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BLACK LAMBS - (2) 강남 슈퍼레인저

helbreth 2014-12-12 0

 

 

  강남역 인근에 출몰한 차원종들을 가까스로 격파한 다음날.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에서 내려와 앉아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엄마가 억지로 깨운거라 별로 기운도 없이 멍하니 책상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어제 갑자기 대량으로 발생한

 

차원종도 그렇고, 요즘따라 유난히 늘어난 검은양 활동 때문에 힘들어 죽을 지경이다.

 

 

  그 때, 핸드폰이 울렸다.

 

 

  설마 임무인가, 라고 생각하며 그다지 땡기지 않는 몸짓으로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 네, 꼭 좀 쉬고 싶은 토요일 휴일에 누구신가요."

 

  " 세하 형! 지금 집 앞에 있어!"

 

  " 아, 테인이냐. 그런데 지금은 형이 몹시 쉬고 싶구나. 그럼 이만."

 

  " 아아~ 어제 영화관 가기로 했잖아!"

 

  테인 특유의 높고 낭랑한 목소리가 어제의 약속을 일깨워주면서, 나는 정신이 들게 되었다.

 

  그랬다.

 

  나는 어제, 내 인생 최대의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자타가 공인한 게임 폐인인 내가, 그 날은 무슨 변덕이었는지 테인의 영화관 약속을 승낙해버린 것이었다.

 

  그 때는 그냥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그 '하루'가. 이렇게까지 피곤한 날인줄은 몰랐다.

 

  게다가 보러가는 영화도 '슈퍼레인저 ; 7개의 구슬을 모아라' 라는, 제목에서부터 어린이 취향의 전대물 기운이 물씬 풍기는

 

극장판 영화였다. 테인 녀석은 초등학교 6학년이나 됐으면서 아직도 이런 전대물에 기뻐하는건가.

 

  " 설마 아직까지도 준비 못 한건 아니겠지?"

 

  " 생각하는 그대로다. 하아아아... 금방 옷 입고 나갈게."

 

  전화를 끊고 어제의 나를 저주하며 옷을 챙겨입었다. 어차피 영화만 보고 다시 돌아올 예정이니 가볍게 입고 가기로 했다.

 

  하얀 티셔츠에 검은빛의 후드 집업. 푸른빛의 검은색 바지를 입고 대충대충 집을 나섰다. 물론 지루한 영화를 견디게 해줄 게

 

임기와 이어폰은 빼먹지 않았다.

 

 

  집에서 나오자, 정말 테인이가 문앞에 서있었다.

 

  테인이는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옷차림이었다. 원피스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흰색 티셔츠. 그리고 밑에는 군청색 반바

 

지...보다도 더 짧은, 솔직히 말하자면 남자가 입었다고는 할 수 없는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검은색 자캣. 목부

 

분에는 무성한 털로 장식되어 있어, 얼핏보면 겨울 옷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춘추복이라고 한다. 자캣의 오른팔

 

위쪽에는 양이 그려진 배지를 달고 있었다.

 

  그 배지에 그려진 로고. 그것이 우리, 신서울의 차원종들을 상대하는 클로저 집단, '검은양'이었다.

 

  " 그럼 갈까, 세하 형?"

 

  눈을 반짝이며 테인이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테인은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지하철 역 쪽으로 달려갔다. 발걸음이 왠지

 

다른 때와는 달리 가벼워보였다.

 

  영화 한 편으로 기뻐하는 나이가, 실제로 있었구나.

 

  의외로 사소한 것에도 기뻐하는 녀석을 보며, 나는 피곤한 마음을 잠시 접기로 했다.

 

  하루 정도라면.

 

  그 정도라면 나도 얼마정도는 동참해 줄 수 있다고, 그 행복에.

 

  벌써 저만치 달려가서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테인을 보며, 나는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젛고 테인을 향해 걸어갔다.

 

 

  그 순간.

 

 

  " !!"

