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스 외전 : 클로저스 인 뉴욕 -2-

이데아드라이브 2015-03-06 1

오늘도 검사는 지루하고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오전 할당량을 모두 마치고, 오후 첫 번째 지역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실버타운이었다. 퇴역 군인들이나 은퇴한 유니온 요원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위해 국가가 복지를 신경써주는 부분은 미국이 정말 부럽다. 뉴욕에서 요원 활동도 꽤 오래 했으니 이제는 영주권을 신청해볼까? 라는 생각도 요즘은 진지하게 하게 된다.


그런 내가 여기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 하면!


요즘은 정식 요원도 정말 한가해 보이는구먼? 이런 곳까지 순찰이나 다니고 말이야.”


내가 아직도 위상력만 갖고 있었어도, 차원문 너머로 넘어가서 그 빌어먹을 차원종 놈들의 머리통을 모조리 쪼개버리고 다녔을 텐데 말이야!”


! B급 요원에서 퇴역한 사람이 허풍 하고는...”


바로 퇴역하신 예전 유니온 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왠 동양인이 정식 요원 복장을 하고 나타났나? 하며 시큰둥한 표정들이었지만, 자주 얼굴을 내밀고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금은 좋은 후배로 대우받고 있다.


, 케이트! 화장실 안쪽도 꼼꼼하게 체크 해줘야 돼!”


그래, 맞아. 볼일 보는데 갑자기 차원종이랑 얼굴 마주치면 민망하잖아?”


당신들의 성희롱이 더 민망해요!”


그리고 이 선배님들의 가장 존경스러운 점은 케이트에게 서슴없이 성희롱 발언을 한다는 것이다. 매번 질리지도 않고 저렇게 얼굴을 붉히며 반응해주니 할아버지들이 더 좋아하는 걸 모르는 건지, 언제나 기대에 부응하는 리액션을 보여줬다.



그때 갑자기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 심상찮은 위상력이 느껴졌다.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감각이라 긴가민가 했지만, 심각한 표정으로 기계를 만지고 있는 케이트를 보고 내 판단에 확신을 가졌다.


선배님들, 안쪽으로 들어가 계세요.”


? 무슨 일인가?”


장난을 치던 할아버지들은 지팡이를 잡고 일어나는 내 모습에서 뭔가 낌새를 느꼈는지, 익숙한 모습으로 주변을 독려해 천천히 대피했다.


케이트, 방향은?”


병원 입구, 바로 코앞이야.”


나는 바로 복도를 지나쳐 입구를 향해 달렸다. 그 때 내부 방송으로 대피 신호가 떨어졌고, 내가 온 방향으로 사람들이 신속하게 대피했다.


병원 입구에 도착하자, 정문 쪽에는 어떤 남자가 서 있었고, 그에게 다가가려 하는 의사와 병원 직원들이 보였다. 아마도, 중상을 입은 것처럼 보여 도움을 주려는 것 같았다.


그 사람에게서 떨어져요!”


앞에 있는 의사의 어깨를 잡아 거칠게 뒤로 밀었다. 나 때문에 넘어질 뻔한 의사는 화가 난 듯 했지만, 내가 입고 있는 유니온 요원 복장을 보고는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정문에 서 있는 사람은 겉모습만 보면 정말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뿜어내고 있는 위상력은 틀림없는 차원종, 그것도 C급의 수준이다.


거기 멈춰!”


나는 지팡이를 들고 주변에 얼음 화살을 만들어 그 사람을 위협했다. 하지만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듯, 그는 거동이 불편한지 다리를 절며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 뜨거워.”


?”


뜨거워! 몸이 불타는 것처럼 뜨겁다고!”


몸에서 열이 나거나 약간 어지러운 증상은 일반적으로 위상력에 각성할 때 나타나는 징후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온 몸에서 저렇게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열이 나진 않는다. 온 몸이 너무 뜨거운지 그는 입고 있는 상의를 일부 찢어버리며 울부짖었다.


제발! 살려줘! 이러다간 타죽을 것 만 같아!”


크윽!”


고통을 호소하며 내게 도움을 청했지만,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차원종의 위상력을 지닌 사람이라니, 차원종으로 치부해서 처리 할 수도 없고, 민간인처럼 보호할 수도 없다. 아니면 중요한 샘플이니 포획해야 하는 건가?


