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소녀 [갯 바위 마을 - 13.]
fithr 2023-07-31 0
섬 뒤편의 차원종을 정리한 뒤.
희망을 포함한 갯바위 마을 안 아이들이 의료 관계자가 있는 중개인이 거주하는 고철 처리장까지 가는 데 경호를 목적으로 잠시 아이들과 함께 움직이겠다는 가연의 말에 은하는 자기의 허락 같은 게 필요하냐며 되물음과 함께-
“조심히 갔다 와요. 나 혼자는 이 금발보기 귀찮으니까.”
뭔가 조금 틱틱- 튀는 어릴 적 아빠가 엄마 몰래 사줬던 불량 식품이 생각나는 톡톡 튀는 말에 가연은 살며시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연이 언니는 어디 갔어요, 은하 씨?”
“잠깐 볼일이 있다면서, 혼자 움직이겠다는데.”
가연은 자신이 고철 처리장으로 향하는 걸 루시한테는 말하지 않았다.
확실하진 않지만 지금 가연이 향한 고철 처리장엔 섬의 관리자와 함께 루시의 본체를 탈취했던 그 사람이 있을 것이다. 비록 지금은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루시가 그 남자에게 가지고 있는 앙금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가연 본인도 그걸 잘 알고 있기에 루시한테는 말할 수 없었다.
반금련이 태우고 가는 아이들을 별로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바라보며 중간중간 반금련의 차에 달린 위상력 억제기의 범위 바깥을 맴도는 차원종이 조금 보일 뿐 직접적으로 접근하려고 움직이는 녀석들은 없었다.
“확실히 은하 씨가 말한 대로 굳이 경호하러 올 필요는 없었네.”
일반적이라면 직선상에서 보기 힘든 거리를 내다보며 차원종의 움직임을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파악하며 자신의 허리춤에 차고 있는 두 자루의 환도에서 손을 놓으며 처음 은하한테 아이들의 경호를 하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를 생각한다.
“…? 억제기가 있는데 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경호 같은 걸 한다는 거예요.”
“그게…… 억제기 만으로는 뭔가 안심이 안 돼서…….”
굳이 안 해도 될 경호를 뭣 때문에 하려는 거냐며 가연에게 물었고, 그 말에 가연은 차량 내의 간이 위상력 억제기만으로는 뭔가 안심이 안 된다는 말에 은하는 무슨 소린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자신한테 허락 같은 걸 맡을 필요가 있냐는 말과 함께 틱틱대는 말로 가연의 하려는 일을 허락하였다.
“이제 차도 다 도착한 것 같으니… 나도 그만 마을로 돌아갈까.”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한 것 같아 자기도 그만 갯바위 마을로 돌아가기로 하며, 돌아가는 길에 차원종을 좀 잡아서 잔해를 수집해 갈 생각을 하면서 발걸음을 돌리자.
킹-
“응?”
차원종을 잡으려 두 정의 환도를 꺼내려던 찰나에 들려 온 귀에 익은 소리에 고개를 내리자.
“너 또 왔구나.”
키잉-.
이전에도 보았던 한 마리 여우가 가연의 다리 사이에 제 몸을 비비며 잔뜩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의 그러한 행동에 가연이 살며시 쓰다듬어주며 또 어디에 가 있었냐 물었지만, 딱히 답을 원하던 게 아니었기에 소녀는 그저 다시 만난 여우를 다정하게 쓰다듬어주었다.
“이번에는 어디로 사라지지 말고 나랑 같이 있자.”
킹-!
녀석의 울음소리가 마치 알았다고 말하는 것 같아 가연의 얼굴엔 미소가 걸린 채 녀석을 품에 안자 녀석은 가연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비비거나 혀로 가연의 볼을 핥으며 잔뜩 애교를 부렸다.
‘원래 사람이 키우던 애였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움직이려는 순간 녀석은 빠르게 가연의 품에서 나와 그 옆에 섰고, 그 모습이 귀여워 살며시 미소 지으며 차원종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크르르-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자신의 옆에서 같이 차원종을 상대하고 있던 여우가 갑자기 반대쪽을 향해 몸을 틀고는 그 방향을 향해 털을 곤두세운 채 위협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그 아이의 반응에 가연은 저쪽에 뭔가 있냐 싶어 고개를 돌리자.
키이이익-!?
눈에 들어 온 그 모습에 가연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크기보다는 조금 더 큰, 거미와 전갈. 그리고 지네를 합한 것같이 괴이한 생김새에 조금 그 외형을 자세히 보면 팔이 생각날 법한 모습의 이 세상의 것 일리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괴물.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괴이한 외향의 괴물에게서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지만, 그러한 동질감을 눌러버릴 정도로 진한 혐오감과 지금 여기서 저걸 막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가연의 속에서 들끓었다.
‘저런 크기의 차원종이 이 섬에 있었어?!’
이제껏 섬에서 봐온 어느 차원종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크기의 차원종.