 

  무언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 골목에는 나와 테인이 말고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 ...기분 탓인가."

 

  " 세하 형~ 안 그래도 형이 늦어서 시간이 촉박하다고~"

 

  " 어, 알았어. ...그나저나 너무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거 아니냐."

 

  시덥잖은 농담으로 방금 전의 찝찝한 기분을 없애보려 했지만, 역시 아직도 뭔가 찝찝했다.

 

  계속 찝찝한 느낌은 사그라들지 않은 채, 우리는 강남 CGV에 도착하게 되었다.

 

 

  저번 차원종 출몰사건 이후, 강남역 주변지역은 통제구역이 되지는 않았지만, 당연하게도 사람들의 방문 횟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이에 손님들이 떨어져 갈 것을 예상한 강남 CGV에서 고안해낸 방법은 가격 인하였다. 영화표 가격은

 

물론, 팝콘 같은 먹거리도 전보다 저렴하게 바뀌었다. 그 덕분에 강남 CGV의 손님들은, 도리어 출몰 사건 전보다 더 늘어나게

 

되었다. 우리도 그 손님들 중 일부라고 할 수 있겠지만......

 

  " 이렇게까지 손님들이 많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영화관 안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나는 그제서야 '인산인해' 라는 말의 의미를 몸소 느끼게 되었다.

 

  "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될 줄 알고 미리 예매해 놓았지만. 그렇지, 형?"

 

  " 뭐, 이런건 클로저 업무에 감사해야겠네."

 

  영화 시작까지 아직 20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그동안 음료수나 살까 하고 매표소 옆에 있는 매점에 가보았다.

 

  그리고 그곳에 그 녀석이 있었다.

 

  실로 태평하고. 실로 밝고. 실로 엉뚱하다는 수식어가 어울리다고 할 수 있는 소녀가.

 

  서유리가 그곳에 있었다.

 

  " 오, 세하다! 여긴 어쩐 일이야?"

 

  " 그건 도리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너 어제도 임무 안 오더니, 태평하게 영화나 보러 왔냐?"

 

  내가 생각해도 내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이슬비 대신 해주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서유리.

 

  신강고등학교 2학년 C반.

 

  나와 같이 검은양에 소속된 녀석으로써, 15살 이후에 클로저 적성이 나타난 특이 경우다.

 

  엄마가 클로저였던 나와는 달리, 완전히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란 소녀다.

 

  솔직히 말하자면 위상력이 발현되기도 전에 전국 검도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위상력을 아직 자유자재로 다루지는 못하지만

 

기본 실력만큼은 우리들보다 훨씬 주목받고 있었다고 들었다.

 

 

  " 어제는 나도 바빴댜고~ 검도 연습도 있었고, 이번에 있을 대회도 연습해야 했댜고."

 

  " 어, 유리 누나! 누나도 영화보러 왔구나?"

 

  " 테인이도 있었구냐! 세하랑 영화보러 온거야?"

 

  " 응! 슈퍼레인저 극장판 보러 왔어! 누나는?"

 

  " 훗. 이 누님께서도 슈퍼레인저의 극장판을 영화관에서 챙겨보기 위해서 며칠 전부터 예매해 놓았었지."

 

  ... 이 녀석도 바보구나.

 

  아니, 테인이는 이해한다고 해도 말이지. 넌 엄연히 청소년이라고?

 

  고등학생이 아직도 그런 전대물에 빠져있는 거냐.

 

  " 어라, 시간 다 됐다. 테인아, 들어가자."

 

  " 응, 유리 누나."

 

  " 어이, 일행을 착각하지 마라."

 

  뭐, 거기까지는 좋았다.

 

  영화관에서 도중에 서유리를 만났고, 덕분에 시끄러운 두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것도 좋다 이것이다.

 

  그런데 가장 문제는, 솔직히 말하자면.

 

  요 꼬맹이들이다.

