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식의 계승자 EP.4 사냥꾼의 밤 13화 죄업, 그리고 광기(3)
Heleneker 2023-02-05 2
24년도 개정판으로 개편되었습니다.
절퍽, 절퍽, 절프럭
"키히히히히히히"
"꺄하하하하하하"
"꺄륵! 키득, 키득"
진흙이 기어다니는 듯한 불쾌한 발소리와, 듣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어지럽히는 웃음을 내는 인간도, 차원종의 모습도 갖추지 못한 이형의 재생체들.
캬락! 갸라라라락----
쿠르마가 불러낸 차원종들과 이형의 육체들이 서로 뒤엉키면서 마치 지옥도를 연상시키는 광경을 보였다.
캬아아아!!! 캬아아악!!!!
투두둑! 촤아아악!!!
차원종들이 우리들을 물어뜯고 찢어버리며 넝마로 만들었지만,
"아하, 아하하하하하하------"
"끼히, 히히히히히히히히------"
우리들은 가소롭다는 듯 웃어대며 차원종들에게 들러붙으며 녹더니, 그대로 스며들면서 차원종들을 집어삼켰다.
꿈틀, 꾸무룰루루룩-----
"아핫, 아하하하하하하!!!"
그와 동시에 차원종을 집어삼킨 우리는 몸을 여러갈래로 나누어 새롭게 육체들을 재생시켰고, 다른 육체들처럼 광기의 웃음을 흘리며 다음 차원종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후읍....!"
콰아아아아아앙!!!
"하아아압!!!"
콰광!!! 콰과과과광!!!
"젠 장... 너무 많아....!"
광기의 이형들이 달려드는 것은 비단 일반 차원종 뿐만이 아니였다. 도주하려했던 쿠르마도, 그를 뒤쫓아왔던 흑지수도 각자 힘을 휘두르며 이형체들을 부리쳤지만,
"잡았~~다! 키히히히히히----"
수가, 너무나도 많았다. 쿠르마가 차원종들을 꽤 많이 불러냈음에도 대부분 잡아먹혔고, 지휘관급으로 보이는 차원종마저 그 수에 압도돼 점차 잡아먹히고 있는 상황이였으니.
"하앗-----!!"
팡--------!!!!!
이형체들에게 붙잡힌 순간, 흑지수는 무기를 바닥에 꽂아넣어 충격파를 일으키며 이형체들을 날려버렸다.
"갸하하하하하!!"
"꺄륵! 꺄하하하핫!!!"
그러나 산산조각 났음에도 그들은 스스로를 순식간에 재생시켰고, 오히려 조각난 파편으로부터 크고 작은 이형체들이 새롭게 재생됨으로써 그 수는 점차 늘어만 갔다.
"이건.... 확실히 위험하군."
불러낸 차원종이 거의 다 잡아먹히고, 이형체들은 처음보다 두 배는 넘게 늘어났다. 분명 지금까지 봐왔던 군주들과 군단장에 비교하면 저것의 능력은 그 끝에도 못 미치는데.... 그런데도....
저들에게서 감도는 광기에 쿠르마는 태초의 어머니에게서나 느꼈었던 공포감을 그들에게 느끼기 시작했다.
불안감과 공포를 부추키는 저들의 목소리에 정신을 갉아먹혀지고 있는 것은 비단 쿠르마만이 아니였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수많은 이형체들을 쓰러트리곤 있었지만, 흑지수도 조금씩 공포에 휩싸이고 있었다.
조금씩 몸 절반을 넘어 뒤덮인 범위가 넓어져가는 갑피로 점점 인간의 모습을 잃어가는 모습에 흑지수는 이를 악문채 대응하며 고민했다.
저녀석, 어떻게 하면 되돌릴 수 있지? 아니, 되돌릴 수는 있는건가?
타의로 한차례 반차원종이 되어봤던 경험이 있는 흑지수는 어떻게든 머리를 굴려봤지만, 지금은 자신을 원래대로 돌려준 동료도, 조언해주었던 서지수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저것은 맞부딪일수록 갑피가 더욱 단단해져갔고, 재생 속도는 상처를 입혔는지 헷갈릴 정도로 빨라졌으며, 점차 더 커져카는 흉악한 힘은 몸을 짓눌러서 자신을 점점 압박해와갔다.
