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소녀 [신서울 - 8.]
fithr 2024-06-04 1
“어, 벌써 퇴원 준비 중이세요?”
“응? 어, 안녕하세요.”
퇴원 준비를 하고 있던 가연의 뒤에 어느샌가 나타난 어제의 그 간호사.
“입원 기간이 이틀이라서 그런지 금세 가시네요.”
“네, 그러네요. 요 이틀간 신세 많이 졌어요.”
이틀이란 짧은 입원 기간이었지만, 어제의 일이 있던 뒤로 간호사와 금세 친해진 가연은 퇴원 전 마지막으로 간호사분들께 인사를 건네러 갔고, 가연의 인사에 간호사들은 이제 정들었는ㄴ데 아쉽다며 다음엔 병원이 아닌 밖에서 보자며 인사를 건냈다.
“연이 언니, 이제 가는 거야?”
간호사분들과 인사를 나눈 뒤 아이들과 인사를 하러 온 가연.
그런 가연의 다리를 붙잡고 안 가면 안 되냐며 투정을 부리는 소리를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음- 소리야. 언니가 우리 소리랑 다른 친구들 보러 또 올게. 응?”
아이가 꽉 붙잡고 있는 거라 그냥 가기엔 마음이 너무 아팠던 가연이 또 오겠다며 약속하지만-.
“…….”
가연과 해어지는 게 싫은 소리는 붙잡고 있던 가연의 다리를 더 꼭 잡고는 삐진 듯 볼을 부풀렸다.
“으음- 우리 소리가 이러면 언니가 가기 힘들어지는데….”
“…안 가면, 안돼?”
가연의 곤란해하는 표정에 소리는 가연의 다리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답했고, 의식적으로 감각을 제어하는 중이어도 뛰어난 가연의 청각은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음- 언니도 우리 소리랑 더 같이 있고 싶은데, 언니가 안 가면 은하 언니랑 루시 언니가 걱정할 거야.”
“…….”
그 말에 소리의 손에 들어간 힘이 조금 풀렸고.
살짝 움직이는 것만으로 스르를 빠져나온 가연은 소리와 눈을 맞추려 쪼그려 앉았다.
“우리 소리 언니랑 더 놀고 싶은데 언니가 그만 간다고 해서 속상했구나.”
“……응.”
“미안해. 언니가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우리 소리랑 오래 못 놀아줘서.”
토라진 듯 가연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소리를 보며 가연은 그저 소리가 자신을 바라봐 주길 바라며 말을 이어갔다.
“대신 이번 일이 끝나면 우리 소리랑 더 오래 놀 수 있게 해볼게.”
“…진짜?”
“그럼, 정말이지. 그땐 언니만이 아니라, 은하 언니랑 루시 언니도 같이 올게. 그때는 우리 다 같이 신나게 놀자.”
“…응!”
토라진 아이를 달래는 모습이 몇 본 해본 듯 능숙했다.
“아라야, 언니 그만 가볼게.”
“아, 언니 잠깐만-.”
그만 돌아가려던 순간.
“이거 희망 오빠가 언니한테 전해달라고 한 거야.”
“희망 씨가?”
아라와 몇몇 아이들이 짐 속에서 가져온 한 비녀.
희망이 가연에게 전해달라 부탁한 비녀는 길이가 길고 밝은 옥빛으로 빛나는 게 한눈에 봐도 상당히 아름다웠다.
“희망 씨에게 고맙단 말을 전해야겠네.”
희망의 선물을 손에 쥔 채 가연은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전하곤, 마지막으로 희망이 있는 병실로 가보려 했지만-.
“죄송합니다. 지금 환자분이 수술에 들어가셔서요.”
희망과의 면회는 불가능해 만나진 못했지만, 그가 있을 병실의 앞에서 그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건강해진 그와 화면의 너머가 아닌 서로의 시선이 맞닿는 현실에서 볼 수 있기를 소망하였다.
*
“응? 뭐야, 이제 퇴원한 거야.”
병원을 나와 일행들의 집합 장소인 강남 CGV에 도착한 가연을 반기는 반금련.
그리고 그런 반금련에게 이틀만이라며 상냥한 미소로 인사를 하는 소녀를 보며 반금련은 묘하게 사람을 편하게 하는 애라며 이틀 만에 만난 소녀에게 퇴원 선물이라며 건네준 파일.
“원래는 좀 더 일찍 줄 생각이었는데, 네가 입원했다는 말에 전해주는 게 조금 늦었어.”
“……반금련 씨, 혹시 다른 분들이 오시며 말 좀 전해주실 수 있나요.”
소녀의 말에 반금련은 잠시 멈칫하더니-
“…그래, 내가 잘 얘기해 둘게. 그러니 어서 다녀와.”
그 말에 가연은 뒤도 돌아** 않은 채 어딘가를 향해 달렸다.
“정말… 나도 사람이 많이 좋아졌다니까.”
예전이라면 이런 돈 한 푼도 안 되는 일 하지도 않았을 텐데-.
“꼬마한테 하도 친절하다고 불려서 정말 친절해진 건가.”
그렇지, 오빠.
하아-. 하-. 하아-.
“저… 저기….”
가연이 급히 달려온 곳은 신 서울 국립 납골당.
