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넌터리 - 죽음에서 돌아 온 소녀 [갯바위 마을 - 3.]

fithr 2023-01-09 0

키기기기-

 

키긱- 키기기-

 

전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섬 혹시 차원 압력기가 없는 건가?”

 

있다고 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수의 차원종이 활보하는 것을 보고 움츠러들지만, 이내 섬의 아이들을 섬에서 빼내기 위해서라 생각하며 용기를 내 다짐한 가연이 슬슬 움직이려 하자.

 

[잠깐만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어서 마을로 돌아가세요!]

비둘기로 쫓아오셨네요혹시 절 걱정하신 건가야? 그럴 필요는 없는데저보다는 당신의 몸을 더 신경 써 줬으면 좋겠어요.”

[지금 그런 말이나 할 때가 아니에요! 빨리 마을로 돌아가지 않으면 차원종들이!]

, 그게 말이죠

 

키에에-!!

키에에엑-!

 

순간 앞에서 들려오는 거친 울음소리.

 

그 소리에 희망이 비둘기를 돌리자.

 

다수의 데스 워커들이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들었다.

 

이미 늦은 것 같아요.”

[, 맙소사이걸 어떻게지금은 루시 양이나 은하 씨도 자리에 없는데.]

 

순간의 상황에 페닉에 빠진 듯 횡설수설하는 희망을 뒤로 그녀가 살며시 미소 짓는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사람이 죽을 수도 있-]

 

촤악-!?

 

희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두 손에 들린 두 자루의 검이 교차하며 눈앞의 차원종을 베어 넘긴다.

 

뿜어지는 차원종의 혈액을 그대로 맞은 그녀는 얼굴을 포함한 전신에 피를 뒤집어쓰게 되었다.

 

으으피 냄새.”

[, 어떻게]

 

순간 지독한 피 냄새 때문에 뒤에서 보고 있던 희망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딱히 숨기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단지, 저도 위상력을 갖게 된 지 얼마 안 돼서말하기가 좀 그랬거든요. 하지만 이런 저라도 차원종은 상대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거기서 기다려 줘요.”

[그럼가연 씨도 은하 씨나 루시 양과 같은]

 

? 아까도 그렇고그 두 사람을 왜 언급하는 거지?

 

알 수 없는 의문이 생긴 가연은 두 사람을 떠올렸다.

 

확실히 위상 능력자들의 특징인 일반적인 사람과는 다른 동공 색과 두발 색이긴 하지만 루시의 경우에는 자신의 모국에서는 오히려 흔한 색상일 테고, 그나마 이해가 된다면 은하라는 소녀 한 명뿐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얘기 한번 해보고 싶다.’

 

좀 무섭긴 하지만.

 

잠시 방심하는 사이를 노리고 촉수나 칼을 휘두르지만, 그녀가 인식하고 있지 않을 사각에서의 공격에 반응하는 흐릿한 형체의 여우가 그녀를 지키려는 듯 그녀에게 향하는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의식도 하지 않은 사이에 일어난 일에 깜짝 놀란 반응을 보인 그녀는 어느 순간 자신의 옆으로 다가와 몸을 비비며 애교를 부리는 여우를 한번 보고는 비둘기에서 자신을 보고 있을 희망에게 한마디 전한다.

 

미안해요, 이제부턴 방금처럼 대화는 못 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따가 만나서 마저 얘기해요.”

 

후웅-

 

두 자루의 검을 휘둘러 묻어있던 피를 털어낸 그녀.

 

그리고 그녀의 옆에서 떨어진 피를 향해 코를 대는 여우.

 

그런데애는 뭐지?’

 

분명히 보이기는 하는데몸을 통과해서 그 뒤에 있는 배경이 다 보인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뭔가 이질감이 드는 여우가 자신을 향해 울음소리를 낸다.

 

, 이제 싸우자고?’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지만, 왠지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은 여우가 그녀의 앞에 서선 털을 부풀리고는 이빨을 드러내 녀석들을 위협하는 것 같은 모습에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그래. 같이 가자.”

 

-

 

그녀의 말에 답하듯 여우가 울자, 곧바로 차원종에게 달려들어 놈들에게 이빨을 박아넣는다.

 

여우가 차원종을 공격해 놈들의 움직임에 혼란이 생기자 그녀가 그 혼란 속으로 파고들어선 두 자루의 검을 휘두른다.

 

그녀의 검은 빠르지는 않았지만, 그저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와 같이 놈들의 공격을 피하면서 녀석들을 공격하는 그녀의 검에 녀석 중 몇몇은 쓰러졌고, 살아남은 자들 일부도 여우의 공격에 숨이 끊겼다.

 

뭐지.’

 

처음과 좀 전까지는 그저 보기만 해도 두렵던 차원종이.

 

지금은-

 

무섭지 않아아니,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야.

 

칼을 휘둘러 차원종을 쓰러뜨릴 때마다 머릿속이 맑아지는 듯한 기분.

 

맑은 머릿속에는 두려움과 공포는 존재하지 않았고, 오히려 냉정과 이성만이 남은 머리는 순간의 상황을 보다 침착하게 파악해 상대의 다음 움직임을 읽고 자신의 페이스에 상대가 말려들게 하여 상대를 쓰러뜨려 나갔다.

 

오른쪽 상단 베기.’

 

후웅-

 

왼쪽 상단 촉수 세 가닥, 오른쪽 측면부 상하로 하나씩 사선 베기.’

 

모든 움직임을 냉정히 읽고, 그 움직임에 대응하여 적을 상대하는 그녀의 움직임은 시간이 지날수록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변하였다.

 

군더더기투성이던 몸놀림이 점차 다듬어져 공격을 흘리면서 반격까지 넣는 그 모습이 대단하면서도 어딘가 낯설게 다가왔다. 이전까지만 해도 전투라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민간인이 전투를 시작한 지 몇 번 만에 숙련자의 움직임에 가까워지고 있다.

 

마치 뇌와 신경을 전투에 익숙한 프로의 것으로 바꾸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

 

전투라고 하기엔 뭔가 일방적인 면모가 있던 전투 후 그녀가 한동안 초점 없이 멍한 눈으로 허공을 보고 있자.

 

[, 말도 안 돼. 은하 씨나 루시 양이 처리하던 양과 같은 양을…….]

 

비둘기를 통해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희망은 은하, 루시보다 한참 약하리라 판단했던 그녀가 두 사람과 비교해도 그렇게 밀리지 않는 수준의 실력을 지녔다는 사실에 경악하였다.

 

그리고 비둘기에서 들려온 희망의 목소리에 한동안 멍하니 있던 가연이 정신을 차리고 위를 바라보았다.

 

, 지켜보고 있었어요? 어땠어요. 이 정도면 그렇게까지 걱정할 정도는 아니죠.”

[…….]

 

살며시 지어진 미소를 보이며 말하는 그녀.

 

그런 그녀의 모습을 잠시 말없이 보던 희망이 입을 열었다.

 

[……일단은 마을로 돌아오세요. 이야기는 그다음에 하죠.]

2024-10-24 23:37:0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