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단장 이세하] 운증용변 STD(雲蒸龍變 Seha The Dragon) 【 1 】
가람휘 2015-03-09 6
【 1 】 별빛에 잠겨라
“이번 작전은 복구 지역에 나타난 차원종의 섬멸이야. 뭐 질문 있는 사람?”
자리를 비운 김유정 대신 작전내용을 전달하는 이슬비의 말에 이세하가 손을 들었다.
“또 마리아마리아 같은 녀석이 나오는 건 아니지? 그 녀석 공격 좀 하려고 하면 날아가서 칼날 날려서 짜증난다고.”
“동생. 그정도는 약과야. 트룹 맹장은 도끼 휘두르는 것만 8번 반복한 적도 있어.”
“키텐은 점프했다가 착지하고 다시 점프하고 그랬었어요!”
세하의 발언에 질 수 없다는 듯이 제이와 미스틸테인이 말했다. 확실히 하나같이 강적이기는 했지만, 그 중에서도 마리아마리아는 자신이 생각해도 짜증나기 그지없었다.
“걱정 마.이번 작전구역에는 A급 이상의 차원종은 발견되지 않았어. 다만…”
“다만?”
“우리가 목격한 뒤 사라졌던 검은 색의 고치가 확인됐어.”
“……!”
검은 색의 고치. 파괴하려 한 순간 애쉬와 더스트가 방해한 탓에 결국 파괴하지 못했던, 이후 다시 탐사한 결과 그 자리에서 사라졌던 고치가 다시 나타났다고 한다.
“어쩌면 애쉬와 더스트가 나타날지도 몰라. 우리의 임무는 차원종을 섬멸하며 고치를 발견시 가능하다면 파괴, 불가능하다면 작은 샘플이라도 확보하는 거야. 애쉬와 더스트가 나타나면 교전하지 말고 바로 후퇴하고.”
이번만은 지금까지와 다르다. 애쉬와 더스트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진심으로 공격해온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기에 마주친다면 곧바로 후퇴한다.
“저기, 샘플이란 건?”
“작은 파편이라도 상관없어.”
세하의 질문에 슬비는 대답하면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회의 때나 작전 전달 때는 물론이고 작전 도중에서 게임기를 손에서 놓지 않던 그 천하의 이세하가, 지금은 진지한 자세로 임하고 있다.
그만큼 애쉬와 더스트의 위협을 느낀 것이리라. 앞으로 쭉 이런 태도가 유지되면 좋겠지만…. 이런 위급상황이 함께 따른다면 차라리 이세하가 게임을 할 정도로 여유 있는 정도가 좋다.
“더 이상 질문 없으면 바로 작전 구역으로 이동하자.”
* * *
“후우… 이슬비. 이걸로 끝 맞지?”
“응. 정해진 작전 구역은 여기로 끝이야.”
우글우글하게 모여 있던 스케빈저들과 트룹들을 쓰러트리고 나자 더 이상 차원종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제 남은 건… 검은 고치가 발견된 구역 밖에 없어. 어떻게 할까? 임무는 고치의 파괴까지지만, 어디까지나 가능할 때의 이야기야. 상황 판단에 따라 이대로 복귀해도 상관 없어.”
“…일단 가 보자. 이번엔 애쉬와 더스트가 없을 지도 모르잖아.”
“맞아! 그리고 이대로 돌아가는 건 어째 영~ 시원찮고.”
“동감이야. 마음 같아서는 당장 돌아가서 쉬고 싶지만, 마지막 기회가 될 지도 모르니까.”
“저도 사냥할 차원종을 놔둔 채 돌아가는 건 싫어요!”
임무는 어디까지나 가능할 경우에 검은 고치를 파괴할 것. 즉, 이대로 돌아가도 상관은 없다. 그렇기에 한 질문이건만, 의미가 없었다. 만장일치. 단 한 명도 복귀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좋아. 그럼 이대로 사이킥 무브로 마지막 작전 구역으로 이동하자.”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마지막 작전 구역. 검은 고치가 확인된 장소로 이동하려던 찰나, 익숙하지만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더스트…!”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마, 이슬비. 마중을 나온 것뿐이니까.”
“너희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어서 말이지~”
잔잔한 바람과 함께 날려 온 재와 먼지들이 뭉쳐지며 애쉬와 더스트의 모습이 들어났다.
‘검은 고치’도 함께.
“검은 고치!”
“미안하지만 부수게 놔 둘 생각은 없어. 얌전히 있으면 부화하는 장면 정도는 보여주지.”
