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식의 계승자 외전 흉성 : 저격수와의 간호
Heleneker 2023-06-11 1
나의 가족, 내가 살아가는 의미가 되어준 나의 소중한 사람.
그 날 이후로, 당신의 당찬 눈을 보질 못했어요.
당신의 옥구슬 같던 목소리를 듣지 못했어요.
손해 받는 걸 싫어하면서도 결국 남을 돕는 당신의 사랑스런 몸짓을 보질 못했어요.
만약 당신 스스로가 이렇게 될 걸 알았다면, 당신은 멈췄을까요?
아니겠죠. 당신도 소중한 이들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니까요.
그렇기에 후회한답니다. 어떻해 해서라도 당신을 막았어야 했는데.
*********
한 가닥의 실이 인간의 몸을 깃들어 침식한다.
실이 닿은 곳의 끝엔, 수많은 기계의 군단을 내보내는 문이 있었다. 인류의 천재들도 닫지 못한 기계왕의 문은 자신들의 왕조차 강림할 수 있을 정도로 커지고 있었다.
점점 팽창하는 그 문에 실이 휘감긴다. 문을 휘감은 실은 수축하며 문의 팽창을 막고, 되려 죄어들며 문을 좁혀간다.
팽창과 수축, 긴 싸움 끝에 문은 아주 조금 수축하며 팽창을 멈춘다. 문이 팽창을 멈추자, 수축하던 실은 싸움하며 허물어진 틈을 보강한 후, 굳어지며 형태를 고착시킨다.
*******
"후우........"
실의 주인이, 구슬 땀을 뚝뚝 흘리며 한숨을 내두른다.
"힘들었죠? 오늘도 고생했어요."
실의 주인의 곁에 있던 여성이 그에게 수건과 물통을 건넨다.
"고생은 무슨. 가족이니까 당연히 해야지. 애당초 이런식으로 문을 좁힐 수 있는 건 나밖에 없기도 하고."
"물리적으로 간섭할 수 없는 물질에 간섭할 수 있는 능력....다시 생각해봐도 놀랍네요."
"경화 능력의 고유 특성 덕분이지만."
실 능력자, 자온은 실 외에도 여러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 경화 능력에 아주 특수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 물리적으로 간섭할 수 없거나 관측할 수 없는 대상을 경화시킴으로서 간섭하거나 관측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든다.
자온은 이를 이용해 간섭 불가능한 기계왕의 문을 간섭하며 수축시키며 문을 닫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다.
"저수지 상태는 좀 어떤가요?"
"똑같지.... 문에 기운을 빨려나가고 있으니 정신은 못 차리는데, 그 문을 닫는 작업도 순탄치가 않단 말이지..."
"많이.... 안 좋은가요....?"
"겨우 지금 상태만 유지되는 상황이야.... 하아, 이딴 문, 맘같아선 한번에 닫아버리고 싶지만...."
"문을 억지로 수축시키는 작업은 문의 경도가 약해진다면서요. 자칫하다가 문이 부숴지면 돌이킬 수 없다고 말했으면서."
"알면서도 조바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달까. 이 생각이 날때마다 우리가 떠날 때, 저수지도 같이 데리고 갔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까 라는 후회가 한 번씩 든단 말이지..."
******
아, 애리야! 다들 어디갔는지 못 봤어? 루시 병실이 엉망이 되어있어! 무슨 일이 생겼나 봐!
......
엉망이 된 병실을 보곤 당황하는 저수지에게, 애리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침묵한다. 이상함을 감지한 저수지는 다시 그녀를 부른다.
....애리야?
저수지..... 그 분들은 떠났어요.
그게.... 그게 무슨 말이야? 떠났다니.....?
그 분들이 입원하신 이유 아시죠?
당연히 알지. 그 망할 교단에 뺐긴 루시의 본체를 되찾으려고 갔다가 다친거잖아.
네, 그랬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 루시 씨가 사람들을 지키려다가 폭주하는 사고가 있어났다고 해요. 지킬려고 펼쳤던 힘이 되려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서, 유니온에서 루시 씨를 더이상 묵시할 수 없다며 처분하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해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사고라며? 왜 자기들 마음대로 처분을 말하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더 결정적이었던건 어제밤, 김철수 씨와 자온 씨가 루시 씨를 처분하러 온 유니온의 요원들을 전부 잔인하게 죽였거든요.
