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늑대 팀 상상 소설 #1
사계찡 2015-03-08 0
이류한은 복구 작업 지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들이었다. 검은양 팀을 지원하기 위한 정예 클로저팀, 하얀 늑대 팀이 그들이다.
본래 강남 지역에는 검은양 팀 하나만이 파견되어야 할 지역이 아니었다. 나타난 차원종의 숫자로 보나 등급으로 보나 정예 클로저 팀들이 파견되어 활동해도 진작에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로역을 통한 클로저의 지원이 칼바크 턱스의 등장으로 인해 좌절되어버리고 말았었다. 덕분에 지금까지 강남에서 활동하고 있는 제대로 된 클로저 팀은 검은양 팀이었다.
이미 강남 최악의 재앙은 끝이 났다. 그렇기에 지금 새로운 클로저 팀이 파견되는 것은 늦어도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하얀 늑대 팀의 파견은 유니온은 복구 작업 지역에서 불과 미성년자들로 이루어진 한 팀이 활동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면책성인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류한은 알고 있었다. 하얀 늑대 팀의 파견 자체는 면책성일지 몰라도, 하얀 늑대 팀 자체는 그러한 종류의 것이 아니다. 다름이 아니라 박시현. 그 남자가 관리요원으로 있으니까.
박시현. 이류한은 그와 친구였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박시현을 소개할 때는 결코 좋게 소개하지 않았다. 그의 겉모습만을 믿으면 안된다고.
차라리 그가 악인이라면 이류한은 그리 두려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많은 악인을 보아왔다. 클로저가 일반인에 비해서 우월하다는 선민사상을 가진 자들. 반대로 클로저는 그저 괴물에 불과하다고 그들을 도구로만 보는 사람들. 보통이라면 그들중 한쪽에는 분노를 보일 것이다. 일반인이라면 대체로 전자에 분노를. 클로저라면 대체로 후자에 분노를.
그러나 박시현은 그 어느 것에도 분노를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거지. 그는 습관처럼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일반인을 증오하지도, 클로저가 우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저 일반인은 일반인의 길이, 클로저는 클로저의 길이 있다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뿐이었다.
이류한은 그것이 무서웠다. 차라리 증오라는 감정에 휩쓸린다면 괜찮을지 모른다. 하지만 감정으로 도피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클로저와 일반인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고 진중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대체 얼마나 있을까.
이류한은 차 소리에 창 밖을 바라보았다. 유니온 요원 이송용의 검은 차량이 도착해 있었다. 아마도 그들이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류한은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검은 수송 차량의 문이 열리며 네 사람이 차량 안에서 걸어나왔다. 이류한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그가 익히 아는 얼굴, 박시현이었다.
박시현의 머리카락은 약간 길이가 있는 짙은 갈색이었다. 그의 머리카락은 가지런했지만 한 가닥의 머리카락이 위로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패션으로 올린 것일까, 아니면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가는 것일까.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이류한은 그것이 패션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류한은 헐렁한 무늬없는 하얀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가벼워 보이는 셔츠와는 대조적으로 정장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검은 코트를 그 위에 걸치고 있었고 검은색의 바지를 입고 있었다. 무거워 보이는 옷에는 무거운 옷을. 가벼워 보이는 옷에는 가벼운 옷을 입는 것이 어울리지만 박시현의 경우에는 가벼운 느낌과 무거운 느낌이 잘 어울려 있었다.
박시현 외의 세 사람은 이류한이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류한은 하얀 늑대팀을 처음 보았다. 그러나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은 자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모두가 상처 입은 자들이었다.
박시현의 뒤에 한 소녀가 바싹 붙어 있었다. 그녀는 이류한과 시선이 마주치자 그를 노려보더니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 나이대의 아이가 가지고 있을 눈이 아니었다. 그녀의 검은 눈에는 상실과 고독, 복수심, 그리고 증오가 희미하게 깔려 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칠흑처럼 검고 길었다. 소녀의 인상에서 가장 큰 점이라면 바로 그 머리카락이었다. 허리 아래까지 내려간 길고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은 전투에 거슬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성의 신체중 매력중 대표적인 것이 흉부와 둔부다. 그러나 저 소녀는 흉부와 둔부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희미하게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는 되었지만 여성으로써의 특징이 몸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저 풍만하지 않은 체형인 것이 아니었다. 발육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소녀의 뒤로 한 남자가 어슬렁거리면서 걸어왔다. 그의 걸음은 동네 한량처럼 한가했지만 그의 자세만은 마치 군인처럼 반듯했다. 이류한은 본능적으로 그가 수많은 실전 경험을 거쳐온 남자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남자는 거한이 아니었다. 그러나 베이지색 코트 아래에 숨겨진 그의 몸은 단단한 근육질이었다. 겉보기에는 그리 크지 않기에 사람들은 그를 얼핏 바라볼 때는 위압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눈앞에서 바라보고 있다면 거구의 덩치를 바라보는 것 보다 더한 공포감을 느낄 것이다.