오히려 대체 저만한 크기의 차원종이 어떻게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있을 수 있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 의문을 품 기도 전에 거미와 전갈, 지네를 썩은 듯한 팔을 닮은 듯한 녀석의 손가락을 닮은 전갈의 꼬리들이 소녀를 향해 내리꽂혔다.
쾅-!?
지반을 흔드는 강한 충격에 화들짝 놀라 땅을 박차고 허공에 몸을 맡기자.
손가락을 닮은 다섯 개의 전갈의 꼬리가 아닌 엄청난 길이를 자랑하는 지네의 몸통이 허공에 있는 가연을 강타하였고, 지네를 닮은 몸통 곳곳에 나 있는 검은색 털이 가연에게 박혀 들었다.
강한 충격에 뒤로 날아가 콘크리트 덩어리나 고철들에 부딪힌 가연은 그 충격으로 갈비뼈 몇 대가 나가고, 척추가 부서지는 등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움직임은 고사하고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부상을 입었음에도 가연은 죽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사지를 뚫고 나간 철골에 몸을 움직일 수 없어 발버둥 칠 뿐이었다.
“쿨럭-!? 커헉-!?”
입안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감각과 코안에서 느껴지는 혈 향에 인상을 찌푸리며 입안에 고인 핏물을 내뱉으며 신음하는 가연의 앞에 전갈과 거미, 지네를 합한 괴이한 형태의 차원종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이 가연을 먹으려는 건지 더러운 타액을 줄줄 흘리며 입으로 보이는 것이 쩍 하고 열렸다.
크아앙-!?
가연을 잡아먹으려는 차원종의 옆면으로 눈으로도 쫓기 힘든 속도로 달려드는 여우.
그 엄청난 속도로 부딪혀서 그런지 차원종의 커다란 몸이 살짝이지만, 옆으로 밀려났고. 그 덕에 가연이 빠져나갈 수 있는 시간이 생겨, 통증을 각오하고 철근에 뚫린 몸을 억지로 뽑아내 빠져나왔다.
몸에 생겼을 상처는 생김과 동시에 사라져 겉으로만 보면 멀쩡해 보이지만, 정신적인 충격은 외상 외로 컸다.
“하아… 하… 하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아직 입안에 남아있는 혈 향을 몸 밖으로 내보낸 뒤, 두 자루의 환도를 고쳐 잡자.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바로 가연에게 달려들어 거대한 공성 병기 같은 다섯 개의 꼬리를 휘두르자 가연은 사이킥 무브를 이용해 자신에게 날아드는 꼬리를 간신히 피하며 놈의 전신을 두른 갑각의 틈세를 향해 환도를 휘두르려는 순간.
“!?”
순간 귓속을 시끄럽게 울리는 이명과 함께 일그러지는 감각.
극도의 어지러움과 함께 전신의 감각이 마비되어 허공에서 균형을 잃고 무방비해진 몸은 또다시 일격을 허락하고 말았다.
쾅- 쾅쾅-!!
콰앙-!?
“…!? …!!”
묵직한 장갑으로 둘러싸인 꼬리에 정통으로 맞은 가연은 지면에 충돌함과 동시에 복합 골절과 내장 파열 등, 보기에도 끔찍한 상태인 가연에게 폭포처럼 내려치는 연격에 가연은 문자 그대로 곤죽이 되어 형체조차 하나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가연의 상태에 분노한 건지-
키- 키잉… 아르르르-
소녀의 옆에 함께하던 여우는 이전보다 더 눈에 띄게 적의를 내뿜더니 순백의 아름다운 털끝에 푸른 빛이 감돌더니 이내 털끝을 물결치는 푸른 빛의 화염.
캬아아아악!!
거친 울부짖음과 함께 여우의 몸을 감돌던 푸른 빛 화염이 이내 거대한 여우의 형상으로 변모해 덤벼들었고-
키- 키이익-!?
일렁이는 청염으로 이루어진 여우의 공격에 녀석은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꼈는지 반격이 아닌 도망을 선택하자, 그런 녀석을 놓아줄 생각이 없던 여우는 도망가는 녀석의 꼬리를 물어 당기더니 아까 녀석이 가연에게 했던 것처럼 녀석의 몸을 지면에 수 차례 내려쳤다.
키- 키아아악!!
수없는 타격에 마침내 녀석의 외피에 금이 갔고, 그것에 반응해 위험하다는 걸 느꼈는지 전신의 검은 털을 날리더니 그 검은 털들이 의지를 가진 듯 여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킹-!?
충분히 피할 수 있는 털들을 어째서인지 여우는 피하지 않았고, 그대로 당할 위기에 처하였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드는 털들이 살점에 박히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어떠한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포근하고 따뜻한 온기가 몸을 감싸았다.
……키 …키잉?
느껴질 리 없는 온기에 의아함이 들어 살며시 눈을 떠보자.
“…….”
분명 살아있을 리가 없는-
형체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소녀가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상태로 여우를 품에 안고 있었다.
