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식의 계승자 EP.4 사냥꾼의 밤 22화 희망의유언-WILL OF WISH(하)
Heleneker 2023-04-25 1
24년도 개정판입니다
치...즈칙..... 치지지......
삐.....삐빅.....삐.....
"간호인 분들이 얘기하시더라. 완치도, 치료의 어느 정도의 가망이 없다는 것을 듣고도 오늘도 열심히 치료를 받았다며."
바이탈 사인이 무심히 울리는 와중에 나는 오늘도 지친 해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짜증 한번 안 부렸다며? 아플텐데 그 정도는 해도 괜찮잖아. 하하."
그마저도 고르지 못한 숨소리만 들려올 뿐, 대답은 돌아오질 못했다.
억지를 부려 이곳 부산에서 클로저 활동을 한 것까진 좋았으나.... 벌써 해랑이가 깨어나지 않게 된지도 벌써 한달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몸에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치료는 이어가고 있다지만 차도는 보이질 않았고, 날이 갈수록 해랑이의 상태는 점차 악화되어갔다.
의료진들과 주변 사람들은 최선을 다했으니 보내줘야하지 않겠냐라고 계속 권유해 왔지만.... 그러지도 못한채 시간만 흘러가고 있으니....
널 보내주지도 못하고 구해주지도 못하고 있으니..... 나는 참 무능하고 어리석은..... 욕심쟁이구나.
툭, 투툭
"끄흐..... 흐으으으....!"
내 눈물이 한두 방울씩 떨어져 쥐고있던 해랑이의 손등 위를 적시기 시작했다.
모두가 고통스럽게 죽는 와중 홀로 멀쩡한 내 몸이 저주스럽다.
지켜주겠다고 한 주제에 지켜주지 못한 나의 무능함이 저주스러웠다.
구해주지도, 보내주는 것도 하지 못하는 나의 어리석음을 저주한다.
반짝------!
고개를 들은 창밖 너머로 맑게 개인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며 밤하늘을 수놓기 시작했다. 별들이 서로의 꼬리를 물며 빛나는 사이에서, 더 찬란히 빛나는 달빛이 나를 비추었다.
"왜 나를 비추는 겁니까? 나를 비추지 마세요."
눈물을 머금은 눈을 별과 달을 향해 바라보며 빌었다.
"나는 빛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건 이 아이가 받을 것이죠. 저와 달리 마음으로 세상을 따스하게 감쌀.... 다정한 아이니까요."
"당신이 없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나는 다시 한번 당신께 바랍니다."
"나의 작은 희망이 기적처럼 나아서, 평범한 사람들처럼 행복해질 수 있기를. "
"당신께서 저 별에 존재한다면, 이 어리석은 저의 이 작은 소망이 부디 당신에게 닿기를."
"그것은 유일한 나의 바램, 나의 마음 그 모든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제 심장도, 숨결도, 제가 가진 모든 가능성조차 바칠 테니....."
"그러니 제발..... 신, 당신이 있다면.....!"
"이 아이를, 구해달라고!!!!!!"
[용서받지 못할 죄업에 안식조차 얻지 못한다 해도요?]
".....!"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에 황급히 몸을 돌려 위상력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곳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아니, 사람은 맞는 걸까? 전신이 하얗다기보다는 창백한, 그러면서도 묘하게 검은 빛을 품어 잿빛으로 빛나는데다, 얼굴은 보이지조차 않았고, 눈 앞에 바로 있음에도 기척이 조금도 느껴지질 않았다.
그럼에도 경계심이 덜 드는 이유는 뭐지? 아니, 오히려 조금씩 안정감이 드는 이 기분은.....
짜악!
스스로 뺨을 세게 때리며 경계심을 되새겼다. 정신에 영향을 주는 능력인건가? 아니면.... 그런 계통의 도구인건가?
기묘한 존재가 들고 있는 갈기갈기 찢겨진 탓에 몇번이고 누빈 듯한 깃발과 각종 땜질과 덧댄 깃대가 보였다. 차원종들의 무기라면 그런 것이 있어도 이상하진 않겠지만, 저것에선 그런 기분나쁜 이질감보다는 절망과 후회에 가까운..... 사무치는 정념(情念)이 느껴져 왔다.
"....당신은 누굽니까?"
그를 다 살핀 나는 천천히 대화를 시도해보았다.
[신이라고 하면, 믿을거예요...?]
"하, 신이라.... 내가 이렇게 간절히 바라는 순간에, 형편 좋게 나타난다면 신보다는 악마가 아닐까 싶은데."
