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구매 - 교주의 일탈 (1/3)
Frieren 2024-05-13 1
수집하려는 욕구가 왕창 높으면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감별하는 능력 또한 갖추어지고 성장도 하게 된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법칙 같은 거였다. 당연했다. 재보를 넣어두는 창고가 아무리 크다고 한들 ‘물리적인’ 크기가 존재하는 한, 어느 사이에 물건을 넣어두는 공간이 협소해지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그냥 아무 물건이든 다 모아두는 습관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자신의, 혹은 자신이 맡아서 관리하고 있는 남의 보물 창고의 여유 공간이 부족해지는 걸 자주 겪게 된다면.
그리고 그로 인해 곤란해지는 상황을 겪게 된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기준에서 ‘쓸모없는’ 것들은 처음부터 보물고에 발도 들이지 않게 나름의 철칙을 가지고서 ‘감별’해내는 수밖에.
그녀의 아버지 되는 자는 재보 수집을 좋아하는 수집광이어서 상당히 높은 감식안을 가진 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딸에게 처음부터 그러한 기술을 일절 전수해주지 않았다. 직접 물건들을 보면서 차근차근 감식안을 끌어올리는 게 가장 쉽지만 정석적이며 또한 효율이 가장 높은 방법이라면서.
그로 인해 처음 몇 년은 고생이 좀 많았다. 아무리 정석적인 방법이라고 하더라도 기초적인 구별 방법 정도는 귀띔을 해줬어야지.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말한 거라고는 자신이 제일 가치를 두는 보물의 종류뿐이었다. 대개 빛이 나는 그런 것들이라고 했다. 그렇게 뭉개는 식으로 설명하면 아무리 명석한 그녀라도 차마 이해를 하지 못해 분간이 잘 가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처음 불꽃의 딸이 모은 재보들 중 몇 년 치 분량에는 ‘녹’과 ‘흠집’이 있는 보물들도 적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라면 되지도 않는 결함품은 필요 없다면서 바로 소각 처분을 할 터였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의 피를 절반이나 이어 받기는 했지만, 공교롭게도 그녀의 나머지 절반은 그녀의 아버지가 하찮다고 여기는 인간의 피가 섞여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모은 수집품들의 그런 작은 결함을 폐기처분해야 할 것이 아닌, ‘희소성’이라고 받아들였다.
예를 들면 사람을 죽이는데 거리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이는 반드시 지키고 싶다는 이상한 정의를 가진 처형인이라든가, 한때 인류의 편에 서서 정의롭게 살고자 했으나 결국 자신의 광대한 힘에 취해버린 웃기지도 않는 광대라든가. 혹은 무의식에 잠겨 있는 소중한 사람을 결국 기억도 하지 못한 채 옆에 있는 비슷한 또래의 여자 아이에게 그를 투영하고 있는 어느 덜 떨어진 사람이라든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쪽이 더 예술적이지 않나. 불꽃의 딸은 그렇게 생각했다.
인간은 누구나 다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자신만의 결함에 대해 대부분의 인간들은 죄스럽게 생각한다. 즉, 본인 탓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인간의 고뇌가 어찌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아무튼 요약하자면 처음 몇 년 동안만 미숙해서 그랬지, 불꽃의 딸은 이제 엄연히 재보를 제대로 바라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이에 대해 그녀의 아버지 또한 매우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자신과는 조금 다른 심미안을 가지기는 하였다면, 그에 대해 꼬투리를 잡지 않았다. 그녀가 말하는 대로, 그녀가 문제점이 있다고 하는 보물들의 결함은 그한테 있어서 ‘아주 사소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대처가 가능한 수준의 결함들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보물 창고의 열쇠를 받게 된 지 꽤 시일이 흐르게 되었을 무렵.
그녀가 어느 날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사왔다.
그것도 외부차원과 관련된 물건 같은 것이 아닌, 내부차원에서 만들어낸 지극히 평범한 물건이었다.
처음 택배 상자로 겹겹이 쌓여 있는 그 물건이 교주의 방에 덩그러니 버려져 있다시피 했을 때, 강림은 도저히 묻지 않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이것은……?”
