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넌터리 - 죽음에서 돌아 온 소녀 [갯바위 마을 - 7.]
fithr 2023-04-10 1
“…….”
평소와도 다름없는 우울하기 그지없는 시설에서의 생활.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시설의 선생님들도 관심 가지지 않는 나.
다른 애들과 생김새가 달라 애들한테는 배척받고.
선생님들은 그저 날 골칫거리나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여겼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체 왜 잘 못 됐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들을 따라 아무 죄 없는 남자애를 괴롭혔을까….
단지 내가 혼자가 되는 게 싫어서…
내가 고립되는 게 무서워서 그 아이를 희생양으로 세운 나.
‘……정말 싫다.’
자신들과 다르게 생겼다고 배척하는 애들이나…
그런 애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무시하는 선생님들이나…
그런 사람들이라도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란 내가…
‘제일 싫어….’
“야! 쥐색 **!”
“?!”
쥐색 **…… 시설의 애들이 날 부를 때 쓰던 별명.
태어날 때부터 회색 눈이었던 나한테 붙여진 이 별명은 너무나 싫었다.
‘엄마랑 같은 눈인데…….’
누구보다 사랑하는 엄마와 같은 색의 눈동자를 모욕하는 것 같은 별명이 너무나 싫었다.
하지만-
“…….”
“원장선생님이 너 불러.”
원장… 선생님이?
사고 친 것도 없는데… 왜 부르시는 거지?
‘또 누가 내 이름을 팔았나…?’
이전에도 누가 잘못한 일에 내 이름을 나한테 뒤집어씌운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또 그런 일인가 하며 원장실 문을 열자.
“오, 왔구나. 이리와서 앉으렴.”
원장실로 들어가자.
처음으로 날 바라보며 친절한 미소를 짓는 원장선생님이 소파를 가리키며 앉으라 말한다.
“?”
처음 받아보는 원장선생님의 호의에 당혹스럽지만, 왠지 말을 듣지 않으면 뒤에 크게 혼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소파에 앉자.
“바로 이 아이입니다.”
“네가 가연이구나.”
맞은 편에 앉아있는 부부로 보이는 두 남녀.
“안녕, 만나서 반가워.”
나를 보고 맑게 인사를 건네는 여자.
하지만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저 사람이 제정신인 것 같지는 않았다.
‘인… 형…?’
실에 묶여 지금의 행동이 전부 자신의 의지라고 착각하는 꼭두각시 인형 같았다.
그리고-
“흠… 확실히 눈동자가 회색이로군요.”
“예, 신기하죠. 그리고 이 아이의 엄마가 저… 그 어디였냐. 아, 우즈베키스탄인가 하는 나라 출신이라더군요. 미녀가 많다고 알려진 나라 사람의 혼혈이라서 그런지 정말 예쁘장하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무슨 파는 상품을 설명하는 것처럼 평소에는 역겹다거나 얼굴 치우라며 욕을 하던 원장이 어울리지도 않는 칭찬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정작 그 설명을 듣길 바라는 이는 원장이 하는 말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지만, 저 사람도 원장과 똑같이 날 사람으로 보는 게 아닌…
물건으로 보고 있는 듯한 시선의 남자는 비교적 평범한 외모의 여자와 달리 화려한 은발에 연한 옥색의 눈동자를 가진, 외눈 안경이 어울리는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였지만 그 시선만큼은 맨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이 소름이 돋았다.
그 뒤 난 이 두 사람에게 입양되었고, 그 지옥 같은 감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
희망에게 들은 외눈 안경과 은발 머리의 남자.
그 말이 또 무슨 기억을 비집어 낸 건지, 주변 상황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듯한 가연.
“이 언니… 맨탈이 무슨 유리로 만들어진거야? 왜 또 패닉상태인건지….”
“너무 그렇게 말하지 마요, 은하 씨. 사람은… 살면서 한가지 정도 괴로운 기억을 지니고 살아요.”
“…그런거 말 안해도 알아.”
반쯤 패닉 상태의 가연의 손을 루시가 잡고 그런 둘의 앞에 서서 반금련에게 향하는 은하.
“아, 은하에 꼬마까지 둘 다 오랜만이네.”
트럭에서 막 나온 반금련은 은하와 루시를 보고 반겼지만, 가연은 별로 면식이 없어서 그런지 언급하지 않았고, 가연 또한 반금련에 대한 인식은 그저 몇 번 본 낯선 사람이라 자기보다 작은 루시의 뒤에 숨어있었다.
“이쪽은 이제 슬슬 일이 끝나서 섬을 나가려던 참인데, 너희는 어때 볼일은 다 끝냈니?”
“아직이에요. 아주 꼭꼭 숨어있는 모양이더라고요.”
“저도 아직 볼일이 끝나지 않아서. 아직은 섬에 남아있으려고요.”
두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반금련의 눈이 조금 좁혀졌다.
“은하는 그렇다고 치는데… 꼬마 넌 여기에 남아있을 이유가 있는 거야?”
“간호하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요. 그리고 악연인 사람도, 이 섬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어요.”
“하아… 나 같으면 당장에 이런 섬에서 나가려고 했을 텐데.”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는 반금련.
그 후로 은하는 차원종에 대해 잘 아는 의사나 의료 관계자를 데려 와달라 요구했고, 루시는 섬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였다. 두 사람의 요구에 어이없어하던 와중 문득 반금련의 시선에 들어 오는 회색빛 머리카락.
두 사람과 달리 있는 듯 마는 듯 조용히 뒤에 서 있는 그녀를 가리킨다.
