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스 외전 : 클로저스 인 뉴욕 -1-
이데아드라이브 2015-03-03 2
프롤로그
수 많은 사람들이 우왕좌왕 도망친다. 특경대가 질서정연하게 피난시키려 노력하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혼란이 가중되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로든 도망치려는 사람들의 무리와 그들을 지정된 곳으로 유도하려는 특경대의 무리의 충돌 때문에 진압부대의 돌입 또한 늦어지고 있다.
“잠깐만, 이 인원 배치 말이 돼?”
“어쩔 수 없잖아! 높으신 분들의 사정이라니까!”
이런 긴급 상황에 황금 같은 휴일도 내팽개치고 나는 현장에 와 있다. 그래. 여기까진 참아줄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인명의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이런 부당한 명령이 말이나 되는 건가? 아무리 자기 자식 목숨이 소중하다지만, 지금 여기 목숨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 이 순간에도 여기저기서 내 자식 좀 구해달라, 엄마가 저 안에 있어요, 친구가 보이질 않아요. 등등 구원을 바라는 외침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어쩔 수 없어. 공무원이 까라면 까야지. 별 방법이 있냐?”
오랜 시간 같이 한 관리요원은 입술을 깨물고 꽉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래. 이 사람도 별 수 있나? 주어진 처지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다. 우리 둘이서 싸우고 있어도 지금 이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래. 우리가 이러고 있는다고 해결책이 나오는건 아니지.”
“야, 너 이상한 생각 하고 있는 건 아니지?”
“이상한 생각?”
“설마 너 혼자서 저 차원종이 득시글거리고 있는 건물에 들어가겠냐고 묻고 있는 거야.”
평소에는 눈치도 없고 둔감한 아저씨가 이럴 때는 귀신같이 알아챈다.
“그게 이상해?”
“뭐?”
“저 시간의 광장 안에는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이 많아. 누군가는 구하러 가야 해.”
그래. 이상할 건 하나도 없다. 클로저는 차원종들에게서 시민들을 구하는 것이 일이니까. 이건 일을 하러 가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되내이며 장비를 점검하고 사이킥 무브를 쓸 준비를 했다.
“너 미쳤어? 아무리 네가 정예요원이라도 불가능해! 죽으러 가는 거랑 다를게 없다고!”
“걱정마. 이정도로 죽을 정도면 정예요원 달지도 못했어.”
“안돼. 너 이대로 가면 명령 위반이야. 감봉 정도로 안 끝날 거라고!”
“듣고 보니 그렇네.”
가슴에 달고 있는 내 유니온 신분증을 떼어내 관리요원에게 던졌다. 난 몰라도 이 친구는 부양할 가족이 있는 처지니 발목 잡을 일은 최소한 줄이는게 좋겠지.
“지금부턴 내 단독 행동이다. 그리고 넌 일반인이라 위상능력자인 날 못 막은 거고.”
“아! 진짜, 골때리네...”
“미안하네. 그래도 시간이 없으니까 간다.”
“그래! 가버려! 가도 뒤지지 말고 살아서 돌아오라고! 멍청한 자식.”
그가 투덜거리는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사이킥 무브로 인파 사이를 날아올랐다.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광장은 말 그대로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저런 곳에 혼자 간다고 해서 무엇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 문득 들었지만,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나 혼자라도 사람들을 구해야만 한다.
“정예요원 박건우, 인명 구조를 실시한다.”
그렇게 나는 차원종 무리에 파고들었다.
“일어나!”
“흡!”
순간 귀를 파고드는 소리에 놀라 지팡이를 쥐고 경계 태세를 취했다. 상황 파악, 나는 지금 차 안 조수석에 앉아 있다. 주변에 차원종이 없는걸 보니 비상사태는 아니다. 평화로운 거리와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창문 너머로 보인다.
“하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자동차 시트에 몸을 기대고 나니 차 문이 열려 있었다. 옆을 보니 어느 한군데 흠 잡을 틈 없이 유니온 정식 요원 복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내 관리요원이 보였다.
