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순이와 세하의 파티퀘스트

건강아재 2015-03-11 2

구로역의 차원종을 퇴치한 이세하는 다음 임무가 올 때까지 쉬라는 유정이 누나의 말에 곧장 편의점으로 걸어갔다. 새로 나온 rpg게임인 ‘용사부부는 최강입니다.’를 석순이랑 같이하기 위해서였다.


석순이는 오늘도 퀭한 눈으로 편의점 앞에서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다. 어젯밤에도 게임하느라 날밤을 샜는지 바닥을 쓰는 건지 허공을 쓰는 건지 알 수 없는 빗질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한 이세하는 석순이의 뒤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석순이의 양 겨드랑이 사이로 조심스레 팔을 집어넣었다.


일순간에 힘을 주어 석순이를 하늘 위로 들어올렸다.


“어? 어?”


갑자기 붕 뜬 시야에 석순이가 당황하는 사이에 세하가 최대한 차원종 같은 소리를 흉내냈다.


“키에에엑. 인간, 잡아먹는다.”


“차, 차, 차원종!”


세하의 손에 잡힌 석순이가 몸을 토끼처럼 웅크리더니 최대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차원종님…저보다 여기 편의점 햄버거가 더……맛있어요. 돈은 안 내셔도 되니까…잡아먹지 마세요.”


이세하를 정말로 차원종으로 착각했는지 석순이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편의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편의점을 가리킨 손가락 끝이 파르르 떨리는 게 겁을 먹어도 단단히 먹은 모양이었다. 


예상 이상의 반응에 결국 이세하가 피식 웃고 말았다.


“쿡쿡. 세상에 말을 하는 차원종이 어디 있냐. 크크.”


구로역의 차원종을 퇴치한 이세하는 다음 임무가 있을 때까지 쉬라는 유정이 누나의 말에 곧장 편의점으로 걸어갔다. 요새 즐겨하고 있는 rpg게임인'용사부부는 최강입니다.'를 석순이랑 같이 할 생각이었다. 


편의점에 가보니 석순이는 어젯밤에도 게임하느라 날밤을 샜는지, 바닥을 쓰는 건지 허공을 쓰는 건지 알 수 없는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다. 졸음이 한계에 도달했는지 석순이는 빗자루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무방비한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한 세하는 석순이의 뒤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석순이의 가슴을 조심하며 양 겨드랑이 사이로 조심스레 팔을 집어넣었다.


일순간에 힘을 주어 졸고 있는 석순이를 하늘 위로 들어올렸다.


"어? 어?"


갑작스런 부유감에 석순이가 당황하는 사이에 세하가 최대한 차원종 같은 소리를 흉내냈다.


"키에에엑. 인간, 잡아먹는다."


"차, 차, 차원종!"


이세하를 정말로 차원종으로 착각했는지 석순이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몸만 파르르 떨었다. 석순이가 떨리는 손가락을 겨우겨우 펴들어 편의점을  가리켰다.


"차원종님…저보다 여기 편의점 햄버거가 더…맛있어요. 돈은 안 내셔도 되니까…잡아먹지 마세요. 집에 못해본 게임이…잔뜩 있고. 다음 달에 나오는 신작들도 해봐야 하는데…."


예상 이상의 반응에 세하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쿡쿡, 무슨 여자애가 죽을 때까지 겜타령이냐. 크크."


귓가에 들리는 친숙한 목소리에 석순이가 눈을 떴다.


"어, 어라? 세하야, 차원종은?"


뒤에 있어야할 차원종은 온데 간데 없고 이세하의 얼굴이 보이는 의아한 상황에 석순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거 나야. 쿡쿡."


그 말에 석순이가 속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아까 전에 한 행동들이 떠오른 석순이는 부끄러운 나머지 양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이런 장난…재미 없어…." 


짖궂은 장난에 맘이 많이 상한 석순이는 세하의 눈을 피했다. 파티퀘스트 좀 같이하자고 말하기도 전에 파티 쫑날 낌새를 느낀 세하는 석순이를 땅에 내려다주었다.


