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소녀 [신서울 - 9.]
fithr 2024-08-09 7
“은하 씨, 루시야-.”
“가연 언니, 어서 오세요.”
“…늦었네요.”
“아- 아하하. 그… 애들이랑 인사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네요.”
강남 CGV의 앞에서 다시 모이게 된 세 명의 소녀.
이미 가연이 어딜 다녀오는 건지 알고있는 두 사람이었지만, 가연이 알리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았기에 그에 대해선 조용히 입을 다물기로 한 두 사람은 어색하기 그지없는 가연의 거짓말에 이번 한 번쯤은 속아주기로 했다.
그리곤 대화의 주제를 바꾸려는 듯 급하게 말을 거는 가연.
“그, 그런데- 은하 씨?”
“응? 왜요.”
“그- 저 없는 동안 식사는 잘하고 계셨던 거 맞으시죠? …잠도 잘 주무셨죠?”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봐요.”
“아니- 지금 은하 씨 몰 꼴을 보고 그런 말이 안 나오는 게 더 신기할 거 같은데요.”
이틀을 푹 쉬다 온 가연의 눈에 보인 은하와 루시는, 솔직히 말해서 근 이틀 동안 편하게 있던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몰 꼴을 하고 있었다.
부스스하고 푸석한 머리와 윤기를 잃고 칙칙한 피부. 이전보다 더 짙어진 다크서클과 며칠 제대로 먹지 않은 듯 메말라 있는 볼과 힘없이 쾡한 눈동자. 가연이 빠져있던 이틀간 두 사람이 얼마나 바빴는지 은연중에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루시는 나름 숨긴다고 급하게 씻고 온 것 같긴 한데….’
아직 몸에서 짙게 풍기는 샴푸와 바디워시의 냄새.
그리고 그 외 기초 화장품의 냄새를 비롯한 탈취제 냄새가 진하게 풍겨와 모를 수가 없었다.
“…한 명이 빠진 만큼 남은 사람들이 더 구를 수밖에 없잖아요.”
“아… 그렇게 말씀하시면 할 말이 없긴 한데…. 그래도 몸은 좀 챙기세요, 저처럼 갑자기 쓰러져서 남은 사람들 고생시키지 않게요.”
“…이 언니 생각보다 마음에 쌓아두는 타입이었네.”
자기가 한 말에 그대로 당한 은하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가연을 바라봤다.
그 후 가연이 빠져있던 이틀간 알게 된 것을 공유해주었다.
세 사람은 가연이 입원해있는 동안 쇼핑물에 있던 중요 자료는 대부분 폐기되었지만, 특경대나 클로저가 자주 드나드는 곳인 만큼 저번처럼 불을 붙여 증거를 인멸할 수 없었기에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고 한다.
회수한 디스크의 데이터는 한 기남이 복구하였고, 그 안에는 예배 시설에서 거둔 헌금 납부자의 데이터.
즉, 뒤를 쫓고 있던 종교단체 신도들의 정보를 입수한 세 사람. 한 기남은 신도들에 대해 수소문했고, 은하와 루시는 세 번째 예배 시설이 있는 봉쇄 구역 구로로 향했다.
그곳에서 얻은 건 섬의 주민들에게 관한 리스트였다. 그들은 원래 구로의 난민으로 섬의 관리자에 의해 기억이 지워진 상태로 섬에 보내졌다, 일반적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행방불명되면 가족이나 친구들이 그 사람의 행방을 수소문하는 게 보통이고. 대대적인 수색이 시작됐다면 섬의 존재도 훨씬 일찍 밝혀졌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섬의 주민 대부분이 구로의 난민 출신이었고, 식품이나 금품 따위로 난민을 유혹해 기억을 제거한 상태로 섬에 보내진 거였고, 거주 허가를 받지 못한 난민들이었으니 행방불명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도, 국가기관이 쉽게 움직여 주지 않았을 거다.
“……그럼 아라나 소리, 희망 씨도-.”
“구로 난민일 가능성이 농후하죠.”
행방불명 돼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국가기관조차 나서지 않을 이들.
그 생각에 가연은 자신을 입양한 양아버지를 떠올렸다.
부모 없이 시설에 맡겨진 아이들을 입양이란 절차를 통해 데려간다면 국가에서도 크게 의심하진 않을 거다.
‘그럼… 그 애도….’
…ㅇ…….
……니….
…어…ㄴ….
“언니!”
“-!?”
혼자 생각에 잠겨있던 가연을 부르는 루시의 목소리.
그 소리에 귀가 아픈 건지 귀를 부여잡은 가연이 왜 그러냐며 묻자.
“혼자서 뭘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어요?”
“…예? 그… 벼, 별거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별거 아닌 것 치곤- 표정이 영 좋지 않아 보였는걸요.”
“…네? 제 표정이요?”
은하의 지적에 가연은 자신의 표정이 그렇게 안 좋았냐며 묻자.
