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자(bystander) <1>

푸뉴스 2015-02-27 1

<작가 왈>

UNION 카페에도 올리고 있는 소설입니다만, 함께 올리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서, 이곳에도 연재를 하기로 했습니다.

장편을 쓸 여력이 안 되므로 안타깝게도 단편.




짙은 어둠이 내리앉은 도로에 커다란 금이 가 있었다.


그 금의 끝에는 늘어뜨려져 있지만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다는 의사를 담은, 푸른빛으로 번쩍이는 오른손을 겨누고 있는 여인이 있었다.


여자는 약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금발의 여자였는데, 얼굴선은 고왔지만 주근깨가 나 있어 미인이라고는 봐 줄 수 없는 얼굴이었다. 머리색이 금발이라는 점만 뺀다면 어떻게 보나 평범한 여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 맺혀 있는 번쩍이는 푸른 기운은 그녀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평범하지 않기로는 그녀를 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약 열댓 명의 인원도 마찬가지였다. 손끝에 맺힌 푸른 기운 이외에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복장을 하고 있는 여인과 달리,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무장을 하고 있었고 몇몇의 손에는 흉기가 들려 있기까지 했다.


그리고 여인의 뒤에는 살벌한 공기에도 불구하고 태평하게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미형의 여자가 한 명 서 있었다. 나이는 금발의 여자보다 약간 어려 보였다.


10 대 2라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무기를 든 채 두 사람을 포위한 무장병들은 섣불리 달려들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하겠습니다."


금발 여인의 손에 맺힌 푸른 기운에서 지지직거리는 불길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조용한 밤이라 그 소리는 더욱 선명하고 불길하게 들렸다.


"얌전히 물러나서 돌아가 주신다면 당신들에게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을 겁니다. 죽고 싶지 않으면 돌아가세요."


협박의 내용은 살벌했고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없었지만 그런 협박에 물러났다면 요원들은 이곳에서 두 사람을 포위하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두 요원의 눈이 서로 교차한다 싶더니 곧장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렇게 목숨이 아깝지 않으시다면......."


여인의 손이 휘둘러지자 어두운 밤을 환하게 밝히는 푸른 빛줄기 두 개가 정확히 요원들에게로 날아갔다. 한 요원은 팔을 들어 실드를 작동시켜 빛줄기를 가드해 냈지만 다른 한 사람은 그만큼 상황이 좋지 못했다.


검을 휘둘러 빛줄기를 쳐내려다가 그대로 푸른 빛줄기에 휩싸여 버린 그의 몸에서 지직거리는 끔찍한 소리가 연이어 울려퍼졌다. 일반인이었다면 일격에 전투불능, 또는 즉사했을 만한 소음이었지만 한바탕 몸을 떤 후에도 그는 쓰러지지 않고 서 있었다.


그것을 신호로 하듯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요원들이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총성이 울리며 금발 여인에게로 총탄이 날아갔지만, 총탄은 그녀에게 가까워지기도 전에 방향을 틀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간 요원들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녀의 주위에서 푸른 장벽이 원형으로 솟구치자 그들은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지직거리는 고압 전류가 흐르는 장벽에, 버틸 수가 있다고 해도 자진해서 몸을 들이받는 것을 꺼렸던 탓이었다.


결국 리더로 보이는 한 요원이 인상을 험악하게 찌푸리며 말했다.


"언제까지 그 안에 숨어만 있을 거냐?"


"당신들이 포기하고 물러갈 때까지요. 저기 부상자도 한 명 생겼으니 그만 돌아가시는 게 어때요?"


그녀가 번개에 감전되어 아직도 몸을 떨고 있는 남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돌아가라고? 웃기지 마라. 차원종의 앞잡이 주제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냐? 클로저로써, 우리 임무는 너희들을 생포 또는 섬멸하는 것뿐이다. 특히 차원종한테 붙어 있는 너 같은 녀석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거야!"


"하아. 이보세요."


여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아직까지 당신들한테 적극적으로 공격도 안 하고 계~속 이렇게 지겹게 버티고만 있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그거야 그럴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겠지!"


