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Frieren 2024-10-31 1
※ 대충 예상이 가는 모 프로그램 패러디 같은 거입니다.
“나타, 나 해 보고 싶은 게 생겼거든?”
“그래서?”
나타의 매우 직관적인 반응에 소영은 큰소리로 깔깔 웃어댔다.
“나타, 이럴 때는 해 보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보는 거야.”
“……해 보고 싶은 게 뭔데.”
자신의 말을 아주 잘 듣는 나타를 보며 – 물론 목소리에서는 잔뜩 떨떠름한 기색이 느껴졌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 소영은 흐뭇하게 웃었지만, 어쩐지 나타는 그 미소에서 뭔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이곳은 소영의 포장마차 안. 그리고 보통 포장마차라고 하는 장소를 떠올린다면 무슨 풍경부터 떠오를까? 음식, 그리고 음식과 관련된 소품들이 즐비 되어 있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떠올리는 게 대다수일 것이다.
그래서 나타는 아까 전부터 신경 쓰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자꾸만 시선이 가는 ‘그 물건’이 왜 이런 포장마차에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 물건’은 아무리 봐도 앞서 설명한 포장마차라고 하는 장소에 있을 만한 물건이 절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물건’을 소영이 천천히 가지고 올 때에 불길한 예감만 들었다.
예기와 같은 자칫 무기가 될 수 있는 일상용품 앞에서도 이렇게 겁부터 먹은 적은 없었는데. 나타는 자신이 어느 순간 나약해져버린 것인지 살짝의 자기반성마저 하게 되었다.
소영은 자신의 손에 들린 ‘그 물건’을 나타에게 별도의 설명 없이 건넸다. 나타는 잔뜩 경계심이 선 표정으로 소영의 얼굴과 ‘그 물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자 소영이 말했다.
“아, 그냥 내가 해주는 게 더 나으려나.”
“……도대체 뭘 하려는 건데, 여우 여자.”
“나쁜 건 아니야.”
……보통 그런 말은 나쁜 일을 하려고 할 때 변명처럼 많은 사람들이 내뱉는 흔하다만 제법 인기 있는 대사가 아니었던가.
도저히 경계심을 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나타에게 소영이 오늘 처음으로 생글생글 웃고 있던 얼굴을 잠시 접고, 살짝 나타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 채 뭐라고 중얼댔다.
“굳이 따지자면 내 욕심이라고 할까?”
“욕심?”
“나타는 몰라도 되는 일이야.”
소영의 말에는 의구심을 품을 구석이 전혀 없었다. 만약 그녀의 손에 들린 게 안대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저 원단이 좋은 검은색 천이라고만 여길 수 있었던 ‘그것’을 나타가 안대라고 인지하게 된 것은 얼마 전에 있었던 일 덕택이었다. 무슨 요리 대결 예능 프로그램이었던가. 소영은 물론 늑대개 팀 전원과 거실의 티브이를 통해서 봤었다. 거기서 블라인드 테스트라면서 심사위원의 눈을 가린 것이 저런 느낌의 안대였었다.
이쯤 되니 나타가 왜 포장마차에 낯선 검은색 천 쪼가리가 하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경계를 하게 되었는지 알 법도 하다. 나타는 마음속으로만 아주 조금의 샤우팅을 해대고 있었다.
어쩐지……! 심사위원들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이상하리만치 눈을 빛내더니만……!
“내가 씌워줄게.”
정말 장난 없는 ‘흑심’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혹시 나타가 헐렁하게 안대를 써서 어떤 음식인지 몰래 보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소영의 유혹(?)은 달콤하기만 했다.
나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떨떠름했다.
“뭐야, 정말 그것뿐이야?”
“응? 그것뿐이라니?”
“정말 그…… 블라인드 테스트인지 뭔지를 하기 위해서일 뿐이냐고.”
“……당연하지!”
당연하다고 말하는 대답이 어쩐지 한 박자가 늦었다. 하지만 실제로 포장마차 안에서 나는 음식 냄새를 봐서는 – 심지어 하나의 음식만 준비했다면 나는 음식의 냄새는 절대 아니었다 - 음식을 실제로 준비한 건 맞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정말 티브이에서 나온 걸 단순히 따라해 보고 싶었던 걸까? 나름 자신도 요리사로서의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절대로, 그럴 리가.’
나타는 그것만은 아니라고 직감했다. 본래 감이 좋은 것도 있었지만, 소영을 몇 년이나 보고 지낸 느낌으로도 알았다. 아니, 애초에 그런 느낌의 욕망뿐이었다면 ‘흑심’이라고 하는 표현이 곧장 튀어나올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것까지는 알아챘지만, 그 다른 의도가 무엇인지까지는 나타는 정확하게 알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가장 커다란 문제점이 하나 더.
“……뭐, 그런 거라고 한다면.”
“나타……!”
“착각하지 마! 단지 어떤 음식인지 맛보고 싶을 뿐이니까!”
나타는 소영에게만 유난히 약했다.
나타의 빤히 보이는 거짓말에 소영은 옅게 웃었다. 그러면서 적절히 맞장구쳐주었다.
“맞아, 나타는 내가 만든 음식을 너무 좋아한단 말이지.”
“…….”
“사실 그 이유 때문에 하는 블라인드 테스트인거야. 오늘 나타한테 줄 메뉴 중에는 내가 만들지 않은 게 딱 하나 있거든.”
“뭐?”
아니, 진짜 그런 느낌의 블라인드 테스트였던 거야?! 나타는 살짝 경악했다.
“어때?”
