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소녀 [신 서울 - 2.]
fithr 2024-01-21 1
“아… 속이 또 뒤틀리는 거 같아… 여기는 왜 이렇게 시끄럽고 갖은 냄새가 풍기는 거야…….”
돌아오는 길 어떻게든 정신을 붙잡기는 했지만 과한 냄새와 소리에 정신이 갈리고 속이 뒤틀려 몇 번이나 속을 게워내고 오느라 생각했던 것보다 늦게 집합 장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으으…… 겨우 돌아왔네… 또 토하러 갈 뻔했어.”
다른 건 몰라도 이제 이 근방에 개방된 화장실 위치는 절대로 잊어먹지는 않을 것 같다.
“아…… 그러니까 좀 평화적으로 해결하자고요!”
“아. 맞다 여기도 조용한 편은 아니었지…….”
도착한 가연을 반기는 익숙한 목소리에 시선이 움직였고-
“반드시 돈은 갚겠습니다. 갚을 테니까요…!”
“여보세요? 사장님? 저 은하예요. 내가 보증한다니까요? 날 못 믿으세요?”
“아하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이지?”
갚겠다 아우성치는 한 기남과 그런 한 기남의 휴대폰을 뺐어 그 너머의 사장님(?)에게 자신을 못 믿냐며 따지는 은하. 거기다 삭막한 분위기에 끼어들기 힘들다며 자신과 같이 멀찍이 떨어진대서 두 사람을 바라보던 루시까지- 대체 이게 뭐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 누가 설명 좀 해줬으면 좋겠다.
“아, 꼬마랑 너. 여기에 있었구나.”
“응? 친철한 반금련 씨? 다른 곳으로 떠나시는 거 아니었어요?”
“으음….”
그 말에 썩 유쾌하지 않은 듯한 반금련의 표정에-
“루… 루시야. 그런 호칭은 이제 그만할까?”
“응? 왜요?”
“듣는 사람이 별로 내키지 않아 하는 호칭은 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과 똑같아. 그러니 자신이 부르기 편하다는 걸 먼저 생각하기보단 듣는 사람이 싫어하지 않을지를 생각하고 말해야 한단다.”
“음… 그렇군요, 제가 반금련 씨에게 상처를 입히는 행동을 했군요….”
자기가 하던 행동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으니 듣는 사람의 기분을 고려해서 말해**다는 말에 조금 의기소침해하는 루시를 보고 살짝 곤란하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의기소침해있는 루시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어주었다.
“하지만 듣는 사람이 싫어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에게 친밀감을 표하는 방법도 된단다.”
“그럼-”
“우리 루시는 사람이 싫어하는 말이 아닌 그 사람이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아이니 금방 잘할 수 있을 거야.”
의기소침해 있던 루시를 달래며 앞으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알려주며, 알려준 방법을 잘할 수 있을 거라 격려해주는 가연의 모습을 본 반금련은 이제는 헷갈릴 것 같다는 표정을 짓는다.
“……진짜 엄마같네.”
“네?”
“아니야. 뭐, 나도 꼬마한테 그렇게 불리는 건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니 그렇게 불리는 것 정도는 상관없어. 그리고 나도 당분간은 이쪽에 머물러야 할 것 같아.”
그만하면 됐다며 가연의 물음에 답하는 걸 피하면서 자신도 한동안은 자신들과 같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말에 의문을 품었다.
“네? 당분간이요? 왜…”
“유니온이 여기로 감찰관을 보낸다는 정보가 있거든.”
감찰관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은 잘 모르겠지만, 반금련의 반응으로 봐선 자신이 걸리면 안 되는 부류의 사람인 건 확실했다.
“이런 민감한 시국에 괜히 다른 곳으로 갔다가 섬의 관리자와 한패라는 누명을 쓰긴 싫어.”
“확실히 그렇기는 하겠네요. 지금은 몸을 사리면서 저희랑 같이 움직이시는 편이 그나마 나으실 것 같네요.”
“뭐 그렇긴 하지. 아, 잊을 뻔했네. 자, 받아.”
“응? 이게…… 뭐예요?”
소녀의 손에 잡힌 건 네모난 무언가.
분명 소녀가 아직 실험실에 갇히기 전까지는 본 적 없던 물건이었다.
“응? 뭐야 너 진짜 모르는 거야.”
“네… 한 십년…? 그 정도 갇혀 살아서…… 바깥에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거든요.”
“십 년…… 그때라도 초기형은 조금 나왔을 텐데.”
“아하하… 제가 있던 보육원에선 이런 걸 본 적이 없었거든요.”
“……너 설마 초등학교도 못 간 거야?”
“네…. 그 전부터 갇혀있어서….”
생각보다 암울한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한 반금련은 왠지 모를 동정심에 휴대폰의 사용법과 자기 소유의 태블릿을 건네주었다.
“내가 원래 이런 일은 안 하는데… 현실에서 그 나이 먹을 때까지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으면 어디 가서 좋은 취급 못 받아. 그러니 이걸로 조금은 공부해둬.”