철컥
선택의 여지가 없던 흑지수는 결단을 내리며 거리를 벌리자마자 건 블레이드에 탄환을 새롭게 장전하였다. 저것이 다시 달려들어 습관처럼 팔을 내지르자, 몸을 살짝 비틀어 그대로 팔을 잡은 후,
"발파!!!"
퍼어어어엉!!!!
그들의 머리에 영거리 포격을 가했다.
.....털썩
거대한 폭음과 함께 일어난 불꽃에 직격당해 머리를 잃은 그들은 힘을 잃고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미안해."
이미 인간의 선을 넘은 그를 저지하려 시체가 되어버린 자온을 보며 작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난 그 녀석들처럼 널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
흑지수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걸 통감하면서 그의 시체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꺄, 꺄하하하하하하하하------!!!!!"
갑자기 들려온 박수소리와 웃음 소리에 흑지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전히 주위엔 쿠르마를 삼키려 달려드는 이형체들과 자신을 지켜보며 깔깔 웃고있는 이형체들이 있었다.
분명 본체는 활동을 정지했는데.... 정작 이형체들은 멈추지도, 줄어들지도 않고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었다.
"분명 본체를 죽였는데.... 이것들은 어떻게 아직도 돌아다니는 거지?"
"꺄핫!!" "꺄르르륵!!" "파핫!!" "키긱,키킥----"
흑지수가 의문을 품건 말건, 그것들은 재밌다는 것처럼 박수를 치며, 자기들끼리 마구 웃고, 또 웃어댔다.
....꽈아악
"...읏!?"
갑자기 팔목을 움켜주는 듯한 통증에 팔을 내려다보자,
"뭐, 뭐야!!?"
".....왜? 이상해? 어느게? 우리가 살아있는게? 키득키득키득키득."
머리를 잃어 힘없이 늘어져 있었던 몸이 웃음 소리를 내며 머리를 재생시키고 있었다. 뼈, 근육, 힘줄과 신경 하나하나가 실처럼 솟아나 휘감기고 얽혀지더니 재생을 끝마치는 모습에, 멀리서 보고 있었던 쿠르마가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살려면 관심이 마녀를 닮은 자에게 집중됐을 때 물러서야겠군. 다시 기회를 노려봐야겠어."
"어딜 도망가니? 키득키득."
쿠르마의 중얼거림을 들은 우리는 늘어지듯 그를 붙들었지만,
콰아앙!!!!!!
붙잡힌 쿠르마는 팔에 힘껏 내리쳐 우리를 떨쳐내면서 먼지구름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먼지구름을 걷었지만, 이미 쿠르마는 자취를 감춰버린 뒤였다.
"뱀들은 머리 굴리는 걸 잘 하는 놈들이 많았지. 그래봤자 탐욕에 눈 먼 [불꽃]이 원하는 걸 취하기 전까지 여기 있을테니 숨바꼭질은 나중에 즐겨보고....."
"그동안은 나랑 놀~자. 마녀의 가짜~♪"
쿠르마와 차원종을 상대하고 있던 이형체들까지 모조리 광소를 흘리며 흑지수를 향해 조금씩 다가가자, 이미 자신의 선 안에서 해결할 수 없음을 계산한 흑지수는 빠져나갈 활로를 뚫으려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푸북!!
"으음~~~?"
그 순간, 저 너머에서 날아와 박힌 칼들에 이형체들이 고개를 돌렸다.
"흑지수 언니, 이게 다 뭐예요?"
"괜찮아, 흑지수?"
때마침 근처에 있었던 은하와 미래가 딱 봐도 보통 상황이 아님을 느끼고 견제 공격을 날린 것이였지만,
"이 바보들이....! 먼저 가랬더니 왜 아직도 여기 있어? 위험하니까 얼른 피해!!"
흑지수로썬 오히려 상당히 곤란해져 버렸다. 전력으로 혼자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같이 나가야할 사람이 둘이나 늘어버렸으니까.
"근데 저기 있는 사람.... 자온 아니야?"
"자온인데..... 뭔가 이상한데? 어이, 자온. 이봐!"