3종류의 음식을 다 먹어본 나타의 눈에 씌워져 있던 안대를 풀어주면서 소영이 물었다. 저 ‘어때?’라는 질문이 평소라면 맛있었냐는 뉘앙스의 물음이었겠지만, 안대로 눈을 가리기 전에 들었던 소영이 만들지 않았다는 음식이 한 종류가 있다는 정보가 있었기에 저 질문의 의도는 ‘어떤 음식이 내가 안 만든 거 같아?’일 것이다.
나타는 우선 감상평을 말했다.
“셋 다 먹을 만은 했어.”
“으이구…….”
맛있었다는 말 한 마디가 그렇게 어려운 걸까? 나타는 은근 소영이 요리한 음식을 아주 좋아하는 듯 하지만, 정작 당사자의 앞에서 맛있다는 말을 한 번도 해준 적이 없었다.
그게 야속해서 오늘 이 일을 꾸민(?) 것이기도 했지만.
오므라이스, 밀푀유 전골, 할로윈에 맞춰서 만든 호박 파이. 전혀 통일성 없을 것 같은 음식들이었다. 그리고 이 3개는 전부 다 사실 소영이 준비한 것이었다. 나타가 평소에 잘 찾아먹는 소영이표 분식과는 죄다 거리가 있는 음식들뿐이었다.
“일부러 헷갈리게 하려고 한 거야?”
그리고 이걸 나타도 가볍게 캐치했다. 소영은 그때서야 자신이 의도했음을 고백했다.
“익숙한 맛이 있으면 재미없잖아.”
“그래도 봐달라고.”
전부 다 처음 접하는 것들뿐이라고. 나타가 투덜거렸다.
사실 나타의 이런 반응마저도 소영의 계산 범위 내였다. 소영은 요리에 재능이 있는 것과 더불어 자신의 요리를 맛있게 먹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것도 좋아했다. 그야말로 요리를 업으로 둬도 될 정도의 최상의 재능과 재능의 결합이라고 봐도 되었다.
안대를 벗은 나타의 눈빛이 진지한 것을 보고 소영은 나타가 자신이 직전에 꺼낸 거짓말을 믿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답을 찾고자 하는 나타의 모습을 차분히 바라보았다.
절대 맞추지 못하겠지. 나타에게 의도치 않은 거짓말을 하는 건 조금이지만 양심에 찔리기는 했지만, 그런 각오(?)조차 없으면 소영이 오늘 나타에게 ‘진정으로’ 행하고자 한 것을 시도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전부 다.”
“응?”
“전부 다, 네가 만든 거 아니야?”
……어떻게 알았지?
“완벽했던 거 같은데.”
이 중얼거림이 나타가 정확한 정답을 말했음과 소영의 완패(?)임을 알려주었다.
“어떻게 알았어?”
“몇 가지 수상한 점이 있긴 했는데.”
게다가 수상한 점이 몇 개나 있었다고? 소영은 무척이나 놀랐다. 소영의 생각에는 뭐든 것이 완벽했던 거 같은데.
사실 음식을 먹기 전과 먹고 있을 때의 수상한 점은 없었다. 음식을 먹고 난 후의 소영의 반응에 수상함을 감지한 것이지.
하나, 먹을 만하다는 나타의 표현에 소영은 묘하게 서운한 기색을 보였다. 먹을 만하다고만 했을 때, 그런 반응을 보이면 자신의 음식에 대해 담백한 반응만 보이는 나타에게 야속해서 그런 반응을 보인 거라고 넘어가겠지만, ‘셋 다’라고 했을 때도 그런 반응이라서 우선 이것부터 나타의 의심을 샀다.
하나, 나타가 알기로 소영은 자신의 요리 솜씨에 대해 딱 적당한 자부심이 있었다. 소영은 눈치를 아직까진 못 챈 거 같지만 나타한테 자신의 요리를 먹이는 걸 또 유독 좋아라했다. 그런데 이 중에서 딱 하나는 자신이 안 만든 거라고? 먹어본 결과, 죄다 손이 안 가지는 않는 음식들뿐이었는데. 그런데 그 중에서 딱 하나만 자신이 만든 게 아니라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타는 여기서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이밖에도 한 가지 수상한 점이 더 있었는데, 이건 직접 입 밖으로 꺼냈다.
“묘하게 음식을 다 먹었을 때 기뻐 보이더라고.”
“아, 최대한 안 웃으려고 노력했는데…….”
소영은 난처한 기색이었다.
게다가 나타는 소영의 ‘진짜 목적’도 추리하기 시작했다.
“어린애마냥 편식 습관을 고쳐주기 위한 건 절대 아닐테고.”
“하하…….”
“목적이 뭐야?”
“목적이라고 하니, 내가 뒤에서 엄청난 흉계를 꾸미고 있는 듯한 흑막처럼 느껴지지만…….”
소영은 뺨을 긁적이다가 나타가 깨끗하게 비운 접시들을 가리키며 비장하게 말했다.
“그냥 이게 목적이야.”
“이게 목적이라고?”
“그냥 나타한테 평소에 안 해주던 음식을 대접해주고 싶었어.”
“뭐야…….”
그럼 왜 굳이 안대를 씌워서 보이지도 않는 음식을 직접 죄다 떠먹여준 건데!? 나타의 아주 정확한 지적에 소영은 할 말이 없어졌다.
사실 다른 것도 아니고, 흔한 연인들처럼 ‘아~’ 하면서 음식 떠먹이는 걸 해보고 싶었다는 걸 어떻게 말해! 아직 그런 사이도 아니거니와, 자신의 마음을 정말로 자각한 이후로 아주 가끔씩은 나타의 얼굴, 특히 눈을 똑바로 못 보겠어서 이런 사단을 벌였다고 말할 바에는.
……그냥 영원히 비밀로 묻어버리는 것이 훨씬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