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는 양떼 -8-
PhantomGIGN 2015-03-01 8
*[주의] 전편이 있습니다.
전편을 보시면 이해가 더욱 잘 되실겁니다.
이 작품은 '엘세이드' 와 'PhantomGIGN' 의 합작입니다.
[흩어지는 양떼 -1-]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436
[흩어지는 양떼 -2-]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sn=1459
[흩어지는 양떼 -3-]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7&n4articlesn=1469
[흩어지는 양떼 -4-]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3&n4articlesn=1574
[흩어지는 양떼 -5-]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609
[흩어지는 양떼 -6-]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633
[흩어지는 양떼 -7-]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4&n4articlesn=1652
-------------------------------------------
한없이 침중한 분위기의 방 안은 싸늘히 얼어붙은 모두의 침묵이 만들어낸 기묘한 상황에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그게 무슨소리야... 수습요원들을 그런 작전에..."
반쯤 넋이 나간듯 말하는 제이의 표정은 서서히 분노에 찬 표정으로 바뀌었다.
노란 고글 속에서 일그러지는 얼굴에는 여실히 그의 감정이 담겨있었다.
"들으신대로.... 134명...전원... 투입 입니다..."
유정의 목소리는 계속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핏기 사라진 얼굴에서는 그저 수많은 감정들이 꿈틀거리며 요동치고 있는것을 보며
그는 더더욱 화가 나는것을 느꼈다.
"드디어 유니온이 미쳤군. 134명 전부를 죽게할 생각인가, 이런 아이들까지..."
제이는 공포에 짓눌린 채 떨고있는 유리를 고개 돌려 바라보았다.
그 옆에는, 그녀보단 조금 침착하려 노력하는 슬비가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제이는 갑작스레 의자를 와락 밀치고 일어나 곧장 문이 부서저라 열고는 방 안을 나가버렸다.
"얘들아...정말...미안해..."
거의 반쯤 흐느끼듯 말하는 유정은, 목소리에 묻어나오는 물기를 지우려 무의식적으로 손에 쥔 차트를 꼭 힘주어 잡았다.
고개를 떨어뜨려 보 지만, 흐려지는 시야에 그저 작은 한숨만 새어나왔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전염된듯, 다들 아무말 하지 않고 적막한 방 안을 침묵으로 채워나갔다.
어두운 책상에 앉아서 몇가지의 서류뭉치를 비교해가며 무언가를 작성하던 사내는 문이 거칠게 열리는것을 듣고
고개를 조금 들어 앞을 봤다. 거친 숨을 내쉬며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그의 앞에 멈춰선 남자를 보고도,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나지막히 그를 불렀다.
"...제이."
문 뒤에서 어쩔줄 모르는 비서를 향해, 남자는 자리를 비켜달라는 듯 고개를 몇번 주억거렸다.
무언가 좀 불안한 듯 뒤를 한번 돌아보고는, 비서가 공손하기 그지없는 동작으로 문을 닫고 나가는것을,
사내는 별 감흥없는 눈동자로 쳐다보고 있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제이는 앉아있던 남자의 멱살을 거세게 잡아 올렸다.
"데이비드, 미쳤어?!"
미안한 감정때문일까.
아니라면 죄책감때문일까.
데이비드는 멱살을 잡힌채 제이와 시선을 맞추지못했다.
"적어도 난 형을 믿고서 여기까지왔는데, 사지로 밀어보내는거야? 저 어린아이들까지?!"
씩씩거리는 그의 숨이 느껴질정도로 그의 화난 얼굴은 가까웠으나, 그는 눈을 맞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동작과는 거리가 먼, 침착한 어조로 그는 말했다.
"나를 믿으라고 한 적은 없다. 제이."
차가운 목소리라 할 정도로 억눌린 목소리는 비단 압박해오는 옷깃때문은 아닌지,
공허한 방안을 느릿이 맴돌았다.
"검은 양에 들어오라 권유한것은 나였지만, 결정은 네가 했다. 자네도 알잖나."
