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식의 계승자 EP.4 사냥꾼의 밤 7화 재해의 군주 [침식황]
Heleneker 2022-12-15 0
24년도 개정판으로 수정되었습니다.
"쿠르마.... 불꽃왕..... 나는 둘 다 들어본 적 없군."
쿠르마와 있었던 일을 들은 빅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는 애쉬와 호프만에게 태어났었으니까. 별다른 지식을 주입받지 않은 이상, 쿠르마를 모르는 것도 당연하지."
"너는 알고 있나?"
"알잖아? 나는 알파퀸 서지수의... 가짜라는 거."
흑지수는 조금 씁쓸히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전부 기억할 수는 없어도, 서지수의 기억 일부를 갖고는 있어. 조금 전까지는 쿠르마라는 녀석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녀석을 직접 마주하니 생각나더군."
"전쟁 때, 서지수는 녀석과 싸웠던 적이 있어. 내 기억에 의하면, 서지수는 녀석의 목에 블레이드를 꽂아 넣어서 숨통을 끊었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버젓이 살아있군. 내 얼굴을 보면서 서지수를 제대로 기억하기도 했으니, 다른 개체인 것 같지는 않고."
"서지수 누님이 살려뒀을리는 없고.... 실수 하신 걸까요?"
"그런 모양이야. 서지수도 실수를 하는군."
"서지수 누님도 사람이라는 거겠죠. 일단은 그건 제쳐두더라도 일단 쿠르마를 먼저 찾는게 우선인데.... 찾을 방법 없을까요?"
"방법이야 있지. 개, 쿠르마의 냄새 찾았어?"
"...미안하군.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다."
빅터가 꼬리를 축 늘어트리며 힘 없이 대답했다.
"뭐야, 개... 너, 냄새는 잘 맡는 녀석이었잖아."
"나도 여러가지 일이 있었으니까. 지난번 사건에서 위상력을 잃어버린 탓에, 평범한 개보다 약간 나은 수준이 되었지."
"후후. 쓸모가 없어졌네."
"후후, 그러게나 말이다. 부디 버리지 말아다오."
"하지만 너도 너답지 않은 짓을 했군. 쿠르마는 외부차원에서 넘어온 직후였다. 태연해보여도, 그 몸은 상당히 무거웠을 터."
"그 때 너라면 녀석을 요격해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녀석의 도주를 방관했지?"
"멍청한 소리 말라고. 그 때 싸웠으면 나 빼고 다 죽었어. 이 녀석까지는 살았을지 몰라도 이녀석들, 연계가 아주 엉망진창이라 죽었으니만 못 했을걸?"
흑지수 씨가 슬쩍 우리 모두를 흘겨보았다.
"개개인의 전투력은 뛰어나다고 보는데, 연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동료가 만든 찬스도 못 살리고.... 이놈이고 저놈이고 전부 독불장군이야."
"연계 작전보다는 전원이 흩어져서 따로 싸우는게 나을지도."
"괜히 흩어졌다가 각개격파 당할 것이 걱정된다만."
"일단 서지수와 녀석이 싸웠던 기억도 있고... 녀석이 차원압력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지금이라면, 어떻게든 처치할 수 있을 거라고 봐."
"쿠르마도 그 자리에서 우리와 싸우고 싶진 않았을 거야. 예의랍시고 그 자리를 이탈했지만, 머릿속으로는 승산을 계산하고 있었겠지. 차원압력으로 약해진 몸으로 나와 싸우기는 싫었을걸?"
"과연, 녀석이 후퇴한 것은 예의가 아니라 회복을 꾀하기 위해서로군."
"맞아. 보기드문 지략파 차원종이거든. 힘도 상당히 강한 편이라서 골치가 아프지. 어쨌거나 용 군단에서 제법 지위가 있는 몸이랬으니까, 그런만큼 녀석이 어딘가에 숨어서 힘을 회복하게 둘 수는 없어."
"각자 흩어져서 녀석의 흔적을 찾아보자. 통신이 되지 않으니까, 정해진 시간에는 돌아와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기로 하고."
"녀석을 발견하더라도 교전에 들어가지는 마. 싸우는 것은 나한테 맡겨주고."
"내 코만 멀쩡했다면 수월하게 흘러갔을 일인데.... 안타깝군."
"별 수 없잖아. 위상력을 잃었으니. 안 되는 걸 너무 신경쓰지 말자고."