! 끄윽! 으아아아악!”


, 뭐야 저거?”


어찌 해야 할지 망설이는 사이, 그는 양 팔과 얼굴 사이에 균열이 일어나며 빛을 내기 시작했다. 커다란 균열 사이로 실금이 가더니 몸 여기저기가 쩍쩍 벌어지며 더욱 강한 빛을 내더니,


아아아아-----!”


어떻게 하기도 전에 그 몸이 폭탄처럼 커다란 소리를 내며 터져버렸다. 재빠르게 얼음 화살의 형태를 바꿔 여러개의 얼음 방패를 만들었지만, 내 몸을 전부 보호하지는 못했다. 폭발의 휩쓸린 난 병원 입구에 쳐박혔다.


“--! --!”


케이트가 내 몸을 흔들며 뭐라고 외쳤지만, 귀를 맴도는 이명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정문 앞에서 특경대원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차원종 경보가 빠르게 울린 덕분에, 주변은 모두 특경대원들이 통제하고 있고, 나는 구급차에 앉아 간단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옷이 조금 더러워지고 군데군데 스친 상처가 생긴 것 이외에는 딱히 다친 곳이 없지만, 성분 분석 때문이라며, 요원 한명이 내 몸 여기저기를 훑어보고 표본을 채취해갔다.


괜찮아, 건우?”


그래. 운이 좋았어.”


특경대원들에게 상황 설명을 끝낸 케이트가 구급차로 다가와 내 안위를 살폈다. 경력 상 별 다른 실전 경험이 없는 그녀에게는 내 작은 부상도 큰일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하긴, 사람이 다쳤는데 걱정을 안하는 쪽이 이상하지.


그런데, 건우. 아까 그거 어떻게 생각해?”


나한테 물어봐도 곤란해. 아까 그건 나도 처음본 거라서...”


나와 케이트는 조금 전 그것을 사람이라고 불러야 할지 망설였다. 새삼스럽지만, 고위 차원종이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는 건 상위 요원들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들은 등급이 높을수록 지능이 높아지고, 우리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개체도 존재한다.

하지만, C급 위상력을 지닌 차원종들 사이에서 겉모습이 인간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는 개체는 내가 알기론 지금까지 단 한번도 발견되지 않았다.


의문점은 또 있다. 원래 차원종이 우리 세계로 넘어올 때는 B급 차원종이 먼저 넘어온 뒤, C급 차원종들을 소환하는 방식으로 자주 넘어온다. 그런데 C급 하나만 넘어오고 다른 차원종이 넘어오지 않는다.


마치 실험 같네.”


케이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그래. 이건 차원종이 모종의 실험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차원종의 목적이 무엇인지 조사해봐야 한다.


잠깐 전화 좀.”


본부에서 온 연락인지, 케이트는 사람들과 잠시 떨어져서 전화를 받았다. 통화는 그리 길게 걸리지 않았고 그녀는 짧은 대답만 한 뒤 전화를 끊었다.


부장님이야. 일정 다 취소하고 보고하러 돌아오래.”


이번 일에 대한 간략한 보고를 원하는 모양이다. 나는 자리에서 몸 상태를 간단하게 살피고 케이트와 차에 올라탔다.

 

 

차원 간섭 관리부


현재 나와 케이트가 속해 있는 부서명이다. 이 부서가 하는 일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현재 뉴욕을 포함한 일정 지역 내의 차원종의 출현을 탐지하고, 위상 변곡률을 정기적으로 체크 하는 일이 주된 업무다.

그리고 이 부서를 관리하는 제이든 부장님은 뉴욕에서 내게 몇안되는 호의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케이트에게 대략적인 설명을 들은 제이든 부장님은 꽤나 난감한 눈치였다. 단도직입적으로 관할 외적인 일이기 때문에 사건을 다른 부서로 넘기고 싶다는 게 표정에서 드러났다.


이 사건에 대해 조사 허가를 내려주십시오.”


하지만, 우리 케이트 여사님께선 그런 부장님의 생각 따윈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처음 사태를 접하게 된 요원들이 수사를 하도록 되어 있고, 우리는 정식 요원들이기 때문에 그럴 권한도 있다.


