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의 통돌이는 엄청난 것을 가져왔습니다(2)
사일로시빈 2015-03-10 14
오디션을 본다면 심사위원을 울렸을만한, 관객의 고막을 찢고 유리잔을 폭발시킬만한 풍부한 성량을 한줄기 길게 뽑아낸 것이다.
애쉬는 그런 음파병기에도 아랑곳 않고 단지 헤드셋을 살짝 들어올린채,
"더스트, 조용히 해. 지금 석봉이랑 승급전 중이니까."
라는 밉살맞은 말을 해댔다.
물론 이 건방진 남동생은 자기 아쉬울 때만 누나라고 부르는 간사한 족속이었지만, 더스트는 그 쪽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아래가 허전함을 깨달은 것이다. 닿을리 없는 얕은 바람이 살랑살랑 맨살을 간질이는 감촉이 확실히 전해졌다.
어느 A급 요원께서 산들바람베기라도 시전한 것마냥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바람이었다.
곧 고위험 차원종 경보와 함께 차원문을 열고 더스트가 나타났을 때 세하는 그다지 놀라지도 않았다.
풍성하게 주름이 접혀진 치마를 꾸욱꾸욱 끌어내리면서, 잿빛 망사스타킹에 감싸인 날씬한 다리를 조심스레 땅에 내딛는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전구마냥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있어 세하는 무심코 귀엽다고 생각했다.
또 그녀는 전혀 몰랐겠지만, 머리에는 하얀 토끼귀 머리띠가 쓰여져 있었다.
세하는 '기왕이면 바니걸 복장까지 물질변환할걸...'이라고 생각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자신의 뺨을 때렸다.
더스트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한 거야?"
"비밀."
"그, 그렇게나 가지고 싶었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
"아니, 난 너한테 이걸 돌려줄건데."
세하는 자신의 신사도를 어필하며 약간 우쭐하게 대답했다.
기왕이면 깨끗하게 돌려주고 싶은데 손에서조차 땀이 나서 천이 살짝 젖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더스트는 의외의 대답을 해왔다.
"왜? 냄새가 안 나서?"
이 대목에서 세하는 격하게 기침을 했다. 제이의 정신을 본받아 나쁜 피라도 토해내는 것처럼 보였다.
"넌 날 얼마나 쓰레기로 만드려는거야."
"물론 난 평소에 단정하고 둔감한 너도 좋아하지만, 네가 추잡하게 타락하는 꼴을 보는 걸 더 좋아하니까."
"그럴 일 없다고."
"그래서? 그걸로 날 어떻게 괴롭힐 거야? 유니온의 추한 늙은이들에게 경매를 붙일 거야? 아니면 조각조각 잘라서 버릴 거야?"
"지, 진정해."
그녀는 인간과는 명확히 다른 공감 능력과 가치관, 윤리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몇가지 감정은 겹쳐지는 부분이 있었다.
최초에는 당혹스러웠고, 직후에는 분노했으며, 그 다음에는 수치심을 느꼈고, 곧 그 수치심은 흥분으로 바뀌었다.
밟던가 밟히던가, 더스트에게는 어느 쪽이든 최고로 재밌는 놀이었다.
요컨대, 그녀에게 수치심이란 더 높은 경지의 쾌락으로 가기 위한 경험치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 짧은 시간동안 벌어진 일련의 사태로 인해 이전보다 더 답이 없는 존재로 진화한 것이다!
"아앙♡ 네가 그걸 가지고 날 협박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너무 흥분되는 거 있지? 그래서 이런걸 준비해왔어."
그녀는 곧 주머니-물론 모두가 알다시피 그녀의 옷에는 주머니가 없다-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 목에 차기 시작했다.
개목걸이는 개가 차라고 있는 것이다. 차원종의 개목걸이는 적어도 합성차원수가 차야하는 것이 틀림없다.
목에 딱 맞는 가죽 목걸이에는 하트모양 쇠붙이가 달려있다. 그녀는 목줄을 건네 세하의 손에 쥐어주었다.
세하는 한참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반응했다.
"........어어어엉?!"
더스트가 뺨에 살짝 손을 올리며 수줍은 목소리로 고백했다.
"실은.... 우리 군단에서 팬티를 훔쳐간다는 건 청혼하는 것과 같아♡"
"청혼 이상하지 않아?! 거짓말이지! 절대 거짓말이지 그거?!"
"그래서 이제부터 난 남친...아니, 남편에게 복종하도록 하겠어♡"
아까부터 꿀을 몇 리터 삼키고 왔는지 끈적하게 녹아내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세하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아니?! 아까부터 하트 너무 많고!"
"물론 군단에서도 바람은 용서하지 않으니까♥?"
"하다못해 까매졌고!"
"하객은 누굴 부를까? 역시 이슬비 그 계집애를 묶어놓고 우는 꼴을 볼까? 아냐, 마나나폰은 어때? 걔네가 박수는 잘 쳐."
"식 올릴 생각이냐!"
상대적으로 작고 가녀린 체형의 그녀가 안겨들자 세하에게 딱 맞았다. 마지 깨진 도자기 조각이 맞물리는 것처럼 보였다.
