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걸이 - 교주의 일탈 (2/3)
Frieren 2024-05-28 1
※ 날조 설정 有
그녀의 삶에 있어서 그녀의 아버지는 무척이나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창조주, 혹은 혈연적인 관계, 라고 건조하게 일컬어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녀의 모든 것이 어찌 보면 그녀의 아버지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교단은 애초에 내부차원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녀의 아버지가 만들어낸, 외부차원과 내부차원을 잇는 다리 역할 겸 본거지였다. 그리고 이런 중요한 거점을 지키는 수장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택했다. 자고로 현명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리 불꽃의 세례를 내리고 세례를 통해 몸이며 정신을 다 본인 입맛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해도, 온전하지 못한 몸과 정신 상태의 꼭두각시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한 한정되어 있었다. 즉,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녀의 아버지는 나름 본인 스스로 판단도 하고, 자기와 가치관도 맞고, 자신의 불꽃의 세례를 받아들여도 어느 정도 감내할 만한 생물을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그것이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를 그녀는 딱히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정상적인 환경에 노출되어 성장한 그녀한테 있어서 이건 되러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나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고, 그러니 탄생에서부터 비범한 사명을 해내야 하는 운명을 가진 존재.
그러니 보통의 인간, 아무리 차원종의 피가 절반 섞인 인간이라 할지라도 절대 감내할 수 없는 비정상의 극치를 겪고도 나름 멀쩡하게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애초에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비정상이라고 자신의 삶을 절하하는 건 그저 내부차원에 잠식하고 있는 평범한 인간들의 기준일 뿐이라고.
그러나 이런 가치관조차 그녀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을 내린 부분이 아닌, 그녀의 아버지가 주입시킨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보는 관점이 사뭇 달라진다.
아마도 이런 점 때문에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만들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실로 자신과 똑 닮은 딸 – 외형적인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 에게 애정 비슷한 것도 생겨버리기도 했고.
그녀의 아버지는 나름대로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고 사랑마저도 주고 있었다.
이렇게 그녀의 삶을 시작도 시키고, 전반적으로 중요한 삶에 있어서의 메시지 – 이게 과연 중요하고 정곡을 찌르는 건지는 물론 차치하더라도 – 도 주고, 물질적인 것은 당연하게도 충분히 제공하는 그녀의 아버지는 당연히 그녀에게 아주 커다란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교단, 그리고 그 교단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만들어낸 그의 딸. 처음 그의 딸이 교단의 교주를 맡게 되었을 때의 나이는 불과 성인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불꽃의 딸이 한 교단을 이끄는 교주가 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역시나 그녀의 아버지 덕택이 아주 컸다.
사실 처음부터 그렇게 규모가 제법 있는 종교 단체를 만드는 것은 아무리 전지전능한 신(神)에 가까운 그라고 하더라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물며 그때의 그는 인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능숙하게 물밑작업을 하였다. 인간들이 차원전쟁이라고 부르는 시기부터. 그는 어떤 인간 여자를 점지하였고, 마침 그 여자는 인간들 기준으로 치면 소규모의 사이비 종교를 거느리고 있는 교주였다. 아무리 비정상적인 존재가 말을 걸어도 그저 신의 부름이라고 바로 치부할 수 있는 그런 정신머리를 가진 인간 여자였다. 그 인간 여자가 믿고 있는 신은 그저 조악한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존재에 지나지 않아서, 인간 여자를 자신의 가치관으로 물들이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지 않았다. 곧바로 전쟁 시기에 맞춰서 차원종을 숭배하는 집단이 생겼다는 기록이 곳곳에 남게 된 것을 보면 말이다.
지금의 프로미넌스 교단은 그 인간 여자가 본래 가지고 있었던 종교 단체를 단순히 부풀리는 데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불꽃왕의 수완은 대단도 하여서, 외모만 뛰어났을 뿐인 그 인간 여자의 형편없는 카리스마와 경영력으로는 절대 거느릴 수 없을 정도로 규모는 대단히도 커졌다.
그렇게 단체의 규모가 어느 정도 성장하자, 어느 날 불꽃왕은 그 인간 여자에게 말을 했다. 진정한 신의 대리인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그걸 인간 여자는 불꽃왕이 자신을 선택하고, 자신을 한 단계 더 뛰어넘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들려고 하는 걸로만 알았다. 사실 그 인간 여자는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었지만, 어느 날 자신에게 대뜸 다가온 이 정체 모를 목소리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신의 여자가 될 수도 있다는, 아주 그런 욕망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선택해준 것에 대해 내심 기쁘기도 하였다.