안돼. 이 사건은 보고서를 작성한 뒤 위에 올릴 거야.”


부장님은 케이트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거절했다. 케이트는 내색은 안했지만 꽤나 놀랐고, 나도 마찬가지다.


부장님. 오늘은 꽤 직설적이시네요.”


안 그러게 생겼어? 지금 위에선 정상회담 준비 때문에 바쁘다고.”


떡 벌어진 어깨와 덩치에 안맞게 이 부장님은 생각보다 소심하고 심약한 부분이 있다. 그 때문에 케이트는 물론이요, 약간 기가 센 사람들이 목소리만 높여도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부장님을 잘 알기 때문에 이런 딱 부러진 모습은 우리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번에 신서울에서 정상회담이 있기 때문에, 정예 요원은 벌써 경호나 자잘한 협의로 벌써 출발했고, 높으신 분들도 차례차례 

출국하실 거야. 이런 중요한 시기에 유니온의 총본산인 뉴욕에서 사건이 터져봐. 난리도 아니겠지.”


부장님의 의견은 정치적인 입장에선 맞는 말이었다. 각국의 대표들이 모이는 정상회담이 곧 시작하는데 새로운 차원종의, 그것도 인간과 유사한 차원종의 출현은 회담을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들리는 소문에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유니온의 예산 감축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거라고 한다. 차원전쟁도 끝났고 세계는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지만, 유니온에 들어가는 예산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이번 회담은 다른 회담보다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부장님! 이건 그렇게 묻어두고 넘어갈 사건이 아닙니다! 자칫 잘못하면 뉴욕에 차원종이 침략하는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책상에 양손을 짚고 부장님을 노려보는 케이트의 기세에 우리 불쌍한 제이든 부장님은 땀을 뻘뻘 흘리며 내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난 고개를 돌려 무시했다. 케이트가 하는 말이 과장되긴 했지만,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다면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으으, 어쨌든! 이 일은 우리 부서 관할도 아니니까, 케이트는 빨리 보고서 작성하고 마무리 해. 이 일은 다른 부서에서 처리할 거니까.”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부장님은 나름대로 강직한 태도를 보여줬다. 케이트는 원래 이런 상황에 굽히는 성격이 아니니 내가 중재를 나서야겠다.


, 케이트 진정하고, 부장님 너무 몰아세우지 말자.”


먼저 케이트의 어깨를 잡고 책상에서 떨어뜨려놨다. 케이트는 매섭게 날 노려봤고, 부장님은 케이트가 안보는 사이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단 우리 관할이 아닌 사항에 대해 부장님을 압박해서 조사에 들어가는 건 옳지 않아. 그건 우리 부서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될 거라고.”


정석에는 정석! 케이트는 먼저 정론을 부딪쳐 의견을 살짝 굽히게 만들어 놓는다.


하지만 일단 최초 목격자인 우리가 보고서를 쓰는 건 맞는데, 일단 우리도 이번 사건에 대해 모르는 게 많으니, 추가 조사를 한 뒤 보고서를 작성해도 괜찮겠죠. 부장님?”

그리고 부장님은 최종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해서 넘길 테니 보충할 시간을 달라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간다.


, 그래? 알았네. 허가 하지.”


그럼 결정됐으니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더 이상은 부딪치고 싶지 않은 부장님은 내 의견을 바로 승낙했고, 그에 따른 보상으로 난 케이트를 데리고 바로 부장실을 나왔다.


어휴~! 한시름 놨다.”


한시름 놓기는!”


케이트는 내가 잡고 있는 손을 뿌리치고, 날 매섭게 노려봤다. 부장님을 향하던 화살이 이젠 내게로 옮겨왔다.


이런 중대한 사항을 다른 부서에 넘긴다고? 다른 곳은 지금 정상회담 준비 때문에 바빠서 제대로 조사조차 안할걸!”


그래. 알고 있어.”


그걸 알면서...”


그러니까 우리가 조사해야지.”


?”


부장님 허락 받았잖아. 추가 조사.”


내 말에 케이트는 가벼운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평소 차안에서 졸기만 하며 의욕 없어 보이던 내 적극적인 모습에 놀란 것 같았다.


가자. 어디부터 가야 돼?”


추가 조사 시작이다.

2024-10-24 22:24:0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