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하지 마라, 건강이 제일이야. -0화-
MariGabriel 2015-03-15 3
"―말도 안 돼."
나―제이는 지금 내 눈앞에 벌어지는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
정예 클로저 요원들이 하나 둘씩 허무하게, 눈앞의 검은 구체가 발산하는
중력에 이끌려 마치 종잇장 찢어지는 것마냥 쓰러져간다.
그들은 외마디 비명조차도 지르지 못하고 사지가 뜯겨져나갔다. 목이
잘리고, 내장이 뜯겨나가고, 뼈가 부서졌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작별했다. 몸이 마디마디 찢어졌다. 전신의 가죽이 뜯겨지고 핏줄과 골격이 허공에서 춤췄다. 건장하던
요원들의 몸은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사슴마냥 눈 깜짝할 사이에 하나의 피 묻은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렸다.
구토가 나올 타이밍이었겠지만,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나는 구토조차
하지 못했다.
기절할 타이밍이었겠지만,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나는 기절조차 하지
못했다.
다리도 후들거리지 않았다. 주저앉지도 못했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고 심지어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마치 메두사의
눈을 보고 바위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ㅡ있을 수 없다.
ㅡ있을 수 없다.
오로지 그 한마디만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저들은 그 말렉을 상대로 싸워서 상처 없이 살아남은 정예 멤버들이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ㅡ지금 눈앞의 한 소년에게 타격조차 입히지 못하고 쓰러져가는 것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인간의 것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발.
남성인지 여성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중성적인 외모.
묘하게 색.기를 발산하는 몸매와 반라에 가까운 옷차림.
금방이라도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보랏빛 눈동자와 금방이라도 유혹당할 것만 같은 보랏빛 입술.
그리스 신화의 피그말리온이 남자를 조각했다면 저것과 같은 모습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저 소년은 누구일까. 인간일까, 아니면
차원종일까ㅡ아니, 몸 전체에서 느껴지는 위상력 공명반응으로 보건대, 저건
차원종임에 틀림없다.
ㅡ어째서 차원종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거지? 라는 의문점이 생겨난
것 같지만,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당장 이 참혹한 광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당장 이 생지옥 속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몸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체 어째서일까.
지금 도망치면 앞으로 평생 후회하게 될 거라는 경고의 메시지인 것일까, 아니면
이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고 후대의 사람들에게 이 참혹함을 알리라는 계시인 것일까.
어느 쪽이든, 아직 17세밖에
되지 않은 나에게는 너무 버거운 이야기였다.
이윽고 구체는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사라지고, 요원들의 잔해는 한 조각의
육편조차 남기지 않은 채 이 세상 속에서 사라졌다.
그 장면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본 그 소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기지개를 키고는 중얼거렸다.
"덕분에 재미있었다, 인간들. 이런 재미를 내게 안겨준 건 네놈들이 처음이야. 인형놀이에 기꺼이
몸을 빌려준 너희들에게 감사하지."
그것은 아이의 목소리일까, 아니면 어른의 목소리일까.
그것은 남성의 목소리일까, 아니면 여성의 목소리일까.
어느 쪽으로 구분 짓기 애매모호한 목소리를 내며―소년은 홀로 덩그러니 주저앉아 있는 여성 클로저 요원에게 다가갔다.
아마도 저 클로저 요원은 일부러 남긴 것이렷다. 그도 그럴 게, 지금 저 소년은 웃고 있으니까.
저 정도 위상력을 뽐내면서도 땀 한 방울 흘린 기색도 없다.
저 정도 위상력을 뽐내면서도 공명하는 위상력 파동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에 비해, 방금 전까지 찢겨나가던 클로저들의 위상력은―분한 이야기지만, 무식하게 출력량만 크고 제어를 하지 못해 흐트러져 있었다.
아마도 죽어가는 동료를 보며―함께하는 전우가 공격조차도 하지 못한 채 힘없이 찢어져가는 동료를 보며 냉정함을
잃었으리라.
