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책 - 2 -

외국인코스프레 2015-03-15 2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WriterName&strsearch=%ea%b8%b0%eb%a5%98&n4articlesn=1416

1편 링크입니다.

 

본래 1편으로 구성된 것인데, 내용을 잇다보니 위의 글을 읽는 것이 이해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아예 시리즈처럼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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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강남의 한 쇼핑몰 4층에서, 한 소녀가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쇼핑몰에 진열된, 유리창 너머로 놓여 진 물건들을 뚫어져라 보는 소녀의 눈은 한껏 찌푸려져 있었다. 그런 소녀를 가만히 옆에서 보고 있는 직원은, 상당히 언짢은 심정이었지만 ‘손님은 왕이다’라는 사상에 눌려 아무 말 않고 있었다.

 

가만 보면 참 이상해 보이는 소녀였다. 허리까지 올 정도로 긴 흑발에, 초롱초롱한 눈과 앳된 얼굴은 미인이라 할 정도는 아니어도 분명 귀엽고 세련되어 보였다. 하지만 정작 그런 소녀의 옷차림은 여자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지, 적당히 걸치고 나온 듯한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 치마라는 겉보기보단 활동성을 중시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가슴은 뭐 저리 크단 말인지, 생긴 건 고등학생인데 몸은 다른 나라 사람 같았다. 슬쩍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는, 슴무룩…이란 한 웹툰의 문구를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비단 옷차림은 제쳐두고서라도, 소녀의 옆에 있는 장검과 허리춤에 매어진 총을 보면 보통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단순히 불법 무기 소지자란 이유로 신고하기엔 세상은 변해 있었다.

 

2020년 3월 13일, 강남.

 

차원종이라는 정**를 침략자가 날뛰는 이곳이지만, 그런 그들과 맞서 싸우는 인간, 클로저들이 활동하는 시대였다.

 

그리고 그런 클로저 중 한 명인 서유리는, 어쩐 일인지 백화점 내에서 화장품을 고르고 있었다. 벌써 30분 째. 애초에 손님도 없었기에 문제 될 것은 없지만, 계속 고민만 하는 모습을 보자니 빨리 보내 버리고 싶었다. 그렇기에 몇 번 조언도 해 주었지만, 고맙다는 말 뿐이고 여전히 고민 중이다. 한동안 서 있어선지 다리가 결리기 시작했고, 그럼에도 억지나마 미소를 유지하는 점원이었다.

 

“…아!”

 

마음을 정했는지, 짧은 외침과 함께 몸을 일으키는 유리. 그에 점원이 드디어…라는 심정과 함께 한 걸음을 내딛는다.

 

“결정하셨나요, 손님?”

“네, 죄송하지만 가볼게요. 실례했습니다!”

 

…네?

 

미소를 유지한 채 굳어버린 점원이었지만, 이미 소녀는 화장품 코너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검은양 팀의 클로저 서유리는, 백화점 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고등학생인 그녀가 백화점을 들르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면 의아해할 것이, 그녀는 자신을 꾸미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다닐 때 친구들과 함께 몇 번 백화점을 가긴 했지만, 클로저 일을 하게 된 후로는 바쁘기도 하고 치장을 할 여유도 없었기에 자연스레 발길을 끊게 되었었다.

 

그런 그녀가 어째서 백화점에 들러서, 이렇게까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보통 이런 질문에 남자들은, 무언가 살 물건이 필요해서 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여자들은 견해가 다르다. 아마 유리를 잘 아는 여자들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신경 쓰이는 사람이 생긴 게 아닐까, 하고.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유리는 내내 여러 가지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간만에 오게 된 백화점의 세련된 분위기. 그녀의 주변을 어지러이 서성이는 사람들의 신선함. 어쩐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되는, 소녀 특유의 고민. 그리고 어떤 것을 고를지 고민하는 갈등. 마지막으로…‘그 사람’을 떠올리는 설렘.

 

저도 모르게 얼굴이 벌개져서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서둘러 발걸음을 놀렸다. 평소 머리에 꽃밭이 펼쳐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쾌활하고 밝은 그녀가, 이런 소녀틱한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한동안 떠들썩하던 2월 발렌타인 데이가 지나고, 여전히 다른 동료들과 함께 차원종들을 쓰러뜨리던 나날. 그 시간들 사이에서, 유리는 문득 자신이 누군가를 신경 쓰고 있음을 깨달았다. 동년배인 세하일까? 아니었다. 자신을 도와주는 특경대원? 물론 아니다. 귀엽고 사랑스런 테인? 좋아하긴 하지만, 그럴 리가.