모두가 각자 흩어져 쿠르마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
모두가 흩어진 것을 확인한 자온은 아주 약하게 느껴지는 무언가를 쫓아 조용히 성의 한 구석으로 이동했다.
******
".....나와. 일부러 나만 불러댔잖아."
"허허. 잘 찾아왔구려. 어서오시게나, 침식황의 눈을 가진 인간."
걸음을 멈추고 한쪽 외각을 향해 말하자, 그림자 속에서 쿠르마가 가볍게 웃으며 걸어나왔다.
"마음에도 없는 환영하지 말고 본론이나 말해."
"허허. 성미가 급하구려. 알겠소. 알려드리리라."
경계하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것처럼, 쿠르마가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럼....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대는 침식황이라는 존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소?"
"....애초에 침식황이란 명칭을 처음 들었어. 영감은 자신을 무장왕이라고 소개했었으니까."
영감은 평소에도 자기 얘기는 별로 하지 않았었다. 어쩌다 얘기를 해도 이내 울 것만 같은 눈을 하곤 웃어버리며 이야길 끝내곤 했으니.
"허허, 무장왕이라.... 자신을 격하시켜서 자신을 유지하고 있었구려. 좋소. 이제 그 존재에 대한 걸 알려주겠소."
가볍게 숨을 가다듬은 쿠르마는 이야기를 시작햇다.
"...아주 먼 과거, 용의 어머니인 태초의 어머니조차 갓 생탄하셨던 아주 먼 과거, 침식황이 존재했다고 하오."
"태초의 어머니같이 높은 격을 갖춘 존재들은 크던 작던 창조에 관한 권능을 가지고 계셨지만 침식황, 그 자만은 창조에 대한 권능을 전혀 갖지 못 한 채로 존재했다고 하지."
"고독을 견디지 못한 그는 오랜 시간 크고 작은 군주들과 세계가 탄생하고 멸망하는 아주 오랜 시간을 잠에 들었다고 하지. 그러던 어느 날, 잠시 눈을 떴던 그의 앞에 멸망하기 직전인 한 세계와 생명을 발견했다고 하오."
"그것들에 연민한 침식황이 힘을 불어넣자, 세계와 생명들이 순식간에 모든 생명을 되찾고 그의 힘을 가진 권속으로서 탄생했다고 하지."
".....?!"
영감에게 그 정도의 회복 능력이 있었다고?
"미리 말하지만 그것은 회복에 관련된 권능이 아니오."
[침식의 권능]
"일정량의 힘을 불어넣으면 세상 무엇이든 간에 간섭하고 지배하는 침식황의 권능이지. 그것이 이미 죽기 직전이라도, 이미 죽었다 하더라도 그 운명을 간섭하여 뒤틀어 버리는 말도 안되는 권능이지."
"자신의 권능을 처음으로 제대로 이해한 그는 멸망한 세계와 생명을 모조리 자신의 휘하로 만들었지. 그렇게 확장시킨 그 세계들을 유지하기 위해 침식황은...."
"감히 시간을 침식하여 자신이 다른 존재에게 죽는 모든 가능성을 소멸시켜서 불멸성을 가져버렸소."
"시간을 침식해서... 불멸성을 가졌다고....?"
"말했잖소. 무엇이든 간에 간섭하고 지배하는 권능. 그랬기에 그 말도 안 되는 권능을 견제한 다른 군주들은 그를 서둘러 유폐시키려 시도했지만,"
"오히려 그는 그 군주들을 힘으로 집어삼키고 침식하여, 자신의 권속들로 만들어버렸다지."
"군주들마저 침식하는 압도적인 권능의 주인. 누군가는 그를 [재해의 군주]라 칭하였고, 또 누군가는 그를 [침식황]이라 칭하며 그를 힘을 견제하기 보다는 동맹을 맺기로 하셨지."
"영감이 그렇게나 강한 존재였다고?"
생각 이상인 영감의 정체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되려 의문이 생겼다. 그 과거가 얘기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나쁜 기억이였던 걸까? 왜 그 사실을 숨겼지? 그리고....
".....다른 군주들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라면, 지금의 영감은 어떻게 유폐당한거지?"
수많은 군주들이 달려들어도 실패한 것을 누가, 어떻게 해낸 것인가?