“그러면 거기 너는 나랑 같이 섬에서 나가지 않을래?”
“…예? 저, 저요?”
“그래, 너. 두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큰 너 말이야.”
“하… 갑자기 키로 건드시네요.”
“하하… 확실히 가연 언니가 저희보단 크기는 하죠….”
확실히 156인 은하나 125인 루시에 비해 거의 한 15에서 45cm 정도 더 커 보이는 가연.
“저도… 이 섬에 아직은 볼 일이 남아있어요.”
“하? 저 두 사람은 그래도 이유라도 있지만 너는 이 섬에 우연히 떠밀려 온 거잖아. 이런 곳에 더 있을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순간 반금련이 내뱉은 우연이 떠밀려 온 이란 말이 신경 쓰였지만, 이내 그녀가 이 섬에서 하는 일을 생각해보니 이 섬에 들어오려면 그녀의 트럭을 타고 오는 것이 일반적. 그렇지 않으면 바다를 통해 떠밀려 온 표류자일 테니 의문을 금방 식히고 차분히 입을 열었다.
“희망이랑 약속을 했거든요, 건강해져서 같이 섬의 밖에서 산책하기로요. 그리고… 이런 위험한 섬에 저 아이들만 남겨둘 수는 없잖아요.”
“하- 나 같으면 이루기도 힘든 그런 약속 같은 건 하지도 않았을 거야.”
“아하하…. 그, 그래도 반금련 씨…? 도 일이 끝나서 가는 길은 아닌 것 같은데요.”
“……뭐.”
한숨 섞인 대답에 어색하게 웃으면서 가 연이 내뱉는 말에 반금련의 두 눈초리가 가늘어진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이지. 일이 끝나서 가는 길이 아닌 것 같다니.”
“음… 그게 바퀴 자국이 두 개가 겹쳐있잖아요. 이미 한번 지나가 생긴 옅은 자국과 최근에 지나와 아직 선명한 자국 두 개가 겹쳐있어서 그렇게 생각했어요….”
“…….”
솔직히 정밀 분석을 해야 알 수 있는 미묘한 차이를 고작 눈대중으로 파악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래서 가연의 말에 반박하려는 순간.
“그리고 보통 일이 끝나시고 가시는 것치고는 차에 실은 잔해에 비해 물건이 과하게 남아있는 것 같거든요.”
“그야 나도 완전히 악인은 아니니까. 이런 곳에서 애들 등골 뽑아먹긴 하지만 서비스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그래도 한번 나가려다가 다시 갯 바위 마을로 온 건 정상적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데요. 마치 예정에도 없었던 급하게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 생겼는데, 분명 최근에 스카이워크 내 차원종을 처리해 한동안 적어야 할 차원종이 예상외로 너무 많이 남아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이곳으로 오신 것 같은… 데… 요…?”
뒤이어 이어지는 말에 마치 자신이 갯 바위 마을로 돌아온 순간을 보기라도 한 듯 핵심만을 정확히 집어 말하는 가연의 말에 반금련은 황당하다 못해 신기… 아니, 좀 소름이 돋는 느낌이 들었는지 가연을 쳐다보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 표정에 겁을 먹었음에도 기어가는 목소리로 마지막까지 할 말을 내뱉는 가연.
“그… 그리고 한 번 갔다 왔다고 생각한 건… 바퀴 자국도 그렇지만 그것보다는 차의 기름이나 냉각수 계기판의 변동으로 알았… 어요…. 그것 외에도… 방금까지 쓴 것 같이 간이 위상력 억제기가 과열돼 있고… 또… 전력도 처음 봤을 때에 비해 배 이상으로 떨어져 있어서……”
“뭐? 내 차 계기판이랑 위상력 억제기는 또 언제…”
“그, 그냥 우연이 보게 됐어요.”
아니… 우연이 본 것만으로 이전에 본 것과 비교를 할 수 있나.
그리고 그 이전에 본 것도 거의 스쳐 지나가듯이 본 게 전부일 텐데.
‘대체 어떻게 되먹은 기억력이야….’
경이로운 수준의 기억력에 놀라, 말도 나오지 않은 반금련은 한숨을 한번 쉬더니.
“하- 이거 뭐 거의 다 알아챈 것 같지만 그래도 내 입으로 발설하는 편이 더 속 시원하겠네.”
그렇게 말한 반금련은 가연도 은하와 루시와 함께 차원종 정리하는 걸 도와줄 거냐 물었고, 가연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확인한 후에야 입을 열었다.
“이건 비밀인데. 지금 내가 섬 밖으로 나가는 건 의료 관계자를 데려오기 위해서야.”
“그럼 이제 희망이랑 아이들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거야.”
반금련이 무심하게 내뱉는 그 말에 가연은 크게 기뻐하며 반금련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건넨다.
“고맙다는 말은 무슨… 나도 다 돈 받아서 하는 거야.”
“그래도… 반금련 씨 덕분에 희망이와 아라. 그리고 이곳의 아이들은 구원받을 수 있게 됐어요. 그걸 생각하면 아무리 감사를 전해도 모자라요.”
“……하. 알았으니 얼른 차나 빼게 도와줘.”
내심 계속되는 감사의 말에 부끄러운 듯 퉁명스럽게 답하는 반금련.
그런 반금련을 뒤로한 채 가연은 은하와 루시의 뒤를 따라 스카이 워크로 향했다.
“……하. 자기를 죽은 줄 알고 방치한 사람한테 감사라니….”
세상 참… 얄궂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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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신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