 

언제나 자신들을 이끌어 주는 삼십 대의 아저씨, 제이였던 것이다.

 

계기가 어떤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른답게 포용력 있고, 항상 친절하며, 훨씬 어린 자신과 동료들의 장난을 받아주는 넉살 좋은 모습 등…편하고 의지가 되는 모습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치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이웃 오빠가 남자로 보인다는 흔한 설정일지도 모르지만, 유리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뭐 어떤가, 자신이 좋으면 그만인데.

 

그렇지만 세상 일이 다 그렇듯, 그녀의 앞에 탄탄대로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주 느끼던 것이지만, 발렌타인 데이가 지나고 나서 더욱 신경 쓰이게 된 부분이 있었다. 제이와, 검은양 팀의 관리요원인 유정과의 사이였다. 평소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는 정도의 친밀한 사이였지만, 어쩐지 최근 들어 둘 사이의 유대감이 진해진 것 같았다. 평소 눈치가 없던 유리는 물론, 검은양 멤버 모두가 느끼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그들은 구태여 그것을 입 밖에 내지 않을 뿐이었다.

 

당연히 초조해졌다. 고등학생인 자신보다는, 비슷한 나이의 유정이 훨씬 제이에게 어울려 보였으니까. 비록 몸매는 자신이 좋을지 몰라도. 그래서 고민한 결론이, 한껏 치장을 해보자는 거였다. 어리다고 얕** 말아요! 라는 심정으로 백화점 여기저기를 돌아다녔고, 시험 삼아 세련된 옷들을 입어 보기도 했다. 굳이 벗지 않아도 굉장한 몸매였던 유리의 모습에 그녀를 지켜보는 몇몇 여자들이 주눅이 들곤 했지만, 정작 유리는 그런 옷들을 입어 보기만 했지 고르진 않았다.

 

생각보다 비쌌으니까.

 

유리가 돈이 없는 것은 아니다. 4급 공무원에 준하는 혜택을 받는 클로저였고, 그녀는 뭇 여성들이 하는 치장이나 회식 같은 여흥을 그리 즐기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그녀의 월급은, 대부분 자신의 집으로 보내지고 있었다. 강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유리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여흥보다는, 어려운 집 사정을 우선하는 소위 말하는 소녀가장 같은 포지션이었다.

 

그런 그녀의 선택에 부모님은 무리하지 말라며, 아직 네 도움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극구 만류했지만 괜찮다고 한동안 설득한 유리에 의해 결국 그녀의 선택을 존중한 부모였다. 물론 그런 점이 아니라도, 유리가 옷 한두 벌 못 살 정도로 가난하진 않았다. 단지 가족이 눈에 밟혀 섣불리 고르지 못한 것뿐이었다. 애초에 클로저 일을 하다 보니, 요원복이나 활동성 있는 옷이 아니고선 입기도 힘들긴 했으니까.

 

평소에 그리 신경 쓰지 않던 화장이라도 해보자, 하는 심정으로 화장품 코너에 갔지만, 뭘 어떻게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고, 화장품 가격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아 한동안 고민하고 있던 그녀였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중, 집에 있던 엄마의 화장품을 빌리면 어떨까 싶어서 곧바로 그 코너를 빠져나왔던 것이었다.

 

한동안 백화점을 돌아다녔던 유리였지만, 그녀의 팔에 걸린 쇼핑백 안에는 작은 상자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는, 목욕을 하고 나자 하루 동안의 피로가 푹 풀리는 느낌이었다. 적당히 머리를 말리고는, 조심스레 주변을 둘러보는 유리. 그녀는 어느새 부모님 방의 화장대 앞에 서 있었다. 이런 적은 한 번도 없기에 반응을 알 수는 없지만, 분명 들키면 경을 칠거라는 생각에 조심스레 앉고는 화장대를 둘러보았다. 클로저 특유의 움직임으로, 1초도 되지 않아 그녀의 손에 들려진 것은 작은 립스틱이었다.

 

드라마든, 만화든 간에 여성들이 여자답게 보이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립스틱이라 생각되었다. 붉은 립스틱을 맵시 있게 바른 여성들을 보자면, 무언가 **가 있다고 느껴졌으니까.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에 잠시 망설이는 유리였지만, 조심스레 뚜껑을 열어서는 입으로 가져갔다.

