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식의 계승자 EP.4 사냥꾼의밤 21화 희망의유언-WILL OF WISH(상)
Heleneker 2023-04-22 1
에피소드 4도 이제 얼마 안 남았네요. 마지막까지 힘내보겠습니다
오늘도 구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작합니다.
24년도 개정판으로 수정되었습니다.
눈 앞의 넌.... 꿈이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널 구하지 못한 내 죄책감이 미련으로 남아 스스로를 용서하고자 너의 모습을 빌어 나타난걸까?
그런 거라면.... 나는 절대 용서 받으면 안 되는데. 네가 바랬던 것처럼 다시 빛나지 못한채 광기에 잠식당하는 내가... 무슨 낯으로 네 얼굴을 보겠어.
산산조각 난 나의 마음은 눈 앞의 너를 스스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무의미해져버렸으니까.
이미 지쳐버려서 기대와 희망을 놓아주려고 하니까.
아무것도 아닌 채 산산조각난 나는..... 그 무엇도 되지 못하고 이룰 수 없으니까....
절망과 후회, 죄악감에 눈물 흘리며 조금씩 광기를 다시 받아들이려던 순간,
"그 사람이 진심으로 당신을 원망했다면, 우리도 이런 모습으로 존재하지 못했겠요."
희망이는 내게 몰려드는 광기를 몰아내며 내 손을 잡았다.
"마지막까지 당신이 보답받길 바랐던 그의 마음이, 우리가 당신에게 닿을 수 있었던 거예요."
"너는....희망이가 아닌건가? 희망이를 타인처럼 부르다니..."
"저는 희망이라고, 희망이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니까요"
희망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는 천천히 대답하기 시작했다.
"저는, 우리는 마지막 숨결."
"가장 많은 슬픔과 비통을 품은 마지막 한마디였으며,"
"때론 끝 모를 절망과 후회, 분노와 원망을 담은 마지막 한마디입니다."
"그럼에도 다른 이들의 슬픔을 걷어주는 봄바람 같은 마지막 한마디였으며,"
"때로는 분노를 가려 식혀주는 구름과도 같았고, 절망과 후회에 메말라버린 마음을 적시는 봄비와도 같은 마지막 말."
"수많은 부정 속에서도 누군가를 위한 마지막 기대와 희망을 햇살처럼 비춰주는 다정한 마지막 한마디."
"많은 이들은 저희를,"
"[유언]이라고 부릅니다."
"유언...."
"그 아이가 남긴 마지막 말은 당신이 보답받기를 바랬어."
"다정한 마음이 언제까지나 당신에게 비추기를 바랐습니다."
"그 작은 마음이.... 우리가 네게 닿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희망이의 모습을 한 그의 곁에 어느새 나타난 세 빛무리가 내 손을 겹쳤다.
"지금부터 저희가 저놈들이 일그러뜨렸던 진실을 당신에게 다시 비춰드릴거예요."
"그들이 당신께 보여준 기억은 거짓은 아니였지만..... 그렇다고 온전한 진실은 아니였지."
"가장 슬픈 기억만을 꺼내 악의의 광기를 섞어서... 당신을 무너트리려고 한 것이였죠."
"그러니 이제 보고 오세요. 아프고 슬펐지만..... 그랬기에 간절하고 아름다웠던 그분들의 진실과 그 마음을."
시야가 일그러지며 기억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치....즈즈......
".....조금 생각할 시간을 다오."
"부탁드립니다. 이제 이런 부탁을 드릴 수 있는 건... 재해님 뿐입니다."
새벽녘의 별은 그대로 인사하곤 나의 영역을 떠나갔다.
"믿기지 않아요. 대양님이.... 소멸당하셨다니.....!"
"그 이유도 인간을 계속 비호하려 했기 때문이라니....!"
감정적인 바람이 눈물을 글썽거리기 시작했고, 구름조차 냉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분개하기 시작했다.