위상력은 정신력과 체력에 비례한다. 체력이 넘쳐도 정신력이 흐트러지면
위상력 역시 흐트러지고 사방으로 퍼진다.
그렇기 때문에 클로저들은, 체력 단련에 앞서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는
훈련을 한다. ―라는 이야기는 지금 아무래도 좋다.
얼어붙은 얼굴을 한 여자는 소년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를 소년은 재미있다는 듯이 한 번 훑어보고는 귓가에 대고 무어라고 말했다.
"정말 좋은 눈이야. 괴로움과
절망감에 빠져 있는 눈. 나는 그런 눈을 정말 좋아해. 평생
동안 남길 내 컬렉션 넘버 0으로 삼고 싶을 정도인걸."
"......"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아마 나와 같은 상황이렷다.
하지만 소년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턱을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괴롭지? 아프지? 슬프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럽지? 절망적이지? 한심하지? 지금
당장이라도 이 모든 걸 잊어버리고 싶지? 쉬고 싶지? 응? 그렇지?"
"......"
여자의 눈시울이 더욱 붉어졌다. 아마도 저 소년이 그녀의 마음을 후벼
팠으리라. 여자는 이내 흐느끼더니 곧 오열했다. 귀를 찢는
듯한 절규에 가까운 울음소리가 폐허가 된 구로 일대에 시뻘겋게 울려퍼졌다. 하지만, 그것을 본 소년은 희열에 가득 찬 웃음소리를 내며 외쳤다.
"아하하하하하! 그게
바로 네 대답이라는 거로군! 그래, 알았어!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그래, 넌
그들에게 사과하고 싶은 거구나! 응, 잘 알았어! 그렇다면―"
그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 앞에 쭈그려앉았고, 손에 날을 세웠다. 그리고는―
――투학.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왼쪽 가슴에 손을 집어넣었다.
"――내가 사과하게 해줄게.
저승에서 말이지."
푸학.
소년은 가슴에서 손을 빼내며 붉은빛 덩어리를 꺼냈다. 뻥 뚫린 가슴에서는
시뻘건 피의 분수가 쏟아졌다.
덩어리 주위에 달려있는 실핏줄이 힘없이 피를 뿜고, 덩어리는 두어
번 맥박을 치더니 힘없이 축 늘어졌다.
―심장.
그래, 그것은 누가 봐도 명백한 심장이었다. 지금 내 눈앞의 이 빌어먹을 자식은, 저 여자의 가슴속에서 심장을
뽑았다는 것이다. 녀석은 심장을 죽 보더니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흥, 이 녀석도 아니었나.”
말을 끝내는 것과 동시에 녀석은 손에 든 심장을 쥐어 터뜨렸다. 터진
심장은 재가 되어 때마침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흩날렸다.
“――――――――――――――――――――――――――――――――――――――――――――――.”
그때, 나는 나조차도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움직이지 않던 다리가, 수갑을 푼 죄수처럼 가볍게
달려갔다.
아까까지만 해도 얼어버렸던 눈동자가, 봄 햇살에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눈물을 흘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굳어버렸던 입이, 엿가락 뜯는 것처럼 툭 하고 벌어져
괴성에 가까운 고함을 쳤다.
그리고 내 신체는,
내 주먹은,
명백히 눈앞에 있는 빌어먹을 자식을 노리고 있었다.
어째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째서 갑자기 몸이 움직여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나는 이성을 잃고, 눈앞의 자식을 죽여버려야겠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분명 덤비면 죽는다.
분명 덤비면 아까 죽었던 동료들처럼 된다.
하지만, 그런 것은 지금의 내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눈앞의 이 빌어먹을 자식을,
죽여 버린다.
죽여 버린다.
죽여 버린다!
단지 그 생각만을 하던 내 입에서, 절규와 호통과 원념을 뒤섞어놓은
듯한 외침이 울렸다.