"물론 쉽지 않았소. 하지만 침식황이 누군가에게 잠시 힘을 빌려주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신 나의 왕께서..... "
이 질문을 예상한 건지 쿠르마는 순순히 답하는 와중에,
쿵---------
<키득키키득키쿡키꺄르득꺄하하킥쿡키꺄르득꺄하킥하킥키꺄키득키쿡쿡키꺄르득꺄하하킥킥하르득꺄하하킥킥하꺄하하>
"컥.....크윽.......!!!"
불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머리가 터져나가는 것보다 더한 통증이 머리에 몰려오기 시작했다.
희망이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서피드와 싸우던 때.
흑지수와 처음 마주했을 때.
정신적으로 불안정 했을 때마다 들려왔던 일그러지고 불분명한.... 불쾌한 환청이 아주 선명하게, 멈추지 않고 들리기 시작했다.
귀를 막아도 소용없었다. 속으로 아무리 다른 생각으로 환청을 덮어씌우려고 해도, 되려 덮어씌여졌다.
"허허. 이제야 효과가 있는 모양이구려."
내 모습을 본 쿠르마는 마치 예상했다 것처럼 말을 내뱉었다.
"이.... 뱀 새 끼가.... 나한테 뭔... 짓을.... 한거야....!?"
"별거 없었소. 본인은 그저 침식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을뿐."
쿠르마가 그 육중한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왜 그 눈이 필멸의 눈이라 불리게 되었는지 아시오?"
"나의 왕의 주인, 위대한 의지께서 침식황을 잇는 자들을 근절하기 위해 그의 힘에 광기를 심어놓으셨지. 광기는 침식황에 대해 자세히 알수록 증폭되고 집요해지지."
"침식황을 잇는 자들은 힘을 쓸수록 그 힘에 심겨진 광기에 점점 미쳐가 폭주하고, 주변에 방대한 피해를 입히며 자신을 파멸시켜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
"자신의 눈이 새겨진 자는 반드시 파멸하여 비참히 사라지게 만드는 침식황의 눈. 그렇게 그 눈은 필멸의 눈이라 불리게 되었소."
"크윽..... 커, 커걱....!!"
쿠르마가 말을 거듭할 수록 머리 속에서 속삭이며 비웃는 목소리가 더욱 선명하고 크게 들렸고, 머리가 깨지고 찢겨나갈 듯한 통증은 더욱 크게 몰려왔다.
"컥..... 쿨럭!! 쿨럭!!"
덮친격으로 가슴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통증이 몰려왔다.
무거운 무언가에 짓눌리고, 동시에 한기를 잔뜩 머금은 철바늘 같은 무언가가 심폐를 찌르고 헤집는 감각. 단순히 짓눌리는 것을 넘어, 심폐가 으스러지고 뜯겨나가며 녹아내리는 감각이 가슴을 헤집기 시작했다.
푸확!
목 너머에서 역류한 무언가가 입 밖으로 흘러 넘쳤다. 이건 희망이와 같은.....!
피가 잔뜩 뒤섞인, 진득한 녹색 진액은 멈추지 않는 기침과 함께 목 너머에서 계속 역류했다.
<키히히히힛. 아프잖아. 그냥 포기해>
<그래. 우리가 알아서 해줄게. 아무 생각하지마>
<누구도 알아주지 못하는 노력 따위, 포기하면 네가 바라는 걸 해줄테니까>
<그러니까 몸을 주고, 쉬렴. 키키키키키키킥>
당장이라도 고통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데, 점점 더 선명하게 들려오는 환청이 머리 속을 더 어지럽지만.....!
"크.... 흐읍...!!"
퍽---!!
위상력을 한껏 쥐어짜서 머리를 후갈기자, 그제야 고통도 환청도 아주 조금이나마 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카..... 하아.... 이래서 영감이 뱀 새 끼는 바로 털어버리라고.... 한거였어... 와라, 두번째 창.....!"
단단해 보이는 쿠르마의 갑피를 뚫기 위해 관통의 창을 구현하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 와라, 두번째 창. 와라, 두번째 창. 두번째 창, 두번째 창!!"
아무리 힘을 불어넣어도 무기가 평소처럼 구현되지 않았다.
"와라, 칼날!! 와라, 첫번째 검!! 와라, 와라, 와라.....!!! 커, 쿨럭! 쿨럭!"