“그래~ 이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보자고.”
애쉬와 더스트는 진심이다. 만약 공격을 했다간, 정말로 우리를 죽이려 들겠지. 하지만 역시, 잠자코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건블레이드 안의 탄환은 들어 있다. 이대로 전투 가능.
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앞으로 한 걸음 내딛자, 제이 아저씨가 성큼성큼 걸어와 내 앞에 섰다.
“이런 건 어른이 폼 잡을 수 있게 놔두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제이 아저씨가 오른손에 위상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응집되는 위상력은 맑은 날의 바다 같은 아름다운 푸른빛을 띠었다.
“그런 엉망진창인 몸으로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이런 엉망진창인 몸이지만 아직 할 수 있는 건 남았다는 거지.”
“아하핫♪ 미안하지만 이미 늦었어.”
제이를 비웃는 애쉬와 그런 애쉬에게 말하는 제이. 하지만 거기에 끼어든 더스트가 신이 난 듯 빙글빙글 돌며 말했다.
“고치가 깨어난다.”
그렇게 선언하는 애쉬와 기쁜 듯 소리 내어 웃는 더스트.
그리고 고치가 쩌적,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갈라지기 시작했다.
“큿…!”
그걸 보자마자 제이가 손에 모은 위상력을 전방으로 쏘았다. [옥돌 자기력]. 제이가 쓸 줄 아는 유일한 원거리 기술이자, 모든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기술.
허나 그렇게 쏘아진 푸른빛은, 파리를 쫓는 듯한 애쉬의 손짓에 허망하게 사라졌다.
“이제 와서 너희가 할 수 있는 일 따위는 없어. 얌전히 구경이나 하도록 해.”
조소를 지으며 애쉬가 말했다.
그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다. 정말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애쉬와 더스트가 막고 있는 한 고치에는 가까이 갈 수조차 없다. 오히려 괜히 나섰다간 애쉬와 더스트의 공격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리라.
무려하다. 나 자신이 너무나도 무력하다.
한 때는 증오했던 힘이지만, 재능이라는 이름 아래에 모든 노력이 인정받지 못한 적도 있었기에 이 재능을 증오했었지만, 지금만은 그 재능조차 부족하게 느껴졌다.
더 큰 힘이, 더 뛰어난 재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극적으로 이 때 강한 힘이 생기는 일 따위는 없었다.
손에 쥔 건블레이드가 괜히 더 무겁게 느껴졌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쩌적, 쩌저적.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
강한 소음과 함께 빛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깨어났군.”
“그래~ 우리가 만든 걸작이.”
소음 속에서 애쉬와 더스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직후, 빛이 사그라들었다.
“후우.”
고치가 있던 자리에는 한 사람이 주저앉아 있었다. 갑주와 옷이 합쳐진 듯한 전투복 차림에, 팔이나 얼굴 같이 노출된 피부 곳곳에 강철 같은 비늘이 뒤덮고 있다.
온 몸에 묻은 점액이 찝찝한 듯 어기적어기적 일어나 손가락을 튕기자 단숨에 점액이 증발해 사라졌다.
“…머리가 아프군.”
“마, 말도 안 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고치에서 나타난 ‘사내’는 흡사 중세 갑옷의 건틀릿처럼 보이기도 하는, 비늘로 뒤덮이고 날카로운 손톱이 난 손가락 끝으로 미간을 누르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그 사내의 모습을 본 검은양은 하나 같이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경악을 한 인물은 다름 아닌 이세하.
“이 세상에 태어난 걸 축하해. 새로운 군단장.”
“세 번째 용이자 최강의 용. 이세하.”
고치에서 나타난 인물은 다름 아닌 ‘이세하’였다.
검은양의 이세하 본인은 마치 거울을 보기라도 하는 착각이 들었으나, 그는 명백히 자신이 아니었다. 자신이 아니지만, 자신과 너무나도 흡사한 외모를 하고 있었다.
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눈동자의 색이 애쉬와 더스트처럼 보라색이었다는 점과 눈매가 사납다는 것 정도.
“그 두 눈에 새기도록 해라. 그리고 경악해라. 역사상 가장 강한, 그리고 가장 위대할 용의 탄생이다.”
경악하여 입을 떼지 못하는 검은 양에게 애쉬는 선언했다.
이 ‘이세하’야 말로 지금까지의 용중 가장 강하며, 이후 가장 위대할 것이라고.
고치에서 태어난 것은 새로운 용이자 군단장, ‘이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