그 사이에 섞인 자온의 모습을 알아본 두 사람이 그를 불렀지만,
"그래. 네 놈들까지 죽이면 이 나약한 의지는 완전히 꺾이겠지?"
"물러서!!!!"
이미 그가 아닌 광기의 패배자들은 은하와 미래의 목숨을 빼앗으러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자온의 변화를 눈치 못챈 두사람을 향해 흑지수가 소리치며 지원하려 했지만, 이형체에게 발목을 잡혀 달려가지 못했고, 그들의 검은 손이 두 사람의 심장을 꿰뚫.....
후웅-----
....지 못했다. 심장 대신 잡힌 그림자를 보며 그것이 잠시 갸웃거리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 모습을 드러낸 두 사람을 찾았다.
"왜 그러는 거야? 자온, 우리야..."
그림자를 이용한 위치 교환을 쓴 미래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자온! 어이, 자온!!"
명백하게 이상한 그의 모습. 공항에서의 모습과 겹쳐보인 은하가 번뜩 뭔가 기억해냈다.
[그러고 보니 꼬마 언니. 쟤가 그 망할 벌레랑 싸우고 있을 때 부른 이름 뭐예요?]
[저도 몰라서 오세린 씨께 물어보니까 자온 씨의 본명이라고 했어요. 아직 이해는 잘 안 되지만.... 자온 씨가 자신을 잃지 않는, 마지막 끈이라고 하셨어요.]
루시에게서 들었던 자온이 정신을 바로 되찾는 단어를 바로 크게 소리쳐 불렀다.
".....야, 해랑!!!"
하지만 아무 반응도 없자,
"해랑! 해랑! 야, 비해랑!!!"
"이젠 소용 없어. 이미 이 아이의 의지는 우리의 의지에 거의 삼켜졌단다."
자온의 반응 대신 광기의 패배자들을 비웃으며 답변하곤 그 둘을 향해서도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너무 절망하지 말거라. 너희를 우리에 손에 넣으면, 우리의 의지를 물들여줄테니."
"자아. 하나가 되자."
"미래, 지금....!"
"이리 와, 그림자...!!"
푹! 슈륵------
그들에게 덮쳐지기 직전, 그들의 움직임을 읽은 은하의 신호에, 미래가 다시 한 번 그림자와 자신들의 위치를 뒤바꿔 그들의 손을 피해냈다.
위치를 바꾸는 동시에 팔에 칼을 꽂아넣은 기지에 우리는 칼을 빼내며 웃었다.
"그렇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꽤나 지쳐보이는데 말이지. 키득, 키득."
우리의 말대로, 미래의 안색은 상당히 창백해져 있었다. 자기 혼자만 해도 많은 힘을 소모하는 위치 교환을 다른 사람을 동반해서 한 탓에 두 번만에 심하게 지친 기색을 보였다.
"미안해, 은하... 나 말고 다른 사람을 그림자로 바꾼 건 해본 적이 없어서 힘이...."
"바보가. 무리하긴.....!!"
다. 은하는 가볍게 혀를 차며, 미래의 앞으로 나선다.
"뭐야, 술래잡기는 벌써 끝이야? 하긴. 아직 이 시점의 넌 그 수준이 아니였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그들은 두 사람을 바라보더니,
"그럼, 이제 하나가 될 시간이야, 이히히히히히-----"
"안 돼!!!"
흑지수가 그들의 포위를 뚫고 달려갔지만, 닿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고, 은하의 눈으로 쫓지 못한 속도로 다가간 그들의 검은 손이 두 사람의 목숨을 노렸다.
******
바위에 짓눌린 것처럼, 심해 밑바닥에 가라앉은 것처럼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저들을 막고 싶은데..... 움직일 수가 없었다.
멈추라고, 그만하라고 아무리 내 의지를 전해도 내 몸은 그들의 의지만을 반영했다.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눈을 통해 보이는 상황을 확인하는 것 뿐.
내 발버둥조차 의미가 없으면.... 나는 도대체 뭐인거야.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거냐고....?
점차 마음이 가라앉는 와중에, 시야에 은하와 미래가 보였다.