세하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장난이야, 장난. 지나쳤다면 사과할게. 그보다 게임이나 하자고. 너도 용사부부 하고 있지."


세하가 주머니에서 게임기를 꺼내들었지만 석순이는 묵묵히 빗자루질만 할뿐이었다.


"석순아?"


"나…알바해야 해."


삐졌다. 


편의점 물건이라면 송은이 누나랑 특경대 대원들이 싹쓸이 해가서 석순이가 할 일이라고는 지금 하고 있는 빗자루질이 전부였다. 편의점 사장도 특경대의 출입통제로 구로역에 못 들어오는 상황이라 논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었다. 


"야, 야. 그러지 말고. 너 전에 한다던 소몰이 퀘스트 도와줄테니까."


세하가 석순이에게 치근덕댔다. 


그러나 반응이 없었다. 말도 섞기 싫어하는 것 같았다.


평상시 같았으면 그냥 혼자 게임하러 갔겠지만, 용사부부 2인 파티퀘스트로만 얻을 수 있는 희귀템 때문에 석봉이가 꼭 필요했다. 토라진 석순이를 달랠 방법이 뭐 없나 세하가 고민하다가 주머니에 손이 갔다. 원래는 세하가 쓰려고 차원종과 싸우면서 틈틈이 모아놓은 거지만, 아무리봐도 석순이랑 같이 게임을 하려면 이 방법뿐인 것 같았다.


"석순아, 너 이거 부족하지 않아?"


"그, 그건……분명 통제 때문에 구할…수 없다고 했는데."


세하가 들고 있던 물건을 본 석순이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게임기를 키는데 반드시 필요한 건전지였다. 흔한 물건이지만, 통제상황으로 물자의 유입이 막힌 구로에서는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하신 몸이었다. 


아까까지 무심하게 행동하던 석순이는 노다지라도 본 사람처럼 건전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렇게나 많이……어떻게……구한 거야?"


"차원종 잡으니까 떨어지길래 몇 개 챙긴 건데. 석순이 너 다 줄게."


세하의 파격적인 제안에 석순이가 너무 놀라서 잡고 있던 빗자루를 놓쳤다.


"지, 진짜 다…나 주는 거야. 너도 게임하려면……이거 필요…하잖아."


"나야 또 차원종 잡으면 되니까."


세하가 석순이의 손 안 가득 건전지를 가득 채워줬다. 손에 든 건전지를 본 석순이는 벅차오르는 감동에 햄스터를 뺨에 비비듯이 건전지들을 볼에 갖다댔다. 


"건, 건전지가 이렇게나 많이……게임도 맘껏……할 수 있어.…세하야 넌 정말 좋은 친구야."


석순이가 저렇게 기뻐하니 세하도 기분이 좋았다. 


"건전지도 충분하겠다가 같이 밤새도록 용사부부하자고."


"근데……너 구로역 차원종 퇴치해야 하는 거 아냐?"


"아까 전에 다 때려잡았는데 지금 또 나오겠어. 한 3~4 시간은 거뜬해."


에에에에에에에엥.


"**, 왜 하필 지금이야. 또."


세하는 사이렌 소리에 악담을 퍼부우면서 사이킥무브를 준비했다.


"석순아, 금방 끝내고 올 테니까 파티퀘스트 좀 받아줘. 2인 용골셋."


"세하야."


석순이가 말하기도 전에 이미 세하는 사이킥무브로 차원종 발생지역으로 날아가버렸다. 


"가버렸네…건전지 준 거 고맙다고…말 못했는데."


혼자 남은 석순이는 세하의 부탁대로 2인 파티퀘스트 목록을 ** 용골셋을 주는 2인 파티퀘스트를 찾았다.


"용골셋 레시피?"