무언가 초점이 맞지 않는 흐릿한 눈동자로 멍하니 앞을 보고있을 뿐인 그녀가 품 안에 움직임을 눈치챘는지 고개를 내리더니-
“아… 깼구나.”
좀 전에 흐릿하고 멍한 눈동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생기가 감도는 따뜻한 눈동자로 품 안의 여우를 바라보며 여우가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기뻐하였다.
“고마워, 네가 날 지켜줬구나.”
여우를 향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조심히 땅에 내려놓곤.
키에에엑-
자신의 앞에 놓인 정체도 모르는 차원종을 보는 소녀의 눈동자에 이전까지 단 한 번도 담기지 않았던-
“이제는 내가 널 지킬게.”
분노를 품고 있었다.
*
으…….
으으…….
몽롱했던 의식이 열리며 잠에서 막 깬 듯한 상태에 가연이 힘겹게 눈을 뜬다.
“여긴… 어디지?”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건 오직 정적과 고요함 뿐이었다.
‘아…….’
하지만 소녀에겐-
‘또…… 꿈인가….’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어떤 빛도, 소리도, 냄새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고독한 세상.
늘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어 했던 소녀에게 현실이 아닌 꿈속이라고 해도 안식처가 될 수 없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이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없는 고독한 세상은 아무리 사람과 연이 생겼다 해도 변하지 않았다.
……
……
“……어.”
아니, 변하지 않는 줄 알았었다.
있는 줄도 몰랐던-
아니, 있을 리가 없을 무언가가, 그 무언가가 소녀의 눈에 들어왔다.
흐릿하게 아주 흐릿하게 수많은 검은 노이즈가 낀 것 같이 형체조차 예상이 안가는 미지의 존재에게 소녀는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 그 노이즈와 가까워지자 어떤 자세인지는 대충 유추할 수는 있었다.
검은 노이즈는 소녀에게 등을 돌리고는 있을 리 없는 환한 빛을 내뿜는 화면을 통해 뭔가를 보고있는 것 같아 무엇을 보는지 궁금해 호기심이 동한 소녀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 이번에도 거하게 깨졌네.
“엇!?”
검은 노이즈에게서 들려오는 목소린 오래되고 질이 나쁜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것 같이 원래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검은 노이즈의 목소리보다 소녀를 놀라게 한 것은 검은 노이즈가 바라보고 있는 화면이었다.
그 화면에 나오는 건 자신의 옆에 있던 작은 여우.
그 여우가 자신과 싸우고 있던 차원종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싸우고 있었다.
“아, 안돼…!!”
- …….
“구, 구해야 해… 내가… 빨리 구해야-”
순간 본 여우의 모습에 다급해진 가연을 노이즈는 말없이 지켜보더니 꿈에서 깨야 한다며 자해하려 하자.
탁-
“…어?”
- 잠깐.
아무런 말도 하지 않던 검은 노이즈가 소녀의 손을 붙잡는다.
“이… 이거 놔주세요. 저는… 저는…”
- 지금 가봤자 뭘 어떻게 하게.
“그거야…”
검은 노이즈에서 흘러나온 말에 선뜻 답을 내리지 못했다.
‘내가… 뭘 할 수 있지….’
위상력이 생긴 지 고작해야 이제 며칠밖에 되지 않았다.
체계적인 훈련이나 다수의 실전 경험도 없다.
그저 누구의 것인지 모를 의문밖에 없는 전투 기억을 더듬으면서 같이 싸우는 두 사람보다 월등하다 할 수 있는 위상력 총량과 출력을 이용해 낭비나 다름없이 무식하게 출력으로 때려 박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죽지 않는 몸을 써서 막기라도 하게?
어떠한 대답도 내밀지 않자 노이즈가 내민 말에 정곡을 찔렸다는 듯 움 찌르는 소녀.
현재 상황을 타파할 수단도 없는 네가 가봤자 저 여우를 구할 방법은 없어.
“…….”
맞는 말이다.
자신이 무식하게 싸우는 것을 가리려고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출처 모를 기억을 따라 하며 어떻게든 자신의 부족함을 숨겼다.
원래의 자신이 얼마나 어둡고 사람에게 호감 받기 힘든 성격이란 것을 알기에 기억 속 어머니를 모방해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자신의 부족함이나 못남을 숨기려고 가면을 쓸 뿐인 어린아이.
지금도 말만 앞서고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죽지 않는 몸을 써 차원종의 공격을 맞으며 시간을 버는 것이 고작이다.
“…….”
분하다.
저 말에 반박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분하다.
- ……하.
한숨 소리와 함께 잡고있던 손을 놓아주더니
- 이런 식으로 도와주는 건…
“……어.”
- 이번 한 번만이야.
섬의 주인을 생각하며 제 나름대로 오마주한 다른 섬의 주인의 모습입니다.
언뜻 보면 팔이 떠오르지만, 머리는 거미에 몸통은 지네, 손가락을 연상하는 다섯개의 전갈 꼬리를 가진 형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