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착한 아이, 나쁜 어른
아워글라스 2015-03-15 5
"연구 협력에 대한 건으로 공문이 내려왔어."
보통 울프팩 팀에 내려오는 건 '전투' 협력의 건이지 '연구' 협력이 아니다. 서지수의 말에 팀원들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이 전쟁의 상황에서 뛰어난 클로저들의 육성은 필수불가결한 것이 되었다. 우수 클로저 육성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가장 우수한 클로저들을 연구하고자 하니 협력해 주십시오, 라는데."
"실험이나 하겠다, 그 소리 아니야?"
팀의 최연장자인 윤이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그 말에 서지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그 유니온이라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우수한 전투원을 제 손으로 갉아먹는 짓을 하려고?"
"세상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랍니다, 여왕님."
"아 진짜,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지수는 윤에게 짜증을 냈다.
"어쨌거나, 너무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거야. 그 정도로 바보같진 않을테니까. 오히려 연구가 잘 되어서 우리쪽에도 전력이 더해지면 좋은 일 아니겠어? 우리 능력을 연구해서 각종 병기들을 만들어 준 것도 유니온인걸."
서지수는 팀원들을 죽 훑어보더니 회색 머리칼의 소년에게 시선을 멈추었다.
"제이."
"네, 누나."
"부탁해도 될까?"
"어..."
소년은 머뭇거렸다. 지수가 호쾌하게 웃었다.
"제이는 착한 아이잖아. 우리 모두를 위해서야. 내 부탁, 들어줄 수 있지? 별일 없을거야."
그녀의 미소는 당차고도 눈이 부셨다. 그래서 제이 또한 자신에겐 아무 일도 없을거라고 믿어 버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 - -
대체 뭐였던 거지?
제이는 가위라도 눌린 것 같은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욕지거리가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제이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매끄러운 한숨소리가 아니라 가래가 끓는 듯한 걸걸한 숨소리.
거울을 멍하게 바라보며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본다.
"착한 아이..."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착한 아이라니, 이젠 바보처럼 어른이 되어버렸다.
"으..."
화장실이 겨우 딸려있을 뿐인 단칸방에 착신음이 울려퍼진다. 틀림없이 대출 권유나, 새로운 휴대폰을 사라던지, 보이스 피싱 따위일 것이다. 과거와 끈을 끊은, 아니 사실은 이용가치가 다해 버려진 자신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니까. 그러나 제이는 그런 줄 알면서도 전화를 받는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누군가를 등쳐먹으려는 처절한 목소리에 그는 위로를 받곤 했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제이 씨의 휴대폰 맞죠?"
그러나 그의 그런 느긋한 생각은 수화기 너머에 들리는 목소리에 산산조각이 난다. 아아, 그 목소리를 잊을리가.
"...누님."
너는 착한 아이야.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곤 했던 누나의 목소리.
알파퀸, 서지수.
"찾느라 고생했어, 동생. 연락만이라도 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어?
"죄송해요."
"미안할 필요는 전혀 없어. 조금 아쉬웠을 뿐이야. 대신, 내 부탁 하나 들어줄 수 있어?"
제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목소리는 침착했다.
"들어보고 생각할게요."
"다시 클로저가 되어 줘."
당신은 정말 어떻게 내 예측에서 하나도 벗어나지 않는 거죠? 어렵게 어렵게 연락이 닿아서 하는 소리가, 다시 '클로저가 되어달라'니. '네가 필요해'라니.
"말씀드렸잖아요, 누님. 저 이제 전장엔 다시 안 갑니다."
"이번에 유니온에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어서 애들이 요원으로 발탁되게 됐어. 애들을 이끌어줄 사람이 필요해."
"그러니까 저는...!"
"제이."
당신은 정말 나쁜년이야. 그의 뇌리에 그런 생각이 꾸물꾸물 떠올랐다.
"옛 친우인 날 봐서라도. 세하도 팀에 들어가게 되었어."
"...생각해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누님."
제이는 착잡하게 전화를 끊었다.
누님은, 제가 정말 소중하기는 했습니까? 당신은 내가 착한 아이라고 말했죠. 착한 아이니까, 웃으면서 항상 저에게 그렇게 부탁했죠. 그러면서도 무엇이든 버티니까 내가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누님은 언젠가 수백의 차원종이 포위하고 있는 곳에 나를 혼자 두고 갔지요. 내가 가장 강하고 믿음직스러우니까, 어떻게든 모두를 위해 버텨달라고 했죠. 그리고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버티고,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을 때 나를 안아주며 이렇게 말했지요.
'우리 제이, 참 착하다. 착한 아이다.'
그건 어떤 최면과 같았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착한 아이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는 당신이 부탁하는 대로 '실험'에도...
"우욱."
그는 갑자기 올라오는 구역질에 화장실로 달려갔다. 입가에 고인 검붉은 액체를 뱉어냈다.
"**."
그리고 나는 이렇게 되었다.
제이는 희미한 눈으로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내 인생은, 대체 뭐였던 거지?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아. 누구에게도 감사받지 않아. 그저 나는 갈려갈 뿐. 흐려질 뿐.
착한 아이가 뭐지?
착.한.아.이.?
착한 아이여야 하니까. 누구도 걱정시켜서는 안 돼. 그 생각으로 나는 이 모든 고통을 견디며 그 누구에게도 이 고통을 나누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당신은 나에게 또다시 부탁을 하는 건가. 너는 착한 아이니까?
나는 아직 어린아이인가.
- - -
"하겠습니다."
"여전하구나, 너는."
"......"
모르겠다. 일단 부딪혀 보아야지. 더 더럽혀지고 얼룩지면 나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착한 아이가 아니라 나쁜 어른이.
"제이, 너는 정말 착한 아이야."
전화를 끊은 뒤에도 그녀의 '착한 아이'라는 말은 가시처럼 제이의 폐부를 찔렀다.
그러는 당신은 나쁜 년. 나쁜 사람.
나는 당신에게 모든 것을 주려고 했는데, 나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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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아재 많이 아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