[해를 끼칠 생각은 없어요. 나는.... 당신과 저 아이의 운명을 알려주려 왔을 뿐이니까요.]
"하.... 하하....더더욱 신뢰할 수 없군. 갑자기 나타난 존재가 운명을 알려준다고? 그런 존재들은 보통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그 사람들을 하나의 말로 취급하며 손을 뻗는 존재들이지. 가버려. 자신들이 아쉬울 때만 나타나는 당신들 따윈..... 필요 없습니까."
[부정하진.... 않아요. 저 또한 원하는 바가 있어서 온 것은 맞으니까요. 하지만....]
어느새 그 존재가 나의 앞에 순식간에 다가오더니,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지금 이것은 나를 위해서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당신을 위한 거예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얼굴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듯한 눈동자가 잠시 보이더니,
키이이이이-----
"으읏...?! 으으으으윽.....!"
그 눈을 통해서 내게 누군가의 기억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
두 명의 위상능력자가 보였다. 하나는 좀 더 나이 들긴 했지만 분명히 나였고.... 다른 하나는 나를 많이 닮은 주황빛 머리칼의 남자였다.
군복으로 보이는 똑같은 검은 옷을 나와 그는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며 피투성이가 되어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삶에 지쳐 눈빛은 모든 희망을 잃은 것처럼 공허했고, 절망에 미래에 대한 기대를 조금도 하지 못하는 나와 그는 그저 명령만을 따라 살인을 멈추지 않았다.
나와 그에겐 어떤 삶을 살아기에.... 저렇게 모든 걸 포기한 눈으로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걸까.
여러 시간 속의 나와 그를 번갈아 보다가 이상한 점을 찾아내었다.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이였음에도, 우리는 서로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 아니, 만나지 못 했다.
수많은 시점들은 시간을 거스르며 점차 과거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남자는 점차 어려질수록 내가 아는 누군가를 얼굴을 닮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눈치챘다. 그 남자는.... 바로 내 동생 해랑이란 걸.
해랑이가 살아 성장한 모습까진 좋았으나 어째서.... 어째서 그 아이가 모든 걸 포기한 눈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거야?
대체 나는 뭘하고 있는 거야? 왜 랑이가 저렇게 될 때까지 난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그리고 그 답을 알려주듯이, 기억은 문제의 날을 보여주었다.
내가 살아있는 시간에서는 해랑이는 병에 의해 수명을 다하거나 수술을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또 다른 시간에서는 나의 앞길을 막기 싫다며 스스로 삶을 끊었고, 유니온의 정쟁에 우연히 휘말려 살해당하거나, 급작스런 차원종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으며 나는, 혼자 살아갔다.
반대로 해랑이가 살아있는 시간에서의 나는..... 차원종들과 싸우다가 죽거나, 큰 부상으로 인해 천천히 죽음을 맞이하거나, 정쟁에 휩쓸려 희생양으로서 살해당하며 해랑이는 혼자 남겨졌다.
수십, 수백, 수천, 수만을 넘어가는 시간 속에서 나와 해랑이, 두 사람이 공존해서 살아가는 시점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둘 중 한 사람이 살아가면, 다른 한 사람은 병사, 돌연사, 사고사, 타살, 객사 등 확실한 죽음을 맞이했다. 아무리 길어도, 해랑이의 10살 전후로 필연적으로.
서로를 잃은 나와 해랑이는 약에 절여지거나, 세뇌를 당하거나, 실험당하며 살수로서 삶을 이어갔고, 죽기 직전엔 항상 저주처럼 중얼거렸다.
"랑이가/형님이 살아있었다면..... 이런 아픈 삶은 살지 않았을까....?"
"한명만 살아갈 수 있다니.... 이 운명은.... 참 지독....하네..."
그렇게 나와 해랑이는 각자 쓸쓸하게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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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딴..... 그딴 운명을 믿으라고!? 랑이와 내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그딴 걸 어떻게 믿으란 거야!!!?"
투확!
나는 달려가 그를 넘어트리곤 멱살을 잡았다. 이 존재가 신이건 악마이건 상관없었다. 이런 악의적인 걸 미래를 보여주는 존재는 내게 있어서.... 이미 적이니까...!
힘을 주먹에 담아 있는 힘껏 휘두르려는 순간,
"당신..... 왜 울고 있는 거야?"
그 존재의 눈가에선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내리고 있었다. 타인의 감정을 읽는데 능숙했기에 알았다. 그의 눈물은 연민과 슬픔, 후회의 눈물이라는 걸.