“그만 둬, 이 새.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 * * -
“핫!”
어둠 속에서 나―제이는 눈을 떴다. 익숙한 검은양 아지트의 천장이
나를 안심시킨다. 또 그때의 꿈을 꾼 건가. 이런, 문제다.
“썩을.”
입안에서 조그맣게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머리를 긁적인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의 시계를 열어보니 아직 오전 2시도 채 되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며 나는 냉장고로 향해 문을 열고 캔맥주를 땄다. 딸칵, 하는
소리와 함께 김 빠지는 소리가 내 귓바퀴에 한참 맴돈다. 찰나의 유혹을 못 이기고 한번에 마셔버린다. 고소한 보리 내음과 톡 쏘는 알코올이 입안과 코를 자극한다. 남은
한 방울까지 남기지 않고 전부 다 마시고는 짧게 탄식을 내뱉는다.
“다시는 꾸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나도 역시 어쩔 수 없단 건가.”
하며 나는 자켓 안주머니에 있는 사진 한 장을 꺼내서 본다. 차원전쟁
때 만난 전우들과 같이 기지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에 찍혀 있는 마흔여 명 남짓 되는 사람 중 태반 이상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걸 인식할 때마다 눈시울이 핑 돈다.
―왜 그런 악몽이 일어난 걸까.
―왜 그런 재앙이 일어난 걸까.
이미 20여 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와서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타임머신이라도 있었다면 어떻게든 그 시절로 돌아가서 전쟁의 발발부터 막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아무리 후회하고 울어봤자 사라져간 그들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는 제일 큰 시간 낭비라고 누가 그랬던가. 나는 그들의 몫까지 살아서, 그들과 함께 맹세한 것을 반드시 지켜나가야 한다.
그렇게 잡다한 생각을 하며 나는 사진의 구석을 보았다. 그곳에 찍혀
있는 전쟁 당시의 내 옆에는, 금발의 미소녀가 해맑게 웃으며 옆에 서 있는 나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지금의 유정 씨나 캐롤 씨 못지않은 어여쁜
처녀가 되어 있었겠지. 그녀의 얼굴을 보며 나는 조그맣게 목메이는 소리로 당시 불리고 있던 그녀의 호칭을
불렀다.
“제이….”
넵,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이
팬픽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클저 팬픽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 마리 가브리엘입니다.
한동안 글을 안 쓰고 있던 데다가 자기 전에 대충 쓰게 된 지라 발로 쓴 것 같은 냄새가 조금 풍기게 될 것
같습니다만, 그 점은 너그럽게 봐 주시길 바랍니다.
대충 이 “무리하지 마라, 건강이
제일이야” 를 요약해 보자면, 주로 제이 시점으로 진행되며
제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쟁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아… 역시 밤에
쓰는 거라 그런가. 졸음이 쏟아져 오네.
어중간한 후기는 여기서 마치죠. 언제 올라올 지 모르는 1화겠습니다만, 그래도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p.s. 눈치채신 분들은 아실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 은발 소년은 전쟁 시절의 애더남매 맞습니다.
구로역 지점에서 일어나는 에픽 퀘스트 “그는 보았다”, “재와 먼지” 부분에서 나오는 제이의 언급을 토대로 대충 제 느낌대로
어레인지 해 봤습니다만, 어땠나요?
p.s2. 그리고 저 심장 뽑는 장면은 극장판 Fate/Stay Night <Unlimited Blade Works> 에서 길가메시가 이리야의 심장을
산 채로 뽑아버리는 장면의 오마주 맞습니다.
최근 ufotable이 리메이크한 페스나에 덕통사고를 당해버려서 달동네를
다 파버린지라 어덯게든 오마주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흐흑. 이해해
주세요. (넙죽)
작품 특성상 비속어가 여기저기서 나옵니다만, 이 사이트의 검열 때문에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色氣까지 검열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