 

‘이렇게 하는 거였나?’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아 고민한 유리가, 다시 한 번 시도하기 위해 립스틱을 들어 올릴 때였다.

 

“어, 누나. 여기서 뭐 해?”

찌익- 갑작스런 목소리에 간이 떨어진 줄 알았던 유리가 옆을 돌아보니, 자신의 동생이 서 있었다. 순간 헛손질로 인해 마치 배트맨에 나오는 조커마냥 입술 옆에 빨간 선을 그어버렸지만, 그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위험하다, 그렇게 생각한 유리가 한 손을 입가로 가져가 검지를 든다.

 

“쉿, 쉿!”

“왜 그러니? 무슨 일…”

 

어느새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열심히 신호를 보내던 그 자세 그대로 굳어진 유리였다. 순간 여러 생각이 들었다.

 

‘어떡하지? 위상력으로 일단 방을 빠져나갈까? 아니면 일단 사실대로 말할까? 괜찮을까? 혼나지 않을까? 일단 뭐라도 말을…’

 

그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껏 격앙된 엄마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서, 유, 리. 뭐 하는 거니? 지금…”

 

폭풍 전의 고요마냥, 또박또박 말하며 허리에 양 손을 올리는 엄마. 딸이 자신이 아끼고 아끼던 화장품들을 함부로 쓰다니, 한 번쯤은 있음직한 일이라 생각되었지만, 막상 일어나니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이었다. 일단은 버릇을 고쳐야할 것 같다는 생각에, 호통을 치려던 순간이었다.

 

‘…….’

 

몸을 한껏 움츠린 채, 강아지마냥 울상을 지은 채 엄마를 올려다보는 유리. 그 모습이 어쩐지 짠해졌기에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유리는 한창 학창시절을 보낼 나이임에도 그러지 못했다. 학교에 다니며 공부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절망도 하고 고민도 하고, 그러면서 세상을 알아갈 나이에, 하고 싶었던 검도도 위상력이 발현되어 꿈을 접게 되었고,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나이에 클로저라는 위험한 일을 맡게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자신이 버는 돈의 대부분을 가족에게 양보하는, 소녀임에도 자신을 꾸미는 것보다 가족의 보탬이 되는 일을 우선하는 그런 대견한 아이였다. 아직 부모들에게 어리광도 부리고, 훨씬 많이 즐거운 일들을 보내야 할 소녀는, 애써 강한 척하며 남을 위할 생각만 하였다.

 

그런 아이가, 자신의 딸이 한 번쯤 이런 일을 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눈감아주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어머니지 않은가, 자신은.

 

“…화장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니?”

“어, 음…네….”

 

생각과는 다른 엄마의 모습에, 일단 고개를 끄덕이는 유리. 그에 미소를 지은 엄마가, 유리의 앞에 앉고는 그녀가 갖고 있던 립스틱을 살며시 빼 든다. 분위기를 눈치 챘는지 어느새 동생은 자리에 없었다.

“립스틱은 그렇게 하는 게 아냐, 잘 보렴.”

 

그렇게 말하며, 립스틱을 발라주고 약간의 화장을 해 주는 엄마. 잠시 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연신 굉장하다고 말하며 기뻐하는 유리의 모습을 보니 자신의 일 마냥 즐거워지는 엄마였다.

 

“와, 정말 굉장해요!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마치 딴 사람 같아요!”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 좀 더 가르쳐 줄까?”

“네, 네! 부탁해요.”

 

엄마의 말에, 연거푸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는 유리. 그런 그녀에게 빙긋 미소를 짓고는, 다음에 쓸 화장품을 고르던 엄마가 지나가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그러렴, 근데 별일이네. 유리가 화장에 관심을 다 갖고. 누구 신경 쓰이는 남자라도 생겼니?”

“아, 그…아하하….”

 

엄마의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유리였다.

 

 

 

 

 

강남의 한 술집.

하루의 일을 마친 여러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두 여성이 한 자리를 차지한 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캐주얼한 옷차림의 단발 여성과, 그런 그녀와 대비되는 요원복을 입은 장발의 여성. 검은양 팀의 관리요원인 유정과, 그녀의 친구였다. 이미 맥주 여러 병을 비워버린 여성들은, 얼굴에 홍조를 띤 채 열심히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정말? 정말로 그걸 했단 말이야?”

“그렇다니깐, 몇 번을 물어보는 거야….”