이상함에 다른 무기들의 구현을 시도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구현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효과가 확실하군. 광기에 침식 당하기 휘둘리기 시작하면 침식황의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게 되는 건 몰랐나보오?"
"이 뱀 새 끼가 알고서.....!!"
"당연한 것 아니오? 적의 약점을 명확히 알고 있는데 그것을 공략하지 않고서야 어찌 병법가라 할 수 있겠소?"
"참으로 재미있소. 그 기계왕과 대등히 겨뤄다들어 상당히 긴장했는데 이토록 쉽게 무너뜨릴수 있다니."
"크으...... 푸헉.....!!"
머리에 가한 통증으로 버텨봤지만, 가슴의 통증과 머리 속을 헤집는 환청을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 고꾸라져 버렸다.
"....생각해보니 침식황의 눈을 가진 인간은 아직 나의 왕께서도 수집하지 못 하신 물건이셨지. 무력할 때 사로잡아 진상해야겠구려."
쿵...... 쿵.......!!
쓰러진 나를 향해 쿠르마가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일어... 나야 하는...데....."
몸에 힘을 주었지만 손가락 하나 미동하지 않는다.
숨을 들이마시려고 해도 목 너머에서 넘쳐흐르는 피 섞인 진액이 호흡을 방해한다.
위상력을 짜내려고 해도 머리 속을 헤집는 환청이 그나마도 남은 집중을 흐트려 놓았다.
이대로.... 끝나는 건가.....
"이 망할 거북이 녀석! 어디 있는 거냐!"
끝인가 싶은 순간, 근처에서 흑지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자 쿠르마의 몸이 움찔거렸다.
"이런, 대량학살의 마녀를 닮은 자인가? 너무 시간을 끌었나 보군. 어쩔 수 없지. 이번에는 보내 드리리다."
쿵...... 쿵......
"오, 그렇지."
물러나던 쿠르마가 잠시 발길을 멈추더니 말했다.
"그대들의 손에는 불꽃왕께서 바라시는 수집품이 있소이다. 가서 그대의 동료들에게 전해 주시오. 그대들이 가진 기계왕의 일부를 나에게 넘기라고. 어짜피 그것은 그대들에게 후한거리만 물건이니, 조용히 건넨다면, 그대들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하지."
"다음에도 유익한 대화를 나눴으면 하구려. 또 만나지, 꼴 사납게 광기에 침식당하는.... 침식황을 계승하는 자여."
쿠르마가 어둠 속에 녹아들며 그곳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흑지수가 도착했다.
"**, 도망치는 건 빠르군.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이봐, 괜찮아?"
쓰러진 자온의 모습을 확인한 흑지수가 그의 어깨를 붙들고 흔들었지만, 그는 초록색 진액과 붉은 피가 뒤섞인 이물을 내뱉을 뿐,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
<이젠 누구도 막지 못해. 네가 아무리 애써보고 발버둥쳐봤자야>
<안간힘을 쓰던 소모해온 몸둥아리도,>
<닳을대로 닳아 찢어져버린 마음도,>
<긍지를, 목적을 잃은 채 방황하는 의지도,>
<망가질대로 망가져 부서져가는 영혼조차도>
<우리에게 먹히고 침식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질 일만 남았으니까>
<그리고 그 자리엔.... 모든 세상을 침식했던, 가장 위대했던 우리의 가능성이 다시 부활할거다>
<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
쿠르마와 있었던 일을 들은 빅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는 애쉬와 호프만에게 태어났었으니까. 별다른 지식을 주입받지 않은 이상, 쿠르마를 모르는 것도 당연하지."
"너는 알고 있나?"
"알잖아? 나는 알파퀸 서지수의... 가짜라는 거."
흑지수는 조금 씁쓸히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전부 기억할 수는 없어도, 서지수의 기억 일부를 갖고는 있어. 조금 전까지는 쿠르마라는 녀석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녀석을 직접 마주하니 생각나더군."
"전쟁 때, 서지수는 녀석과 싸웠던 적이 있어. 내 기억에 의하면, 서지수는 녀석의 목에 블레이드를 꽂아 넣어서 숨통을 끊었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버젓이 살아있군. 내 얼굴을 보면서 서지수를 제대로 기억하기도 했으니, 다른 개체인 것 같지는 않고."
"서지수 누님이 살려뒀을리는 없고.... 실수 하신 걸까요?"
"그런 모양이야. 서지수도 실수를 하는군."