천천히 다시금 그 조용한 말로 제이에게 말하자,
그는 순간 몸이 굳어버린듯 부들부들 떨리던 몸이 순간 얼어붙은듯 굳어버렸다.
"그래, 아주 잘 알지, 다시는 유니온에 엮이지 않겠다 선언한 나인데, 너무 잘 알지. 안 그래!"
거의 마지막 말은 고함처럼 들리듯이 소리높여 말한 그였지만, 데이비드는 서서히 고개돌려 그를 마주보았다.
어느새 콧잔등까지 흘러내린 노란 고글은 그의 회색빛 눈동자가 분노에 불타오르듯 이글거리며
똑바로 데이비드를 주시하는것을 가려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전혀 동요없는 그를 보던 제이는
데이비드의 눈동자에 생각하는 그 특유의 이질적인 빛이 스쳐가는것을 보았다.
잠깐의 시간동안 너무나 많은것들을 생각한 그는 확답했다.
"자네의 선택이었네."
"그래, 그럼 이 꽉물어."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순간 데이비드는 시야가 반회전하듯 급격히 돌아가,
균형을 잃고는 바닥에 쓰러지고 나서야 반박자 늦게 **오는
둔중한 통증이 그를 덮치고 나서야 그는 제이가 자신의 턱을 올려 쳤음을 알았다.
"큭..."
"왜, 도대체! 유니온이 이딴 명령을 내린거야, 형이 왜 이런 작전을 수락한거냐고!"
거의 발작하듯 외치는 그의 광기어린듯 한 눈동자에도 데이비드는 나무로 된 테이블을 붙잡아 힘겹게 다시일어섰다.
"그...말에 대답을...원한다면 거기...책상위에 서류를 보게."
놀랍게도 한방 맞은 사람의 목소리라 생각되지 않을만큼 초연한 목소리가 제이의 흥분을 붙잡듯 낮게 울렸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제이는 자신과 데이비드의 몸싸움에 의해 흐트러진 책상위의 종이뭉치를 구기듯 집어올렸다.
"이건..."
놀랍게도 그 종이들은 대부분 신문의 일부분을 스크랩한것들이었다. 인터넷 기사, 아날로그 신문 기사.
그리고 몇 없는 글귀들에 큼지막히 적힌 '클로저들의 인권' '작전투입 결사반대' 등의 글귀를 읽는동안
데이비드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어디론가 날아가버린 안경을 찾으며
충분히 그가 읽을만큼 적당한 시간을 기다렸다.
"아마...나를 한대 치고싶은 사람들이 너 뿐만은 아닌 모양이더라고."
마침내 흐릿한 시야에 익숙한 은테 안경이 희미하게 보이자, 그것을 주워서 몇번 셔츠 깃으로 닦으며 그는 이어 말했다.
"작전이 언론에게 공개된지 4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네.
그런데도 인권이니, 자유의지니 하는 것들을 떠벌리는 놈들이 벌써부터 활개를 치고 있네.
한국어로는 이걸보고 군중심리라고 하던가."
침착히 안경을 쓰는 데이비드에게 제이는 입술을 깨물더니, 억눌리는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딴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 원래부터 말로만 정의의 검을 내리는 놈들은 썩어넘쳐.
내가 묻고 싶은것은, 왜 이런 작전이, 그것도 S급의 차원종 소탕작전에 수습요원들로만
구성된 작전인원이 편성된것을 형이 허락했나 이거야. 형의 위치가 위치이니만큼 최종결정은 형이 했을거 아냐?"
"미안하지만, 내가 말할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순간, 제이는 두번째로 몸이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그를 쳐다보았다.
"뭐?"
"내가 말할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고 했다, 제이."
힘주어 말하는 데이비드를 마치 다른 동물보듯 이색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제이에게 데이비드는 약간 시선을 낮추고야 말았다.
경멸하듯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그 어떤것보다도 무섭게 그에게 다가왔다.
"...어련하시겠어."
그가 그대로 몸을 돌려 문쪽으로 바람이 일정도로 성큼성큼 다가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데이비드는 아무 말도, 어떤 움직임도 일 수 없었다.