 

 

  " 레드가 절벽에서 떨어진대."

 

  " 아냐! 레드는 죽을리가 없어!"

 

  " 거기다가 블랙은 동료들을 배신하고... 세상에, 레드를 절벽에서 밀어버리는 역할이래!"

 

  " 안돼! 블랙이 제일 잘생겼단 말이야!"

 

  잘생긴 거랑 배신하면 안되는 거랑 무슨 상관이냐.

 

  내가 애니메이션 같은 어린이들용 영화를 영화관에서 안 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뭐랄까. 아니, 애초에 그 레드라는 녀석은 어차피 다시 나타날 거라고? 그리고 블랙은 원래 전통적으로 아웃사이더 역할을 맡

 

고 있는 중요한 녀석이란 말이다! 너희가 저기 나오는 배우들이라고 생각해봐! 너희같으면 아이들에게 미움받는 아웃사이더

 

역할을 하고 싶겠냐? 그만큼 블랙은 인격적으로 매우 뛰어난 녀석이라고!

 

  본의 아니게 전대물에 대한 사상을 떠들어버렸다.

 

  하여튼, 이런 꼬맹이들이 가장 짜증나는 타입이라고. 이런 녀석들이 나중에 "힘을 내, 레드! 동료들을 생각해!" 라며 낯뜨

 

거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외치는 녀석들이란 말이다!

 

  " 세하 형, 시작한다!"

 

  " 본의 아니게 여기까지 와버린건가. 역시 그냥 집에서 쉬는 거였어."

 

  " 조용히 해! 극장판 오프닝은 배우들이 직접 부른단 말야!"

 

  " 아니, 그것보다 서유리 너는 왜 그렇게 진지하게           "

 

 "           나아가자!" " Go!" " 저기 저 높-은 하늘로~" 

 

 " " 슈퍼 레~인~저~! " "

 

 

  난 그날, '민족 대통합'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정말, 조금 웃기는 부분만 나오면 어린이들 모두가 꺄르르 웃어댔고, 레드가 블랙의 함정에 빠졌을 때는 여기저기서 한숨이

 

들려왔다.

 

  꽤 우습고 내 상식으로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그 상황을 즐겼다.

 

  내 양쪽에 앉은 서유리와 테인의 열띤 반응 덕분이었는지, 아니면 분위기에 떠밀려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도 꽤 즐거

 

운 관람이었다. 처음에는 조그맣게 감탄사를 말하는 수준이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내 반응도 뜨거워지고 있었다.

 

  반응을 보이는 중에도 참 바보같다는 생각이 뇌리에 남아있었지만, 그러면 뭐 어떤가.

  

  하루 정도는, 이렇게 바보같이 행동해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뒷자리에서 " 이 아저씨 때문에 잘 안 보여!" 라는 소리를 듣고

 

나서는 조금 조용히 있었지만.

 

 

  결국 영화는 블랙이 동료들과 화해를 하고 전설의 용들을 부활시켜 악당들을 물리치며 끝이 났다. 밖으로 나오면서 참 바보

 

같이 몰입했다면서 자기 자신에게 쓴웃음을 날렸다.

 

  그 후에 찾아온 것은 테인이와 서유리의 감상평.

 

  " 레드가 가장 멋있었어!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긴 했지만, " 그래도 동료잖아!" 라면서 블랙을 용서했던 게 멋졌다고."

 

  빨대는 2개였지만 결국 테인이가 거의 다 먹게 된 콜라 병을 홀짝거리며 테인이가 말했다.

 

  그 다음은 고등학생임에도 슈퍼레인저 극장판을 예매까지 하고 오신 서유리 씨의 감상평 되시겠다.

 

  "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원래 가장 멋있는 건 뒤에서 뒷바라지 해주는 사람들이라고. 블랙이 다시 돌아오도록 뒤에서

 

가장 신경을 많이 써준 블루가 가장 남자다웠다고 할 수 있지. 그에 비해 레드는 솔직히 별로였잖아, 안 그래? 어떻게 리더라는

 

애가 절벽에서 떨어졌다고 죽을뻔 할 수 있는거지?"