[당연히.... 믿을 수 없겠죠. 그런 기적은 오직 나에게만 허용됐고.... 그 외의 모든 가능성에선 아무리 저항하고 대항했었지만..... 결국 둘 중 한명은 죽는다는.... 이 망할 운명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어.]
"왜.... 저희는 그런 운명이여야 하는 겁니까.....? 함께 하고 싶다는 그 마음은..... 그저 작은 희망이였단 말입니다. 그 바램조차 불가능하다는 겁니까?"
[....네. 그 마음은... 그 어떤 가능성의 저와 당신도 손에 쥐지 못한.... 바램입니다]
그도, 나도 통곡하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 잔혹한 미래라는 걸 알기에 울지만, 당신은 어째서 나와 랑이의 절망의 가능성에 눈물 흘려주는 걸까? 당신은 대체..... 누구기에.....?
[그럼에도 제가 당신을 찾아온 이유는..... 당신에겐 선택할 자격이 있기에 찾아왔어요.]
"자격.... 이라고...?"
[당신이 살 것인지, 저 아이를 살릴 건지를요.]
"랑이를 살릴 수 있다고?!"
[네.... 이걸 먼저 설명드릴게요.]
자신을 잡고 있던 내 손을 풀은 그 존재는 일어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신과 저 아이가 공존하지 못하는 이유..... 그건, 저 아이가 가지고 있는 운명 때문이예요.]
[아주 오랜 과거.... 한 신이 눈물로 만들어낸 [기대]에 완벽하게 적합한 존재. 그게 저 아이죠.]
[문제는 그런 존재들은 약한 시절에 자신의 운명을 깨닫지도 못한채 죽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기에 [균형]은..... 항상 동시대에 그들의 예비 존재를 만들어내죠.]
[그리고 이 아이의 예비가 바로 당신. 한 존재가 가진 힘과 운명조차 대행할 수 있는 초월의 권능, [대행의 권능]을 가진게 바로 당신입니다.]
"대행의.... 권능.....!?"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대신하고 행하는 그 능력은 육체 자체는 대신할 수 없지만.... 대신 그 대상이 앓고 있는 통증이나 병, 수명을 대신할 수 있어요.]
"그 힘, 어떻게 사용하는 겁니까?"
[대행하고자 하는 이와 맞닿은 후, 대행한다고 말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해랑이의 손을 붙잡으며 간절하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대행한다. 고통도, 그 병에 의해 깎여지는 수명까지 전부 다."
해랑이에게서 은은한 잿빛의 기운이 흘러나오더니 내 안에 흘러들어와 새겨지기 시작했다.
"커...... 쿨럭, 쿨럭!!"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한 거대한 권능 사이로 해랑이가 갖고 있던 병마의 고통과 망가진 다리의 통증, 깎여진 수명이 모두 내가 대신하는 것이 느껴져왔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데 그나마도 쉬는 호흡은 폐를 철솔로 문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다리는 힘줄이나 근육이 조금만 움직여도 몰려드는 통증에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조차 없었다. 그런데도 너는..... 태연하게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었던 거야?
[......망설임이 없네요.]
"나는... 랑이가 행복하길 바라니까요. 그게 내가.... 안식에 들 수 없는 길이라고 할지라도.... 쿨럭, 쿨럭!!"
[물론 당신이 선택한 방법은 저 아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긴 하지만.... 동시에 당신이 봤던 그 아이의 미래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해요.]
"그게.... 무슨... 쿨럭! 쿨럭!"
놀란 나는 몸을 일으키려다 그대로 넘어져 버렸다. 그는 나를 랑이의 침대 곁에 기대준 후, 그 곁에 앉아 천천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수명까지 대신한 당신은 곧 죽어요. 동시에 당신의 죽음을 목도한 저 아이는 충격에 위상력을 각성하곤, 저 막대한 권능으로 몸이 전부 회복되죠.]
[문제는 그 각성으로 몸이 회복된 저 아이는, 완벽한 치료법을 찾지 못한 그아폴리온의 독의 해독 방법을 찾기 위해 실험체로 감금되어서.... 몸이 들쑤셔집니다.]
[고문에 가까운 실험과 눈 앞에서 당신의 죽음을 본 충격에 마음이 다 찢겨져 나갔음에도 각성한 힘에 의해 쉽게 죽지도 못해요. 거기에 그 터프함을 눈여겨본 다른 과학자들이 때마침 연구하기 시작한 인간을 쉽게 조종하기 위한 제어코드라는 실험을 이 아이에게 강행합니다.]
