무 차려입고 있어서 짭새는 아닌 줄 알았는데!”

앞에 있는 건달이 대놓고 당황하자 주변 건달들도 우리와 거리를 벌리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약간 난감해진 상황인데, 상대가 만약 총이라도 꺼내면 일이 복잡해진다. 우리는 이들에게 정보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내가 함부로 손을 댈 수도 없었다. 게다가 아무래도 위상력이 없는 민간인에게 손을 대면 여러모로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그런 내 마음을 읽은건지 케이트가 내 어깨를 당기며 앞으로 나섰다.


내가 처리할게.”


괜찮아? 적어도 반반이 나을 것 같은데?”


위상능력자인 네가 나서면 일이 귀찮아져. 그리고...”


그녀는 머리를 한번 쓸어올리며 입가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 그 모습은 내가 처음 보는 그녀의 호전적인 모습이었다.


힘자랑 하는 남자들 상대는 지긋지긋하게 해봤어.”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쏜살같이 뛰어나가 내 앞에 있던 건달의 다리를 걸고 어깨를 가차없이 밀어 넘어뜨렸다.


우왓?!”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남자가 맥없이 넘어가는 모습에 나는 물론이요, 그의 친구들도 입을 벌린 채 굳어버렸다. 그리고 그런 빈틈은 그녀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케이트는 넘어진 상대를 돌아**도 않고 곧장 왼쪽으로 돌아 뚱뚱한 남자의 정강이를 걷어찬 뒤 머리를 잡고 무릎으로 미간을 찍어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다음 상대를 제압하러 가는 때 뚱보는 눈 흰자를 보이며 쓰러졌다.


약간 마른 민소매 셔츠의 남자가 거품을 물고 있을 때 나머지는 이미 골목으로 도망치고 없었다.


, 이게!”


그 순간 정신을 잃은 줄 알았던 리더가 품에서 권총을 꺼내 케이트를 겨눴다. 케이트도 그걸 봤지만 대처하기엔 거리가 멀어 양팔로 얼굴을 가렸다.


?”


하지만, 방아쇠를 당겨도 총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당황한 리더는 계속 방아쇠를 당기며 총을 두들겼지만 권총은 계속 모르쇠로 일관했다.


자아, 공부 하나만 하자.”


그런 그에게 다가간 나는 양손으로 총과 리더의 손목을 각각 잡고 비틀었다. 리더의 손을 떠난 권총을 저 멀리 던져버리고 그의 가슴을 오른발로 밟고 눌렀다.


커헉!”


숨이 막힐 정도의 중압이 그를 짓눌렀지만, 위상력이 살짝 담긴 힘에는 일반인은 저항할 수 없었다.


총은 방아쇠를 당기면 안에 있는 총알의 화약을 터뜨려 발사하는 원리지. 하지만 그 안에 화약에 불이 붙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 뭐라고 하는...크헉!”


정답은 스스로 생각해보고. 수강료 받아갈 시간이다.”


그가 대답하지 못하게 살짝 더 눌러주고 다시 그의 앞에 헨리의 사진을 들이밀었다.


이 남자 알지? 아까 얼굴에서 다 티났어. 아는걸 다 말해.”


건우! 조심해!”


케이트가 지른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주먹이 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턱을 빠르게 당기며 손으로 주먹을 쳐내며 뒤로 물러났다.


괜찮습니까. ?”


스승님!”


약간 작은 키에 왜소한 몸을 한 동양인 청년은 바닥에 누워있는 리더를 일으켜 세웠다. 외모를 보니 약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사이이고 겉보기엔 중국인 같았다.


당신들은 누구신데 사람을 이렇게 괴롭히는 겁니까?”


작은 몸과는 대조되게 그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평범하지 않았다. 방금 전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다가와서 주먹을 날리는 것도 그렇고, 자세 하나하나가 올곧고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니 무술을 단련한 사람 같았다.


우리는 유니온에서 나온 사람들입니다.”