 

  " 아, 아니야! 레드는 남자답게 블랙을 용서해주고, 게다가 마지막에는 악당들을 무찔렀잖아!"

 

  5살 차이나는 남녀가 전대물에 관해서 열띤 토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고보니까 게임기는 결국 한 번도 써먹지를 못했네. 지하철에서도 테인이의 슈퍼레인저 설명 때문에 한 번도 못했었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두 명을 사이에 두고, 나는 주머니에서 게임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게임기의 전원을 켜자          

 

 

           어라?

 

  " 그러니까 블랙은... 세하야, 왜 그래?"

 

  " ...서유리. 핸드폰 한 번 켜봐."

 

  " 무슨 일인... 어라?"

 

  역시. 내 게임기만 그런 게 아니었군.

 

  지금 내 게임기는 갑자기 전파가 통하지 않게 되었다. 내 게임기에만 이상이 있는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의 전자 기기까지

 

그런 거라면...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뛰어오고 있었다.

 

  아니, 뛰어온다기에는 왠지 다급해보이는데?

 

  멀리서 한 남자가 뛰어오면서 외쳤다.

 

  " 도, 도       

 

 

 

   도망쳐            !"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뒤쪽에서 거대한 인간 형태의 실루엣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화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거나, 몇몇 자존심 강한 사람들은 꿋꿋이 그 존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였지만, 이유는 달랐다.

 

  만일 저것이 차원종일 경우 우리들, 클로저들은 민간인들을 최우선적으로 대피시키고, 상황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 테인

 

이와 서유리는 상황을 파악하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긴장은 되는 모양인지 둘다 내 양팔에 매달렸다.

 

  비록 거의 매일 보는 상대긴 하지만, 평소의 나였다면 이 상황을 꽤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여서

 

그 감촉을 즐기거나 할 여유조차도 없었다.

 

  격렬하게 일렁이는 연기 뒤에서, 녀석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고개를 젖혀서 봐야 할 크기의 체구는 제이 형 보다도 몇 십 센티미터는 더 커보였다. 피부는 마치 어두운 암흑보다도 어두워

 

서 괴기감과 공포감을 주었으며, 목 부분에는 기다란 목도리처럼 생긴 천을 걸치고 있었다.

 

  머리에는 검게 탄 천으로 얼굴이 반쯤 감싸져 있었고, 상체와 하체에는 비교적 깔끔한 양복을 입어서 약간이나마 이질감을

 

덜어 주었다. 멀리서 보면 그저 체구가 큰 사람 정도로만 보였지만, 가까이서 봤을 때는 마치 암흑을 인격화시킨 그 자체였다.

 

  녀석과 우리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제껏 꽤 많은

 

경험들을 쌓았다고 하지만, 게임에서나 보던 녀석을 [직접] 대면하자니 원시적인 공포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그리고 아마 두 명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제 1차 차원전쟁]에서 겪었을 클로저들의 느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때 만큼 무기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사실

 

이 안타까운 적은 없었다.

 

  녀석은 우리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그 한 걸음 걸음을 걸을 때마다 지면을 통해 찌릿찌릿한 전율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 ...도망쳐."

 

  " 세, 세하 형?"

 

  " 어서 도망치라고!"

 

  뒤도 안 돌아본 채 소리질렀다. 겁을 먹은 탓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까지 겁을 먹었다는 걸 보여줄 수는 없어서였다.

 

  " 우선 남아있는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전파가 통하는 곳에 가서 본부에 연락해. 시간이라면 내가 벌게."

 

  " 하지만..."

 

  " 그게 우리, 클로저들의 일이잖아?"