[쉽게 죽지 못하는 운명 때문에 몸은 점점 더 강해졌지만, 갈기갈기 찢겨진 마음은 결국 제어코드의 인공자아에 의해 집어삼켜졌고, 선을 빙자한 악에 조종당하다가 마침내 한 권력자가 원하던 실험의 최종 결과물이 되어 세상의 90% 이상을 학살하는 존재가 되어버리죠.]
[물론..... 이마저도 차악의 미래이긴 하지만..... 당신이 죽는 순간부터 어떤 미래든, 거의 별다를 바가 없어요. 실험체가 되거나..... 살수가 되거나..... 아니면, 모든 걸 집어삼키는 괴물이 되어서 이 세상에서 사라지죠.]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의 말에 분노해 꽉 쥐고 있었던 내 손에서 피가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수명을 대행하지 않으면 랑이가 죽어. 그렇다고 이대로 내가 죽어서 랑이가 사는 것만도 못한 삶을 살게 두라고?"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 랑이가.... 이 다정한 아이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줄거야....!"
"더이상 무력하게 있지 않겠어. 그 아이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 난 무엇이든 할 거고, 무엇이든 될 테니까.....!"
"설령 운명의 시류가, 날 스러지게 할지라도 반드시.....!"
그 순간, 대행하고 있는 해랑이의 힘이 내 안의 무언가를 비추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실들이 있었다.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이 실은.... 세상 모든 흐름과 시류만이 아니라 과거를 읽어보며, 하물며 미래를 엿보고 건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이 실을 이용하면.... 랑이가 누구에게도 이용당하지 않는 미래로 수놓을 수 있을 거 같았지만.... 지금의 내 몸으로 운명을 조작하는 순간, 버티지 못 할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감각이 들었다.
몸이 필요해. 랑이가 앓는 병과 망가진 몸을 회복시켜주는 능력 있는 몸이, 운명을 조작해도 버틸 수 있는 몸이, 서로가 함께 할 수 있는 그날까지 랑이와 함께하고 지켜줄 힘을 쓰는 몸이. 그리고......
랑이의 힘이 빛으로 발현해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그 빛은 내 몸을 운명을 수놓는 실을 다루고, 수많은 시류를 보고 건드려도 맞이할 최후의 운명까지 버틸 수 있는 몸으로 재구축하였다.
동시에 이 몸은 바랬던 것처럼 실을 전투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그리고 랑이의 수명을 갉아먹는 병과 부상을 멈추고 어느정도 회복시키는 능력을 발휘하였다.
[당신 또한 그 힘의 자격은 가지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참 대단하네요. 단 한 명을 위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당신만의 마음을 깨우는 가능성은 그 수많은 가능성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인데.]
기묘한 존재의 모습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가장 다정한 대행자시여. 절망 속에서도 당신은 희망의 길을 찾아냈으니....]
[부디, 당신이 지키고자한 희망을 행복한 미래로 이끌어주기를. 희망의 길을 비추고, 절망을 쏘아 막는 대행자. 대별왕 비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마치, 웃는 것만 같았다.
"잠까....!"
그러나 그는 그대로 사라졌고, 그 자리엔 왠 낡고 작은 방울이 남겨져 있었다.
딸랑------
그 방울이 울리자, 빛이 주위를 휩싸며 무언가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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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보였다.
다 찢겨진 깃발과 산산조각난 깃대, 찌그러지고 날이 닳아 제 기능을 못하는 무기들이 그의 주위에 있었다.
그의 뒤로 동료로 보이는 수많은 이들이 있었지만, 부상을 입은 채 쓰러져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그 앞을 새까말 정도로 많은 적이 몰려왔고, 이를 본 그들의 눈에는 절망과 공포가 가득 차 있었다.
모두가 포기했다. 모두가 절망했다. 모두가 포기하지 않고 나섰음을 후회했다.
그러나, 가장 앞에 서 있던 남자는 산산조각난 깃대를 이어붙였다.
갈기갈기 찢겨졌던 깃발의 조각들을 모아 실로 꿰메곤 깃대에 다시 걸어 드높였다.
그의 눈은 기대도, 희망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가장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 모습에, 그의 동료들은 다시 일어섰다.
산산조각임에도, 그들은 서로를 다시 이어붙여 그 깃발을 따라 나섰다.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그 인연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공포와 절망, 후회를 이겨내고 뒤따랐다.
희망의 빛, 필멸자의 깃발이 찬란히 하늘을 비추었고, 가장 앞의 남자는 소리높여 외쳤다.
[갑시다! 우리의 희망을, 우리의 인연을 지키기 위해!!!!]