“맞아요. 연이 언니 방금 표정이 너무 안 좋았어요.”
“뭐, 그 표정을 보고 좋다고 할 사람이 있다면 그런 쪽 성향인 놈이겠죠.”
“네? 그런 쪽 성향이요?”
루시는 가연의 물음에 은하를 지긋이 노려보며 백지같이 새하얀 사람한테 안 좋은 거 가르치지 말라며 은하의 귀에 대고 속삭였고, 은하 또한 자기도 모르게 나왔다며 주의하겠다고 한다.
‘……두 사람, 다 들리는데요.’
물론 뛰어난 가연의 감각에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진작에 들려왔다.
*
“아, 그러고 보니 이 소식을 안 전해드렸네요.”
“응? 무슨 소식?”
세 사람은 아직 시간에 여유가 있는 동안 빠르게 밥이나 먹고 움직이자며 근처 분식집으로 들어왔다.
은하가 추천한 곳인데 이유는 싸고 맛있는 데다 양도 많아서, 루시는 안 그래도 먹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며 좋아했고 가연 또한 분식은 거의 십 년만이라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희망 씨의 수술을 해주실 분이 어제 도착했데요.”
“정말!”
“네, 정 도연이라는 분이신데 일전에 가연 언니 검진에도 그분과 친분이 있으신 분이 조력해주셨다고 해요.”
루시가 전해준 소식에 가연의 얼굴엔 화색이 돌면서 도착하기 전 병원에서 들었던 수술이 바로 그거였다며 잘 끝나야 한다며 걱정하지만-
“여기서 걱정해봤자 에요. 그냥 잘 될 거라고 믿을 수밖에 없어요.”
“맞아요, 분명 잘 될 거예요. 합- 으- 매, 매워!”
가연의 걱정에, 은하는 잘 될 거라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고. 루시 또한 분명 잘 될 거라 말하곤 주문한 걸 한 입 먹고는 맵다며 물을 찾아 조용히 쥬시쿨 하나를 건네주었다.
“으-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맵네요.”
“그렇게 맵나?”
처음 먹는 애 하나에 오랜만에 먹는 이가 한 명 있어 일부러 제일 안 매운 걸로 시켰다며 소스를 한 입 찍어서 먹어보는데-
“-!?”
은하는 생각지도 못한 맵기에 바로 루시에게 건냈던 쥬시쿨을 자기 입에 들이부었다.
“이 사장님,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맵기가 전혀 다르잖아.”
주문한 거와 전혀 다른 맵기에 화가 난 은하는 당장 사장한테 따지러 가려는 데.
두 사람의 반응에 순전히 호기심으로 입안에 넣고 있던 가연은 별 감흥 없이 먹고있는 모습을 보자.
“……언니, 안 매워요?”
“네? 어, 맵다기보단 그냥 맛있는데요.”
너무 무덤덤한 반응에, 은하는 뭐지 우리 입이 이상한 건가 싶어 한입 더 먹어보곤 다시 입안에 쥬시쿨을 들이부었다. 그리곤 진짜 하나도 안 매운지 같이 산 다른 음식들도 하나씩 소스에 찍어서 먹는 가연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혼자 먹었고, 그런 가연을 그저 놀랍다는 듯이 바라보는 루시와 은하.
“? 안 드세요?”
“…난 그건 못 먹을 것 같아요.”
“저도요….”
감당 못 할 맵기에 두 사람은 먹기를 포기했고. 가연은 혼자서 그 양을 다 먹는 모습에 은하는 이 언니 혀는 매운맛을 못 느끼냐고 중얼거렸고, 루시는 혼자서 3인분에 해당하는 양을 아무렇지도 않게 다 먹는 가연을 보며 생각보다 많이 먹는다며 놀랐다.
식사를 마치곤 다시 CGV로 가자.
“어, 정 도연 씨!”
식사 중에 말한 정 도연이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아, 두 분, 그리고… 뒤에 계시는 분은 혹시 이전에 말씀하셨던 또 다른 동료분이신가요.”
“네, 저희 가연 언니예요.”
은하와 루시를 본 정 도연은 두 사람을 아는 체했고, 처음 보는 사람에 가연은 낯 가림을 하는 지 두 사람의 뒤에 딱 붙어있었다.
“이 언니가 사람 시선을 좀 부담스러워해서요.”
“아- 한 기남 씨에게 들었어요. 시선 공포증이 있으시다고.”
“예, 뭐.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에요.”
“아, 희망 씨의 수술이 다행이 잘 마무리돼서 그걸 전해드리러 왔어요.”
“희망 씨의 수술이요.”
정 도연의 말에 뒤에있던 가연이 반응하였고, 정 도연은 그런 가연의 물음에 부드럽게 응하였다.