"예상은 했다만.... 의지는 결국 인간을 없애기로 결정한 모양이구나."
"이해를 못 하겠어요! 약하다해도 인간들의 가능성이 얼마나 아름다운데요!"
"그건 둘째치더라도 자식이잖습니까....! 지켜주려고 할지는 못할 망정 죽이는 것도 모자라..... 반려까지 죽이는 건 아니잖습니까.....!"
"....둘 다 진정해. 바람. 구름."
"넌 화도 안 나, 비?! 대양님이 살해당하셨다고!"
"의지님이 인간들까지 죽이려고 하는데 보고만 있을 거냐? 인간들과 가장 많이 교류했던 건 너였지 않았나!"
"아니까 제발, 닥 쳐."
대양과 오랜시간 교류하고 친했던 만큼 무덤덤한 비의 모습에 분통을 터트리던 구름과 바람은 비의 한마디에 주눅들며 입을 다물었다.
그 둘 이상으로 분노하고 있던 비는 고요히 일순 터트렸던 분노를 다시 억누르며 말했다.
"....신님. 저 또한 바람과 구름처럼 의지님을 용서하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의 분개하는 모습에 머리속이 복잡해져갔다. 의지의 반려 대양, 그녀가 인간을 지키려다 살해당한 사실과 그녀의 뜻을 이은 새벽별이 의지에게 대항하려는 것도.
"하아......"
난감함에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와버렸다. 본래라면 내가 직접 나서는 것이 그 아이에게 가장 도움이 되겠지만.... 이미 나에 대한 경계를 높여 놨을 터. 그의 영역에 발을 드민 순간부터 내 힘에 제약을 당하겠지. 그렇다고 내 힘을 새벽별에게 나눠주자니.....
"....역시 그놈들 때문에 힘을 빌려주시는걸 꺼리시는 겁니까."
내 생각을 헤아렸는지 비가 물어오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오래전, 내 힘과 영지를 수탈하려다 때마침 한층 더 각성한 나의 권능으로 인해 나의 권속으로 전락한 다른 군주와 군단장들. 그들은 나의 권능에 의해 내게 복종하고 있지만, 나에 대한 반감을 여전히 가진채 내 권능이 느슨해지거나 쇠퇴하기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그들을 제압한 직후 아이들은 이들을 죽여야 한다고 간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들도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은 나는 그들을 살려두고 나의 일을 돕도록 했지만.....
"역시.... 이 정도 시간으론 성정이 바뀌길 바랜 건 무리였나보구나."
"역시.... 그 놈들은 진즉 죽였어야 했습니다."
"그 부분은 구름 너와 같지만.... 기회를 주자고 신님이 말씀하셨으니까."
"그러면 뭐해.... 저 놈들, 간사해서 신님이 새벽별에게 힘을 빌려주시면 좋다고 의지님에게 달려가서 이를 거 같은데."
"그러겠지. 그럼 의지는 내게 바로 달려와 힘이 부족해진 나를 제압하고 권능을 강탈하려 들겠지. 그 친구는 절대적인 힘에 목메어 하니까 말이다."
손가락으로 무릎을 톡톡 두들기며 고민에 빠졌다. 죽이거나 힘으로 그들을 억제할 수 있지만.... 군주와 군단장의 격차를 줄이고, 제약을 완화시키며, 빌려준 힘에 몸이 무너지지 않도록 버티는 힘까지 생각하면 새벽별에게 줄 힘이 부족해질 것이다.
"어렵구나..... 어려워....."
오래 전 인간들과 함께했던 기억을 추억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우릴 경외하는 모습에 곤란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에게 다가와 즐거움과 행복을 나누었던 아이들.
때론 위기를 함께 넘어서고, 때론 역경 속에서 우리조차 감탄한 가능성을 보여준 그 아이들...
분명 즐거웠지만..... 그 추억이 내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구하고 싶은 아이들일까.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새벽별에겐 미안하지만.... 거절해야겠구나."
"""신님?!""""