2인 파티퀘스트는 용골셋을 주는 게 아니라 레시피를 주는 퀘스트로 재료는 따로 모아야했다. 이 퀘스트는 먼저 다른 반복퀘스트로 재료를 모으고 맨 마지막에 하는 것이었다. 세하는 이 사실을 모르는지 레시피에 필요한 재료는 한 개도 갖춰져있지 않았다. 재료템도 하루이틀에 모을 수 있는 양이 아니라 차원종과 싸우느라 바쁜 세하가 모으기에는 벅차보였다. 


"세하가 이걸 알면…실망…할 건데."


석순이는 자기 캐릭터 아이템창을 켜서 용골셋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템을 세하 캐릭터 아이템창으로 옮겼다. 


"적어도 게임할 때는…세하가 웃었으면…좋겠어."









세하는 용골셋을 끼고 싶다는 집념 하나로 구로역에 나타난 차원종을 싹쓸이했다. 그 결과 작전개시 1분도 안 돼서 임무를 마쳐 유니온 작전시간 최연소 기록을 세웠다. 유정이 누나가 알파퀸의 아들은 역시나 다르다고 칭찬했지만, 세하는 임무 끝나자마자 곧장 용골셋 파티퀘스트를 깨러 편의점까지 사이킥무브로 날아갔다.


편의점에 도착하니 이미 석순이가 게임을 당장에라도 할 수 있게 준비를 다 해놓았다. 세하는 석순이가 준비한 테이블에 앉아 바로 ‘용사부부는 강합니다’에 접속했다.


용골셋 파티퀘스트의 목표인 사골드래곤을 찾아 필드를 돌아다녔다. 사골드래곤과 조우했을 때, 세하와 석순은 환상의 팀워크로 사골드래곤의 hp바를 1줄까지 깎아냈다.


포획만 하면 퀘스트는 완료였다. 


빈사상태에 접어든 사골드래곤의 패턴이 바뀌었는지 갑자기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세하가 재빨리 뛰어가 대검을 휘둘렀지만, 간발의 차로 꼬리만 자르고 놓치고 말았다.


이내 사골드래곤은 대검이 닿지 않는 저 하늘 높이 날아올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다 잡은 물고기가 도망치는 허망한 순간이다. 


“석순아, 미안. 내가 패턴 변화를 빨리 알아차리고 섬광탄이든 그물망이든 날렸어야하는 건데.”


“………….”


석순이는 세하의 말에 고개도 돌리지 않고 게임기를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대체 뭘 그렇게 보나 했더니 석순이는 활로 사골드래곤을 조준하고 있었다. 


“석순아, 놓친 건 억울하지만 이 게임 활 명중률로는 저거 못 맞춰. 괜히 화살 낭비하지 말고 퀘스트 다시…….”


휘리리릭 퍽.


키에에에엑


하늘 높이 날아올랐던 사골드래곤이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땅으로 추락했다. 하늘에 뜬 몬스터는 급소를 맞으면 떨어진다지만, 설마 100발 중 1발도 맞추기 어렵다는 이 게임 활로 급소 판정을 터트린 것이다. 


세하의 놀라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땅바닥에 곤두박질친 사골드래곤 주위에 파지직거리는 마비 이펙트가 생겨났다. 발밑에는 마비함정이 설치되어있었다. 드래곤이 마비함정 위까지 날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화살을 쐈다는 얘기였다.


1퍼센트가 아니라 0.1퍼센트의 플레이어가 와도 불가능한 묘기였다.  


“세하야, 포획망.” 


군더더기 없는 콤보에 얼이 빠져있던 세하가 그 말에 부랴부랴 포획망을 던졌다.


마비함정과 추락 보너스로 포획 확률은 70퍼센트. 여기서 잡는다면 퀘스트는 그걸로 종료지만, 실패한다면 퀘스트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크아아아아앙.


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제발


크앙……크아…크아……………….


[몬스터의 포획에 성공하셨습니다.]


“아싸, 퀘스트 깼다.”


