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자(bystander) <2>

푸뉴스 2015-02-27 1

<작가 왈>

은 끝에다가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 소설은 UNION 카페에도 연재되고 있는 단편입니다.



***


"......설마 너희들이 남의 집에 무단침입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은발 머리의 약간은 풋풋한 인상의 여인이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무단침입? 그건 인간한테나 해당되는 거지."


"맞아맞아. 한심해, 한심해."


"......웃기시네. 야밤에, 그것도 우리가 돌아오기도 전에 남이 사는 데에 멋대로 쳐들어온 주제에, 그건 인간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기본예의 아닌가?"


"흐응~ 뭐, 인간식의 예의로 따지면 맞는 말이네. 그건 사과할 테니까, 그럼 저 뒤에 있는 인간한테 손님대접을 시키는 건 네가 베풀어야 할 예의라고 말해도 될까?"


몸에 딱 달라붙은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아이가 정확히 이샤를 가리켜 보이자, 은발의 여인은 두 손을 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뭐 좋아. 이샤, 음식까지는 필요 없으니까 적당히 차만 세 잔 준비해. 그리고 나선 자도 돼."


"네 아가씨."


이샤는 약간 껄끄러운 얼굴이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생리 현상과 같은 것이었다.


은발 여인을 비롯한 세 사람이 둥그런 식탁에 빙 둘러앉자 이샤가 김이 피어오르는 홍차 세 잔을 내어왔다.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두 소년소녀의 앞에 홍차를 내놓은 그녀는 마지막으로 그녀가 모시는 주인의 앞에 차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럼 좋은 대화 나누세요. 빨리 잠자리에 드시고요."


이샤가 하품을 하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자 소년 쪽이 홍차를 한 모금 들이키더니 흥미롭다는 투로 말했다.


"여러 번 봤지만 정말 흥미로운 인간이야. 저런 인간이 하나 더 있다면 한 번 키워보고 싶은데."


그렇게 말하는 소년의 보랏빛 눈동자가 위험한 빛으로 번뜩였다

.

"이샤 건드리면 죽인다."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노려** 말라고~ 다 같은 동지잖아?"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왜 인간을 시종으로 두고 쓰는 거야? 네가 명령하면 굽신거리면서 시중 들어줄 만한 차원종들도 많을 텐데 말야."


소녀 쪽이 식탁에 팔꿈치를 촐리고 양손으로 턱을 괸 채 말했다. 그녀의 다리는 식탁 아래에서 연신 흔들거리고 있었다.


"하! 그런 돌***들을 시종으로 쓰라고? 차라리 나 혼자 다 하고 말지. 게다가 누가 봐도 괴물인 것들을 시종으로 쓰면 여러모로 곤란한 점이 많다고."


따끈따끈한 홍차가 앞에 있었지만, 그녀는 홍차에 입을 대고 있는 소년소녀와 달리 홍차를 입에 대지도 않고 팔짱을 꼈다.


"그래서, 무슨 용건이야? 네녀석들이면 그냥 놀러 왔다고는 해도 이상하진 않지만 최소한 지금은 아니지."


"그렇지. 실은 제안할 게 있어서 말인데."


홍차를 다 마시고 한 잔을 더 따르고 있는 소녀를 흘끔 바라본 소년이 말을 이었다.


"얼마 전까지 나랑 누나가 계획을 진행시켜 왔다는 건 너도 알고 있을 거야. 그리고 결국은 성공했어. 하지만 문제는 그 자리가 공백이 됐다는 거지. 그 자리에 널 앉힐까 하는데......"


"사양하겠어."


은발의 여인은 단칼에 그의 말을 잘랐다.


"전에도 말했지. 난 방관 희망자라고. 인간들 편에 서서 싸워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그렇다고 군단에 들어갈 생각도 없어."

"......그치만 넌 우리한테 빚이 있잖아? 안 그래? 이왕이면 우리 말을 들어주면 좋을 텐데 말야. 후후."


옆에서 끼어든 소녀의 눈동자와 입꼬리는 웃고 있었지만 말의 내용과 어투는 흘려들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협박에 가까웠다.


"난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뿐이야. 보통 마음의 빚이라는 건 내가 빚이라고 생각할 때 빚이 되는 건데, 미안하지만 난 전혀 너희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지 않거든. 너흰 내 사정을 이용했을 뿐이니까."


"꺄-! 어쩌지 애쉬? 얘가 전혀 말을 안 들어 처먹는데?"


"그러게 말이야 누나. 어떻게 할까?"


평범한 집의 평범한 식탁에 갑작스럽게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았지만, 은발 여인은 위협적인 어투와 눈빛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담담히 팔짱을 끼고 있을 뿐이었다.