“네, 일단 수술 자체는 무사히 끝났어요.”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정 도연의 입에서 나온 무사히 끝났다는 말에 가연은 긴장이 풀린 듯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하지만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고 해서 안심하기에는 일러요. 기계 장기에 대한 거부반응이 없는지, 시간을 두고 관찰해야 하니까요.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을 거예요. 그래서 말인데, 죄송하지만 그 동안에는 누구도 희망씨를 만날 수 없어요. 그러니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주셨으면 해요.”
“그렇군요….”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말에 다시금 수심이 짙어진 가연.
“그래도 실패한 건 아니니 다시 만날 수 있을 가능성은 더 높아진거잖아요.”
“맞아요. 그러니 그런 표정은 짓지 말아요, 가연 언니.”
“…응. 고마워 루시야. 그리고 은하 씨도 고마워요.”
“별걸 다 고마워하네요.”
가연의 말에 괜히 부끄러운지 퉁명스레 답하는 은하.
“그리고 그것관 별개로 여러분과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잠시 시간을 내주셨으면 해요.”
잠시 시간을 내달라는 장도연이 시작한 말은 쓰레기 섬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친분이 있는 클로저와 닥터를 통해 전해 들은 게 있다고. 하지만 그들은 우리에 대한 건 잘 모르는 눈치였기에 우리가 일부러 자신들의 존재를 감췄냐 물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고의로 그런 건 아니었어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죠?”
동일한 반응을 보이는 루시와 가연, 경계심이 올라간 은하.
세 사람은 비슷하지만 다른 반응에, 정 도연은 추궁하려는 게 아니라며 오히려 희망의 이야기를 들으며 알게 된 세 사람은 결코 나쁜 이들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며 답하였지만, 동시에 정규 클로저가 아닌, 미등록 위상능력자인 것도 알고 있다며 세 사람이 미등록 위상능력자가 된 이윤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도 등록을 하겠다면 자신이 보증을 서 관계자들에게 잘 말해 줄 수 있다며 제안하였다.
하지만-
“……보증 같은 거 함부러 서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친절하게 제안해 주신 건 고마워요. 하지만, 선뜻 알겠다고 대답을 드릴 수가 없는 걸 용서해 주세요. 저는-”
“……죄송해요. 제안해 주신 건 정말 감사하지만…. 저는-”
“““클로저가 될 자격(((은) 같은 거) 이) 없어요.”””
돌아온 건 세 사람 모두의 거절이었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사정이라도 설명해 주면 안 될까요?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도와주고 싶어서 그래요.”
정 도연의 말이 진심이란 걸 안다.
그렇기에 더욱 말하기가 힘들었다.
은하는 확실한 거절의 의사를 밝혔고, 루시는 자신의 사정을 돌려서 거절했고, 가연은-
“도와주신다는 말은 정말 고마워요. 하지만- 누구나 남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러니 저는 당신의 그 상냥한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어요.”
정 도연이라는 사람 자체는 신뢰가 가지만, 그녀가 속한 조직은 어떨지 알 수 없다.
힘과 권력을 손에 쥔 이들이 언제나 찾는 것은 영원이었고, 그 영원을 이룰 힘을 가진 자를 발견하게 된다면, 겨우 되찾은 자유는 이젠 두 번 되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좋아요. 하지만… 나중에라도 마음이 바뀌면 다시 절 찾아와 주세요. 당신이 괜찮다고 할 때까진 그분들… 오세린 요원이나 닥터 케롤리엘에게 당신들의 존재를 말하지 않을게요.”
“고마워요, 언젠가… 당신이 제게 해준 그 상냥한 제안을 받을 수 있게 되면 좋겠네요.”
“그래요. 아, 그러고 보니 그들도 미등록 클로저들을 보호 및 관리하고 있는 중이라고 하더군요. 미래 씨와 김철수 씨… 라고 했던 것 같네요. 지금은 신규 클로저가 되기 위한 연수를 받는 중이라고 해요.”
“그래요? 그때 그 사람들인가….”
“그들도 섬 출신의 아이들에게 신경을 많이 쓰는 모양이에요. 얼마 전에, 수상한 사람이 아이들에게 접근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혈안이 돼서 주위를 탐색 중이라고 하더군요”
수상한 사람…?
순간 정 도연이 하는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
지난 이틀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있었는데, 그동안 수상한 사람이라고 할 만한 이는 한번 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걸 알고 있는 은하와 루시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그들이 말하는 수상한 사람에게 대해 정 도연에게 묻자.
“섬의 관리자… 라고 하는 것 같던데요.”
정 도연의 입에서 나온 말에 세 사람의 표정과 분위기는 금세 사나워졌고.
그러한 변화는, 정 도연에게 그 세 사람과 본인이 언급한 이의 악연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 수 있었고. 아직 이 근처에 있을 수 있다며 탐색을 제안하였다.
그러자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시선을 마주한 뒤 바로 준비해 뛰쳐나갔다.
이번에야말로 끝을 보겠다는 듯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