[내 형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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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이런 걸 보여주면 정말..... 많이 노력해야겠네."
이제는 얼굴이 평안해진 해랑이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내가 있는 시간만큼은 나만 아플게. 너는 그 시간만큼은 아프지 말고 행복하렴."
"이 권능으로 할 수 있는 많은 것을, 수많은 경험을 남길게. 내가 없더라도, 그 경험이 너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내가 버틸 수 있는 마지막 순간, 그 시간이 지나더라도 나의 희망, 널 지킬게."
"내 모든 걸 다해 이 희망을 지켜 그 미래로 보내겠어. 언젠가 내가 죄업에 짓눌려 사라질 지라도."
그 밤 이후, 나는 내가 본 그 미래의 가능성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건강을 찾은 해랑이와 함께 나는 부산을 떠나 신서울을 향해 떠났다.
매일 밤마다 변화하는 운명을 확인하며 나는 여러 미래 중 가장 빠르게 눈에 띄는 길을 이행했다. 일부러 붉은 한복과 탈을 쓰고, 실을 화살로 엮어 차원종을 처리하면서 주변 피해는 거의 없게 하는 기행과 실적을 보이며 유명세를 떨쳤다.
그렇게 얼마 뒤, 나에게 한 연구원이 접근해 한 실험의 추천하였다. 그는 나를 처음 봤지만, 나는 수많은 가능성을 통해 그를 알고 있었다. 인간을 조종하는 악의의 정수 중 하나, 제어코드의 개발 연구원.
그 얼굴을 보았을 땐 당장이라도 으스러뜨리고 싶었다. 내가 없는 수많은 가능성에서 대부분 저 놈이 해랑이를 실험에 이용해 제어코드를 완성시키고, 반대세력을 숙청시키기는 살육 인형으로 만들었으니까.
참아야 한다. 오히려 지금 이 자를 죽이면 새로 연구를 맡게될 연구원에 의해 더 빠른 시일에, 더욱 강한 제어코드가 완성된다.
그건 안 돼. 지금까지 일부러 눈에 띄게 행동한 이유가 현재의 제어코드의 실험에 참여하기 위해서니까. 교묘히 방해시켜야, 조금이라도 감당 가능한 제어코드를 먼 미래에 개발시키게 할 수 있어.
살의를 누르며 나는 일부러 제어코드의 개발 실험에 피실험자로 참여했다. 가능성의 미래를 통해 최대한 죽음을 피하는 길을 걸었지만 꽤 고통스러운 실험의 나날이였다.
어느 날은 위상능력자가 감당 가능한 한계까지 채혈당했다. 어느날은 약품의 부작용으로 몸 안이 뒤집힌 상태로 급하게 차원종을 상대해야했다. 또 어떤 날은 세뇌하기 위한 전격에 의해 신경이 뒤틀리고, 때론 쇼크사할 뻔도 했다.
그 시간동안 다른 피실험자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들의 운명까지 건드렸다간, 모든 것이 어긋날테니까. 내 욕심을 위해, 그들의 죽음을 방관했다.
그들이 하나둘씩 죽을 때마다, 죄책감이 마음을 짓눌렀다. 어쩌면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는데, 그것을 방관해야만 했던 죄책감. 매일, 매 시간마다 나를 짓눌렀다.
그럼에도 버텨야만 했다. 그래야만 지금의 실험을 실패시키는 길이 이어지니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나의 권능으로 변질된 내 몸에서 뽑아간 샘플도, 실험 수치도 저 남자를 환장하기 만들기엔 최적이니까.
그들이 아닌 내게 집착해라. 항상 뒤틀리며 알 수 없는 미지를 가진 내게 집착해라. 내게 집착하고 집착해, 원래의 목적을 상실해라. 그러기 위해 일부러 내 눈에 대한 것도 흘렸다.
그렇게 그는 권능이라는 본 적 없는 미지를 빠져 내게 점점 집착했고, 연구의 진척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그의 실험은 자연스레 폐기되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살아남은 네 사람은 총장, 미하엘 폰 키스크의 직속 살수 부대로 임명되어 반대 세력을 숙청하는데에 힘 쓰이기 시작됐다.
미하엘 폰 키스크. 그 또한 해랑이가 맞이할 나락의 가능성에 존재하는 자였다. 제어코드에 의한 세뇌, 그리고 살수로서의 인생, 그리고 마지막엔 그의 최종 실험 결과물이 되어 세상을 숙청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미래. 그 가능성에 그 또한 항상 있었다.