겨우 그가 입을 힘겹게 연것은, 제이가 막 문을 열어젖혔을때였다.
"...죽지 말게."
제이는 그대로 우뚝 섰다. 마치 시간이 멈춘것처럼 멈춘 그의 등에서 흡사 울부짖는 인간의 감정이 느껴지듯
데이비드를 스쳐지나가는 순간. 그는 그대로 거세게 문을 닫고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제이가 나가자 데이비드는 크게 한숨을 몰아쉬고는 짐짓 옷깃을 매만지며 서류를 그러모았다.
자리에 앉자, 참을수 없는 무엇인가가 터져나오려는것을 그는 이를 갈며 참았다.
"미안해...나도...어쩔 수가...없었어...정말, 미안해...!"
거의 오열에 가깝게 중얼거리는 그를 쓸쓸한 정적만이 집어삼킬듯 커져 그를 감쌌다.
----------------------------------------------------------------------------------------------
13시간전.
스텐드만 하나 켜진 방에 책상을 하나두고 서로 마주보고있는 인영이 있었다.
얼굴을 보이지않지만 한사람의 옷차림은 데이비드임이 틀림없다.
또 한사람은 스텐드의 어두운 부분에 얼굴이 등지고 서있는 구조라, 흡사 어둠속에 얼굴을 숨기듯, 조용히 서있었다.
남자가 손에 든 서류철 하나를 내밀자, 그자리에서 데이비드는 곧바로 받아 읽었다.
차례차례 읽어내리는동안 분노에 찬 신음소리가 그의 얼굴과 남자의 얼굴을 가린 서류철 너머로 들려오는것을 남자는 느끼며 미소지었다.
"이유가 뭡니까?"
서류를 내려놓더니 데이비드는 조용히 되물었다.
도저히 통제가 되지 않는듯 떨리는 손가락을 움직여 애써 안경을 벗어 닦는 그 일련의 동작만으로도,
평소의 그답지 않은 조급함만이 묻어나왔다.
그를 알고, 그의 위치를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말을 듣고 경악했으리란것은 자명했다.
유니온의 클로저 권한에 있어서만큼은 유엔 사무총장과도 맞먹는 거대한 권한을 가지는 그가 존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경악할만한요소는 갖춰져 있었다.
"모든것에는 희생이 필요하지. 데이비드."
성우처럼 잘 단련된 목소리가 정갈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 조금의 말에도 장중한 느낌이 방 안에 끝없이 메아리치듯 울려퍼졌다.
"대체, 그 희생은 무엇을 위한겁니까...?"
데이비드의 질문에 어두운 그림자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위험해 보이는 미소를 짓는듯 일그러진 턱이 데이비드의 시야에 들어왔다.
경멸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한들, 그가 움직일리도 없건만, 그렇게 바라보는 데이비드를 바라보며 남자는 두번째 서류를 건네었다.
"그까지 돈때문에 이 많은 요원들을 사지로 내보내겠다는겁니까?!"
분노에 찬 목소리로 데이비드가 서류는 거들떠 보 지도 않고 답하자 남자 역시 미소를 짓는것을 그만두고는 억양 변화 하나 없이 말했다.
"방금 자네에게 건네준 서류를 한번 보게나."
데이비드는 강하게 그를 쏘아보았지만, 곧 시선을 옮겨 그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건강상태라네, 데이비드."
마이너스의 뒤에 붙은 현기증 날정도의 수치에 데이비드는 어지러움을 느끼며 안경을 고쳐썼다.
"...이건?"
"적자라네. 5년전부터 이런 상태였지."
여전히 말투에도 변함없이 압박하는 목소리가 데이비드를 조용히 압도했다.
5년.
국가 재정에 관한 서류임에도 불구하고 막힘없이 그에게 보길 권유한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이른바 '정리해고' 를 해야하네. 그래서 이런 임무를 하달하길 바라는걸세."
전혀 억양의 변화없이 말하는 그를 보며 데이비드는 오한마저 일었다.
어떻게 인간이 저럴수 있단말인가.
"그래도, 유니온측에서 일부 자금을 지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건...!"