"저기요. 내가 당신들을 제거할 생각이었음 그냥 하늘에다 구름이라도 만들어서 벼락 몇 번 떨구고 끝내거든요? 내가 이렇게 귀찮은 짓을 하는 건 다 아가씨가 되도록이면 당신들을 죽이지 말고 조용히 돌려보내라고 해서 그런 거라고요. 그러니까 제발 좀 가 주시면 안 될까요? 아가씨 마음 바뀌기 전에."


"그 태도, 그 말투, 점점 더 마음에 안 드는군그래. 마치 너와 저 녀석이 우릴 살려주기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정확히 맞추셨어요. 그러니까 제발 좀 ** 주세요."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것 같은 말투였다.


'.......지금이다!'

그 사이 뒤에 서 있던 한 요원이 금발 여인의 뒤에 무방비하게 서 있는 미형의 여인의 뒤로 접근해 푸른 기운이 불규칙하게 일렁이는 단도를 잡고 강하게 던졌다.  단도는 정확히 그녀의 머리를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단도가 그녀의 가까이까지 가기도 전에, 그녀가 뒤를 돌아 단도와 단도를 던진 요원을 정확히 바라보자 단도는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여인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금발 여인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이샤. 이제 다 귀찮아졌어. 그냥 가자."


"예, 옛?"


"이렇게까지 말귀를 못 들어 처먹으면 어쩔 수 없잖아. 나 피곤해. 밤도 늦었으니 이제 좀 들어가서 자고 싶어. 이왕이면 점심때 깨워줘."


"아, 네. 그러면......"


"눈 감아."


그녀가 까치발을 한 채 두 손으로 이샤의 눈을 가리자 키가 작은 그녀가 이샤를 껴안는 듯한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차원종 주제에 어딜 가겠......"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말하는 모양새 그대로 목이 잘려 허공을 날았던 것이다. 목을 잃어버린 몸은 피분수를 내뿜더니 꿈틀거리다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시끄러워."


손조차 닿지 않는 거리에서 알 수 없는 방법으로 한 남자의 목을 날린 여인에게서는 표정 변화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제야 남아 있는 클로저들은 공포를 느끼고 뒷걸음질쳤다.


"말해두는데 기회를 놓친 건 너희들이니까 후회하지 마. 그러니까 기회를 줄 때 말을 잘 들었어야지."


그리고 강한 태풍이 몰아치자 그녀의 주위에 있던 모든 것들이 썩둑썩둑 잘려나갔다. 도로도, 공기도, 사람의 몸조차도. 그 영향권에서 무사한 것은 그녀 자신과 이샤뿐이었다.

부상자까지 봐주지 않고 모조리 절단내버린 그녀는 평온한 얼굴로 이샤에게 말을 걸었다.


"가자. 나 씻겨 달라고 부탁해도 되지?"


이샤는 참상을 **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눈을 떴다.


"좀 심했나?"


"아뇨. 아가씨는 충분히 기회를 주셨어요. 그걸 무시하고 도발한 건 저쪽이죠. 그리고 '좀 심했나?' 라뇨? 아가씨 성격이랑 전혀 안 맞는 말 아닌가요?"


그 말을 들은 여인의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건 그렇네."


"......인정하시니 다행이네요. 그치만 다음부터 토막은 좀 피해 주시죠. 생리적으로 좀 역겨운데. 아가씬 안 그러세요?"


"전부터 많이 봤거든."


"......"


"가자고. 따뜻한 목욕물이랑 편한 잠자리가 기다리는 곳으로."


"그건 아가씨에 한해서겠죠......."


이샤가 중얼거렸다.


"응? 뭐라고 했어?"


'다 들은 주제에!'


이샤가 부루퉁하게 입을 내밀자 그녀가 미소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이샤가 그 손을 꽉 잡자, 두 사람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달빛이 비치는 밤거리에 남아 있는 것은 아름다운 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불쌍하기 짝이 없는 열댓 구의 시체뿐이었다.

2024-10-24 22:23:5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