하지만 그런 미래 따위 오지 않게 둘 것이다. 그의 살수는 내가 되었고 멀지 않은 미래.... 곧 선택의 시간이 오고 있으니까.
그때까지만 버티자. 죄없는 이들의 피를 묻히는 것도, 미래의 희망이 될 이들의 심장을 꿰뚫는 것도.
"그래, 버티자. 조금만 더...... "
하지만...... 너무 힘들어. 내 욕심에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너무 힘들어.
욕심을 위한 방관과 살해. 나는 분명히 지옥보다 더 밑으로 떨어지겠지.
"죄송해요..... 죄송해요..... 모두...."
"하지만 약속드릴게요. 제가 미래로 보낼 이 희망이, 세상과 당신들의 소중한 이들을 지킬 다정한 존재가 됩니다."
"그러니 원망하려거든 제게만 하시길. 증오하시려거든 내게만 쏟아부으시길."
"모든 죄는 제가 짊어질테니, 그 희망이 미래를 가는 길을 흐리지 마시길."
"그것이 나의 마음, 나의 모든 것. 저 머나먼 별조차 닿을 나의 마음입니다."
죄를 떠넘긴 자들의 기억에는 남지 않을 죄를 나홀로 기억하고 죄책감에 짓눌리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포기하고 싶은 나날들의 연속이였지만, 세 친구 덕에 버틸 수 있었다.
운무와 낙뢰 능력자, 일비연. 차분하면서도 지혜로운 그에겐 다양한 지식이나 많은 조언을 받았다.
절단 능력자, 매지운. 무뚝뚝한 듯 보이지만 사실 가장 다정한 그에겐 항상 많은 위로를 받았다.
공기 압축 능력자, 도새한. 항상 쾌활한 그의 성격은 항상 중압에 짓눌려 긴장했던 내 몸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햇살처럼 언제나 나를 반겨주는 해랑이 덕분에 나는 버텨왔고 마침내, 서로 함께 존재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당도했다.
"형..... 나 졸려...."
"그래. 오늘은 어떤 책 읽어줄까?"
해랑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재우는 것. 나의 자그마한 즐거운 시간을, 이제 마지막이 될 시간을 천천히, 그리고 차분하게 보냈다.
해랑이가 잠들고 거실로 나와 앉자, 곁에 있던 세 사람이 울 것만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자, 다들 알고 있지? 알려준 곳에 꽂아야 한다."
"형님..... 꼭 그래야 해요?"
"예전부터 부탁받은 것이라지만 솔직히.....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이해 못 하겠다."
"그래야 해. 무조건 오늘이 끝나기 전에 내가 죽어야 랑이가 살아남을테고, 여러 인과로 만들어진 문을 통해 그와 만날테니까."
새한이와 지운이 눈을 감은채 되물었지만, 나는 단호하게 대답하였다.
그 세 사람을 완전히 신뢰하게 된 날, 나는 내가 설명 가능한 범위 내에서 모든 걸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처음엔 단호하게 거절했었지만, 계속 부탁한 덕에 결국 받아들였지만.
"그 날 봤던 것이 잘못된거라면요? 아니면.... 그 기억 자체가 조작된 거일 수도 있지 않아?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확신을 갖는 거야, 운아?"
이 계획을 말한 그날부터 비연은 끊임없이 그 기억을 의심해보라고 말했었다. 내 죽음으로 이뤄지는 운명이니 의심하라고 계속 조언할만 하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 연아. 하지만.... 나는 이 힘을 대행받은 날, 그 광경에서 분명히 느꼈어."
"눈물로 가득차 슬프지만, 그를 아득히 넘는 기대와 희망을 가득채우다 못해 모두에게 나눠주는 다정함을, 그 마음을 말이야."
"그렇기에 믿어. 내가 지금까지 수놓은 이 길이 잘못된 것도, 조작된 것도 아니라는 걸. 그러니까..... "
뚝.... 뚝....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결국은 굵은 눈물이 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랑이와 더 함께 할 수 없다는 그 미래가..... 너무나 슬프고 아프지만..... 내 희망을 걸은 그 마음만은..... 영원히 함께 해줄거라는 걸 아니까 그러니까...... 괜찮아..... 정말로, 정말로..... 괜찮아...."
"시간이 없어. 이제 곧 교단 놈들이 몰려올거야. 자신들을 건드린 날 없애기 위해서......그러니까 이젠 정말..... 마무리 할 시간이야."
눈을 질끈 감았던 새한, 지운, 비연이 각오를 굳이고 무기를 들었다.
"형님의 뜻을..... 존중할게요."