자연스럽게 세하는 한쪽 손은 목줄을 쥐고, 다른쪽 손은 허리를 감까쥔 모양새가 되었다.
더스트는 백자마냥 고운 뺨을 세하의 가슴에 문지르면서 살짝 치켜올라간 눈을 여우처럼 떴다.
"이제 어떻게 할래? 내 목을 조를 거야? 아니면 날 바닥에 기어다니게해서 내가 팬티를 안 입은 꼴을 모두에게 보여줄래?"
"안 해!"
"그렇게 말하면서 손은 놓지를 않네? 그렇게 날 길들이고 싶어?"
세하는 아직 이런 유혹에는 내성이 없는 순진한 고등학생이었다.
성인이 ***을 보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 이 나라에서 아직 미성년자인 세하는 건전한 등급물 심사를 위해 정신을 차려야했다.
이런 상황에서 흔히 게임 주인공들이 하는 행동을 떠올린다.
1. 유혹에 넘어간다.
2. 상대를 유혹한다.
3.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척 플래그를 꽂는다.
4. 유혹에 넘어가는 척 상대를 죽인다....
역시 게임은 현실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최후의 보루로 색욕과 가장 거리가 먼 높으신 분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후덕하고 온화한 인상의... 홋홋홋홋하고 웃는 흰 머리의 부처님이 떠올랐다.
세하는 평정심을 가지고 부처님이 근엄하게 조언하는 것에 귀를 기울여본다.
[포기하면 편해... 하지마..]
대사 틀렸잖아! 그거 아니잖아!
물론 복잡한 세하의 머릿속과는 반대로 더스트는 이미 잔뜩 몸이 달아오른 상태였다.
"저기, 이세하. 잊지 않았지? 나 지금 아무것도 입지 않았는데?"
그녀가 살짝 치마를 끌어올리기에 세하는 실눈을 뜨고 고개를 얼른 돌렸다.
쿡쿡하고 무척 간지러운 웃음소리와 함께 그녀가 고개를 기울이며 비릿한 미소를 흘린다.
"봐도 되는데? 봐, 아직도 넌 내 팬티를 소중하게 쥐고있잖아?"
"가, 가져가라고... 이제 됐..."
"엄청 젖었네? 이래서야 이 자리에서 입고싶어지는걸?"
"야!?"
하지만 세하의 정조의 위기는 그렇게 빨리 찾아오지 않았다.
아까 들어보았던 익숙한 목소리가 공간을 도약해 귓바퀴에 안착했다.
"잠깐 기다려."
흥이 깨진 더스트가 살기를 담아 시선을 흘겼지만 상대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석양을 향해 눈물을 흩뿌리며 달려나갔던, 검은양 팀의 리더 이슬비다.
그녀는 더스트만큼이나 왜소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와 별개로 해를 등진 지금의 모습은 무척 늠름해보였다.
두 여성의 눈빛이 허공에서 격렬하게 부딪쳤다.
"상황은 모니터링하고 있었어."
현장에 전투지원을 나가는 클로저들은 응급상황에 대처와 지원을 위해 관리요원이 상황을 모니터링하도록 되어있다.
세하는 지원군이 왔다는 안도감보다는 더스트와의 대화가 전부 보여졌다는 수치심에 머리를 박고 싶었다.
"이세하, 네가 더스트의 팬티를 좋아하는 인간쓰레기라는 것은 잘 알았어."
"아니, 하나도 모르고 있잖냐 너. 제대로 안 봤지?"
"하지만 네가 아무리 쓰레기라고 해도 넌 우리의 동료고, 중요한 전력이야. 네가 차원종에게 가도록 두진 않겠어."
이후 슬비는 실뜨기를 권하는 모양새로 들고있던 그녀의 머리색보다 옅은 분홍빛의 천조각을 벌렸다.
"자."
"아니, 팬티는 됐으니까!"
세하는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더스트는 비웃으며 자신의 물건을 원반마냥 빙글빙글 돌렸다.
"그런 유아적인 물건으로 내 세하를 꼬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아냐... 언제부터 날 소유물 취급하는거냐 너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더스트. 세하는 그런 유아적인게 취향인 로리콘이야."
"아니잖아!?"
"흥, 이슬비. 그렇게 따지면 납작한 너보다는 내가 더 세하에게 어울리는게 아닐까?"
"네가 더 납작..... 아니 내가 잘못했으니까 밟지마라."
"그게 너의 패인이야 더스트. 넌 네 외모를 전혀 활용하지 못했어. 그런 어른스러운 속옷으로는 걔를 흥분시킬 수 없어."
"아니라고."
"큿..... 이세하가 내 생각보다 훨씬 **였다는 거야?"
"아냐. 야. 아니라고. 니들 내 말 안 듣지? 들리긴하냐? 여보세요?"
""시끄러, 이세하. 닥치고 있어.""
실은 이 녀석들은 모두 사이가 좋고 자신만 외톨이인 것이 아닐까? 이럴 때는 그냥 구석에서 얌전히 그림만 그리면 되는걸까?