나이는 30대 초반 정도 될까. 그렇게 생각하던 이류한은 생각을 바꾸었다. 아니. 40대는 될 것이다. 그의 건장한 육체에 깜빡 속아 그의 몸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할 뻔했다.
그의 오른쪽 이마로부터 왼쪽 뺨까지는 길다란 흉터가 새겨져 있었다.
남자는 자신의 키보다 약간 작은 정도로 긴 거대한 상자를 들고 있었다. 직사각기둥 모양의 물건이었다. 이류한은 그것이 그의 무기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마지막은 젊은 남자였다. 이제 갓 20대 정도가 지났을까. 그는 클로저 답지 않은 '지나가는 행인 A' 같은 너무나 평범한 옷차림을 입고 있었다.
그는 특징이 없었다.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옷차림. 다만 거기에 어울리지 않게 기다란 검을 등에 매고 있는 것 만이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평범한 것이 도가 지나쳐 특징이 없었다. 이류한은 오히려 그 평범함에 오싹한 섬뜩함을 느꼈다.
박시현은 이류한의 앞으로 걸어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래간만이다, 이류한."
이류한은 박시현의 손을 잡았다.
"그래서 지금은 무슨 생각이지?"
"별 생각 같은건 없어. 아니면, 내 행동중에 뭔가 잘못된 것이라고 있었다던가?"
이류한은 박시현이 지금까지 한 행동중에 잘못된 것을 말해보라면 단 한가지도 말할 수 없었다. 박시현은 너무나 모범적인 클로저였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단지 좋은 클로저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류한은 그것이 두려웠다. 박시현처럼 어딘가 뒤틀린 사람이 올바른 행동을 한다는 것이. 무릇 악한 일을 행할 사람이 악한 일을 하는 것은 두렵지 않다. 그러나 악한 일을 행하지 않을 사람이 악한 일을 행하는 것은 두려움이 된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선한 일을 행하지 않을 사람이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다.
박시현에게서 그 말을 듣지 않았다면 이류한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혹은 다행스럽게도, 박시현은 이류한을 친구라고 생각했고 그에게 자신의 본심을 말했다.
"류한아. 우리 클로저는 어쩌면 인간보다 차원종에 가까울지 몰라. 아니, 나는 개인적으로 클로저는 차원종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 그런 고사가 있지.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는 삶긴다고. 차원종이 없어지면 그 다음에 괴물이 되는 것은 우리일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그래도 클로저는 인간이고 차원종은 괴물이잖아. 인간이 인간 아닌 것과 같을 수는 없잖아."
"뭐가 인간인데?"
"......?"
"아니. 인간은 사소한 걸로 자신과 타자를 나누어. 사소한 명분. 그것 하나로 타자들은 죽어도 되는 악의 축이 되곤 하지. 차원종은 괴물이고 클로저는 인간이라고? 아냐. 그 둘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 그저 차원종은 괴물이라 정의되고 클로저는 인간이라 정의됬을뿐. 그건 본질의 문제가 아니야. 정의의 문제지."
"박시현. 너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별 다른 것 아냐. 클로저가 인간으로 있을 수 있는 것은 차원종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 클로저에게 인간은 타자. 인간에게 클로저는 타자. 차원종은 그저 공공의 적일 뿐이야. 하지만, 난 다르게 생각해. 인간에게는 차원종이 적이지만 클로저에게는 차워종이야 말로 가족이라고. 그런 표정까지 지을 건 없는데."
"그래. 난 차원종을 가족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차원종을 죽였지. 그리고 내일도 죽일거야. 모레도 죽일거고."
클로저가 언제든지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차원종을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헛소리가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가 지금까지 차원종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왔다는 것이 두려웠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 것이라는 것이 두려웠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그는 차원종을 가족처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