"너와 함께 싸워서, 함께여서 다행이였어."
"고마웠어, 운아. 네가 우릴 이끌어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나야말로 함께 해줘서 고마웠어."
내 앞에 선 세 사람이 내가 미리 가리켰던 부분을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미래의 랑이를 잘 부탁해. 나의 친구들. 동시에..... 신이 가장 사랑한, 세 명의 아이들."
나를 찌르려던 세 사람의 손이 멈춰섰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요, 형님?]
새한이였던 과거의 바람, 풍백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처음 대행을 시작한 그날, 그 험난하고 외로운 길을 도와줄 이들을 바랬거든. 그렇게 구현된 당신들은 자연스럽게 운명의 시류에 편입해 제 곁으로 와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어주기 위해."
[언젠가 눈치챌거라 생각은 했지만.... 당신은 역시, 눈치가 너무 빨라요.]
비연이였던 과거의 비, 우사는 울기 직전인 목소리로 말해왔다.
"그분의 기대에 보답하고자 하는 다정한 분들. 제 희망이자 그분의 기대인 이 다정한 아이를 잘 부탁드릴게요."
[....부탁할 필요 없다. 그러지 않아도.... 그럴거니까.]
지운이였던 과거의 구름, 운사는 먹먹해진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고마워요."
세 사람의 무기가 내 몸을 깊게 파고들어 내 생명을 꺼뜨리기 시작했다.
....랑이가 보인다. 그래, 딱 맞게 깨어났네. 잠깐 거기 있어줘.
그래.... 교단 놈들, 차원종까지 잘 몰고 왔네. 불도 잘 붙여줬고.
차원종들, 조금만 막아봐. 신이 가장 사랑한 세분. 얼마 안 남았어요. 그분이 유폐된 차원문이 열리기까지.
꽈악...
내 손을 누군가가 꽉 잡는다. 랑이다.
아, 모두 정해진 거인데... 이 광경으로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되는데... 내 마지막 일을 해야지.
웃으며 가야지. 네 마지막 기억까지, 나는 너에게 환하게 웃는, 그래. 태양이면 좋겠어.
"형..... 형아......!"
"사람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줘. 나의.... 작은 하늘님...."
마지막으로 나의 마지막 숨이 흩어지기 전에, 대행하고 있었던 모든 힘을 돌려주고, 쌓아온 경험을 건네주었다.
그렇게, 나는 숨을 거뒀다.
******
"....이것이 저들이 가린 진실된 기억이며, 진실이예요."
내 복수는.... 의미없었다. 애당초, 모두 형님이 계획하셨고, 이를 실행한 이들조차.... 형님의 힘으로 다시 세상에 나타났었던..... 영감이 가장 사랑한 세 아이였으니까.
".....영감도, 형님도 어떻게 될지도 모를 미래를 믿고 행동했던 거야?"
"네. 스스로의 모든 것을 걸어서요."
"왜...... 어째서...... 어떻게 그렇게 까지 할 수 있는거야?"
영감이 사랑한 세 아이들과 그들의 충복, 그리고.... 형님의 죽음이 모두 나와 적지않은 관련이 있는 걸 알자마자 죄악감이 나를 무겁게 짓눌러오기 시작했다.
"소중한 아이들이였잖아. 나보다는 자신이 더 소중할 수도 있었잖아. 그런데 어째서 이런 미련하기 짝이없는 나를 믿은 거야.....? 내가 아무것도 되지 못 할 수도 있는 거잖아.....!?"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기대도, 희망도 아무것도 아닌 채 끝나겠죠."
"그들이 모든 것을 걸고 이루려한 마음.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리고 그에 따른 선택을 할지는 오롯이 당신의 몫."
"나는..... 모르겠어.... 왜 그렇게까지 한 것인지도, 무얼 바라는지도 전부.....!"
"그럼 당신은요? 당신은 무얼 바라고 있죠?"
희망이의 모습을, 풍백의 모습을, 운사의 모습을, 우사의 모습을 한 그들의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혔다.
"모르겠다면 아주 오랜,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부터 들어볼게요. 당신은 신에게 무엇을 바랬나요?"
"힘을. 강해지고 싶었기에."
"무얼 위해서?"
"지키기 싶었어. 형님도, 희망이 너도. 하지만.... 그러지 못했어."
"그렇다면 지금의 당신은, 더 이상 지키고 싶은 것이 없나요?"
"......"
"다시 물어 볼게요. 당신은, 무얼 바라고 있나요?"
"강해지고 싶어."
"무얼 위해서?"
"지키기 위해서."
"누구를?"