"다시 생각하시면 안 돼요? 인간들이라고요, 인간들...! 저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아이들이요....!"
"재고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새벽별도, 인간들도 저희에게 많은 의미가 있는 이들 아닙니까....!"
"신님. 무한의 가능성을 가진 그 아이들을.... 그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구할 수 있도록 다시 생각해주십시오....!"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부탁해왔지만, 나는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구나. 하지만.... 내 힘이 부족해진 순간 너희에게 피해가 가거나 혹여 죽기라도 한다면, 나는 슬픔에 버틸 수 없을게다. 나는 내 손안에 있는 것을 지키기도 바쁜 이니까."
[그 결말이 모든 것을 잃는 길이라 해도 말입니까?]
"그러면 그리 두지 않겠지. 내 모든 것을 걸고 지킬테니....."
"""신님!!!"""
낯선 목소리에 내가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아이들은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각자의 무기를 겨누었다.
"네놈, 누구냐? 이곳은 어떻게 들어왔지?"
"보통 놈이 아닌 거 같아. 이곳은 신님과 우리에게만 허락된 권능의 공간이니까."
"그것도 그런데.... 나, 저 놈이 들어온 것조차 눈치 못 챘어....!"
아이들이 잔뜩 긴장하며 시선을 낯선 존재에게 떼지 않았다.
"모두, 무기를 내리거라."
"""신님!?"""
아이들은 경악했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무기를 내리게 하고 그 존재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참으로 기묘한 존재였다. 하얗다기보다는 창백한, 그러면서도 묘하게 검은 빛을 가져 잿빛을 띄었다. 인간에 가까운 형태였음에도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손에는 갈기갈기 찢겨서 억지로 이어붙인 듯 보이는 깃대와 깃발을 들고 있었다.
그와 몇 걸음 안 남은 거리에서, 나는 모든 본질을 간파하는 나의 눈을 일깨워 그 존재를 간파해보기 시작했다.
내 권능이 그 존재에게 닿자, 눈은 그 존재의 본질이 아닌 다른 광경을 비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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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버리고 뒤엎어진 대지. 메마르거나 피로 붉게 물들어버린 바다와 강.
바람과 그를 따르던 아이들은 짓밣이고 찢겨진 꽃들처럼 난자되어, 그 생명이 바람결에 흩어져 버렸다.
구름과 그를 따랐던 아이들은 정해진 모양 없는 구름처럼 뭉게지고 으스러져, 본래의 형태를 잃고 한낯 고기덩이가 되었다.
비와 그를 따른 아이들은 비통에 통곡하다가 몸이 터졌고, 그 피와 육편이 비처럼 쏟아져 땅을 적시고 바다를 피로 물들였다.
나는 눈물과 함께 폭주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침식하려다, 결국 의지에게 패배해 무너져내렸고..... 이윽고,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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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 허어어억.....!"
"""신님!!!"""
"괜.....찮다.....!"
순간 몸을 웅크린 내게 아이들이 눈 앞의 존재에게 달려들었지만, 나는 손을 뻗어 아이들을 제지시켰다.
할 말을 잃었다. 그것은 단순한 환각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이 눈은 진실만은 무조건 꿰뚫어 간파하기에.....
그 광경은 반드시 올 미래란 것을 깨달아 버렸다.
"너는....대체 누구더냐. 내게 이런 걸 보여줄 자라면 웃는 가면 정도 뿐이지만, 그의 영역도 아닌 내 영역에서 이런 악의적인 걸 보여줄 능력은 안 된다. 너는..... 정체가 무엇이더냐?!"
[제가 누군지는 중요하진 않지만.... 언젠가의 당신이 알게 될 이입니다.]
[제 정체보다 중요한 것은.... 가까운 미래에서 당신과, 당신의 아이들이 반드시 죽을 운명라는 것이지요.]
그 존재는 천천히 나와 아이들을 가르키며 말했다.