시무룩해진 세하가 건블레이드로 바닥에 글자를 새기려는 그 순간 다른 목소리가 겹쳐들어왔다.
"기다려!"
세하에겐 무척 반가운 목소리였다. 청량음료처럼 주변에 활력을 전해주는 그녀의 동료, 서유리의 목소리인 것이다.
손이 닿지않는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듯한 상냥한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세하는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지만 늘 고마워하고 있었다.
"상황은 모두 모니터링하고 있었어!"
세하는 고마움을 고이접어 날려보냈다.
설상가상으로 실은 이게 유니온의 모두가 짜고치는 고도의 몰래카메라 기획이 아닌지 의심되기 시작했다.
"세하는, 세하는 로리콘이 아냐! 너흰 모두 세하를 모르고 있어! 세하는 그런 아이가 아냐!"
"유, 유리야...."
"세하는..... 세하는 큰 가슴을 좋아하니까!!"
"그냥 가라....."
한창 논쟁 중이던 슬비와 더스트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봉긋하게 솟아오른 언덕은 단추의 구속이 답답한듯 힙찬 위용을 뽐내고 있다.
두 여성은 동시의 고개를 내려 자신의 발가락을 보았고, 이윽고 일그러진 표정으로 유리를 응대했다.
"아냐 서유리. 틀렸어. 세하는 그런 지방덩어리를 좋아한 적이 없어."
"너무하지 않아?!"
"이번만큼은 네 의견에 동의해주겠어. 넌 여기 낄 자격이 없으니까 발가벗고 세하 옆에서 기다리고 있어."
"에?! 둘이 같은 편이야?!"
유리는 울먹이면서 가방을 들어보였다. 주제에 엄청 부끄러워하고 있어서 세하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나, 난 팬티랑 브래지어가 세트니까!"
"비, 비겁해 서유리. 끼워팔지 말아줄래?"
"끼워파는거 아니다 뭐!"
세하는 얘네 전부 집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볼을 꼬집었더니 현실이었다.
여차하면 자신을 향해 발포할 수 있게 건블레이드를 조심스럽게 배쪽으로 돌렸다.
만약 여기서 더 나가서 유정 누나가 "세하는 완숙한 여성이 취향이야!"라던가 테인이가 "세하 형?"하고 끼어든다면 발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직후에 끼어든 여성은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잠깐 다들 기다리세요!"
더스트와 슬비, 유리는 모두 상당히 짜증이 난 상태였고 금방이라도 상대의 멱살을 잡아 콘크리트에 박아버릴 수 있을 기세였다.
하지만 이런 불꽃튀는 전장에 끼어든 여성은 무척이나 가녀리고, 나약해보였다.
유니온의 수상한 연구원이자 통돌이의 주인, 이빛나였다.
동시에 이 모든 상황의 원흉이 아니던가. 세하는 원망의 눈길을 보냈지만 빛나는 신경도 쓰지않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팬티의 가치는! 누가 입었는가가 중요하지 않아요! 여러분은 모두 그걸 잊고있어요!"
셋이 흥미를 보였다. 세하는 건블레이드에 위상력을 모으던 것을 멈췄다.
빛나는 이슬처럼 매달린 눈물을 허공에 흩뿌리며, 새빨갛게 달아오른 표정으로 외쳤다.
"방금 벗었다는게 중요한 거라구욧!"
세하는 "아니, 입는게 훨씬 중요하니까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너무 기침을 심하게 하고있던 탓에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와는 별개로 슬비는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며 분한 표정을 지었고, 유리는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더스트가 무릎이 아파보일 정도로 털썩 주저앉아 동공에 지진을 일으켰다.
"나, 난 이미 벗고있어서 더는 벗을 팬티가 없어... 인간따위한테... 이 내가 지다니..."
군단장이 그런 거에 질 정도로 시시한 존재였냐고 딴죽을 걸고싶었지만 그럼 더스트의 편을 들어주는 것처럼 들릴 터였다.
어째서 이렇게 상황이 미쳐돌아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오만에서 비롯되었다.
애초에 팬티 한 장으로 신서울을 침공하지 말라고 요구하는게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세하는 이 일을 매듭짓기로 결심하고, 입을 굳게 다문채 일어섰다.
"모두 기다려. 중요한건 내 선택이야."
더스트가 화사한 표정으로 이쪽을 올려다보았다.
"역시 남편! 날 고르는 거겠지?"
"이세하. 차원종과 손을 잡는 순간 널 적으로 간주하겠어."
"세하야...."
"세하군....."
네 명의 미소녀-물론 빛나는 소녀가 아니며, 더스트는 더더욱 아니었지만-가 꽃밭을 연상시키는 촉촉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세하는 이런 상황에서 두근거리진 않겠다고 몇번이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애써 건조한 말투로 힙겹게 내뱉었다.
"........공정하게 시합을 하겠어. 이 팬티들을 물질변환을 해서, 가장 유용한 물건이 나온 사람이 승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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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줄 놓음
3편에서 끝나는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