"그래, 유니온이니 자네도 잘 알겠지. 요원 한명당 드는 비용이 얼마라 생각하나."
낮은 목소리가 말하며 직접 손을 뻗어 다음장을 넘겨주며 말을 이었다.
"간단한 계산일세. 매우 간단하지. 게다가 이번 작전지역은 희생이 결국은 필요하게될걸세. 자네도 알지 않나."
S급 차원종과 다수의 A급 차원조의 토벌.
완전한 섬멸을 위해 선발된 수습요원 134명 투입.
임무 완료 시까지 복귀는 허용 불가에, 전선이탈시 법의 철퇴로 사형.
그 작전 내용이란것에 너무나도 딱딱 맞아떨어지는 그의 말에 데이비드는 말을 잃었지만, 그래도 힘겹게 입을열어 항의했다.
"그...그렇더라도...대한민국은 위상 집약탄환의 제작기술을 보유한 3개국가중 단연 최고잖습니까, 그걸로...!"
"그래, 그리고 그 공장을 보유한 지리산 근방과 부산의 두 항구에서 차원문이 발생해서 공장이 파괴된것은 5년전의 일,
게다가 지리산은 아직 퇴치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네.
지금까지 예비분으로 버텨오고 공장도 간신히 수복해 생산했지만, 역부족이었네, 그래프대로라면 다음해까지가 한계야."
데이비드는 몸에 소름이 이는것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를 주시했다.
인간이 저럴수는 없다.
도저히 언론을 피해갈수 없을것이고, 필요하다면 유니온에 자금요청역시 가능할것이나, 불이익을 염려해 실행하지 않는다.
어둠속에 얼굴을 숨기듯 그림자에 가린 남자의 얼굴을, 그저 똑바로 바라보며 나직히 말했다.
"당신은 미쳤어! 이우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데이비드의 표정이 바뀌자 이우현은 무표정으로 재차 말을 이어갔다.
"자네는 이 명령을 거부할 수 없을걸세, 만일 거부할 시엔 우리 한국에서 공급하던 위상 집약 탄환의 수출은 막힐것이고,
유니온에서 한국은 탈퇴하겠지. 부디 현명히 처신하길 바라네, 데이비드."
문득 데이비드는 자신이 부서져라 쥐고있는 펜이 어느새 박살났음을 깨달았다.
흐르는 잉크가 손을 검게 물들이는것을 느끼며 그는 문득 자신이 떨고있음을 느꼈다.
대충 손을 털고는 그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도저히 반론을 할수도, 항의를할수도 없다.
"아. 맞다."
아무말 없이 방을 나가려다 이우현은 데이비드를 불러세웠다.
문을 열려다 멈추었지만, 뒤돌아**는 않는 데이비드의 등으로 이우현은 한마디했다.
"내가 만들었던 세개의 팀. 곧 보러 갈 걸세."
나직히 말하는 그의 음성이 공기를 후벼파듯 울렸다.
"유니온이 아닌, '대한민국 정부' 직속 관할의 세 팀 말이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데이비드는 방을 나갔고 문이 닫히는 큰소리만 났을뿐이다.
----------------------------------------------------------------------------
"후우..."
"많이 늘었어!"
예화는 열 다섯발중 열 한발을 피하는 세하를 보고는 칭찬을 아끼지않았다.
세하도 이제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는 요령이 생긴탓에 눈에 띌 정도로 이전보다는 숨이 차지않았다.
옆에서 훈련하던 모든사람들도 세하의 훈련성과를 지켜보고있었기에,
그에게 작게 박수를 보내며 치하해주는것을 멋쩍은듯 세하는 뒷머리를 긁으며 웃었을 뿐이었다.
"세하야, 그럼 이제 내것도 피해볼래?"
"그건 좀..."
설화가 장난끼어린 표정으로 그에게 자신의 소총을 겨누는 시늉을 하자, 세하는 그저 멋쩍은 미소를 보내며 손사레를 쳤다.
"에이, 세하정도면 그정도는 당연히 할걸? 대련할때 내 방어도 뚫었잖아!"