".....일부러 그런 걸 보여줬다는 건 해결책이라도 주러 온 것이냐?"
[안타깝지만..... 그것은 그 누가 오더라도 바꿔낼 수가 없습니다. 비틀려진 오랜 운명, 그 시간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기에.]
[본디 그들의 역할은 사라져 태초의 밑거름이 되는 것. 당신의 강대한 권능은 그 운명을 막고 비틀어내었죠. 하지만 그럼에도 운명은 당신의 권능을 뚫어냈고 마침내 그 역할을 수행시키려 드는 겁.....]
쾅!!!!!!!
나의 영혼, 나의 무기가 그 존재의 몸을 베고, 찌르고 찢어내었다.
"헛소리를...... 그딴 헛소리를!!!! 그딴 소리를 하는 의중이 뭐냐?! 바꿀 수 없으니 순순히 받아들여라? 그딴 소리를 들을 바엔 그 운명에 저항할 준비를 하는 것이 낫겠군!!"
파르르 떨리는 내 손을 움켜쥐며, 그 존재를 부순 처참한 현장을 향해 소리쳤지만,
[당신께서 대비하더라도 그런 미래라면요?]
"....?"
그 존재는 처음과 똑같은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당신께선 미래를 대비했지만 패배해 모두를 잃고 유폐당해서, 세상을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저들을 그리워하다가 덧없이 사라집니다.]
[어떤 가능성에선 당신은 스스로의 권능과 이름, 존재까지 걸어 희생함으로서 저들을 지켜내지만, 당신이 소멸하자마자 그들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당신의 권능의 파편을 흡수하려 다른 군주들이 그들로부터 모두 학살하고 당신의 권능을 나눠 가지고.... 그들의 죽음은 세계의 흐름을 유지하는 밑거름이 되지요.]
[단언컨데 당신이 희생하더라도, 희생하지 않더라도..... 저들은 죽습니다. 이게 바꿀 수 없는..... 운명입니다.]
차킹!!
"뭐가 운명이라는 거예요!? 그딴 운명, 있는 힘껏 발버둥쳐서 부숴버릴 거예요!"
"신님께 뭘 보여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을 슬프게 만드는 네놈은.... 해악이다....!"
"우리가 죽는다고? 우리는, 살아갈 거다. 저분의 눈에서 눈물 흘리게 하는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할거다....!"
각자의 무기를 완전히 개화시킨 아이들은 그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며 나를 호위하였다.
.....똑
터지기 일보직전이였던 아이들은 그의 모습에 당황해하며 분노가 흩어져 버렸다.
똑..... 또르르륵.....
그 존재는 눈으로 추정되는 부분에서.... 선명할 정도로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당신들을 구하고 싶었어요. 누구보다도 인간들을 있는 힘껏 지켜주고, 있는 힘껏 그들을 사랑했던 당신들을...요....!]
[하지만..... 내 노력은 아무 소용 없었어요. 당신들과 함께 했던 그 시간은.... 내게만 허락됐던 그 시간은.....!]
[그 모든 가능성의 나는, 단 한번도 누리지 못 했으니까요.]
그 존재는 비통을 토해내듯이, 그러다 모든 걸 포기한 것처럼 허망하게 말을 끝냈다.
나와 아이들 중 그 누구도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저렇게나 눈에 띄는 존재와 함께 했었다면 기억하지 못 할리가 없었을텐데....
....또르륵
"비.... 구름.... 너희 왜 울어....?"
"그러는 너야 말로 왜.... 울고 있는 거냐?"
"모르겠어.... 저 말을 듣고 나서부터.... 왜인지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나...."
"정신에 영향을 주는 힘..... 이라기엔 이 감정은 나의 것만 같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 또한 뜨거운 눈물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이들 말따라나 분명 정신적으로 간섭하는 힘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데, 그럼에도 이 눈물은..... 아련함? 그리움? 알 수 없었다. 왜 그의 말에게서 그런 감정이 느껴지는 건지.