"서지수 누님도 사람이라는 거겠죠. 일단은 그건 제쳐두더라도 일단 쿠르마를 먼저 찾는게 우선인데.... 찾을 방법 없을까요?"
"방법이야 있지. 개, 쿠르마의 냄새 찾았어?"
"...미안하군.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다."
빅터가 꼬리를 축 늘어트리며 힘 없이 대답했다.
"뭐야, 개... 너, 냄새는 잘 맡는 녀석이었잖아."
"나도 여러가지 일이 있었으니까. 지난번 사건에서 위상력을 잃어버린 탓에, 평범한 개보다 약간 나은 수준이 되었지."
"후후. 쓸모가 없어졌네."
"후후, 그러게나 말이다. 부디 버리지 말아다오."
"하지만 너도 너답지 않은 짓을 했군. 쿠르마는 외부차원에서 넘어온 직후였다. 태연해보여도, 그 몸은 상당히 무거웠을 터."
"그 때 너라면 녀석을 요격해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녀석의 도주를 방관했지?"
"멍청한 소리 말라고. 그 때 싸웠으면 나 빼고 다 죽었어. 이 녀석까지는 살았을지 몰라도 이녀석들, 연계가 아주 엉망진창이라 죽었으니만 못 했을걸?"
흑지수 씨가 슬쩍 우리 모두를 흘겨보았다.
"개개인의 전투력은 뛰어나다고 보는데, 연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동료가 만든 찬스도 못 살리고.... 이놈이고 저놈이고 전부 독불장군이야."
"연계 작전보다는 전원이 흩어져서 따로 싸우는게 나을지도."
"괜히 흩어졌다가 각개격파 당할 것이 걱정된다만."
"일단 서지수와 녀석이 싸웠던 기억도 있고... 녀석이 차원압력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지금이라면, 어떻게든 처치할 수 있을 거라고 봐."
"쿠르마도 그 자리에서 우리와 싸우고 싶진 않았을 거야. 예의랍시고 그 자리를 이탈했지만, 머릿속으로는 승산을 계산하고 있었겠지. 차원압력으로 약해진 몸으로 나와 싸우기는 싫었을걸?"
"과연, 녀석이 후퇴한 것은 예의가 아니라 회복을 꾀하기 위해서로군."
"맞아. 보기드문 지략파 차원종이거든. 힘도 상당히 강한 편이라서 골치가 아프지. 어쨌거나 용 군단에서 제법 지위가 있는 몸이랬으니까, 그런만큼 녀석이 어딘가에 숨어서 힘을 회복하게 둘 수는 없어."
"각자 흩어져서 녀석의 흔적을 찾아보자. 통신이 되지 않으니까, 정해진 시간에는 돌아와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기로 하고."
"녀석을 발견하더라도 교전에 들어가지는 마. 싸우는 것은 나한테 맡겨주고."
"내 코만 멀쩡했다면 수월하게 흘러갔을 일인데.... 안타깝군."
"별 수 없잖아. 위상력을 잃었으니. 안 되는 걸 너무 신경쓰지 말자고."
모두가 각자 흩어져 쿠르마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
모두가 흩어진 것을 확인한 자온은 아주 약하게 느껴지는 무언가를 쫓아 조용히 성의 한 구석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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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일부러 나만 불러댔잖아."
"허허. 잘 찾아왔구려. 어서오시게나, 침식황의 눈을 가진 인간."
걸음을 멈추고 한쪽 외각을 향해 말하자, 그림자 속에서 쿠르마가 가볍게 웃으며 걸어나왔다.
"마음에도 없는 환영하지 말고 본론이나 말해."
"허허. 성미가 급하구려. 알겠소. 알려드리리라."
경계하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것처럼, 쿠르마가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럼....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대는 침식황이라는 존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소?"
"....애초에 침식황이란 명칭을 처음 들었어. 영감은 자신을 무장왕이라고 소개했었으니까."
영감은 평소에도 자기 얘기는 별로 하지 않았었다. 어쩌다 얘기를 해도 이내 울 것만 같은 눈을 하곤 웃어버리며 이야길 끝내곤 했으니.
"허허, 무장왕이라.... 자신을 격하시켜서 자신을 유지하고 있었구려. 좋소. 이제 그 존재에 대한 걸 알려주겠소."