옆에서 민혁이 그의 어께를 툭툭치며 말했지만, 세하는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몇번 그의 방어를 뚫고 대련할때 그의 목에 칼끝을 들이미는데 성공한적은 몇번 있지만,
번번히 그의 시야 사각에 위치한, 정확히 조준된 그의 대형권총에 쓴웃음을 지은적이 한두번이 아닌것이었다.
소은이 놀란듯 후드에 가린 얼굴을 살짝 들어 세하를 처다볼정도로 충격적인말이었는듯, 예화가 놀란 눈치로 물었다.
"세하야, 정말로 민혁씨 방어를 뚫었니?"
"뚫었지만, 제가 쏘기전에 민혁 형이 절 쏴버렸을걸요."
간결한 대답에도 예화는 여전히 놀란 얼굴로 물어왔다.
"그럼, 적어도 방어는 관통했다는 이야기니?"
"아마...도요."
말을 흐리는 그를 처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세하는 건블레이드를 허리춤에 꽂아매고는 조용히 말했다.
"저어...저는 훈련시간 다 채웠으니까 오늘은 이만 쉴게요."
"어? 으...응."
당황하며 대답하는 예화를 뒤로하고, 문을 나서려 할때, 설화가 세하의 등을 툭 치며 말했다.
"나도 연습시간 다 채웠는데, 같이가자!"
둘이 문 밖으로 나가자 예화는 살짝 한숨쉬며 중얼거렸다.
"클래스 드레드노트의 방어를 뚫었다고? A급 클로저의?"
거의 어둑어둑해진 밤 하늘에 간간히 켜지기 시작하는 가로등이 어슴푸레 비치는 길가를 걸으며
세하와 설화는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보통 이야기를 먼저 거는쪽은 설화였고, 답하는쪽은 세하였다.
"그래서? 정말 민혁씨의 방어를 격파한거야?"
"네, 하지만 실전이었다면 이미 여러번 죽었죠."
약간 냉소적으로 들릴법한 그의 대답도 설화는 신경쓰지 않은채, 자못 심각하게 떠들었다.
"그래도, A급 클로저 드레드노트의 방어를 뚫었다는것은, 대단한거야!
방어하나밖에 존재 의의가 없는 드레드노트에게 방어가 뚫림은
세하 네가 무기없이 전방에서 스트라이커로써 활약하란거랑 같은거야. 음, 비유가 이상한가?"
활기차게 말하는 설화옆에서 세하는 약간 입술을 말아올려 미소지었다.
그 역시 클래스에 대해 엄마에게 들은 바 있었고, 민혁이 결코 수준 낮은 A급요원이 아님을 알고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그 화제를 피하려 하고있었지만, 그래도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추켜세우는 사람들의 시선이 긴장을 풀게만들것만 같아, 그는 무심코 주먹을 쥐었다.
'자만하지 마라.'
여기서 멈춘다면 지금껏 자신이 받아온 시선을 결코 떨칠수 없다.
엄마의 그늘에 가린 자신이 받은 시선을,
자신의 도약으로만 벗어날수 있음을 뼈져리게 알기에, 갈수록 게임기와는 멀어졌고, 몸에 새겨지는 상처는 많기만했다.
"어?"
약간 당황한듯 설화가 소리쳐 옆을 돌아보니, 그녀가 자신의 옷 주머니를 뒤적이고있었다.
"세하야, 내가 폰을 연습실에 놓고왔나보다, 곧 가져올테니 먼저 가고 있어!"
손을 흔들며 총총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세하는 앞으로 걸어갔다.
잠시 기숙사 앞에 위치한 유니온의 거대한 빌딩을 보며 그는 멈춰섰다.
푸르게 변한 하늘이 기괴하게 건물을 물들여놓아 흡사 우뚝 솟은 지옥문을 연상케했다.
왜 멈췄는지 자신도 모를 이유를 찾으며 세하는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그렇지만 얼마 못가 그는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이봐. 들었어? 이번에 수습요원들로만 S급차원종을 상대하러 간다던데?"
"어. 들었어. 드디어 유니온이 **거같더군 그래."