[그럼에도.... 제가 당신에게 이 최악의 미래를 알려드린 이유는.... 절망뿐이였던 무한한 가능성 사이에서 찾아낸 차선의 기대로 가는 이 길을... 당신께 맡기려 합니다.]
그 존재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어 신에게 건네주었다.
[내 능력이 부족해서.... 좀 더 나은 미래를 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기대를 멈추지 말기를. 오랜 기대 끝에 보답받았듯이, 그는 당신의 슬픔을 덜어줄 기대할 수 있는 미래로 이끌어 줄테니까요.]
그 존재는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빛무리와 함께 홀연히 눈 앞에서 사라지자, 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괜찮으십니까, 신님?"
"신님, 그 놈이 신님에게 뭘 보여줬길래 그러세요!?"
"방금의 대화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겁니까?"
잠시 숨을 고른 나는 그가 내게 보여준 미래를 아이들에게 천천히 얘기해주기 시작했다.
"참으로.... 가혹하구나. 내 모든 걸 포기해도 이런 미래만이 남는다면 나는...."
"신 님...."
"그 자가 보여준 것이.... 거짓일 가능성은 없는 겁니까?"
"....."
나는 눈을 감은채 침묵했다. 차라리 그 모든 것이 거짓이라고, 내가 한 장난이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눈은.... 동족의 약점과 능력, 본질까지 간파했던 이 눈은 환상도, 거짓도 모조리 간파하는 능력이기에..... 단 한 번도 거짓을 간파하지 못한 적이 없었기에......!
"이런 미래로 너희를 잃는다면..... 살아갈 의미따윈..... 없는데....."
나는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은 어떻게든 날 위로하려 했지만, 나는 점차 절망에 잠식되어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신니임.....!"
"....방법이 없겠나, 비?"
"....모르겠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하는 거야....!"
"....아, 잠깐만! 아까 그 놈 사라지기 전에 뭐 주고가지 않았어?"
"그래...! 놈은 무언가를 주면서 분명히 말했다. 신님의 슬픔을 덜어줄.... 기대라고....!"
"신님, 실례하겠습니다....!"
비는 그의 손을 펼쳐서 그 존재가 쥐여준 무언가를 확인해 보았다.
"이건..... 방울....?"
오래되어 녹슬고 색바랜, 내부 구슬은 이미 소실되었는지 흔들어도 소리조차 나지 않는 작은 방울이였다.
"이게 뭐길래.... 저분의 슬픔을 덜어준다는 거지?"
"으응......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난감하...."
딸랑------
"....다들, 들었어?"
"어, 분명 들렸어....!"
"그런데 어떻게 소리가 나는 거지? 분명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
딸라아아앙-------!
방울이 갑자기 힘찬 소리를 내더니, 그 자리를 환한 빛으로 감싸며 무언가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
상처투성이의 인간이였다.
들고 있는 것는 몇번이나 고쳤는지 금 가있고 땜질하고, 덧댄 흔적도 있었지만, 결국 산산조각 나 있었다.
그 아이는 울고 있었다. 소중한 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서, 자기 자신의 마음조차 제대로 지키기 못해서, 흉할 정도로 울고 있었다.
겉으로도, 속으로도 상처투성이인 그 모습은 참으로 더러웠고 추했으며, 찬란하지 못 했다.
그러나, 산산조각인 그의 곁에 남아있던 인연은, 죽었음에도 남아있던 그들의 마음은 그의 곁의 사람들을 이어주고, 그 곁의 곁에 있던 이들을 이어주어 수많은 인연을 이어줌으로서, 그가 포기하지 않도록 다독여줬다.
그랬기에 아이는 상처투성임에도 일어났다.
산산조각이였던 마음을, 자신의 깃발을 다시 이어붙여 나아갔다.
기대를, 희망을 그 눈에[ 담고서, 인연을 지키기 위해 가장 앞에 나섰다.