세하는 너무 기쁜 나머지 머리 뒤로 만세를 그리다 의자와 함께 자빠져버렸다. 같이 게임하고 있는 석순이가 놀라며 황급히 세하의 몸을 일으켰다.


“으아아…세하야……어디 안 다쳤어?”“괜찮아, 괜찮아. 차원종과 싸우는 몸인데 이 정도에 다치겠어.”


“자기 몸은……소중히 다뤄야 하는…거야.”


“석순아, 지금 나 걱정해주는 거야?”


쾌활한 웃음 지으며 세하가 석순이 눈을 몇 초간 지그시 바라봤다. 얼굴이 초 단위로 붉어지더니 석순이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 그야……아픈 건…안 좋은 거니까.”


“부끄러워하기는.”


“부, 부끄…러워……안 했어.”


필사적으로 목을 쥐어짜는 게 티가 너무 났다. 부끄럽다고 해도 누가 믿을까. 더 놀렸다가는 얼굴이 홍시가 돼서 빵하고 터질 것만 같아서 그쯤 해뒀다.


“석순이 덕분에 용골셋을 가지게 됐네. 고마워.”


하지만 칭찬은 별개죠.


푸쉬이이이익.


석순이의 얼굴이 화끈거리는 게 다 보였다. 석순이가 평소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는 않아 표정이 적은 애인 줄 아는 사람이 많지만, 알고 보면 이렇게 감정 하나 제대로 숨기지 못하는 순박한 소녀였다.


“용골셋도 얻었겠다. 이제 장착만 하면 되나.”


세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게임기를 집어 들었다. 퀘스트를 완료한 보상을 받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용골셋 레시피?”잘못 봤나 싶어 다시 확인해 봐도 보상 창에 뜬 글자는 용골셋 레시피였다. 그 말은 재료가 없으면 템을 못 만드는 건데.


“또 퀘스트 뛰어야 하는 거야. 언제쯤이면 용골셋을 맞출 수 있을까. 하아.”


세하가 한숨을 내쉬자 옆에 있는 석순이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어쩌면………있을지도.”


“뭐라고? 작아서 못 들었어.”


“……어쩌면 템창에 재료가………있을지도.”


“에이, 설마 레시피만 얻는다고 템을 뚝딱 만들어낼 수 있…….”


[용골셋이 제작 가능합니다. 레시피를 써서 제작하시겠습니까?]


“……수 있네.”


용사부부가 이렇게 친절한 게임이었던가? 세하가 알기로 용사부부는 노가다가 주 컨텐츠라 퀘스트 하나 깼다고 일사천리로 모든 게 해결되는 호락호락한 게임이 아니었다. 템창에 있는 용골셋 재료템은 세하도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용골셋 만들기만 하면 되는데 무슨 상관이야.”


게임사의 친절 정도로만 생각하고 세하는 용골셋을 제작했다. 세하는 게임기 보느라 몰랐겠지만, 석순이가 자기가 준 게 들통이 날까 봐 조마조마해 한 사실을.


‘들키지 않았나 보네…. 세하가……자기 동정 하냐며……화내면………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석순이는 세하 몰래 안도의 한숨을 소리 없이 내쉬었다.


그걸 모른 채 제작에 집중하던 세하는 용골셋 제작에 걸리는 시간을 보고는 그럴 줄 알았다라고 말했다.


“그럼 그렇지. 이 게임사가 곱게 템을 줄 리가 없지. 제작에 30분이나 걸리잖아. 30분 동안 뭐 할래. 석순아.”   


“…용골셋 얻느라 피곤한 데……잠시 쉴까?”


차원종 잡느라 무리도 했고, 연이어 게임도 한 세하도 조금 지친 터라 쉬기로 했다. 자연스레 편의점의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진열대는 물건이 없어 휑했고. 쓰레기차가 구로역에 들어오지 못하니 쓰레기봉투가 창고에 사람 키보다 높게 쌓여 썩은 내를 냈다. 전력상태도 별로 안 좋은지 제대로 돌아가는 냉장고는 한 대뿐이었다.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인 휴게실은 고시원 수준이고.


