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넌터리 - 죽음에서 돌아 온 소녀 [갯바위 마을 - 2.]
fithr 2023-01-04 0
“가… 연?”
“응. 성이 가(賈)고, 이름이 연(緣)이라고 해.”
가씨 성이 그렇게 흔하지 않고 외자인 것도 있어서 다들 성은 따로 있고 이름이 가연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엄연히 이름은 연(緣)이라 부모님은 연아라고 불렀었다.
오랜만에 이름을 말하며 떠오른 부모님과의 추억에 가슴 한편이 뭉클해지던 순간.
“연. 아주 예쁜 이름이네요.”
“……응. 그렇지.”
타인의 입으로 오랜만에 듣는 나 자신의 이름.
부모님이 내게 남겨준, 내가 두 분의 딸이라는 증거.
자신의 이름을 듣고 예쁜 이름이라며 환하게 웃는 루시의 모습에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너무 오랜만에 듣는 이름에 밀려오는 기쁨이 주최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루시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살며시 루시를 품에 안아 그 작은 등을 살며시 토닥여주었다.
“으엣.”
“아… 미, 미안해… 갑자기 만져서 싫었지….”
갑작스러운 기연의 행동에 놀란 듯 세 된 소리를 내며 토끼 눈을 한 채 당혹스러워하자.
가연은 튕기듯 루시를 감싼 팔을 풀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반응에 루시는 고개를 저으면서 강하게 부정했다.
“아, 아니에요! 그냥… 조금 놀라서. 그리고 연이 언니가 안아주니까. 프랑스에 계신 엄마가 생각나서요….”
“엄마… 라고….”
루시의 말에 순간 본인도 어머니의 생각이 난 가연은 루시를 보면서 어린 시절 홀로 외로웠던 자신과 루시가 겹쳐 보였고, 그런 루시를 조심스럽게 안아주었다.
“아….”
“…내가 루시의 엄마는 아니지만, 이렇게 안아주는 것 정도는 언제든지 해줄 수 있어.”
부끄러운 듯 살짝 붉어진 그녀의 양 볼과 다정한 말에 루시는 환하게 웃으며 상냥하다며 말하더니 그녀에게 새로운 별명을 붙여준다.
“그럼 전 은하 씨한테 가봐야 해서요. 이만 실례할게요. 엄마 같은 연이 언니.”
“그래, 조심해서… 자, 잠깐 방금 뭐라고-”
별생각 없이 인사를 건네려던 순간.
다른 사람이 들으면 누구나 오해할법한 별명을 붙여 준 루시를 불러 세우려 했지만, 햄스터 마냥 뽈뽈거리며 이미 멀찍이 떨어진 루시를 보고는 어쩔 수 없다며 반금련과 거래로 약을 구하고 있는 아라에게 다가가 아까 아라가 말한 희망이라는 아이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희망 오빠는 지금 몸이 많이 안 좋아져서 우리도 모르는 곳에서 지내고 있어. 그래서 오빠랑 얘기하려면 이걸 사용해야 해.”
“응… 그런데, 이거 제대로 작동은 되는 거 맞지?”
희망을 보려면 이걸 써야 한다며 아라가 보여준 것은 예전 어린 시절에 우연히 본 적이 있던 비둘기라는 명칭의 통신 장비. 예전 차원 전쟁 초에나 사용하던 물건이라 아마 지금쯤이면 박물관 같은 데에서나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물건.
‘그러고 보니 따로 관리만 잘한다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던데…. 그 말이 사실이었구나.’
신기해하는 가연의 옆에서 알려주겠다며 조작법을 설명하는 아라.
그런 아라의 모습이 왠지 귀엽고 즐거워 보여 왠지 흐뭇해지는 기분이었다.
“설명 고마워, 아라는 친절하구나.”
옅은 미소를 지으며 몸을 숙여 아라와 시선을 마주한 채 머리를 정성스레 쓰다듬어 준 가연은 아아에게 배운대로 비둘기를 조작하였다.
“이렇게 하면… 됐다.”
치직- 하는 연결음이 잠시 들리더니 곧 이어 들려오는 기운 없는 목소리.
치직- 하는 연결음이 잠시 들리더니 곧 이어 들려오는 기운 없는 목소리.
[…누구시죠? 은하 씨나 루나 양. 두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아라가 말하던 그분이신가요?]
“예? 뭐… 아마 저 맞을 거예요….”
뭐라 설명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자신일 거라 답하자.
뒤늦게 비치는 화면을 통해 보이는 백발의 머리에 창백한 낯빛의 자기 또래의 남자아이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존대는 됐다는 희망의 말에 가연은 존대가 더 편하다며 이대로 말을 이었다, 가연은 아이들을 구해줘서 고맙다는 감사 인사를 받고 희망에겐 그를 만나고 싶은 이유를 설명하였다.
[그렇군요… 가연 씨는 우연히 이곳까지 표류해 들어온 거로군요.]