필사적으로 옆을 돌아보자, 막 건물에서 나오는 요원 둘이 눈에 띄었다.
정식요원복장에, 뱃지까지 달고 있는폼을 보아 정식요원으로 보였다. 물론 나이도 세하보단 위였겠지만
그는 전혀 계급에있어 거칠것이 없기에 다짜고짜 다가가 둘중 한 요원의 팔을 붙잡았다.
"방금 무슨말이죠?"
"뭐야! 너!"
팔을 붙잡힌 요원은 당연히 크게 소리쳤고, 여프이 요원도 당황하며 그를 뗴어놓으려 다가섰지만,
곧이어 세하가 주머니에서 뒤적여 꺼낸 페가수스 완장과, 특수요원의 명패를 보고는 경악하는 표정을 짓더니
둘 다 자세를 고쳤다.
"죄..죄송합니다!"
"방금 그게 무슨말이냐고요!"
세하의 외침에 요원은 겁을 먹고 곧장 모든것을 이야기한다.
"이번에 정식요원이 되지못한 모든 수습요원들은 지리산에 남아있는 A급 차원종 잔당 과 S급 차원종을 섬멸하라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지금 뉴스에서도 나오고있어요. 그런데 무슨 볼일이라도..."
요원의 말을 듣기도 전에 세하는 뛰기 시작했다.
'뭐라고...?'
S급.
큐브의 첫 훈련 이후,
페가수스팀은 한번 몇년전에 차원전쟁에 출몰한 S급 차원종을 그대로 본따 출력한 시뮬레이션과 전투를 했었다.
그리고, 믿을수 없게 전원이 전투불능판정을 받아버린 상대가 바로 S급이었다.
머리가 하얗게 되어버릴듯한 여러가지 생각들이 교차하는 그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불길한 예감이 그에게 다가왔다.
거리상, 가려면 차를 타고 가야겠지만, 어느새 발에 위상력을 폭사시켜 건물 위로 뛰어오르는 자신을 보며 세하는 생각했다.
'너희는 아닐거야...! 제발...!"
이른바 사이킥 무브라 불리는 기술을 사용하며 급격히 건물사이를 이동하며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머릿속에서 하나 둘 맞추어지는 퍼즐이 그의 뇌리를 스쳐지나가는걸 애써 무시하며 그는 계속 위상력을 담아 도약해나갔다.
전투시에도 유사시 탈출이나 지형적 조건이 어려울때 가는 긴급 이동 기술이지만,
그 이**리에 비례해 대폭으로 위상력이 소모되기에 모두들 쓰기 꺼려하는 기술이었고,
또한 일반 전투시가 아닐때에 사용하는 위상력을 통한 기술은 법에도 어긋났지만 그는 이미 그런것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제발!'
어느새 익숙한 건물이 눈에 들어오자, 족히 20층은 가까이 되어보이는 빌딩에서 거의 추락하듯 착지하고는,
정겨운 상가의 문을 밀어젖히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도 않고 그대로 3층으로 뛰어갔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두세계단씩 뛰어올라가는 그에게는 그다지 중요한것이 아니었다.
'제발!'
그리고 그가 도달한 문 앞에는
결코 잊을수 없는
검은양의 엠블럼이 그를 노려보고있었다.
------------------------------------------------------------------------------------------------
왜 그랬을까, 하는 마음이 없어진것은 아니다.
아마 평생토록 없어지지는 않을것이었고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것은 자신이었기에, 그녀는 혼자 남겨진 방 안에서 쓸쓸히 입고리를 올렸다.
창백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아름다운 피부에, 마치 인형처럼 윤기흐르는 분홍 머릿결이
깎아만듯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으나, 공허한 방 안에서 홀로 남은 그녀의 모습은 어딘가 애처로워보였다.
'하지 마.'
생각하지마.
떠올리면 안된다고 다짐한것이 몇번이었던가.
하지만 떠나지 않고 주변을 맴도는듯, 검은 머리와 항상 피곤해 보이던 검은 눈동자가 보고싶었다.
사실, 그녀 역시 짐작했었다. 갑작스런 팀의 이동.