그날 이후로 김철수 씨도, 자온 씨도 정신적인 휴우증을 앓고 있던 와중에 들어온 요원들이 루시 씨를 죽이겠다며 자극해서 그 자리에서 다 참살했다네요.
그분들은 더이상 유니온에서 활동할 수 없다고 판단하곤 급히 떠나 버리셨어요. 저에겐 저수지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시면서.
그게 뭐야..... 그게 뭐냐고!!!! 그런 일이 있으면 알려줄 수 있는 거잖아!? 나는 싸울 수 없는 힘이 없어서 믿음직하지 못한 거야? 나도 힘든 일이 있으면 같이 떠안아줄 수 있는데!! 그렇게 시간을 같이 보냈는데 나는.... 나는 의지하기 힘든 사람이였던거냐고!!!
저수지....
애리 너도 나빠!! 매일같이 나한테 가족이라고 말했으면서!! 알자마자 나한테 바로 말해줄 수 있었잖아?! 너도 날 믿지 못하는 거였냐고!!?
그렇지 않아요, 저수지. 그 분들은 저수지만큼은 밝은 세상에서 살아가길 바래서...
듣기 싫어!! 나가!!!!
서운함과 분노에 눈물을 흘리는 저수지의 모습에 애리는 조용히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
찌르르르르.... 콰앙------!!!
펑!!!!
쾅!!! 콰앙!!!!
........
풀벌레의 울음소리만이 조용히 울리던 고요한 밤의 숲 속에, 폭격과도 같은 폭음이 울리다가 멈춘다. 포탄과도 같은 강력한 화살을 쏘던 남자는 활을 내리며 말한다.
실력자인듯 한데 전혀 반격하지 않는군. 누구냐, 용건이 뭐지?
....다행히 늦지 않게 찾았네요.
....애리 씨? 여긴 어떻게 찾았습니까?
급하니까 용건만 이야기 할게요. 저수지가 위험해요. 도와줘요.
....안에서 이야기 하시죠. 모두 불러드리겠습니다.
애리의 저수지가 위험하다는 한마디. 자온은 급히 시궁쥐 팀을 한자리에 불러모은다. 모두 모인 그들에게 애리는 그들이 떠난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궁쥐 팀이 떠난 이후, 그들을 그리워하던 저수지는 그들을 잊기 위해 우연한 계기로 얻었었던 기계왕의 힘의 일부를 과하게 남용해 버렸고, 그 결과 기계왕의 힘에 침식당해 그들의 문이 되어버렸다.
저수지의 몸에 생겨난 문은 기계왕의 군단을 끊임없이 불러냈으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내로라하는 천재들이 모였지만, 어떤 성과도 내지 못한채 결국 사살만이 답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사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애리의 이야기를 다 들은 그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움직여 저수지가 있는 연구실을 급습하고, 그녀를 빼돌리는데에 성공한다.
빼돌리는데엔 성공했지만, 그들 또한 저수지를 어떻게 치료해야할지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자온은 자신의 능력을 응용한 치료를 시도하려 나선다.
그리곤 잠시 뒤, 자온은 심각한 표정을 하며 모두에게 자신이 치료하던 중 알아낸 사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게.... 정말인가요?
네. 문이 거의 닫히지 않은 상태에서 파괴하면 영원히 닫히지 않는 문으로 다시 만들어져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정말로... 저수지를 구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문제가 또 있습니다. 좁혀야할 문의 경도가 상당히 연약합니다. 아주 조금 수축시킨 것 뿐인데도 많이 부숴졌습니다. 다행히, 제 능력으로 보수가 가능하긴 했지만 안정적으로 수축시킬려면 며칠은 그냥 두어야 할거 같습니다.
닫는데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상당히 많은 시간이 들겁니다. 몇 달, 아니, 몇 년이 넘게 걸릴 수도 있습니다.
....!
몰래 떠나서 미움받는 저희가 이런 말하는 것 자체가 염치 없지만.....얼마나 걸리더라도, 저는 저수지를 고치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은 생각이지요?
응. 저수지, 꼭 고치고 싶어.
물론이다.
....또 다시 이런 식으로 잃기는 싫거든.
오히려 부탁드리고 싶은 걸요.
애리 씨,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저수지의 모습을 잠시 내려다보던 애리. 결심을 굳힌 듯 말한다.
저는.....
그 이후, 애리는 저수지를 죽이기 위해 추격하는 유니온을, 그녀를 확보하기 위해 몰려드는 기계의 군단에 맞서며 다시끔 그들과 함께 함께한다.