세하 같았으면 특경대 대원을 **서 하루라도 빨리 구로역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사정했을 거주환경이었다.


‘석순이도 대단해. 게임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이런 데에 남다니. 나 같으면 알바비 그냥 포기했을 텐데.’


그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에 갑자기 볼에 느껴지는 냉랭한 기운에 세하가 깜짝 놀라 옆을 바라봤다.


“차, 차가웠어?……미, 미안.”


석순이가 콜라를 들고 있었다. 콜라를 주다가 세하 볼에 실수로 갖다 댄 듯했다.


“아냐, 실수로 그런 건데. 그런 거 가지고 사과하지 말라고. 괜히 나만 더 미안해지잖아.”


“미, 미안…….”


석순이가 사과했다.


“사과할 필요 없다는데도. 근데 석순아, 그 콜라는 뭐야?”


“…콜라……같이 마시자.”


“집에 지갑을 놔두고 와서 말이지. 다음에 마실게.”


“……세하야. 그냥 마셔……돈은………내가 낼게.”


“괜찮아? 너 새로 나온 게임 클바브웨 산다고 돈 모으는 중이잖아.”


“…그야……세하는 차원종과 싸워 이기는………영웅이잖아.……이 정도는 내가……사야지.”


……………….


영웅이라는 소리에 세하의 머리가 다 머쓱해졌다. 세하가 부끄러운 마음에 머리를 손으로 긁으며 딴청을 피웠다. 


“여, 영웅? 내가 무슨. 난 그저 평범한 클로저인걸. 영웅이라니 나한테는 너무 과한 호칭이야.”


“……아, 아냐 세하야…넌 매일…그 무시무시한 차원종과 싸우잖아…그런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아니야. 정말 대단한 일을………하고 있는 거야. 영웅이라고 불려도……손색이 없어…….”


석순이가 세하에게 콜라를 내밀었다.


「세하야, 이것 봐. 내가 위상력 측정을 했는데 말이야. 너보다 높은 수치가 나왔데. 처음부터 이런 수치는 사람들이 난생처음이라며 나보고 다들 천재래, 천재. 이러다 A급요원까지 한달음에 승진하는 거 아냐?」 
세하는 묵묵히 콜라를 받아들었다.


「정말로 이 아이가 알파퀸의 아들이 맞는 건가? 위상력 수치가 이렇게 평범해서야. 게다가 지금 검은양팀 중에서도 꼴찌라며. 알파퀸의 아들이라는 호칭이 다 아깝군.」


콜라는 차가웠다. 


「저기 알파퀸 아들 지나가신다. 능력도 없으면 엄마 덕에 특별취급 당하는 요원님 아냐. 알파퀸은 저런 애가 태어날 줄 알았다면 미역국이 잘도 목구멍에 들어갔을까?」


콜라가 목을 타고 위로 내려가면서 생긴 탄산 때문에 가슴이 따가웠다.


“저기 석순아. 나 그렇게 대단한 인간 아니야. 잠재력만 높지 위상력은 애들 중에서 꼴찌야. 작전 중에는 항상 슬비에게 말 안 듣는다고 혼나고. 어른들은 나 같은 게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 알파퀸의 명예에 먹칠한다며 뒤에서 욕해. 차라리 나 같은 불량품 말고 유리 같이 재능 있는 애가 우리엄마 뱃속에서 태어났으면 이런 일 없었을 텐데.”


자기 같은 게 태어나는 바람에 엄마의 재능을 물려받을 알파퀸의 아들이 태어나지를 못했다. 모든 게 세하 자신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엄마를 욕하는 것도, 자신이 위상력이 낮은 것도, 모두 한심한 자신이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자신은 영웅이니 뭐니 그런 대접을 받을 가치가 없었다.


비난받아 마땅했다.