 

  온 힘을 쥐어짜내 말하자, 잠시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내 양팔을 누르고 있던 촉감이 스르륵 사라지더니, 뒤쪽에

 

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도 점차 사그라들더니, 결국 나와 눈앞의 차원종만 남게 되었다.

 

  무슨 변덕이었을지는 나도 모른다. 평소 같았으면 누구보다 먼저 도망갔을 내가, 무슨 이유였는지 끝까지 클로저로써의 임무

 

를 다하려 하고 있었다. 어쩌면 영화에서처럼 영웅행세라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오늘 하루 정도는 이래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찌됐든, 여자나 꼬마에게 이런 위험을 감당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순식간에 차원종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허공에 나타난 광원들은 여러 줄기의 섬광이 되어 나를 향해 짓쳐 들어갔다.

 

  " 크윽!!"

 

  꼴사납게도 적의 공격은 명중했다. 저릿한 충격. 그나마 위상력이 몸 안에 깃들어져 있어서 그런지 참을 만은 했다. 그대로

 

밀려나면서 몇 번은 더 얻어맞았다. 녀석의 주먹은 지를 때마다 손의 형태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내 눈에 보인 것은 그저 한

 

줄기의 직선으로만 보일 정도로 재빠른 공격이었다. 그리고, 그런 녀석의 공격을 맞고 보기좋게 쓰러지고 말았다.

 

  허억...허어어억...허억......

 

  그 져석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지면을 통해 들려오는 녀석의 발이 울려서 내 

 

귀로 들어왔다. 하지만 공포심은 들지 않았다. 왜지? 믿고 있는 구석도 없는 내가, 마지막으로 발악조차 하지 않고, 그저 가만

 

히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오늘만큼은. 무언가에 진심으로 행복해져 본 오늘이라면 죽어

 

도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쓸데없는 소리나 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 바로 그때였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뛰어오고 있었다.

 

  가쁜 숨소리가 점점 들려오고 있었다. 죽을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켜 보았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출렁거리는 분홍빛의 묶은 머리. 흔들리는 밝고 촉촉한 눈동자. 뛰어올 때마다 가볍게 흔들리는 하얀색 치마. 목부분에는 털

 

장식을 달고있는 검은 가죽재킷. 그리고 왼쪽 팔 부분에는 양이 그려져 있었다.

 

  양손에 플라잉 대거를 들고 달려오는 소녀. 우리의 리더이자, 지금은 내 [슈퍼레인저]였다.

 

  이슬비는 양손에 들고 있던 대거를 있는 힘껏 날렸다. 녀석은 뒤늦게야 눈치챘는지 살짝 스치고 말았다. 광원을 그리면서 다

 

시 이슬비의 손안에 들어오는 대거.

 

  " 흐아아앗!!"

 

  곡도 하나가 예리한 원호를 그리며 녀석의 품까지 날아들었다. 가까이 있던 나조차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한 궤적이 녀석

 

의 커다란 체구에 박혔다. 고통스러운 듯 크게 포효하는 차원종. 그것을 놓치지 않고, 이슬비는 손에 있던 다른 곡도를 날렸다.

 

이번에는 차원종 녀석이 예리하게 파고드는 곡도를 피했다. 그러자 다시 이슬비에게 돌아가려던 곡도는, 물리적 법칙을 무시

 

하고 궤도를 이탈하며 다시 그 녀석에게 상처를 입혔다. 실제로는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이것이 이슬비의 위상력, [염동력]

 

이었다.

 

  이제 마무리를 지으려나 본지, 소녀는 양손을 하늘로 높이 들어올리며 무언가를 소환하려는 포즈를 취했다. 차원종은 이제

 

다 됐다고 생각했는지, 양손을 땅에 짚어 차원을 넘어 도망치려는 듯 싶었다. 이슬비의 주위에 소용돌이의 형태가 모여들기 시

 

작하며 허공에 커다란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적이 한 발 더 빨랐다. 적의 밑에서 붉은 광원이 빛을 내더니, 그대로 녀석은 사라져버렸다. 그 직후, 허공의 소용돌이에서

 

대한 버스 한 대가 수직으로 낙하하다시피 떨어졌다.