경제 불황이네 어쩌네 하며 떠들던 뉴스나 신문.
하지만 이런 결과라고는 도저히 생각지도 못했었다.
그래도, 그렇기에 자신의 선택을 되돌이킬 생각따윈 하지 않았다.
만나지 못할것이라면, 아예 인연을 끊어버리려는 선택은 언제부터 배운것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만."
힘없이 중얼거려보았지만, 이미 치솟아 올라오는 뜨거운 뭔가는 목구멍에 메어버린듯 더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다만 한없이 뜨겁게 요동칠 뿐이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아마 눈물이 말라버린듯 부모님이 차원종에게 죽은 그 날부터 눈물을 흘린적은 없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흐를듯 부옇게 흐려지는 시야 앞에 그녀는 의자 모서리를 부서져라 움켜쥐었다.
"제발...!"
그만 떠올려.
그만 생각해.
'옳은 선택이었어, 옳은 결정이었다구!'
쓰려오는 속이 울렁거리는것을 느끼며 부얘진 시야를 가리기 위해 고개를 한쪽 팔에 묻었다.
그리고 그때, 갑자기 문이 쾅소리를 내며 요 근래 자주 그랬던것처럼 부서질듯 열리는소리에
흠칫 놀라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다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우는모습을 보여서는 안돼.
그렇지만, 뒤이어 들려온 목소리에 그녀는 더욱 놀랐다.
"...리더."
문앞에는 그녀가 그렇게 보고싶어하던 그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목에서 메일듯한 감정은 이미 싸늘한 이성으로 그녀를 방어하고있었다.
"여기 뭐하러 왔어."
진심을 들키지않으려고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
"진짜야? 진짜로 너희들이.."
"그래. 고작 그것때문에 여기까지온거야?"
차가운 대답에 그가 잠시 멈칫하는것을 슬비는 느꼈다.
고개돌려 창밖을 내다보았지만, 밤하늘이 도저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별조차 없는 하늘에는 달만이 흉흉히 떠오를듯 어슴푸레 빛나는 동쪽하늘이 포효하고있었다.
"난!..."
세하가 말하기도 전에 그녀는 말을 낚아챘다.
"왜? 통쾌해? 쫓겨났던 팀이, 그리고 리더가 이제는 궁지에 몰리니까 속이 시원해?"
"뭐라고?! 기껏 찾아왔는데 그런말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세하의 언성이 높아지지만 슬비는 아랑곳하지않고 말을 이어갔다.
여기서 멈추면 안된다.
"아니면 얕은 동정심이라도 생긴거야? 특수요원 이세하님."
"너 진짜! 정말로..."
여기서 본심을 말할수는 없다.
세하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자 방안의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다.
어느새 다시 뭔가가 복받쳐 올라오는것을 느끼며 슬비는 입술에서 피가 베어나올듯 깨물었다.
"가. 난 너따위한테 동정심받고싶지않아."
슬비는 세하의 앞에서 조용히 커져만 가는 그 무엇인가에게 더욱 차갑게 말했다.
이 클로저들이 얼마나 쉽게 소모품 취급되는지, 얼마나 이별이 쉬운지 이미 한번 느끼니 이쯤은 별거 아닐거라 생각했지만
곧 현기증이 날정도로 강렬한 무언가에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지그시 입을 앙다물었다.
"그래, 알겠다."
화가난듯 문을 세게 닫고는 나가버렸다.
더 이상의 말도, 그에게 차갑게 말할때마다 가시처럼 박혀 느껴지는 고통도 없었다.
문이 닫히는 굉음이 사납게 들리고는, 곧 사라졌다.
"미안해, 하지만...이렇게 하지 않으면...난..."
모두를 위해 그를 멀리한
그녀를 위한다고 생각해 그를 멀리한
슬비의 물기어린 목 소리가 방안을 채울뿐이었다.
공허히 울려가는 그 목소리는 포효하듯
고고히 뜬 초승달만이 서늘히 비추고있었다.
------------------------------------------------------------------------------------------
P.S
캬오! 진도 팍팍!
이틀을 짜내서 만들었습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