차원종으로 인해 죽은 이들의 납골함이 모여있는 납골당에 소녀가 온 이유는-
“가 윤호와 아델리나 이바니우나 데류히나의 납골함은 어디에 있나요.”
소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초조해 보였다.
“아, 있네요. 저쪽으로 가시다 보면 나올 겁니다.”
말을 다 듣지도 않고 가연은 직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걸음걸이를 옮길 때마다 납골함에 적힌 이름을 전부 살펴보며 자신이 찾고 있는 이름.
“……아아. 찾았다.”
“찾았어, 엄마… 아빠….”
언제라도 부르면 나타나 줄 것만 같은 그립고도 그리운 부모님의 이름이었다.
*
연아.
연아, 그만 일어나야지.
으음- 싫어… 더 잘 거야.
흐음- 그래. 그럼 오늘 우리 연이랑 같이 대공원 가려고 했었는데- 그냥 안 가야겠다.
?! 나 일어났어!
응? 더 잔다고 하지 않았어요?
가! 대공원! 가요!
흠~ 어떻게 할까?
이익-!?
여, 여보 그만 놀려요….
미안해요, 그치만 우리 딸이 놀리는 재미가 있네요.
엄마, 미워.
예이~ 우리 딸 엄마가 미안해요- 대신 오늘 엄마가 아빠 몰래 나이비(Nalysnyky) 만들어 줄게요.
음… 그러면 용서해 줄게, 대신 많이 만들어 줘야 해.
당연하지. 대신 아빠한텐 비밀-.
여보, 연아. 나이비는 하루에 3개까지야.
!? 허, 허니- 적어도 5개론 안 될까?
안돼. 그리고 연이한테도 너무 주지는 마. 애가 후식 때문에 밥을 안 먹잖아.
그치만… 여자에겐 간식 배는 따로 있는걸!
마, 맞아!
그래도 안돼.
히잉- 엄마, 아빠 미워.
엄마도 아빠가 미워.
어린 시절 언제 나와 같은 평범했던 일상.
가정적이고 친절한 아버지와 장난기 넘치고 언제나 충분한 사랑을 나눠주던 어머니.
그런 두 분의 아래에서 그저 평범하고 평화롭게 언제나 사랑받는 게 익숙하던 일상은 기분 좋은 꿈처럼 눈을 띄자 어느새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너무 늦게 찾아와서 죄송해요… 엄마, 아빠.”
십 년-.
부모님에게 다시 돌아오는 데까지 십 년이 걸렸다.
부모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아니, 죽음이란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나이에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고, 세상엔 인간의 모습을 한 추악한 짐승도 있다는 걸 알게 된 소녀가 다시 부모에게 돌아오는데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었다.
“엄마- 저 이제 엄마랑 비슷하게 컸죠.”
“아빠- 저… 머리카락 색이 바뀌었어요, 원래는 아빠랑 같은 검은 색이었는데.”
“저- 같이 다니는 애들이 생겼어요. 은하와 루시라는 애들인데- 둘 다 굉장히 좋은 애들이에요. 은하는 표현하는 게 서투르고 분위기가 좀 무서워서 그렇지 다른 사람들을 잘 챙기고, 루시는 주변 사람들을 웃게 만들어 주는 애인데 가끔 그 나이 때의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침착하기도 해요.”
“아라랑 소리라는 애들이 있는데 둘 다 엄청 귀여워요. 언제나 절 보며 밝은 미소를 짓고 언니 언니라고 다가오는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요.”
** 못했던 십 년의 세월.
그 십 년의 세월을 채우고 싶은 건지 소녀는 그간 있었던 자신의 근황을 부모의 유골함을 바라보며 말했고. 돌아오는 답은 없었지만, 소녀는 자신의 이야기가 부모에게 닿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쉴 새 없이 말을 걸었다.
“그리고… 또 그리고….”
쉴 새 없이 홀로 이야기를 하던 소녀는 마침내 깨달을 수밖에 없다.
“…….”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그 얘기에 답해줄 이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을-.
“하… 하하… 하….”
이젠 진짜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언제나 따뜻한 미소로 자신을 반겨주던 부모님은 이제 더 이상 없다는 것을-.
“…….”
“……은하 씨.”
“뭐? 금발.”
“…루시라니까요.”
분명 오늘이 퇴원하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평상시에 모이던 집합 장소에 가연이 없자.
애들 보느라 아직 안 나온 건가 싶어 병원을 들렀지만, 이미 퇴원했다는 말에 마침 집합 장소에 있던 반금련에게서 얻어낸 가연이 향한 장소.
‘……쯧.’
하필이면 와도 여기냐고-.
은하는 속으로 혀를 차며 이게 그 인연인지 뭔지 하는 건가. 라며 괜스레 신경질을 냈다.
‘…아빠.’
그도 그럴 게 은하의 아버지,
은 해성이 있는 곳이 공교롭게도 가연의 부모님이 있는 곳과 같았다.
“연이 언니 굉장히 쓸쓸해 보여요.”
“…뭐. 못해도 십 년-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랫동안 못 봤을 테니까.”
감금당한 채 인체 실험의 실험체로 지냈었다고 했으니-. 부모의 묘를 찾아올 수도 없었겠지.
“…가자.”
“네.”
오랜 세월이 걸려 겨우 재회한 가족의 시간을 방해할 수 없던 두 사람은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