 

친구의 말에, 한숨을 푹 쉬며 말하는 유정. 그렇잖아도 입 밖에 꺼내기도 싫은 흑역사였지만, 애초에 그 방법을 제안했던 친구였고 술을 마시니 절로 입이 가벼워져서 얘기를 꺼낸 것이 화근이었던 모양이다.

“꺄악! 우리 유정이 결국 해냈구나~내숭 한 번 못 떨 거 같던 애가!!”

“그만 하라니깐, 남들이 이상하게 듣잖아.”

 

본인의 일인 마냥 소리치는 친구 때문에 본격적으로 창피해진 유정이, 그녀의 입을 막는다. 사실 유정 자신도 아직 믿기지 않았다. 남자친구 하나 사귄 적 없던 그녀가 초콜릿을 입에 물고 들이댄, 유혹한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짓을 한 것이. 술기운 때문인가 하고 스스로를 자책해**만 진즉에 늦은 일이었다.

 

그런 유정의 손을 치우고 배시시 웃던 친구가, 한 손으로 턱을 받친 채 말을 잇는다.

 

“근데 유정아, 그 사람은 뭐라고 하든?”

“응? 아니…별 말 없었어. 그냥 낯간지럽다고만…”

“에에? 정말이야?”

 

필요 이상으로 놀라는 친구에게 의아해진 유정이, 왜? 하는 물음과 함께 그녀를 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친구는 여전히 턱을 받친 채, 다른 손으로는 젓가락으로 애꿎은 안주를 쿡쿡 찌르며 난처하다는 듯 말한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안 넘어오다니…완전 목석이거나, 아니면 일부러 감춘 것 같은데…최악의 상황엔, 유정이 너에게 관심이 없던 것일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말하며, 갑자기 팔을 뻗어 유정을 껴안는다.

 

“어떡하니, 우리 유정이! 기껏 용기를 냈는데…”

“…됐거든?”

 

슬슬 안 되겠다고 생각한 유정이, 친구의 얼굴을 거칠게 밀어낸다. 원래 활발한 애였지만 오늘따라 그 정도가 심하다고 여겨졌다. 술 때문인가? 곁눈질로 테이블을 보자니, 확실히 주량이 과한 것 같기도 했다. 곧바로 친구를 밀쳐낸 유정이, 술잔을 들며 말한다.

 

“날 걱정해주는 건 고마운데, 네 걱정이나 하지 그래. 어차피 나랑 제이 씨는 별다른 관계도 아니었고, 그때는 술 때문에 잠시 들떴던 것뿐이야. 그러니 아무렇지도 않아.”

 

그렇게 말하며, 힘 있게 맥주를 원샷한 그녀가 소리 나게 잔을 내려놓는다. 입 안에 남아있는 여운을 맛보며 한숨을 쉬는 그녀였지만, 정작 본인은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눈시울이 조금 붉어졌었음을. 정면에서 그녀를 보던 친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동안 유정의 말에 들떴던 친구였지만, 그 모습을 보니 절로 차분해졌다. 아무렇지도 않는 듯 말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거겠지. 아마 자신의 심정을 잘 모르기에 갈등하는 것일 것이다. 이 꽉 막힌 친구는, 학창시절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어린애 같았다. 그렇기에 더욱 신경 쓰이고 말이다.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스스로 알아야 할 문제다, 그렇게 생각한 친구가 적당히 화제를 넘긴다. 이내 그녀가 술병을 들어, 유정의 앞에 놓인 잔에 채워주며 말을 잇는다.

 

“근데 유정아, 내일이 무슨 날인지는 아니?”

“…화이트 데이?”

“잘 아네.”

 

유정의 대답에 빙긋 웃는 친구. 자신도 모르게 대답한 유정이 다시금 낯간지러워져 뺨을 긁적인다. 왠지 신경 쓰이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그런 유정은 아랑곳 않고, 자신의 술잔을 든 여성이 그대로 손을 뻗으며 말한다.

 

“그 사람은 별 말 없었어?”

“응…그런데.”

 

유정 또한 대답하며, 자신의 술잔을 들어 잔을 부딪친다. 이내 다시금 맥주를 기세 좋게 들이키는 유정이었고, 여전히 잔을 든 채 그런 그녀를 보며 생글거리던 친구가 들으라는 듯 말을 잇는다.

“뭐, 너무 신경 쓰진 마. 넌 이제 할 만큼 했고, 나머지는 그쪽이 판단할 문제일 테니. 알아서 하지 않겠어?”