그게 그 목소리의 본래 속셈인지도 모르고. 애초에 불꽃의 세례를 그 인간 여자에게도, 불꽃왕은 심어 놓았다. 그리고 그 세례의 목적은 처음부터 자신을 음심으로만 갈망하게 되게도 만들었다.
그저 그 인간 여자는 이용당했을 뿐. 아니, 사용되었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그의 딸이 태어났다. 아니, 만들어졌다. 요상하게도 그의 딸의 어머니 되는 자를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눈여겨볼 점이라고 한다면 불꽃의 딸의 외모가 그 인간 여자와 똑같이 생겼을 뿐이었다.
그 이상 그 이하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튼 그녀는 어찌 되었든 간에 만들어졌다.
아무리 우열한 혈통이라고 하더라도 나이가 절대적으로 어리다면 경험 부족은 당연지사였다.
그래서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위해 모든 행동가짐을 정해주었다.
옷차림. 신비스러운 느낌을 주는 하얀색 옷을 입거라.
말투. 고급스러운 단어를 사용하고, 되도록 천천히 나긋하게 말하거라.
걸음걸이. 되도록 좁은 보폭으로 걷거라.
치밀함. 겉으로는 무방비해보이게 하고, 절대 대들 수 없는 보호 장치는 한 두 개쯤 걸어두거라. 예를 들면 상대에게 등을 자주 내보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리라. 보통의 인간들은 무방비한 등을 상대방이 보인다면 절대 본인이 질 수 없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하기 마련이리라. 그 틈을 노려서 공격한 대상을 단숨에 무력화시킨다면 절대 너에게 대들려고 하는 존재는 나타나지 않으리라…….
……등등.
불꽃왕이 그녀에게 지시한 것은 대부분 그녀를 비록 인간의 피가 어쩔 수 없이 절반이 섞이게 되기는 했지만, 어찌 할 수 없게 지극한 상식을 가진 평범한 인간들이 보면 불꽃의 딸이 초월적인 존재로 보이게끔 하려는 물밑작업이었다.
보폭이 좁으면 도망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여 무방비해 보인다. 그리고 등을 자주 보인다든지, 인간들 기준에서 무기로 보이는 소지품은 가지고 다니지 말라든지. 이것도 앞서 비슷한 결이었다. 불꽃왕의 인간에 대한 이해는 무서울 정도로 높아져만 갔다.
몸에 딱 맞는 하얀색 교주복도 어떻게 해야 성스러운 느낌까지 나면서, 인간으로써의 아름다움이 잘 가미되게끔 여러 논의 끝에 만들어낸 독특한 디자인이었다. 단점이라면 몸에 너무 꽉 끼어서 저 좁은 보폭으로 다니라고 하는 걸 상시 명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좁은 보폭으로 걷게 만든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런 종종걸음으로는 때로 답답할 때가 있어서, 불꽃의 딸은 신도들이 아무도 없을 때를 빌려 가끔씩 일부러 다리를 과장스럽게 좍좍 피면서 보통 보폭도 아니고 지나치게 넓은 보폭으로 몇 분 정도 돌아다닐 때가 있었다.
이건 오로지 강림만이 보는,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모습을 관전할 때마다 강림은 그의 교주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엇인지, 하고.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저 작은 일탈. 아니, 반항일 뿐이라고.
어디 잠깐이라도 숨 쉴 틈이 있어야지, 이건 그녀가 지금 입고 있는 옷 같이 프로미넌스 교단의 교주의 행동 방침은 답답하게 그지없었다.
그녀는 평범한 존재는 아니었기에 이런 자신의 아버지의 지침을 그저 순종적으로 받아들이기는 하였지만, 이렇게 아주 잠깐이마나 작은 일탈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탈의 횟수는 점점 많아지고 기간도 부쩍 짧아질 때.
우연찮게 그 시점에서 그녀는 자신과 똑같은 반인반차원종의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자신과 달리 만들어진 것이 아닌, 평범한 사랑의 결실이라고 일컬어지며 태어난 존재를.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기괴함 내지 불쾌감만 들을 거 같았는데 의외로 처음 들었던 감정은.
……호감이었다.
※ (3/3)으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