 

  콰과과과광!!

 

  무시무시한 굉음을 내며 버스의 앞부분은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찌그러졌다. 그리고 서서히 그 형태가 사라지면서 내

 

눈앞에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가냘픈 소녀 한 명이 서있었다.

 

  " ...여기서 뭐하는 거야."

 

  " ...미안."

 

  쓸쓸한 어조로 말하는 이슬비를 보자, 나도 모르게 방금 전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을 후회했다.

 

  아직 처참한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는 건물을 둘러보고, 이슬비는 다시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가시지 않은 바람 때문인지,

 

소녀의 머리카락은 한쪽으로 휘날렸고, 그 때문에 슬프게 빛나고 있는 눈동자가 고스란히 내게 보여졌다.

 

  " ...이제 그만 가자. 이런 소란스러운 자리에 오래 남아있어봤자 좋을 건 없으니까."

 

  " 그래...으윽!"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는 듯한 어조로 말하는 이슬비는, 왠지 다른 날에 봐온 냉철하고 무뚝뚝한 이

 

미지와는 많이 달라보였다. 왠지 신경이 쓰여 물어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내 몸 챙기기에도 바빴다. 아까 그 녀석에게 받은 데

 

미지가 꽤 심했는지, 나는 걷는 동안에도 계속 신음 소리를 내며 걸어갔다.

 

  " 괜찮아? 힘들면 부축이라도 해줄게."

 

  " 아니, 이 정도는 그래도 아직...아악-"

 

  그러자 갑자기 이슬비는 내게 다가오더니, 걸음을 맞추면서 부축해주기 시작했다.

 

  괜찮다는데도 이러네. 왠지... 평소랑 달라서 좀 그렇긴 해도, 일단은... 고맙네.

 

 

  어느 정도 걷자, 멀리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일행이 보였다. 연락이 닿았는지 본부에서 나온 사람들도 몇명 눈에 띄었다.

 

  " 자, 어서 가봐. 네가 무사하다는 걸 보여줘야 저 녀석들도 안심할 거 아냐."

 

  " ...고맙다."

 

  " 그런 걸 알면, 다시는 그런 무모한 짓 하지마."

 

  이슬비를 뒤로 하고 테인과 서유리가 기다리고 있는 쪽으로 절뚝이며 걸어갔다.

 

  " 으앙~ 세하 형, 괜찮아?"

 

  " 뭐, 자세한 건 검사를 받아봐야 하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심하게 아프지는 않아."

 

  " 괜찮은 거지? 다행이다. 슬비 누나가 연락 받자마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달려갔을 때는 무슨 일이라도 있는 줄

 

알았지."

 

  " 뭐? 저 녀석이 그랬단 말이야?"

 

  " 응. 슬비는 평소에는 저렇게 무뚝뚝해 보여도, 알고보면 우리 중에서 가장 여린 애일걸?"

 

  " 그 정도인가..."

 

  그렇게 말하며 본부의 사람들과 대화하고 있는 이슬비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오늘 이슬비의 태도가 평소와 다르기는 했다.

 

평소보다 더 감정적으로 대했고, 마다하는데도 여러모로 도움도 주었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이유라도 물어봐야겠군.

 

  " 이세하, 진료는 이미 예약해 놨으니 본부에 돌아가면 꼭 검사 받아."

 

  " 으윽, 그 여자한테 진료를 받느니, 차라리 아프고 말겠다."

 

  " 흐음, 이래도?"

 

  조심스럽게 다가온 이슬비는, 진료를 마다하는 내 말에 약간의 의문을 표하며 살짝 내 복부를 때렸다.

 

  " 크아악!"

 

  " 거봐, 반드시 검사 받고 오도록. 그 이후 임무에 참여할지는 후에 결정할게."