아까와 비슷하지만, 다른 질문. 처음에 듣고 망설여 대답하지 못한 답을 대답한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 은하, 루시, 김철수, 미래, 수현, 감찰관, 그리고....영감을."
"지키며 함께 한다는 것. 그것은 강함과는 반대되는, 약해질 수 밖에 없는 길이예요. 그럼에도 함께하며, 지키고 싶은가요?"
"그래. 이 선택으로 인해 내가 약해진다 해도."
더이상 망설임은 없었다. 그 질문들 속에서, 나는 무엇을 바라는지 찾아냈으니까.
"내가 약해지더라도 나는, 다시 한번 강해지겠어.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이젠 곁에 없더라도.... 다정한 바램을 담아 건네준 그들의 마음을, 그 [인연]들을 지키겠어!!!!"
"나의 마음, 나의 모든 것을 다해서!!!!"
나의 각오가 말이 되어 뜻을 품은 순간, 그들은 환하게 미소지었다.
[당신의 앞길엔 많은 시련이 있을겁니다. 거짓된 신앙, 불타버린 정의, 끝없는..... 신의 증오와 혐오를.]
[그럼에도 당신이 그들로부터 당신의 인연을 지켜내고 싶다면,]
[그 분의 기대를 잇고, 그의 희망을 다시 짜내며, 인연을 지키고 싶다면,]
[우리는, 그대를 진심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그대의 영혼을, 그대의 의지를, 이미 깨어있는 마음을 비추겠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기대]하고, 그가 바란 [희망]이며, [인연]을 지키는 그대의 마음, 그 모든 것이니.]
[당신이 피워낸 마음으로, 모든 것을 이루소서.]
그들은 빛무리가 되어 나를 감싸안더니, 한때 산산조각이였던 내 마음을 어떤 형태로 새롭게 빚어내었다.
그것은 기억 속에서 나타났던 기묘한 존재가 들고 있었던 것과 같은 것이였으며,
광기들로부터 내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쥐었던, 내 심장 너머 항상 내 안에 있었던 나의 마음.....
산산조각의 깃발이였다.
******
"......웃기지 마라!!! 마음따윈,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이다!!!!"
현실의 자온의 몸을 뒤덮고 있던 갑피와 함께 검붉은 기체와 액체가 그의 몸에서 분리되더니 여러 형태로 모양을 바꾸기 시작했다.
옛 군주와 군단장들은 인간도, 차원종도 섞였지만 그 무엇도 되지 못한 뒤틀린 형태를 갖추며 현실에 다시 몸을 드러냈다.
"바램을 담은 유언? 타인을 위한 마음? 잘 포장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탐욕의 일부다!! 결국은 똑같은 죄업이다! 이도저도 못한 탐욕은 무엇도 될 수 없음을 보여주마!!!"
자온을 집어삼키는데 실패한 스스로 자온과 분리한 그들은, 분노와 광기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분의 재생과 갑주 밖에 얻지 못했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번엔 완전히 집어삼켜주마!! 그리하여 우리는 새로운 군주로써 다시 탄생할 것이다!!!"
"다시 광기의 군주가 되어 모든 것을 밑에 두어주마!!!"
"얌전히 집어삼켜져라아!!!!!!!"
그들은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자온을 향해 달려들었고, 집어 삼키려는 순간,
"세번째 비, 개방."
푸부북!!
누군가가 그들을 순식간에 스쳐가며 무언가로 찌르더니,
"민들레 흩날리기."
퍼버버버펑!!!!
그들이 몸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터지며 흩어진 고깃 조각들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며 잘게잘게 쪼개졌지만, 그들은 각자 뭉쳐지며 형태를 다시 이루었다.
"성급하긴. 껍데기 깰 시간은 주지 않아야겠느냐."
그 남자는 뺀질거리는 듯한 독특한 말투와 함께 잿빛의 두루마기를 휘날리며 자온의 앞에 당당히 섰다.
"어떻게..... 어떻게 당신이!!!!!"
나타날 수 없다고 확신한 그가 눈 앞에 나타나자, 그들 모두 발작하기 시작했다.
"그야 오랫동안 기대한, 그 미래가 시작되는데 와 봐야지 않겠느냐."
잿빛의 남자는 창을 빙글빙글 돌리며 웃더니, 그들을 향해 겨누며 소리쳤다.
"그러니.... 간만에 내 상대 좀 맡아주거라!!"
광기에서 해방된 뷜란트는, 찬란한 기대를 눈에 품으며 광기에 대치하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
사냥꾼의 밤, 최종 페이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