뭐하는 짓이야....! 내 몸으로 뭐하는 짓이야! 멈춰, 멈추라고!
내 동료들을 해하려는 그들의 행동에 막으려 발버둥 쳤지만, 내 몸은 내 의지를 조금도 반영하질 않았다.
왜, 왜 안 움직이는 건데!? 내 몸이잖아! 내 눈 앞에서 --한 사람이 죽는 것도 싫은데, 그걸 내 손으로 죽인다고!?
움직여, 움직이라고!! 제발, 제발 늦기 전에!!!
피를 토해내는 심정으로 몸을 되찾으려 힘을 쏟았다.
간절하게, 더욱 간절하게 바라고 또 바랬다.
******
[....을 전부 보....게요. 나의.... 이.... 더.]
******
으득...... 부드득.......
"실.....?"
바닥에서 솟아난 무수한 붉은 실들이, 우리의 몸을 완벽하게 붙들어 놓았다. 꼴에 자기 동료라고 저항하는 건가?
"키... 키긱. 아직 반항할 정도의 힘은 남아 있던 모양이네. 그래 봤자야..... 그래 봤......"
나오던 목소리가 갑자기 막혔다. 대신에, 우리가 아닌 자의 분노 어린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닥......쳐, 닥...치..라고!!! 내 친구들한테..... 손 대지 마!!!!!"
언제 다시 빼앗길지 모를 몸에서 다급하게 팔만 실을 풀어내곤,
푹!!!!
순식간에 심장을 뚫어, 그 안에서 항상 느껴지던 무언가를 쥐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광기의 이형체들이 형태가 무너지며 소멸되었다.
"자온..... 어이, 자온!!!"
"어째서.... 어째서.....!"
잠시 자신들의 눈앞을 이해하지 못했던 은하와 미래가, 정신을 차리며 쓰러져가는 그를 붙잡았다.
"아직.... 안 죽었으니까, 둘 다 소리지르지 마..... 머리 아파..... 어차피 심장 뚫린 정도론 안 죽으니까.... 걱정마...."
"이 멍청이가! 그게 할 말이야!?"
"하....하핫. 그것도 그렇네요."
심장을 뚫은 손을 유지한 채,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서둘....러야 해....요. 지금은 내가 다시 제어권을 잡아....서 억제할 수 있지만.... 언제 다시 뺐길지 몰라...요..으극... 으으으.....!"
지금 내가 잡고 있는 [무언가] 덕분에 버티고 있지만... 그들의 의지가 반영된 재생 능력이 심장이 계속 재생시키려고 하며 내 몸을 다시 빼앗으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조금.... 이라도 이 상태를 억제하려면... 위상력을 억제할 만한게... 필요해....요...!"
"칫..... 일단 거점으로 가자. 위상력 억제 수갑 한 두개 정도 쓰던게 있으니까!"
흑지수가 그를 들쳐매고 거점을 향해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다. 거점에 도착하고 내 손목에 무언가 채워지는 걸 보고나서야, 그제야 눈을 감고 잠에 들었다.
*******
[다 잡아먹은 줄 알았는데 버틸 힘이 있었구나? 키득키득]
닥 쳐.... 본색을 드러낼 줄은 알았지만, 뭐? 강제하지 않는다고? 너희에게 반대했는데도, 네 놈들은 날 조종했잖아!
[그게 조종한 걸로 보였구나. 키키키키. 그건 우리의 의지를 내비친 것 뿐이야. 네가 정말로 강하게 반발한다면, 우린 밀려날 수 밖에 없지]
너희에게 계속 반대 했어! 계속, 계속, 계속해서 반대했는데도 너희 마음대로 움직였잖아!
[네 의지가, 우리의 의지보다 약하다는 증거야]
[그 분의 의지는 무한한 강함을 지니고 있지만, 그에 비하면 너는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지. 그렇기에 그보다 강한 우리의 의지가 신체에 계속 반영되는 거지]
[무언가를 위한다는 의지? 우리의 증오와 탐욕이 섞인 의지보다 상위에 있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집어 삼켜질, 아무것도 아닌 의미 없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가 너의 의지를 집어삼켰으니, 네 작은 바램으로 무엇을 이루고, 무엇이 될 수 있겠느냐]
[그럴바엔 그 나약한 의지를 포기하거라, 모든 것은 무의미할지니]
[없던 것이 되어, 우리가 되어라]
악의 담긴 그들의 의지가 다시 내 의지를 누르자, 내 저항은 속절없이 무력화되어 가라앉아 버렸다.