“사버리고 말았어요.”
그에 대해 그의 사랑스러운 교주는 겸연쩍게 웃을 뿐이었다.
이게 그녀 본인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바로 다음 그녀의 행동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원래 내부차원의 물건은 별 관심도 없고, 하나 같이 금방 고장나버리는 불량품 수준이라서 잘 눈길이 안 가는데……. 정말 신기했어요.”
“…….”
“저도 모르게 그만 구매 확인을 누르고 있었어요.”
그녀가 무려 변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강림한테 말이다.
그녀가 말한 대로였다. 워낙 고차원적인 존재인데, 그 존재들 중에서도 보물을 수집하는 욕구가 강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녀였기에, 아무리 절반은 인간의 피가 섞였네 어쩌네 해도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심미안을 어느 정도 따라가게 되는 법이었다. 그 일례로 앞서 희소성이 있는 결함품 이야기에서도 거기에 포함되는 것들은 전부 다 ‘인간’이었다. 그녀조차도 인간에게만 관심이 있을 뿐, 내부차원 물건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소리였는데.
그런 그녀가 충동적으로 사버리고 만 물건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이것은……?”
“식탁이에요.”
그의 교주가 상당히 차분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닌 걸 뻔히 알 텐데도 굳이 말이다.
강림도 포장지를 뜯자마자 그 위용을 뻗치는 이것이 식탁인지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강림의 저 ‘이것은?’이라는 질문은 단순히 이것은 식탁인지 아닌지를 떠나 왜 그녀가 식탁을……그것도 가운데에 유리로 된 회전판이 빙빙 돌아가는 고급 중식당에서 볼법한 식탁을 왜 사왔는지에 대한 궁금증이었던 것뿐이었다.
그녀는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마저 설명했다.
“그냥 식탁이 필요할 것 같아서 사버리고 말았어요.”
“……혹 하저(下箸)하는 자리가 불편하셨나이까.”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정말 쓸데없는 충동구매를 한 것에 지나지 않는가. 강림의 더 정확한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에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 늘 당당한 언행만 하던 그녀가 내심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여도 강림은 느긋하게 그의 교주가 다시 말만 하기를 기다려주었다.
“꿈이 있어요.”
서두는 대뜸 없었다. 하지만 강림은 그 부분만큼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렇습니까?”
“어머, 보통의 반응이라면 교주님한테도 꿈이 있었습니까? 라고 맞받아치실 것 같았는데.”
“교주님의 염원은 곧 위대한 불꽃의 염원 그 자체가 아니나이까.”
“그래요……. 저의 아버지의 염원은 곧 저의 염원. 하지만 제가 방금 말한 꿈은 그런 걸 말한 게 아니랍니다, 나의 도사님.”
강림의 저 대답이 교주한테 있어서는 한편으로 다르게 다가왔는지 아주 잠깐이지만 교주의 얼굴은 굳어져버렸다.
“제가 어떻게 식사를 하던가요, 도사님?”
“식사하시는 모습이라고 하시면…….”
강림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교주가 주로 식사를 청하는 곳은 교단의 예배당마다 비치되어 있는 교주의 사실(私室)이었다. 그리고 사실이라고 함은 보통 가정집에서의 침실 모습과 비슷한 구조였다. 다르게 말하면 침대가 있고, 옆에 탁상 같은 것이 놓여 있고, 조금 공간이 넓은 사실이라면 거기에 책 같은 건 읽을 수 있는 책상 정도까지 있었다.
매 끼니마다 진수성찬이라도 먹을 것 같은 이미지이지만, 그녀가 제일 선호하는 것은 샌드위치 종류였다. 편의점이든, 샌드위치를 전문으로 하는 카페이든, 흔한 프랜차이즈 제과점에서 파는 거든 그 종류는 의외로 가리지 않았다. 영양의 불균형이 걱정되어서 강림이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것이 어떠냐고 감히 말을 한 적도 있었다.
그 때 그의 교주는 이렇게 답했다.
-간단하고 간편하잖아요.