 

  분명 [살짝]이라는건 알겠지만, 내 몸에서는 꽤 큰 통증이었다. 뼈라도 부러진 건가. 이걸로 한동안 본부 신세 좀 지겠구만.

 

  " 그럼 오늘은 이만 해산하자. 어차피 임무가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 어라, 슬비 너는 같이 안 가?"

 

  " 나는 리더로써 이번 일에 관해 좀 더 있다가 가야돼. 그러니까 평소처럼 너희 먼저 가."

 

  

 

  녀석들과는 길에서 헤어지고, 본부에 진료를 받으러 잠시 들르게 되었다.

 

  " 그래, 인체 개조 당하러 왔니?"

 

  " 좀 평범하게 맞아주시면 안될까요, 정도연 박사님."

 

  " 왜 모두들 거절하는 걸까? 인체를 기계로 개조하면 위상력이 강화되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은 못하는 걸까?"

 

  그야 강해진다고 해도 죽으면 소용없으니까.

 

 

  정도연 박사.

 

  UNION 신서울지부.

 

  본부에서 기계를 다루거나 진료를 담당하고 있는데, 매번 클로저들에게 인체 개조를 권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약지에 반지가 끼어져 있는 걸 보면 남편도 있는 것 같은데...

 

  남편 분을 위해 잠시 위로의 경례를.

 

 

  " 갈비뼈가 2개 정도 금이 갔네. 그리고 쓸데없이 팔로 방어한 탓에 팔 쪽도 성하지는 않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인체도 개조하

 

는 건 어때?"

 

  " 완벽하게 거부하겠습니다."

 

  " 그나저나 맞은 흔적을 보면 공격이 그다지 복잡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 정도로도 이 정도의 데미지를 받다니, 꽤 강

 

한 차원종인가 보네."

 

  확실히, 이번 녀석은 무작정 공격하려 하는 여느 차원종들과는 뭔가 다른 면이 있었다.

 

  차원이 다르게 강하다, 라고 해야 하려나.

 

 

  아, 그러고 보니까 이 여자라면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왜 갑자기 이슬비의 태도가 변했는지,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가. UNION

 

소속이라면, 유망주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겠지?

 

  나는 박사에게 그 뜻을 말해 보았다. 내가 처했던 상황과 이슬비의 태도. 그리고 당시 이슬비가 어떻게 보였는지와 왜 신경

 

쓰이는지를. 그러자 그 여자는 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뭐야, 넌 같은 팀인 녀석의 속사정도 모르고 있단 말이야?"

 

  그 말에 나는 약간 발끈해하며 따지듯이 입을 열었다.

 

  " 누구는 그러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아요? 원래 이슬비 걔가 잘 소통을 안 하려고 하잖아요."

 

  박사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 뭐, 그렇다면 언젠가는 꼭 들어야 할 말이었네. 듣자하니 이슬비가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인데, 이 얘기를 모르

 

니까 그럴 수 밖에 없기도 하겠네."

 

  정도연은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 이슬비는, 차원전쟁으로 부모님을 일찍 여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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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다시 왔습니다!

 

이야, 신기하게 (2) 가 더 기네요.

 

혹시 (1)을 읽지 않고 이걸 보시는 분께서는, 죄송하지만 (1)도 다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시험이 오늘 끝났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홀가분하게 쓰는겁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클로저스 전체화면해서 못하게 된거, 폴더에 들어가서 지우긴 했지만 그냥 내일부터 해보려고요.

 

여러분! 클로저스 해보니까 재밌으셨나요?

 

죄송하지만 클로저스 게임 후 느낀 점이나 이 소설을 읽고나서 댓글도 좀 달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야 제 작품을 끝까지 읽어주셨다는 것도 영광이지만요.

 

그럼, 전 다음에 또 시간이 있으면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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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썼는데 어제 못 올렸습니다! (우와!)

2024-10-24 22:20:5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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