******
"안녕~? 그분에게 선택된 방관자. 이번에도 네가 선택됐구나?"
"방관자? 그게 무슨 말이지?"
"....."
흑지수는 그들의 이해 못할 말에 물어봤지만, 오세린과 그들은 대답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뭐 그건 나중에 다시 물어보고..... 저거 보이지?"
흑지수가 그들의 손목에 걸린 위상력 억제 수갑과 그들을 가둬둔 감옥을 가리켰다.
쩌적..... 쩌저저..... 쩍.....
쩌.....어어어어....... 파칵!
위상력을 억제하는 재질로 만들어진 수갑과 특수 제작된 감옥에 금이가고, 부서지고 있었다.
"저 녀석을 구하고 싶은 건 알겠지만.... 선택해야 해. 위상력 억제 수갑과 감옥까지 부수는 저 위험한 놈을 더이상 두고 볼 수는 없어. 차라리 지금이라도 내가 가진 불사살해의 힘으로 죽이는 게...."
"흑지수 씨, 잠시 둘이서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위험하다는 말은 헛으로 들은 거야!? 더이상 저 놈은...."
"방법이 있어요. 불가능하다면.... 그땐 바로 선택할게요."
"하.... 알았어. 대신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나는 바로 저녀석을 처리할거야."
달칵
흑지수를 내보낸 방문이 닫히자,
"그래서,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고 싶은 걸까? 우리 방관자께선? 키키킥."
그들은 오세린을 여전히 알 수 없는 호칭으로 부르며 비웃듯이 물어왔다.
"혹시 이 녀석을 돌려달라는 뻔한 건 아니지? 킥킥킥."
"....그렇다면요?"
"오, 여전히 한결같이 순수한 길만 보는 어리석은 방관자야. 기억 나지 않니? [어느 세상]에서도 이 정도까지 떨어졌을 땐, 이미 늦었다는 걸."
"방관자야, 그리고 기억나지 않니? 이런 걸로 우리를 묶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재생과 갑주는 힘이 아니야. 썩어도, 나약해져도, 떨어질 때까지 떨어져도 가장 강했던 존재. 그분의 의지의 현현이다. 힘을 억제하는 이런 수갑 따위론 조금 억제하는 게 다인 임시방편에 불과하지. 키키키키키."
쨍강!
손목에 묶인 수갑을 철그럭 거리며 웃자, 수갑이 그대로 또 하나 박살나 버렸다.
쩌적, 쩌저저저적-----!
그와 동시에 위상력 억제 감옥에도 균열이 더욱 크게 일어나며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거기까지 갔더라도, 당신들이 의지를 내려놓으면 돌려주실 수 있을 텐데요."
"맞는 말이지만 싫은데? 이미 우리에게 완전히 기운 균형을 굳이 왜?"
"싫으시다면.... 억지로 돌려받는 수 밖에요."
"너 따위가? 네년이 이제와서 뭘 할 수 있는데? 균형은 이미 무너졌고, 그 나약한 의지는 거의 우리에게 잠식이 끝나가는 이 순간에, 방관자에 불과한 네깟 것이 무얼 할 수 있냔 말이냐? 키득키득키득키득."
"물론.... 저 혼자의 힘으론 무리인걸 알죠."
오세린은 감옥 문을 열고 그들 앞에 앉아 양 뺨에 손을 얹더니,
"[이번 세상]의 뷜란트 씨가 제게 남겨준, 마음이 아니였다면 말이죠."
그대로 그들과 눈을 마주쳤다.
"무슨...... 끼...끼아아아아아아아아악악?!??!!??"
눈을 마주친 그것은 괴기스러울 정도로 온몸을 비틀어대며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다.
"뭐냐, 뭐냐, 뭐야?? 네 년, 어떻게 네 년이 [그 눈]을?! 우리의 의지가 밀려난다???!!!??! 대체, 대체 뭘 어떻게 한거냐아아아아!!!??"