의외로 이런 부분에서는 소탈하다고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 곱게 자라가지고 본가의 전문 요리사가 아닌 음식이 아니면 다 맛이 거기서 거기라 그저 죽지 않기 위해 음식물을 씹어 먹는다는 것이 아닌 이상은.
그래서 강림은 자신이 모시는 교주가 샌드위치를 좋아하고 있다고 억측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틀린 것이라고 한다면? 실제로 지금 교주가 사온 회전식 식탁은 고작 샌드위치를 혼자서 먹기 위해 샀다고 하기엔 부피가 지나치게 커다랬다. 오히려 교주가 이제까지 어느 브랜드의 샌드위치든 가리지 않고 먹었던 건, 그게 그나마 먹을 만 했으니까 같은 느낌이 이제야 겨우 물씬……드는 것도 같아서.
아무튼 본인의 식사 시간에 대해 불만이 없었던 건 아니고, 표현만 지극히 적게 했을 뿐 어느 정도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 교주님의 ‘꿈’과도 이 식탁이 관련이 있다는 소리입니까?”
“아주 짧게 함축하자면, 사람답게 밥을 먹고 싶었어요.”
“예……?”
“후후, 이건 너무 간략화 시켜버렸네요. 오늘 의도치 않게 자꾸만 도사님을 놀리는 꼴이 되고 있네요.”
불꽃의 딸이 조용히 두 손을 모아 입을 가리며 웃었다. 굳이 놀리고 있다, 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강림은 그냥 아무 탈 없이 넘어갈 터였는데.
불꽃의 딸이 이렇게 쓸데없는 말을 자꾸만 덧붙인다는 건, 그녀에게 있어서도 지금 이 상황이 상당히 당혹스럽다는 걸 의미할지도 모른다.
“그냥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무엇인지.”
“저를 마주하는……마주보는 상대가 없다는 걸요.”
다들 저를 우러러보거나, 아니면 내려다볼 뿐이지요. 전자의 수는 지나칠 정도로 많았고, 후자는 딱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또 문득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만약에 정말 그러한 존재가 제 앞에 나타난다면, 그 시간을 서로 서 있으면서 아무것도 안하는 식으로 허송세월마냥 보내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하다못해 간단한 식사, 아니면 차(茶)라도 마시면서 보내고 싶더라고요.
“그렇게 들뜬 생각을 하다 보니 이렇게 구매해버렸지 뭐예요~”
무심코 충동구매를 한 것뿐인데 설명이 정말로 길었다. 강림은 그런 그녀가 생각보다 인간적인 사고방식을 했다는 것에 대해 별 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녀 나름대로의 이런 소소한 일탈을 하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수를 헤아리면 적은 편도 아니어서.
만약 이걸 그녀의 아비가 보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강림이 좀 더 초점에 둔 건 그가 모시는 교주의 일탈이 아닌 전혀 다른 부분이었다.
“감히 교주님과 대등한 자가 나타난단 말입니까? 그 치들은 누구입니까.”
“어머,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렇지만 교주님…….”
그들이 과연 교주님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인지 아닌지 여부에 따라 처리는 확실히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희에게 있어서 교주님과 자웅을 겨를 자는 존재하지 않다고 봅니다.”
“어머, 저 의외로 특별 취급이었거든요?”
하지만 그 말마따나 그녀는 특별한 존재이긴 했다. 출생부터 비범했으니까. 하지만 그 비범한 출생을 가진 자가 한 명 더, 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과 대등할 어떤 누군가가 머지않아 나타날 것이라는 것에 별 다른 유감은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요, 강림 도사님. 그러한 존재, 아니 존재들이 나타난다는 건요.”
오히려 흥분이 되고 기다려진다고나 할까.
그걸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운명의 상대? 배우자? 이것들은 너무 사심이 들어간 말이고 무엇보다 딱 한 사람만을 가리키는 적절치 않은 단어였다.
그래서 대체할 만한 다른 표현을 찾아보았고, 명석한 그녀는 어렵지 않게 바로 해당 단어를 찾을 수 있었다.
라이벌 혹은.
클로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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