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소녀 [갯바위 마을 - 18.]
fithr 2023-10-24 2
공포에 사로잡힌 건지 가연의 말이 닫지 않고 불안에 떠는 아라.
그런 아라의 모습을 보곤 과거 어머니가 무서워서 울던 자신을 진정시킬 때의 기억을 떠올려, 한 줄의 아름다운 선율을 내뱉으며 품 안의 아라를 걱정할 것 없다며 반드시 지켜주겠다면서 쓰다듬어주자.
점차 공포가 옅어지며, 이내 진정한 아라의 모습에 안심한다.
“섬의 주인… 정말 그런 게 있는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레이더에 고위상력 반응이 감지됐습니다. 이건… 뭔가 터무니없는 차원종이 눈을 뜬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왜인지 이전에 봤던 그 징그러운 차원종이 생각났지만, 이내 머릿속을 지나가게 내 버려둔 채 한 기남의 말에 집중한다.
“주민들이 탈출하려는 걸 관리자가 눈치를 채서 뭔가 수를 쓴 걸지도 모릅니다.”
“……곱게 보내줄 수는 없다는 거네요. 일단 아라부터 저쪽으로 보내야겠어요.”
“아무래도 그래야 할 거 같습니다. 문제는 왔던 길목이 다시 차원종에 의해 막혀있을 겁니다.”
“알았어요, 그건 제가-”
“또 혼자만 갈 생각이에요.”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가연은 물론 한 기남까지 놀라며 고개를 돌리자.
“쉬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네요.”
“하아- 가만히 쉬게 내버려 두질 않네.”
침상에 누워있어야 할 은하와 루시 두 사람이 어느새 뒤에서 나타났다.
“은하 씨? 루시야, 두 사람 다 더 안 쉬고 왜…”
“너무 푹 쉬어서 그런지 좀이 다 쑤셔서요.”
“맞아요. 이제 쉴 건 다 쉬었어요.”
두 사람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는 가연은 두 사람을 돌려보내고 싶었지만
“뭐, 안 괜찮아도, 이 판국에 누워있을 수는 없지.”
“네, 이런 상황에 태평하게 쉬고 있을 수는 없어요.”
두 사람이 하는 말과 말려도 들을 것 같지 않은 분위기에 연이 짧은 한숨을 쉰다.
“알겠어요. 시간 들여 설득할 여유도 없으니, 한번 해보죠.”
대신 몸에 이상이 생기면 그땐 바로 마을로 돌아가야 한다고 당부의 말에-.
“알았어요, 엄마.”
“네, 엄마.”
“두, 두 사람… 지금 저 놀리시는 거죠.”
두 사람의 엄마 취급에 놀리는 거냐며 화를 내자.
“아니요~ 놀리긴 뭘 놀려요. 자, 어서 가요. 엄마.”
“으으… 역시 놀리는 거 맞죠!”
*
“그러고 보니 연이 언니는 기술명 같은 거 없어요?”
“……응?”
막 고철 처리장까지 이어진 길목의 차원종을 해치우고 돌아가는 길.
갑자기 루시가 내뱉은 질문에 연이의 머리가 새하얘진다.
‘뭐, 뭐지… 워, 원래 그런 게 있어야 하는 건가? 어, 없으면 안 되거나… 하는 건가?’
두 사람과 같이 싸우면서 잠시 잊어버렸지만, 본인은 위상력을 각성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햇병아리.
당연히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기술도 그냥 쓰다 보니 어느샌가 익숙해져서 자주 쓰는 것일 뿐 딱히 기술명 같은 걸 지어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지금이라도 급하게 지어서 뱉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야, 금발. 너 이 언니가 위상력 각성한 지 얼마 안 됐다는 거 까먹었어?”
은하가 뱉은 말에 금세 살았다는 듯 안심하는 가연.
“뭐. 그래도 있는 편이 좋으니 지금 지어볼래요?”
“옉-”
안심하는 가연의 모습에 은하는 뭔가 재밌는 생각이 났다는 듯 말 내뱉었고, 예상치 못한 은하의 물음에 가연의 두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저, 저기… 그 기술명이라는 게 꼭 필요… 한 건가요?”
“뭐, 굳이 말하자면 딱히 필요 없기는 하죠.”
“그, 그러면 지금이 아닌 나중에-”
하.지.만-!
“지으면 일단 폼이 살아요.”
“……포, 폼이요?”
“네, 특촬물에서도 있잖아요. 꼭 필살기나 쓰는 기술마다 이름 짓고 부르는 것처럼 잘 지으면 폼이 사는-”
지금까지 은하와 같이 있던 날 중 오늘.
아니 지금, 이 순간이 그녀의 입에서 가장 말이 많이 나온 것 같았다.
‘은하 씨… 특촬물… 좋아… 하시는구나.’