“내가 차안에서는 졸지 말라고 했지?”
“어, 음 안녕 케이트, 좋은 아침이야(Good morning).”
“지금은 한 낮이야(Good afternoon)! 빨리 내려!”
질렸다는 표정으로 케이트는 내 팔을 붙잡고 날 차에서 끌어낸 뒤 문을 닫고 걸어갔다. 그녀가 가는 곳을 보니, 오늘 순찰 돌기로 한 초등학교가 보였다.
“그건 꿈이었구나.”
“잠꼬대 그만 하고 빨리 와! 오늘 여기 말고도 3군데는 더 순찰 돌아야 돼!”
정말 무섭게 노려보는 그녀의 재촉에 뛰어가 나란히 서서 걸어갔다. 내가 익살맞은 얼굴로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그녀는 좀처럼 화를 풀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꿈을 꾸기라도 한 거야? 오늘은 식은땀을 흘리던데.”
“식은땀을 흘리고 있으면 좀 상냥하게 깨워주면 안돼?”
“안돼! 넌 그러면 안 일어나잖아.”
“오! 드디어 그걸 깨닫다니, 내 관리 요원이 다 됐군.”
“시끄러. 그나저나 정말 꿈이라도 꾼거야?”
관심 없는 표정을 한 그녀는 내게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저래 보여도 조금 걱정을 한 모양이다. 난 그녀가 준 손수건을 건네받아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별 거 아니야. 시간의 광장 사건 꿈을 꿨어.”
“시간의 광장? 신서울 대형 쇼핑몰에 느닷없이 차원종이 나타난 그 사건?”
“그래. 그거”
“그러고 보니 시간 참 빠르네. 그게 벌써 3년 전 사건이니 말이야.”
휴대용 위상 변곡율 계측기를 꺼내며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게, 벌써 3년이나 지났단 말이지.
그 끔찍한 사건으로부터 3년, 나는 지금 뉴욕에 있다.
제 1장
클로저
차원종의 출현 이후 위상력을 각성한 일부 사람들이 유니온이라는 국제 기구에 몸을 담아 인류의 적과 싸우고 그들이 이 세계를 침범할 때 사용하는 차원문을 닫는 자들의 총칭이다.
하지만 차원종이 나타나지 않은 이런 평화로운 일상에선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계측 끝났어. 이상 없음. 다음 지역으로 가자.”
이렇게 관리요원과 같이 차원종이 나타날 조짐은 없는지 위상 변곡율을 체크하고 다닌다. 특히 학교나 병원과 같은 노약자와 어린이들이 많거나, 시청이나 우체국, 소방서, 경찰서와 같은 중요 관공서는 자주 체크해줘야 한다.
“그런데 말이야...”
나는 우리가 검사해야 하는 할당량이 적힌 종이를 읽어보고 질려버렸다. 아무리 봐도 하루 꼬박 돌아도 한밤중에야 끝날 것 같은 코스였다.
“요즘 우리 할당량이 많아진 것 아냐?”
“금요일까지 그만큼 검사하고 다녀야 돼.”
“뭐? 잠깐만, 오늘 월요일 맞지?”
“그래. 무슨 문제 있어?”
문제라면 정말 많지만, 먼저 이런 혹독한 현실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한숨을 내쉬며 풀이 죽은 날 채근하며 케이트는 측정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빨리 다음 검사 지역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오늘 할당량을 채울 수 없다는 의사 표시였다.
“어? 클로저다!”
장비를 모두 챙겼을 때, 초등학교 아이들이 뛰어나와 우리 주위로 모여들었다. 때마침 점심시간과 겹친 모양이다. 사방에서 몰려든 아이들 중 몇 명은 내 소매를 당기며 그림책을 펼쳐들었다.
“요원님! 요원님!”
“오늘은 이거 만들어줘!”