눈물을 털어내고 고개를 돌린 그 아이는, 웃어보이며 말했다.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오늘을, 오늘은 만들어 볼게요.]
[지켜봐주세요, 영감님. 나의.... 친구.]
그리곤 그 아이는, 깃발을 높이 들어올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
"....."
다시 현실을 자각한 모두가 멍하니 있다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아이야말로 자신들이 죽더라도 그분의 슬픔을 덜고 다시 그분에게 미소를 찾아줄 존재라고. 신이 앞으로 살아갈 미련이 될 아이라고.
자신들이 죽는 것은 크게 두렵지 않다. 하지만 자신들의 죽음으로써 다정한 그분이 눈물에 넘어지고 스러지는 것이 더 두려웠다. 버려진 자신들에게 손을 내밀어준 다정한 분이니까,
하나의 기물로서 쓰이다 사라지는 것이 아닌 가족처럼 다정히, 약하디 약한 자신들을 오히려 몸바쳐 지키려는 다정하신 분이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그분께서 눈물을 흘리시지 않길 바랬다. 미래를 기대하는 그분의 마음이 여기서 멈추지 않기를 바랬다. 하지만....
"역시.... 다시 죽는 건 좀 무섭네."
"나는.... 죽는 것보다 저분과 더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이.... 슬프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남으면.... 저분이 죽으셔. 그건..... 죽는 것보다 더 싫은걸."
"방법이.... 없는 걸까....?"
"차라리..... 마음이라도 저 분과 함께 한다면 좋겠는데....."
"....잠깐, 바람. 뭐라고?"
"응? 뭐가?"
"마음이라도 함께 한다고 했지?"
"어? 으, 으응."
"....그래. 그거다. 저분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방법이."
비는 신에게 다가가 확고하게 말했다.
"신님, 저희를 죽게 내버려 두십시오."
""비?!""
"왜 그런 말을 하는게냐.....?"
생각치도 못한 비의 발언에 바람과 구름이 깜짝 놀라고, 신은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물어보았다.
"내가 너희를 너무 붙잡은 것이냐? 내 욕심에 너희를 붙잡는 것이 그리 힘들었던 것이냐....?"
"그럴리가요. 당신께 다시 생명을 받은 그 순간부터, 저희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적이 없습니다."
"당신의 사랑과 다정함에 저희의 마음은 언제나 보답받는 것만 같았으니까요."
"그렇기에 저희는 영원히 당신을 따를 것을 맹세하였고, 당신의 행복을 바랐으며, 절망과 후회로 이루어진 눈물에 넘어지시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그랬기에 저는 그 마음이, 저희가 죽어서라도 이어지길 바랍니다. 신님, 아니."
"아버지."
"저희가 죽는 순간 아버지의 침식의 권능으로, 저희의 이 마음을 당신의 마음에 침식시켜주세요."
비가 떠올린 비책, 침식황이라 불리는 자신들의 아버지의 권능으로 자신들의 마음만큼은 남겨두는 방법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경악했다.
"그 말은.... 너희를 희생시켜 내 안에 담으라는 것이잖느냐. 내가 어찌..... 너흴 희생할 수 있겠느냐. 지금을 살아가는 너희를.....!"
"아버지, 그가 말했잖습니까. 대비해도, 스스로를 희생하셔도, 저희는 죽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몸의 죽음을 받아들이되, 마음만은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고 싶습니다."
"....우아아아아! 나도! 나도 함께할게! 조금이라도 신님.... 아니,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덜 슬플 수 있다면 몸은 내주지 뭐!"
"....나도 함께하겠다."
바람과 구름도 결의를 가지고 선언했다.
"신님, 아니. 아버지. 이것은 희생이 아닙니다. 바꿀 수 없는 운명 속에서 당신의 슬픔을 덜어줄, 그 아이를 만날 수 있는 길로 당신을 보내드릴 저희의 최선일 뿐입니다."
"아버지, 저희는 단순히 마음에 담기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저희의 마음은 당신의 마음 속에서 영원히 함께 살아가는 겁니다."