그녀의 합류로, 그들은 더욱더 거대한 범죄조직으로 거듭나며 강력함을 과시한다.
*******
"물론 그때 저수지가 우울해했던걸 생각하면 아직도 여러분이 조금은 원망스러운 마음도 없지않아 있지만요."
"....이제와서 생각해도 미안하긴 하지만 이젠... 의미없는 후회네. 그런데 말야, 애리. 너 이불이랑 침대보 갈러 온 거 아니였어?"
"네, 그랬죠. 그런 의미로,"
텁---
".....나보고 갈으라고?"
"저수지는 제가 안고 있을테니까 신속하ㄱ..... 아니, 천천히, 꼼꼼하게 정리해주세요."
".....에휴."
애리는 자온에게 침대 커버와 이불 등의 침구를 전부 떠 넘긴 다음 재빠르게 저수지를 안아 올린다. 잠시 미묘한 눈빛으로 애리를 째려보던 자온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침구를 교체한다.
"자, 교체 끝. 이제 내려주실 시간이예요."
"조금만, 조금만 더 꼼꼼히 해봐요. 딱 펴서 주름없이요."
"조금이라도 더 저수지 안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그만하고 내려놔! 평소에도 딱 달라 붙어있으니까 집착할 필요 없잖아!?"
"피이...... 알았어요."
애리는 입을 쭉 내밀면서 저수지를 침대에 내려놓은 후 담요를 덮어준다. 애리는 자신이 가져왔던 작은 대야를 들며 말한다.
"방울 씨, 깨끗한 물 가득 채워주세요."
보글보글보글......!!
방울 씨라 불린 애리의 곁에 떠다니는 물방울이 거품소리를 내며 대야에 맑은 물을 방출한다. 애리는 물에 손가락을 담가 무언갈 확인하더니, 자온에게 대야를 건네며 말한다.
"자, 살짝 따뜻한 정도로 데워주세요."
"나는 가스불이 아니거든.......?"
자온은 투덜대면서도 불꽃 능력이 담긴 실을 물에 담가 데우기 시작한다.
"음, 역시 딱 좋네요. 항상 다해주면서 투정은."
"문을 수축시킨 후에 힘 쓰는거 꽤 힘들단 말이야. 농담 아니고 진짜...."
"네. 네. 고생했어요. 오늘은 이제 가서 푹 쉬어요. 저는 이제 저수지 몸 닦아줘야 해서 바쁠 예정이랍니다?"
"밀지 마... 알아서 나갈테니까...."
웃으며 자온의 등을 떠미는 애리. 자온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면서도 저항하지 않고 떠밀려나간다.
애리는 문을 닫기 직전, 고개를 빼꼼 내밀며 말한다.
"항상 고마워요. 저수지를 위해 노력해줘서."
방문이 닫히자, 자온은 너털미소를 짓곤 노곤한 몸을 이끌며 휴식을 취하러 간다.
누워있는 저수지의 곁에 앉는 애리. 수건을 적시던 중, 흐트러진 저수지의 머리칼를 가볍게 정돈해주며 금방이라도 울것만 같은, 슬픈 미소를 짓는다.
우리의 소중하고 사랑스런 가족, 저수지.
당신이 우릴 기다렸던 것처럼, 우리도 당신을 그리워하며 기다리고 있어요.
언제까지고 기다릴게요. 당신이 돌아오기를.
그러니 얼른 돌아와 줘요. 우리 가족이 사랑스런 당신의 눈빛을, 목소리를, 몸짓을 잊어버리기 전에.
제발.
NEXT : 여왕과의 절멸
저수지 : 우연한 계기로 기계왕의 드레스룸에 접속,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시궁쥐 팀의 정신적 지주.
교단을 절멸하며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떠나간 시궁쥐팀을 그리워하며 힘을 남용 중, 임계점이 넘어버리며 기계왕의 군단과 연결되는 특수한 문이 되어버렸다.
저격수-애리 : 기계왕의 문이 되어 버린 저수지를 구하기 위해 범죄 집단이 되어버린 시궁쥐 팀과 협력하여 저수지를 빼돌린다. 이후 저수지의 사살 수배를 알곤 적극적으로 추격자를 배제하는 저격수가 되었다.
자온은 자신이 각성했던 새로운 능력을 응용해 저수지에게 정착한 문을 억제하곤 있으나, 팽창 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 조금씩 절망하지만 가족의 행복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