그것의 절규와 비명에도, 이 상황을 예견한 것처럼 오세린은 그저 차분히 앉아있었다.
"당신들도 아실텐데요. 이 눈은 의지보다 더 큰, 뷜란트 씨의 [기대]로 만들어진, 그의 마음이라는 걸요."
자온이 가진 [간파]의 힘이 담긴 X자의 눈. 그러나 그것이 상하좌우로 뻗어 팔각의 별의 담은 푸른 눈으로 그들을 차분히 바라보며 말했다.
"아악!! 끄야야아악!! 기억 못 할리가!!! [이번 세상]의 [그 놈]도 그 가증스런 눈으로 방해했으니까!!!"
자신들의 광기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제압했던 한 [대행자]를 떠올린 그들은 고통스러워하며 소리질렀다.
"하지만 방관자여!! 네 년은 [그 놈]이 아니다!! [대행자]가 아닌 [방관자]인 네년이 그걸 사용한 것엔 반드시 대가가 있을 터!!!"
"지금을 넘겼다고 자만치 마라!! 우리의 의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시, 다시 우리의 의지로 이 나약한 의지를 삼켜주마!!!!"
"다시 삼킨 그 땐!!! 네 년을 먼저 우리 손에 넣고, 갈갈히 찢고!! 베고!! 찔러서!!! 차라리 죽여달라고 빌게 해주겠다!!!!!"
"우리가 세상을 집어삼켜 멸망하는 순간까지!!! 영원한 고통을 선사해 주겠다!!!!!!!"
한참을 악을 쓰던 그것은 지친듯 푹하며 쓰러졌다.
"ㄱ.... 감찰, 관...... 어떻게..? 뭘, 대체 뭘 한 거예요......?"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칠흑 속에서 반짝인 아주 작은 빛조각이 닿자마자 의식이 부상했으니까.
"자온 씨. 잠시만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오세린은 대답없이 그와 같은 눈을 빛내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죄업, 그리고 광기 END
+그만을 위한, 조그만 외전
아직 추위가 조금 덜 가신 어느날의 오후. 잠시 자리를 비운 오세린을 제외한 모두가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어라? 자온 형. 오늘이 생일이셨나요?"
문서를 작성하던 민수현이 무언가를 확인하곤 옆에 앉아있던 내게 물었다.
"응? ......아. 그랬지."
"뭐야, 자온. 오늘 생일이였어?"
"그렇다고 하네? 평소엔 영감이 알려주고 축해해줬으니까 잠깐 잊었지."
형님을 잃은 그 날 이후, 수련을 시작한 이후부턴 생일에 일절 관심을 끊었었다. 축하받는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기술의 감을 잡는 게 중요했었으니까.
"그래봤자 그냥 하루 중 하나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보내자고."
"그래도 생일인데 너무 무미건조 한데요. 그러지 말고 케이크라도 사서 축하해요!"
"안 그래도 된다니까...."
"그래도 자온... 이젠 가족이나 마찬가지니까, 가족이 태어난 날은 축하해주고 싶어."
"그래. 평범한 하루 중에 특별해질 수 있는 날이 있다면, 힘껏 축해해 줘야지. 그게 태어난 날이면 특히 더."
"그리고 케이크란거 맛있더라고. 다른 맛도 먹어보고 싶고. 아저씨! 민수현! 얼른 사러가자!"
"어, 어? 나 보고서 작성해야되서 바쁜데?"
"조금 늦으라 하지. 얼른 가자!"
"같이 가자, 자온. 모두가 널 축하해 주려고 하니, 먹고 싶은 것을 골라보도록 하자."
"같이가요! 여기에 유명한 맛집이 있거든요!"
"케이크도 케이크지만 생일빵은 어때요?"
"생일빵이 뭔지 모르겠지만 하지마!!"
모두의 손에 이끌린 나는 불평하다가 조용히 미소지었다.
이젠 뷜란트와 둘이서 했던 축하를,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축하로 행복해하며.
아가, 생일 축하한다.
이번 에피를 마무리 하다보니 설정한 자온의 생일이였네요. 어느새 2년도 넘은 작품인데도 여전히 구독해주시는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