케이트가 내 앞으로 요원증을 들고 나섰다. 그녀는 내가 손에 쥐고 있던 사진을 낚아채고 중국인에게 보여줬다.


이 사람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 알고 있습니다.”


중국인은 넘어져있던 건달 리더를 일으켜 세우고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그는 제 제자입니다.”

 

 

골목을 빠져나온 우리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장이라고 불린 건달 리더는 중국인 스승님이 나타나자 아까 거만한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온순해졌다. 걸어가는 도중에도 장은 스승에게 여러가지 훈계를 듣고 있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제 이름은 마이클 리 입니다.”


유니온 요원인 케이트입니다. 이쪽은 제 파트너인 박건우입니다.”


, 한국인이셨군요. 아까는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아니요. 저야말로...”


제 제자인 장이 여러분께 실례가 많았습니다. 다 못난 스승인 제 탓입니다.”


리 사부는 다시한번 정식으로 고개 숙여 우리에게 사과를 했다. 그 고개를 다시 들게 하기까지 우리는 적지 않은 고생을 해야 했다.


아까 보여주신 사진은 제가 아끼던 제자인 헨리입니다. 절 도와 같이 도장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도장이라면, 어떤 무술인가요?”


그냥 저희 집안에서 내려오는 무술입니다. 이름을 댈 것도 없지요. 저희 조부께서 미국으로 이민을 오신 때에도 이 무술의 계승만큼은 충실하게 이뤄졌습니다.”


설명을 마친 리 사부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잠시 회상에 잠기는 듯했다. 케이트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헨리와는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제가 헨리와 만났을 때는 재산도, 가족도 모두 잃고 노숙하던 때였습니다. 그때 지나가는 절 칼로 겨누고 도둑질을 하려고 했죠. 그런 그를 거둬 돌봐주다보니 어느새 2년이 넘게 흘렀군요.”


헨리는 제가 만난 사람 중에서도 무술을 배우는게 매우 빨랐습니다. 마치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려 몸부림 치는 것 같았죠. 저는 그런 그를 도와줬고, 어느새 제가 없을때는 사부 대리를 맡길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런 말썽꾸러기를 데려오게 하기도 했죠.”


옆에 있던 장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체격도 좋은데다 무술을 배워 그걸 동네에서 으스대던걸 데려오기 위해 리 사부가 헨리를 보낸 모양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헨리와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요원님들이 헨리를 찾는걸 보니 무슨 일이 일어난 모양이군요.”

나와 케이트는 헨리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헨리에 관한 사항은 대부분이 기밀 사항이라 나는 다른 이유를 말했다.


며칠 전 이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걸 저희가 발견했습니다.”


평온한 모습을 일관하던 리 사부도 내 말에는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만큼 소중한 제자였던 모양이다.


그런, 그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헨리는... 병원으로 이송하던 도중에 사망했습니다. 저희는 그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중이고요.”


그렇습니까...”


리 사부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말이 없었다. 옆에 앉아있던 장은 충격이 큰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무거워져 더 이상 조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우리는 간단하게 연락처를 교환하고 두 사람과 헤어졌다. 가까운 시일 내에 우리가 도장을 찾아가기로 했다.


자동차를 타고 본보로 돌아오면서 우리는 오늘 모은 정보에 대해 생각을 공유했다.


어떻게 생각해. 건우?”


뜬금없는데? 무술 도장이라니 말이야...”


내 생각도 그래. 하지만 교환한 전화번호를 대조해보니까 헨리가 가장 자주 걸었던 번호와 똑같았어.”


뭔가 좀 더 조사해보면 나오겠지.”


엉뚱한 사건의 행방으로 인해 우리는 점점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인간형 차원종과 무술 도장이라니, 이걸 어떻게 연결해야 되는 걸까?


어쨌든 조금 더 조사가 필요한건 명백했다.


, 그리고 건우.”


?”


다음에는 짭새같은 복장은 자제해달라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미소에는 마치 이겼다!’라고 외치는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할 말이 없는 난 그저 허탈하게 웃었다.

2024-10-24 22:24:4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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