"너희 도움을 받은 건 있지만 난 엄연히 너희완 독립된 개체야. 너희 명령에 지배당하거나 하지는 않아. 알고 있지? 둘 다는 무리더라도 내가 하나는 확실하게 저승길 보낼 수 있어."


"그건 그럴지도 모르지. 그치만 꽤 소중히 다루는 인간 하나가 인질로 잡혀 있다면 어떨까?"


애쉬가 이샤가 들어가 있는 문 쪽을 바라보았다.


"뭐, 난 딱히 시험해봐도 상관은 없는데?"


하지만 그녀는 정말로 상관없다는 투로 대응했다.


"음, 하긴...... 너라면 인질이 걸리적거리면 그냥 버리겠지. 알았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 녀석들을 계속 꼬셔볼 수밖에."


"꽤 마음에 드는 인간이라도 있으신가?"


그녀가 비아냥거렸다.


"그렇지 뭐. 세인 너도 아는 인간일걸?"


소녀가 어디에선가 나타난 종이들을 그녀에게 날려보냈고, 종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질서있게 그녀를 향해 날아가 찻잔 옆에 차곡차곡 쌓였다. 세인은 종이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그렇네."


"꽤 재밌는 인간들이라서 말야. 이왕이면 우리쪽으로 끌어들이고 싶은데 다들 쓸데없이 고집이 세단 말이지. 그런 하찮은 것들이 그렇게 중요한 건지 모르겠단 말야."


"인간이 너희를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인간을 이해하긴 어려울 거다. 너희가 하찮다고 생각하는 게 누구에게나 하찮은 가치는 아니야."


"그럼 네가 한 번 설명해 볼래? 왜 그 인간들이 완강하게 버티는지. 어차피 언젠가 우리한테 정복당할 건데 왜 그렇게 쓸데없이 저항하는지."


"......인간 예찬론을 펼 생각은 없지만 인간을 무시하진 마라. 어떤 악조건에서도 인간들은 답을 찾아왔어. 우리 차원종이 습격하자 클로저가 나타난 것처럼 말이지. 견해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난 그거야말로 인간이 이루어낸 기적이 아닐까 싶거든."


세인은 식어버린 홍차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인간을 버러지처럼 보는 건 차원종의 본능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걸 버리고 인간을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어. 뭐, 이렇게 말하는 나한테도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세인은 식어서 맛이 다 떨어진 차를 한입에 들이켜 버리고는 두 손을 모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아무튼 지금은 군단에 들어갈 생각이 없어. 그리고 군단 입장에서 봤을 때도 갑자기 나라는 지휘체계가 더해지는 건 체제를 정비해야 하는 지금특책이 아니야. 내가 이름없는 군단에 들어갈 마음이 생기면 자진해서 들어갈 테니 날 군단에 끌어들이는 부분에 대해선 너희가 굳이 수고할 필요도 없어. 어쨌든 난 인간이 아니니까. 그리고......"


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손에는 소녀가 건네준 종이 서류들이 들려 있었다.


"너희가 점찍어둔 인간들을 한 번 눈으로 보고 싶은데. 이 종이쪼가리만으로는 부족한 감이 있거든."


"맘대로 해도 되긴 한데, 이왕이면 죽이진 마. 지금은 쓰레기나 마찬가지지만 일단 우리가 찍어놨으니까."


"......죽일 필요까지나 있을지 모르겠군."


그렇게 말하면서 띤 그녀의 미소는 두 인간이 아닌 소년소녀와 빼닮아 있었다.


세인은 둘을 지나쳐 창가로 다가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별 하나 떠 있지 않았고, 캄캄한 어둠만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단지 점점 기울고 있는 달만이 밤하늘에 외롭게 떠 있을 뿐이었다.


'꽤 오랜만의 해후가 될 것 같은걸.'




왜 더스트 이름이 계~속 안 나오냐고요?


간단합니다. 저는 작중에서 이름이 등장하지 않은 인물은 설사 그게 누구나 다 아는 인물이라도 서술에 이름을 표기하지 않거든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이 셋은 서로를 잘 알고 있으므로, 꼭 이름으로 서로를 호칭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만하면 이유가 됐는지 모르겠네요.


이번에는 전편 도입부와 같이 서술이 어느 정도 있는 타입이 아니라, 대화가 주이기 때문에 스피디하면서도, 꼭 필요한 묘사와 서술만으로 떼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사실 대화가 많으면 서술도 그 정도는 돼야지! 하는 게 사람 심리지만 말이죠.

2024-10-24 22:23:5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