"당신이 기대했고, 기억하는 그 모습 그대로 당신의 다정한 마음 속에서 살아가겠습니다. 그 마음이 흔들리는 때엔, 그 마음을 지키겠습니다."
"이게 저희의 마음, 저희가 바란 모든 거예요. 그러니.... 울지 마세요."
"""아버지."""
아이들의 슬프고도 기뻐하는 듯한 얼굴에, 나는 더욱 울며 동시에, 웃었다.
"하...하하.... 이렇게 슬프고도 기쁜 것은 처음이구나."
"단순히 내 아이가 되어서가 아닌 스스로의 자유 의지를 지녔기에, 생각하는 굳은 영혼을 지녔기에, 다정한 마음을 지닌 너희는..... 정말로 아름답구나."
"그래, 너희는 그야말로.... 필멸하는 자들의 찬란한 빛이구나."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아. 오랜 시간, 나에게 행복을 주어 고맙다. 내가 너희에게 그랬듯, 너희 또한 나에게 넘쳐 흐르는 과분한 사랑을 준 이들임을 잊지 말거라."
"너희의 육신이 재가 되어 마음만이 남아 스스로를 기억하지 못 하더라도, 나는 다정한 너희 모두를 기억하마."
"안녕, 나의 기대를 보답해준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들아."
"풍백. 운사. 우사."
"""안녕히, 우리의 아버지. 환인."""
아주 오랜 옛날, 인간들이 붙여준 이름을 서로 불러주며 우리는 서로를 안았고, 이른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그럼 새벽별에게 힘을 빌려주기 전에.... 나도 의지에게 한 방 먹일 것을 준비해 볼까."
새벽별에게 힘을 빌려준 얼마 후, 역시나 내게 종속되어 있었던 옛 군주와 군단장들이 위대한 의지에게 내 힘이 부족함을 밀고하였다.
그 길로 의지는 나의 세계를 침범해 나를 제압했고, 침식의 권능을 온전히 가지기 위해 옛 군주와 군단장을 제외한 나의 아이들을 모조리 죽였다.
"아아....... 아흐....흐으.... 아아아아-----!!"
알고 있었지만.... 오랜시간 내 외로움을 달래주었던 아이들이 덧없이 사라지는 모습은.... 너무나도 아팠다.
하지만 의지가 침식하기 전 준비해둔 것에 의해 아이들의 마음만큼은..... 내 마음, 그 자체인 눈에 침식되었다.
내게 권능을 앗아간 의지는 권능을 행사하려 했지만, 행사되지 않는 권능에 나를 고문하며 권능에 한 짓을 물어왔다.
"하하.... 그 권능은.... 태초에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주인을 찾아 헤멜게다. 너는.... 결코 이 권능을 가질 수 없을게다. 영원히."
내가 준비한 두번째는.... 내가 아이들과 상의해 결정한 제약에 걸맞는 존재만이, 이 권능의 진정한 주인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하였다.
불멸의 운명을 가져 죽지 못하는 나를 나락의 차원에 유폐시킨 이후, 들리는 바로는 위대한 의지는 이 제약에 분노해 옛 군주와 군단장들을 녹여내어 그들을 침식의 권능에 미쳐버린 광기로 빚어내어 내 의지의 권능에 심어버렸다고 한다.
몇몇 아이들이 제약의 일부을 뚫고 권능을 이었지만, 의지의 힘에 심겨진 광기를 이기지 못하고 폭주하며 죽었다고 전해졌다.
폭주한 이들로 인해 수많은 세상이 피해를 입었고, 그 때문에 침식의 권능을 상징하는 그 눈은 [필멸의 눈]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나는 어떻게 됐나고?
나는.... 오늘도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그 아이들이, 내가 기대한 그 아이를 만나기를.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이다.
"얼른 오거라..... 내가 고독에 스스로를 잊기 전에 말이다."
(하)편으로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