“……저한테 주시는 거예요?”
“그래. 대신 넌 태블릿값도 포함해서 받을 거니까. 다른 애들이 가져오는 것보다 더 많이 잔해를 구해와야 한다. 아, 그리고 폰 개통하려면 네 개인정보도 필요하니까 가기 전에 여기에다가 적어놓고 가.”
“네. …정말 감사해요. 반금련 씨.”
“뭘, 돈 받는 건데.”
살며시 미소 지으며 감사를 전하는 가연의 얼굴을 보자.
왠지 자신의 마음속 한구석이 묘하게 따뜻해지는 감각을 느꼈고, 그런 감각이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아, 저… 죄송한데. 하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될까요?”
“응? 뭐 어려운 것만 아니면 별 상관은 없어.”
보는 내내 본인 스스로가 타인을 통해 뭔가를 바라는 모습을 보여준 적 없던 소녀였기에 반금련은 나름 호기심이 동했고, 소녀의 부탁을 듣자.
“……알았어. 하지만 의뢰비는 제대로 받을 거야.”
“네. 들어주셔서 고마워요.”
반금련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잔해 수집을 하러 나가는 소녀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하- 설마 부탁한다는 게 고작 이런 거일 줄이야.”
생긴 대로 논다더니 정말 반전이라는 게 없는 애네-.
*
크륵-!? 크륵-!?
골목길 사이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트롭과 보이드, 스케빈저 무리.
원래라면 근처를 그저 배회하던 녀석들이 지금은 혼비백산하여 날 선 경계를 하고 있다.
끼아아아-!
순식간에 날아드는 귀곡성에 녀석들은 화들짝 놀라지만, 놀랐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귀신의 곡소리를 시작으로 보이지도 않는 칼날에 목숨을 추수 당하며 그동안 자신들을 사냥꾼이라 생각했던 놈들에게 철저히 너흰 사냥당하는 쪽이라고 알려주는 듯했다.
“…이걸로 값은 치를 수 있으려나?”
그런 일방적인 사냥의 현장에서 나타난 소녀는 땅에 쓰러진 보이드의 잔해를 채취하면서 더 이상 담을대도 없다면서 곤란해하는 모습에 이를 본 트룹 무리 중 한 개체가 손에 들린 투척 도끼를 던지는데.
캬앙-
명백히 들리는 금속음과 함께
쉐엥- 스왕-
금속이 허공을 가를 때 나는 소리, 그러한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투척 도끼를 던졌던 그 개체의 머리가 양단이 난 체 바닥에 쓰러졌다.
“……하나가 더 늘었네.”
어느새 도망친 다른 녀석들까지 쫓을 생각은 없는 건지 바닥에 쓰러져 있는 트룹의 사체를 보며 하나가 더 늘었다며 무기질적인 목소리를 내는 소녀의 모습은 어딘가 조금 이질적이었다.
……짝.
“? …일단 가지고 갈 수 있을 만큼 가져가고 나머진 반금련 씨에게 가지러 오시라고 말씀드려야겠다.”
순간 본인의 손으로 뺨을 한번 치더니 아까까지의 무기질적인 목소리가 사라지고 원래의 목소리로 돌아오며 챙기지 못하는 건 반금련에게 연락을 걸어 근처 안전한 장소에 숨겨 놓았다.
……아깝다…….
“!?”
순간 들려온 의문의 목소리에 소름이 돋고 식은땀을 흘렸지만, 소녀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착각인가?’
섬에서 나오면서 한껏 예민해진 감각이 다른 곳의 소리를 착각한 거라 생각하며, 찝찝함을 뒤로한 체 올 때보다 조금 더 서둘러서 강남 CGV로 돌아갔다.
“……저분이 백운 도사님의 따님.”
“음- 교주님이 기대하셨던 것처럼 아직 씨앗이 발아한 것 같지는 않은데?”
“뭐, 어쩔 수 없지. 교주님께서 바라시는 건 그저 확인이니까.”
역삼 골목 한차례 차원종이 쓸려나간 골목의 어두운 곳에서 나타난 두 명의 남녀.
해맑아 보이는 여인과 진중해 보이는 남성은 가연이 이동한 곳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하- 확실히. 그런데 이런 건 우리보다는 전우치가 더 제격 아니야? 아님 강림이라던가?”
“강림은 교주님의 칼인데 쉽게 성소에서 나올 수 있겠나? 그리고 전우치 그 녀석을 배제한 건 백운 도사님께서 교주님께 간청했다더군.”
“응? 왜? 직접 키운 제자잖아? 누구보다 더 이런 일에 전우치가 제격인 걸 알 텐데?”
“글쎄- 거기까지는 나도 잘 모른다.”
여인은 남성에게 달라붙어선 왜 우리가 온 걸까 하며 교태를 부리며 물었고, 남성은 불구인가 싶을 정도로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며 달라붙는 여인에게 떨어지라는 듯 손짓한다.
“그만 가지.”
“네예~”
둘은 그림자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