그림책을 펼쳐들고 손가락으로 꽃을 가리키며 아이들은 눈을 반짝였다. 예전부터 이 학교에 검사하러 올 때마다 얼음으로 조형물을 만들어 주다 보니 이제는 아이들이 더욱 신나서 나를 반겼다. 나는 무릎을 굽혀 그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양손을 동그랗게 포갰다.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 하나만 만들어 줄게.”
그 말에 아이들은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내 양손에 집중했다. 그림책에 나오는 꽃을 보며 손 안에 위상력을 집중시켰다. 손을 펼치자 냉기가 흘러나오며 책에 나오는 모양의 얼음 꽃이 피어 있었다.
“자, 여기 있다.”
“와아! 고마워요. 요원님!”
아이들은 꽃이 녹지 않도록 조심히 들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덕분에 우리를 감싸고 있던 아이들의 고리가 조금은 느슨해져 빨리 빠져나왔다.
“넌 정말 아이들을 좋아하는구나.”
잔소리가 심한 케이트도 이 순간만큼은 가만히 지켜본다. 모든 일에 깐깐한 그녀도 아이들 앞에서는 조금 너그러운 모습을 보인다.
“가자. 시간 없다며?”
“알고 있어. 이번엔 운전 좀 하는게 어때?”
“말했잖아. 나 면허증 없다고.”
“그럼 적어도 조수석에서 졸지 마!”
쓴웃음을 지으며 자동차 문을 열었을 때, 갑자기 몸에 오한이 들었다.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쥐고 차 너머를 둘러보며 경계했다.
“왜 그래?”
내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보고 케이트가 낮게 물었다.
“아냐. 기분 탓 인가봐.”
하지만 아무리 둘러 봐도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케이트가 내가 뭐라고 몇마디 잔소리를 한 것 같지만 내 귀에 닿지 못했다.
한순간이지만 길 건너 골목 안쪽에 보인 후드를 뒤집어 쓴 도마뱀 머리가 잊혀지지 않았다.
할당된 검사를 모두 끝내고 나니 퇴근 시간이 다 되어, 보고는 내일 하기로 하고 케이트가 차로 아파트까지 바래다주었다. 내가 사는 곳은 유니온에서 제공해준 1인형 아파트로, 작지만 아담한 공간에 생활에 필요한 것은 모두 들어 있어서 살기에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신서울 못지않게 높은 땅값을 자랑하는 뉴욕에서 집을 무료로 제공해주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저녁으로 사온 패스트푸드를 테이블 위에 놓고 컴퓨터로 메일과 뉴스를 확인했다. 한국에서 떨어져 사는 내게 지금은 우리나라의 소식을 뉴스만이라도 확인하는 취미가 생겼다.
“오늘도 연예관련 찌라시가 판을 치는구나...”
감자튀김을 먹으며 뉴스를 보고 있던 때, 메신저로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인이 누군지 확인하고 헤드셋을 낀 다음 전화를 받았다.
“그쪽은 이제 일할 시간 아닌가요? 데이비드 국장님.”
[자네가 접속했다는 알람이 뜨길래 전화했네. 오늘 퇴근은 조금 늦었나 보군.]
“순찰 겸 위상률 검사 겸 외근 때문에요.”
[자네 같은 정예요원이 겨우 순찰이라니, 뉴욕은 평화로워서 좋군.]
“그렇게 놀리지 말아주세요. 안그래도 우울하니까요.”
[오늘은 목소리에 힘이 없군. 무슨 일이 있었나?]
“그냥, 조금 3년전 꿈을 꿔서요.”
[흠, 그렇군. 미안하네. 내가 괜한걸 물었군.]
통화 분위기가 무거워지려는 찰나에 얼른 화제를 바꿔야겠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었죠? 새로운 프로젝트.”
[그래. 이름은 검은양이지. 자네에게도 드디어 직속 후배가 생기겠군.]
“전 지금 국장님 직속 부하도 아닌데다, 저보다는 오세린이 좋아하겠네요.”
