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파이어
아마네세르 2024-03-14 4
※ 세평문(세계평화의문) 스토리 스포일러 有
※ 소OO씨 이야기
※ 임의적인 캐릭터 설정 존재
※ 부제 : 실례지만 불타고 계십니다
한창 촬영과 비밀 임무로 바쁘다고 생각하던 때에 소영의 포장마차로 티나와 바이올렛이 찾아온 일이 있었다. 나타는 안 왔냐고 물어보면서 내심 서운한 티를 내는 소영에게 바이올렛은 나타를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서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간단히 먹고 또 임무를 나가야 한다면서, 계란 대신 메추리알이 들어간 떡볶이 2인분을 주문받은 소영은 음식 준비를 하면서 티나와 바이올렛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소영은 뜻밖의 질문을 받았다.
“우리 아빠에 관한 거 말이에요?”
그래, 라면서 티나가 말하는 요지는 이랬다.
“소영, 너는 너의 아버지에 대해 잘 알고 있겠지만 우리로서는 정보가 없다. 유니온의 클로저였고, 지금은 교단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 정도로만. 그렇기에 만약 우리가 너의 아버지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너의 아버지인지 모를 수도 있다는 소리다.”
“티나의 말도 일리가 있네……. 아, 그래서 나타 몰래 두 분이서만 저를 찾아온 거예요?”
나타라면 아무래도 그런 걸 왜 굳이 소영에게 물어보는 일을 만들게 하냐는 식으로 잔뜩 투덜거렸을 것이다. 아무리 아버지를 그리워한다고 하더라도 소영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버리고 떠난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기에. 나쁜 아버지임은 객관적으로 봐도 틀림없는 사실이기에. 그런 아버지의 일을 왜 굳이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고 하냐는 식으로 신경질을 부렸을 것이다.
“눈치가 좋군, 소영. 아무래도 나타는 너와 관련된 일이라면 쉽게 흥분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배제할 수밖에 없었다.”
티나는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영은 다른 부분을 더 걱정하고 있었다.
“아~ 그런 거라면 이해는 하는데, 나중에 나타가 알면 더 화내지 않으려나.”
“그 부분은 나중에 저랑 티나 씨가 감내할 수 있습니다. 정보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사람을 찾는 건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서, 소영 씨한테는 실례가 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탁을 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례는 무슨. 나도 납득되는 이유인 걸.”
하지만, 이라면서 이건 납득과 다른 문제라며, 소영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본인의 아버지에 대한 정보를 너무 맹신하지 말아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내 정보가 도움이 될까? 나도 아빠를 못 만난 지는 10년이 넘어가기도 하고……. 또 어린 아이가 바라보는 시야의 왜곡 같은 것도 있을 수도 있잖아.”
“기억의 오염을 말하는 건가? 그런데도 용케도 아버지를 찾을 생각을 했군.”
비꼬는 건 아니다. 그저 순수한 놀라움이다. 정보의 신빙성을 우선시하는 티나로서는 소영의 태도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티나의 지적에 소영은 멋쩍은 듯 웃었다. 그게 전혀 이상한 지적이 아님은 알기에.
“이런 말을 하면 우스울지도 모르지만 약간 아빠를 만나면 바로 알아볼 것 같았거든. 그럼 예감이 들었거든.”
“전 소영 씨의 마음을 알 거 같아요. 가족이란 어느 때는 나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그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만들기도 하거든요.”
바이올렛은 자신이 위상력에 각성하게 된 날의 일을 떠올리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 후의 그녀가 했던 일련의 일들은 모두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복수가 기저에 깔려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바이올렛이 비뚤어지지 않은 이유는 어렴풋하지만, 본인의 친아버지가 자신에게 알려준 ‘정의’에 대한 관점이 영향이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 적절한 때에 떡볶이가 완성되었다.
“그럼 먹으면서 들어줄래? 마침 손님이 둘 뿐이라서 느긋하게 이야기를 해도 될 거 같으니까. 아, 티나 거는 조금 덜 맵게 했어.”