“그렇네….”

 

맞는 말이었다. 자신이 아무리 끙끙 앓던, 중요한 건 떡 줄 사람이 생각을 하냐 마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니까. 친구의 말에, 힘없이 빈 잔을 내려놓는 유정이었다.

 

 

 

 

 

다음 날, 검은양 팀의 대기실.

그날 하루의 임무를 마치고, 다섯 명의 클로저의 한 명의 관리요원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칠판 앞에 선 유정을 중심으로 앞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있는 클로저들. 임무가 끝난 뒤부터 지금까지 손에서 게임기를 놓지 않는 세하와, 그런 세하를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보며 냉정히 유정의 말을 기다리는 슬비. 어째선지 생글거리는 유리와, 자신의 창을 꼭 쥔 채로 앉아 있는 테인, 그리고…현재 유정의 시선이 못 박혀 있는, 무언가를 생각하듯 양 손으로 턱을 괸 채 묵묵히 있는 제이였다.

 

결국 제이는, 임무 이외의 용건은 입 밖에 내지도 않았다. 물론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은 그저 초콜릿을 준 것뿐이다. 그 이상의 말은 입 밖에 내지도 않았다. 그럼 그 초콜릿이 어떤 의미로 해석되든 그것은 자신의 관할 밖이었다. 막말로 눈치 없는 목석 둔탱이라 할지라도,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신이 어떻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아쉬운 점은 감출 수가 없었다.

 

어쩐지 기운이 빠져 아무 말 않고 있자니, 갑작스레 제이의 시선이 자신을 향함을 알아채고는 흠칫한 유정. 하지만 제이는 다시금 시선을 자신에게서 돌렸다.

 

‘…뭐지?’

 

사람을 갖고 노는 게 아닌가 싶은 태도에 왠지 기분이 나빠졌다.

 

“저, 유정 언니. 지시를…”

 

빠직.

 

계속되는 침묵에 입을 연 슬비였지만,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만히 서 있던 유정이, 어째선지 자신이 들고 있던 펜을 양 손으로 부러뜨려 버렸으니까. 당연히 그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그저 온화하던 유정이 갑자기 그런 모습을 보이자, 그렇잖아도 조용하던 대기실이 마치 빙하기가 온 듯 굳어져 버렸다.

 

“아, 아하하…미안해, 기다리게 해버렸네.”

 

자신 때문에 분위기가 싸해졌음을 눈치 챈 유정이,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어넘긴다. 이내 그녀가 갖고 있던 문서를 둘러보며, 알림 사항을 전파한다.

 

 

 

 

 

‘뭐니 대체, 나. 괜히 애들한테 안 좋은 모습만 보이고…’

 

주머니에 양 손을 꽂은 채, 힘 있게 걸어가는 유정. 언제나 신고 있던 힐이 거슬렸지만, 그보다는 자신에 대한 자책감이 더 컸기에 하루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답답한 것이, 말 그대로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아마 얼굴은 ‘나 건들지 마요’라고 쓰여 있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왜 자신이 이렇게 고민하고, 자신답지 않게 화를 내고, 이렇게 아쉬움을 담은 채 발걸음을 재촉하는 걸까?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당연히, 오늘이 화이트 데이임을 과시하는 듯 사탕을 주고받는 연인들의 모습 또한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양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그래, 이건 다 그 사람 때문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유정이,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자주 다니던 거리가 시야에 들어온 유정이 걸음을 멈추었다. 오늘은 약속도 없기에, 친구들과 함께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기분은 꿀꿀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기에 답답해졌다. 일단 맥주 한 잔을 들이켜야 숨이 트일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한 유정이, 자신이 자주 가던 술집을 가기 위해 몸을 돌릴 때였다.

 

‘…응?’

 

순간 유정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그 의심은 오래 가지 않았다. 자신이 아는 한 저런 백발에 삐죽삐죽한 머리를 하고 있는 남자는 그리 없었으니까. 분명 지금 유정의 시선에 놓인 남자는, 검은 양 팀의 제이였다.

 

저도 모르게 슬쩍 몸을 숨긴 유정이 제이를 보며 의아해한다. 왜 저 사람이 여기 있는 걸까? 무언가 약속이 있는 건가? 여러 의문점이 들었지만, 굳이 자신이 결론을 낼 필요는 없었다. 이미 해답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말이다.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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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길어져서 나눈 것이니, 바로 3편도 올리겠습니다.

2024-10-24 22:24:3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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