알파퀸의 아들로 태어났으면서도 평범한 클로저에 지나지 않으니까.


와락.


숨이 숨쉬기 힘들 만큼 거대한 덩어리가 세하의 얼굴을 압박했다. 석순이가 일어서서는 의자에 앉아있는 세하를 꼭 껴안아주고 있었다.


석순이가 세하의 머리카락을 아기 다루듯이 쓰다듬었다.


“……세하야………그렇게까지 너를 몰아세우지……마.……너는 이미 충분히……노력했어. 어른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엄마의 명예를…지키려고 열심히……했잖아. 보통 사람이었으면………그냥 포기했을…거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세하 넌 대단한 사람 맞아.”


석순이가 세하의 정수리에 자기 얼굴을 갖다 댔다.


“오늘만 해도 넌…구로역 사람들을 차원종에게서……지켜냈잖아. 적어도 구로역 사람들은 널 자기들을……차원종에게서 구해준 영웅으로…생각한다고.…자기를 너무 미워하지 마. 넌 구로역의 영웅이니까.”


‘석순아.’


석순이의 말을 듣고 있으니 세하의 가슴속에 쌓인 묵은 때가 깨끗이 씻겨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답답한 우리에 갇혀 있다가 넓은 들판으로 빠져나오는 상쾌한 기분.   


“좋아해.”


세하는 자신이 지금 지니고 있는 감정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세, 세하야? 방금 뭐라고…?”


뜬금없는 사랑 고백에 석순이가 놀라서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세하는 또 다시 이 상쾌한 기분을 입으로 표현했다.


“좋아…….”


[용골셋 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


때마침 게임기에서 용골셋 제작이 완료됐다는 메시지가 띠로롱 울렸다. 그 덕에 세하가 우수에 잠겨있던 세하가 제정신을 되찾았다.


“…세하야. 조, 좋아한다니 그게……무슨 뜻이야?”


자기 뱉은 말이 떠오른 세하의 얼굴이 급속도로 빨개졌다.


“그, 그건 말이지. 에, 또, 그게, 저. 그, 그래! 용골셋이 다 만들어져서 기분이 좋다는 얘기였어.”


“뭐, 뭐야. 그런 거였어. 난 또……고백이라도 한 줄 알았네.”


고백이라는 단어에 두 사람 사이에 기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세, 세하야. 뭐라고 말 좀 해봐. 어색해……죽겠어.”


“아, 아니 말하라고 해도 말이지. 이런 상황에 어울리는 말은 모른다고. 그, 그보다 언제까지 붙어있을 거야. 나, 나 숨쉬기가 좀 힘든데.”


“미, 미안…….”


석순이가 세하한테서 떨어졌다. 그러나 이상야릇한 공기는 여전히 어색하게 둘 사이를 돌아다녔다. 세하가 이대로 있다가는 뭔가 사고를 칠 것만 같아서 먼저 침묵을 깼다.


“그, 용골셋도 다 만들었는데 게임이나 할까? 많, 많이 쉬었잖아.”


“그래…30분이면 많이……쉬었지.”


두 사람은 게임기를 가지러 각자 자리에 앉았다. 말없이 자기 눈앞에 있는 게임에만 서로 집중했다.


띠리링.


동시에 서로의 게임기에 쪽지가 도착했다.


[축하합니다. 석순님과 세하님의 친분이 일정량 이상 쌓이셔서 새로운 2인 파티퀘스트가 해제되었습니다. 2인 파티퀘스트: 결혼식장에서 식 올리기.]


푸쉬쉬이이이익.


편의점에서 두 개의 열무가 발갛게 익어갔다.


이 퀘스트는 그 날 아무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아서 퀘스트는 시작조차 못했다. 퀘스트는 용사부부를 끝내는 날까지 미수락 상태로 남겨졌다. 


하지만 먼 훗날, 두 사람은 많은 사람의 축복 아래 퀘스트를 완료했다.





2024-10-24 22:24:2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