[오세린 요원이라면, 김기태 요원의 보좌 말인가?]
“네 맞아요. 가끔 후배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으니 아주 기뻐할 겁니다.”
[그런가? 알았네. 기억해두지. 후배들을 챙겨주는 선배가 있는 것도 그 애들에겐 좋겠지.]
“그럼, 새 프로젝트 힘내세요.”
[알았네. 자네도 계속 자주 연락하지. 케이트에게도 안부 전해주게.]
“별로 안 좋아 할 것 같지만, 그럴게요. 그리고 국장님.”
[음? 왜 그러지?]
“그 애들은...”
국장님께 뭔가 더 말씀드리려 했지만,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다행이 데이비드 국장님께선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먼저 헤아려주셨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네. 자네 같은 경우는 생기지 않게 내 노력하지.]
“부탁드립니다.”
통화가 끝나고 의자에 몸을 기대자 천장이 보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꽤나 부끄러운 말을 하려 한 것 같다.
“오지랖도 정도껏 펴야지.”
쓸데없는 생각 말고 일찍 자기로 했다. 내일도 하루 종일 외근이니 푹 쉬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시간의 광장
신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초대형 백화점이다.
주말이 되면 가족이나 연인, 친구 등등이 그곳에서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3년 전 갑작스레 차원종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급작스런 사건에 유니온은 긴급 부대를 파견했지만, 높으신 분들의 사정으로 국회의원의 자식들을 구하기 위해 작전에 투입하는 인원을 한쪽에 편중되게 배치했고, 그에 반발한 나는 명령을 위반하고 독단 행동을 했다. 그 책임을 물어 내 요원 등급은 한단계 강등, 그리고 유니온 지부간의 교류를 명목으로 뉴욕 지부로 발령났다. 파벌이 다른 나에 대한 지부장의 과잉 제재를 받은 것이다.
오늘 하루도 종일 위상 변곡률 검사를 다녀야 하기 때문에, 지부에 출근하지 않고 케이트가 마중을 나오면 바로 외근을 나가기로 했다. 나는 신문을 읽으며 케이트가 오기를 기다렸다. 드물게도 오늘 신문 1면에는 우리나라에 대한 기사가 커다랗게 장식하고 있었다.
“네가 신문을 읽다니, 별일이군.”
바로 앞에 차를 세운 케이트는 창문을 열고 말을 걸었다. 여자는 남자보다 준비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데, 아침 일찍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틈없이 단정한 모습이 내 감탄을 자아냈다. 조용히만 하면 정말 완벽할 텐데 그 점이 약간 아쉬운 정도일까?
“재미있는 기사가 떴거든.”
조수석에 올라탄 나는 신문을 건네주고 안전벨트를 맸다. 케이트는 내가 준 신문을 펼쳐서 읽어보았다.
“신서울에 나타난 어린 용사들?”
케이트는 조금 진지한 눈빛으로 신문을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이 아이들 미성년자 맞지?”
“아마도, 고등학생 정도일걸?”
“한국에는 미성년자 보호법이 없나? 이런 기획이 잘도 통과했군.”
“없는 건 아닌데, 데이비드 국장님께서 진행했으니까.”
데이비드 국장님의 이름을 말하니 케이트도 바로 이해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국장님은 그만큼 유니온 내부에서는 개혁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자, 이제 일하자 일! 오늘은 어디부터야?”
“여기서 가까운 소방서부터 시작하자.”
케이트는 신문을 내 쪽으로 던지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나는 신문에 실린 사진을 한번 훑어봤다. 거기에는 어린 아이 1명, 고등학생 남녀가 3명, 그리고 관록이 느껴지는 장신의 요원이 1명, 그리고 관리요원으로 보이는 여성 요원이 있었다.
“아, 그리고 데이비드 국장님께서 안부 전해달래.”
“그 전에 여자만 보면 식사 권유 하는 것부터 그만 두라고 해.”
“그건 절대 안고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