“신경써줘서 고맙군, 소영.”
“그럼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까…….”
잠시 고민을 하던 소영은 우선 이 말부터 꺼냈다.
“아까 아빠를 보면 바로 알아볼 것 같다고 한 거 말이야, 사실 전혀 근거 없는 건 아니었어.”
나는 아빠를 많이 닮았거든. 그래서 당연히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어. 아빠의 얼굴이 내 기억 속이랑 별반 다르지만 않다면 말이야. 소영의 논리에 티나와 바이올렛은 동의의 의미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소영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소영의 기억 속에 있는 남자는 무척이나 정의로운 남자였다. 신념까지 확고한. 본인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는 소영의 열망은 모두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들이었다.
그래서 소영은 물론이고, 이야기를 듣고 있던 티나와 바이올렛마저 의문이 들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행방불명되고, 소식이 들려온 곳이 바로 교단이라니.
“그러고 보니 아빠가 행방불명되기 얼마 전에, 가족끼리 캠프를 갔었어.”
그 때의 일을 유독 소영이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행방불명되기 얼마 전, 이라고 하는 시간적인 관점 때문이 아니었다. 그 때의 남자는, 소영이 기억하고 있는 남자가…….
“묘하게 평소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어. 마치 할 일을 찾은 것 같은 사람처럼.”
그 얼굴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후련함?
해탈?
그것마저 아니라면 득도?
……어떤 단어를 가져온다 한들, 소영이 표현할 수 있는 건 없을 것이다.
그야 소영은 당사자, 그 남자가 아니었으니까.
그 때의 남자의 기분은 오로지 그 남자만이 알 수 있을 터였다.
* * *
그저 한없이 평화로웠다.
“아빠?”
“아, 영이구나. 아빠가 깨웠니?”
태성은 텐트 밖으로 나오는 자신의 딸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애써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주변을 맴돌며 켕기는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말이다.
그런 태성의 움직임을 졸린 기색의 소영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실로 민첩하지 못했다.
“아빠 손에 든 건 뭐예요?”
“응? 아, 이거? 마시멜로란다.”
모닥불에 구워먹어야지 하고 생각하고 가져왔는데 결국은 깜빡하고 만 마트에서 산 마시멜로 한 봉지.
마시멜로를 괜히 만지작거리고 있던 건 미처 달성하지 못한 리스트를 달성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 아니었다.
최근 태성은 자신을 따라다니는 ‘어떤 시선’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느 때는 시선일 때도 있었으나, 어느 때는 가면으로, 또 어떤 때는 투구로 보이면서 그를 잔뜩 괴롭히고 있었다.
‘그것들’의 그나마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얼굴’의 형상 같은 걸 띄운다는 걸까.
……아니 애초에 ‘그것들’이 어떻게 다 ‘동일’한 시선으로써 인지가 되는 걸까. 그것마저도 께름칙했지만, 그러한 시선들이 꼭 어딘가에 깃들어가지고 그를 관찰하고 있다는 것이 그를 더 괴롭게 만들었다.
시계의 반사되는 부분,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종이의 단면, 도자기 재질의 화분, 거울, 심지어 지금 태성이 손에 들고 있는 마시멜로 한 조각에서도 그 얼굴이 일렁거리며 그를 향해 부담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마시멜로? 맛있겠다…….”
그러나 그건 태성의 시점이고, 소영의 눈에는 평범한 마시멜로만이 보였다. 마시멜로는 불에 구워서 녹진하게 녹여 먹으면 환상의 맛이었다. 그리고 마침 태성의 앞에는 모닥불이 짚여져 있었다.
딸의 저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버린 태성은 피식 웃었다.
“영아, 마시멜로 먹을래?”
“지금 간식 먹으면 엄마한테 혼나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 몰래 먹으면 되지. 아빠랑 영이, 둘만의 비밀이다?”
쉿, 하면서 살짝 윙크를 보내자 소영이 잠이 다 달아난 표정으로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태성의 아내이자 소영의 어머니는 텐트에서 자고 있는 것이 확실하니, 새벽바람을 맞으며 모닥불 앞에서 가지는 간식 시간이란 참 달콤했다.