“네. 아라가 말하기로는 밀수업자를 통해서 섬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데 그와 거래할 때 이곳의 아이들은 뭘 가지고 거래하는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네. 그 정도는 알려드릴게요.]
선뜻 알려주겠다는 희망의 말에 가연은 한 가지 더 물어보는데.
“그런데… 희망 씨. 여러분은 대체 어떻게 이런 섬에서 살아가는 거예요. 그리고 왜 이런 섬을 나가지 않는… 아니, 나가지 못하게 된 건가요.”
이 섬을 돌아다니면서 가지게 된 의문.
어째서 이런 위험한 섬에 어린아이들만이 사는 건지.
살아간다면 왜 이런 위험한 곳에서 떠나지 않는 건지.
아니면… 혹시 떠날 수가 없는 게 아닌 떠나지 못하는 건지.
그런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희망에게 묻자.
[그건… 죄송합니다. 그건 말해줄 수 없어요.]
“…왜 말해 줄 수 없는 건지, 제가 알 수 있을까요?”
[당신이… 위험해질 테니까요.]
대답하는 동안 화면의 너머로도 확인되는 심하게 떨리는 시선.
그런 시선을 가연은 잘 안다.
오랫동안 수도 없이 짓고 또 지어봤으니까.
그렇기에 그녀는 희망이 진정할 때까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기다렸다.
[밖으로 나가신다면 밀수업자에게 부탁하시면 될 거예요. 물론… 그 대가로 당신한테 막대한 돈을 뜯어 갈지도 모르지만… 그건 저희 쪽에서 대신 감당하겠습니다. 저희 아이들을 구해준 당신을 이런 곳에서 죽게 하진 않겠습니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 주세요.]
연락을 끊으려는 듯, 할 말만을 재빠르게 하는 희망.
그리고 그런 희망이 연락을 끊기 전 그녀가 뱉는 말은 희망의 행동을 멈추게 했다.
“그 밀수업자분이라면 좀 전에 한번 만났어요,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절 보고 무슨 귀신 보듯이 여기시더라고요…. 그리고 이 섬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저도 어느 정도는 알고는 있어요.”
[그럼 한시라도 빨리…!!]
“하지만.”
차분하고 온화하게 말을 하는 가연의 모습에 희망은 감정이 격해지기라도 한 건지 목소리를 높이려던 걸 끊는 가연.
“제가 나가면 여러분은 어떡해.”
무의식적으로도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몸을 날려 아이를 구한 그녀이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 위험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섬의 아이들을 버리고 혼자 도망간다는 선택은 애초에 없었다.
“여러분만 이런 위험한 곳에 놔두고 갈 수는 없어요.”
자신의 부모가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했던 것과 같이 그녀 또한 이 아이들을 구하고 싶었다.
“그러니 저와 같이 가요. 돈은… 자신은 없지만, 어떻게든 마련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죠?”
[……위험하다는 걸 아시면서 그렇게 말하시면 제가 할 말이 없네요.]
이미 각오를 굳힌 듯한 그 모습에 희망도 체념한 듯 고개를 저었고.
[하지만 당신은 나가야 해요. 이곳은… 쿨럭! 쿨럭, 쿨럭!!]
비둘기를 통해 들리는 세찬 기침 소리와 화면 너머로 보이는 피를 토해내는 희망의 모습.
“희, 희망 씨! 지금 어디예요! 지금 당장 제가-!!”
[괘, 괜찮아요. 늘 상 있는 일이라서…]
“뭐가 괜찮다는 거예요! 왜 이런 곳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건데요! 당장 밖으로 나가면 살 수도 있는데!”
[…얘기할 수 없어요. 당신은 은인이기 이전에 외부인이니까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알려 줄 수 없다는 희망의 말에 뭔가 서운함이 밀려왔다.
“그래도… 어디에 있는 지라도 알려주세요. 상태가 괜찮아질 때까지 옆에서 간호할 수 있게 해줘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와 함부로 접촉했다간, 당신도 병에 전염될 가능성이 있어서 위험해요.]
“그거라면… 걱정 안 해도 돼요. 제 몸은… 조금 튼튼하거든요.”
아니,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도 죽지 않았으니까….
조금이 아니라 너무 튼튼하다고 해야 하나?
[가연 씨한테는 이미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그러니 제 간호까지 부탁할 수는 없어요.]
다시 그녀가 한 제안을 거부하자, 그녀도 오기가 생겼는지 알았다며 손을 푼다.
“그럼 제가 당신을 찾아갈게요. 그 정도는 괜찮죠?”
[네? 자, 잠깐…]
“마침 희망 씨한테 들은 대로라면 차원종의 잔해로 밀수업자와 거래하니, 그게 많으면 밀수업자가 태울 수 있는 사람의 수도 늘어나겠죠. 그러니 잔해의 수집을 겸해서 갈 테니. 거기서 얌전히 기다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