그동안 가연의 안에 세워진 은하라는 인물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은 바뀌는 순간이었다.
“뭐. 폼 사는 것 말고도 기술 분류할 때 편리한 거라든지 사용할 때 성공적인 이미지를 그릴 수 있어서 지어두는 편이 나름 좋아요.”
“이미지요?”
“네! 기술에 대한 완성된 이미지가 선명할수록 기술에 대한 집중력이 올라가 기술이 실패할 경우가 줄어들거든요. 그래서 그런 이미지를 이름을 통해 더 단단하게 구축해내는 거예요.”
은하와 루시가 말하는 기술에 대한 이미지.
머릿속으로 세우는 이미지는 일종의 살 같은 거라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해지지만 그런 이미지에 명칭을 부여하는 걸로 하나의 뼈대가 완성되기에보다 선명한 기술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뭐. 그래도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에요. 기술의 이미지가 선명하다는 건 그만큼 예측하기가 쉽다는 거니까요.”
“그렇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점을 역으로 이용해서 상대를 속이기도 할 수 있어요.”
두 사람이 말해주는 장단점에 나름 이해되면서도 자기 기억력이라면 굳이 기술명을 짖지 않아도 그에 대한 이미지가 무너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유니온에 등록된 클로저들도 그런 이유로 기술명을 짓는 건가요?”
“응? 아니요. 거기는 그것보단 기술에 대한 정보 정리하려고 라던 것 같던데요?”
“정보 정리요?”
“예, 뭐… 나도 누구한테 들은 거긴 하지만요.”
그 순간 은하의 얼굴에 그리움이 묻어났지만, 찰나와도 같았기에 곧바로 사라졌다.
“아무튼 연이 언니는 어떤 것부터 기술명을 지으실래요?”
“응? 어…… 글쎄 한 번도 생각을 안 해봐서….”
“그럼 하나는 내가 지어줘도 돼요?”
“네? 아… 네.”
루시의 말에 곤란해하던 차에 은하가 건넨 말에 별로 상관없을 거란 생각에 수락하였다.
“그 괴성 내지르면서 날아가는 그거 귀곡성(鬼哭聲)이라고 짖는 거 어때요?”
“귀곡성(鬼哭聲)… 이요?”
“네. 그거 쓸 때마다 들리는 소리가 완전 귀신 곡소리 같으니 딱 맞는 것 같은데요.”
확실히 한번 쓸 때마다 들리는 소리가 귀신의 곡소리 같다고 생각했으니 딱 맞는 것 같다.
“네, 정말 딱 맞는 것 같아요.”
처음으로 자신에게 기술이 생긴 사실에 기뻐하자.
“그럼 저도 하나 지어드려도 돼요!”
“응? 루시도? 뭐… 상관은 없는데-.”
뭔가 대항 의식이라도 생긴 건지 자기도 지어주고 싶다며 열심히 고민하는 루시의 모습이 내심 귀여웠다.
“음… 어떻게 짓는 게 좋을까. 뭔가 딱하고 와 닫는 게….”
“아. 그러고 보니 언니.”
홀로 중얼거리며 골똘히 고민하던 루시에게 시선을 떼고 은하가 가연을 부르자.
“전에 봤던 그 여-”
킹-
발밑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은하가 흠칫 놀라며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어, 너 또 왔구나.”
은하를 놀라게 한 건 다른 무엇도 아닌 가연을 따르는 작은 여우.
여우는 어느 순간 나타나 자신에게 손을 뻗는 가연의 품으로 파고들어 잔뜩 애교를 부리고, 그 귀여운 모습에 고민하던 루시도 다가와 만져보려고 하는데-
으르르-
“으엣-”
“어… 어어. 애, 애가 왜 이러지…”
루시의 손길을 거부하며 털을 세우는 모습에 당황하는 가연과 화들짝 놀라는 루시.
그리고, 처음 자신을 만났을 때와 사뭇 다른 모습에 은하는 이상하게 생각한다.
“뭐예요. 그 여우 사람 손길에 익숙한 거 아니었어요?”
“네? 아, 아마 익숙하지 않을까요?”
자기 품 안에서 으르렁거리는 여우를 진정시키는 가연의 말에 은하의 의문은 더 깊어졌다.
하지만-
“그냥 사람을 가리는 걸 수도 있죠.”
설마, 그냥 여우겠지.
“그럴까요?”
“네, 제들도 누구한테나 살갑게 굴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요.”
“히잉- 저도 만져보고 싶었는데….”
“나중에 친해져서 만져보자.”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루시를 다독이며 나중에 친해졌을 때 만져보자는 가연을 보며 은하는 자신이 한 생각이 그저 말도 안 되는 공상이라고 생각한다.
‘위상력으로 생물을 만들다니… 그럴 리가 없겠지.’
안녕하세요, 현생에 치여서 업로드가 늦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