소영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지라도 태성의 시선에서는 그 얼굴의 형상을 띈 붉은색의 마시멜로 – 왜인지 모르지만 그 얼굴은 어쩐지 붉은색의 피부를 띄우면서 나타났다 – 가 불에 타는……. 쉽게 말해 화형 당하는 걸로 보여 조금 호러틱했다. 그런데 그런 겉모습과 별개로 태성이 아주 잘 아는 평범한 마시멜로의 달콤한 맛이 나서 태성은 이것이 평범한 마시멜로뿐임을 자각하였다.
……그러면 그 시선은 뭐라는 거지.
그 의문이 끝나기도 전에 태성을 둘러싼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옆에서 야무지게 마시멜로를 먹고 있던 딸의 모습도 산산조각 나 사라지고 말았다.
깨어진 공간 속에서 나타난 건, 눈부신 위광을 자랑하는…….
“……불꽃.”
그 불빛을 보자 태성은……아니, 도사 비형은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까지의 평범해 보이던 날들이, 그러니까 차원전쟁 신서울 탈환작전 후로 쇠약해진 자신이 여전히 클로저 일을 어떻게든 해내가던 그 나날들이 사실은 전부 꿈이었음을.
물론 그 일들이 아예 없었던 과거는 아니다. 다만 어쩐지 유쾌했던 그 기분은, 그 때 당시 클로저 소태성이 겪었던 우울감과는 정반대였다.
……나름 활기차고 행복하게 있었던 건 이 모든 것이 다 꿈이기 때문이었던 걸까.
그리고 그 꿈에서도 자신을 오롯이 지켜보고 있는 불꽃.
불꽃께서는 다시금 상기시키는 차, 비형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식 속까지 친히 찾아와 둘러본 것이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라고.
나는 언제 어디서든지 너를 지켜보고 있노라고.
그리고 그것은 현실처럼 지독한 악몽이었다.
* * *
“잘 주무셨나요, 비형 도사님?”
“……교주님.”
그리고 그 꿈을 깨운 것은 자신이 섬기는 불꽃의 하나뿐인 혈육, 교단의 교주였다. 불꽃의 딸은 옅게 웃으며 비형을 맞이했다.
“별 일이네요. 비형 도사님께서 낮잠을 다 주무시고.”
“……제가 잠이 들었었나요?”
“네. 요 근래 힘든 일이 참 많았잖아요? 그래서 편히 주무시라고 친히 무릎을 내어 드렸답니다.”
“송구할 따름입니다, 불꽃의 따님이시여.”
비형은 몸을 일으켰다. 막 자다 깨어서 경계심이 상당히 누그러져 있는 비형을 향해 불꽃의 딸이 아주 의미심장하게 물어보았다.
“제법 깊게 주무시던데. 잠꼬대까지 하시고. 좋은 꿈이라도 꾸셨나요?”
“좋은 꿈이라…….”
비형은 잠시 뜸을 들였다. 불꽃의 딸은 비형의 답을 기다리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비형은 적당한 답을 내렸다.
“안타깝게도 기억이 나질 않는군요.”
“어머, 아쉽네요. 무슨 꿈인지 이야기라도 들어볼까 싶었는데.”
“그것이 꿈이니까요.”
비형은 허탈하게 토로했다.
자고 일어나면 사라져야 할 꿈.
그리고 이제는 현실도 지옥이며, 꿈에서마저 안식을 가지지 못한다.
비형은 쓰게 웃었다. 신서울 탈환 작전 이후, 의식을 차렸을 때 자신이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어디에 거울을 두어도 거울마냥 세상을 반전시키지 못하는 몸.
갈 곳을 잃고, 그나마 있던 재주마저 변변치 못하게 된 광대.
그게 지금의 자신이라는 것이 우스웠고 우스울 뿐이었다.
※ 불꽃왕이 비형을 계속 지켜본다는 느낌으로 써보고 싶었다는 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