가볍게 숨을 가다듬은 쿠르마는 이야기를 시작햇다.
"...아주 먼 과거, 용의 어머니인 태초의 어머니조차 갓 생탄하셨던 아주 먼 과거, 침식황이 존재했다고 하오."
"태초의 어머니같이 높은 격을 갖춘 존재들은 크던 작던 창조에 관한 권능을 가지고 계셨지만 침식황, 그 자만은 창조에 대한 권능을 전혀 갖지 못 한 채로 존재했다고 하지."
"고독을 견디지 못한 그는 오랜 시간 크고 작은 군주들과 세계가 탄생하고 멸망하는 아주 오랜 시간을 잠에 들었다고 하지. 그러던 어느 날, 잠시 눈을 떴던 그의 앞에 멸망하기 직전인 한 세계와 생명을 발견했다고 하오."
"그것들에 연민한 침식황이 힘을 불어넣자, 세계와 생명들이 순식간에 모든 생명을 되찾고 그의 힘을 가진 권속으로서 탄생했다고 하지."
".....?!"
영감에게 그 정도의 회복 능력이 있었다고?
"미리 말하지만 그것은 회복에 관련된 권능이 아니오."
[침식의 권능]
"일정량의 힘을 불어넣으면 세상 무엇이든 간에 간섭하고 지배하는 침식황의 권능이지. 그것이 이미 죽기 직전이라도, 이미 죽었다 하더라도 그 운명을 간섭하여 뒤틀어 버리는 말도 안되는 권능이지."
"자신의 권능을 처음으로 제대로 이해한 그는 멸망한 세계와 생명을 모조리 자신의 휘하로 만들었지. 그렇게 확장시킨 그 세계들을 유지하기 위해 침식황은...."
"감히 시간을 침식하여 자신이 다른 존재에게 죽는 모든 가능성을 소멸시켜서 불멸성을 가져버렸소."
"시간을 침식해서... 불멸성을 가졌다고....?"
"말했잖소. 무엇이든 간에 간섭하고 지배하는 권능. 그랬기에 그 말도 안 되는 권능을 견제한 다른 군주들은 그를 서둘러 유폐시키려 시도했지만,"
"오히려 그는 그 군주들을 힘으로 집어삼키고 침식하여, 자신의 권속들로 만들어버렸다지."
"군주들마저 침식하는 압도적인 권능의 주인. 누군가는 그를 [재해의 군주]라 칭하였고, 또 누군가는 그를 [침식황]이라 칭하며 그를 힘을 견제하기 보다는 동맹을 맺기로 하셨지."
"영감이 그렇게나 강한 존재였다고?"
생각 이상인 영감의 정체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되려 의문이 생겼다. 그 과거가 얘기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나쁜 기억이였던 걸까? 왜 그 사실을 숨겼지? 그리고....
".....다른 군주들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라면, 지금의 영감은 어떻게 유폐당한거지?"
수많은 군주들이 달려들어도 실패한 것을 누가, 어떻게 해낸 것인가?
"물론 쉽지 않았소. 하지만 침식황이 누군가에게 잠시 힘을 빌려주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신 나의 왕께서..... "
이 질문을 예상한 건지 쿠르마는 순순히 답하는 와중에,
쿵---------
<키득키키득키쿡키꺄르득꺄하하킥쿡키꺄르득꺄하킥하킥키꺄키득키쿡쿡키꺄르득꺄하하킥킥하르득꺄하하킥킥하꺄하하>
"컥.....크윽.......!!!"
불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머리가 터져나가는 것보다 더한 통증이 머리에 몰려오기 시작했다.
희망이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서피드와 싸우던 때.
흑지수와 처음 마주했을 때.
정신적으로 불안정 했을 때마다 들려왔던 일그러지고 불분명한.... 불쾌한 환청이 아주 선명하게, 멈추지 않고 들리기 시작했다.
귀를 막아도 소용없었다. 속으로 아무리 다른 생각으로 환청을 덮어씌우려고 해도, 되려 덮어씌여졌다.
"허허. 이제야 효과가 있는 모양이구려."
내 모습을 본 쿠르마는 마치 예상했다 것처럼 말을 내뱉었다.
"이.... 뱀 새 끼가.... 나한테 뭔... 짓을.... 한거야....!?"
"별거 없었소. 본인은 그저 침식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을뿐."
쿠르마가 그 육중한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왜 그 눈이 필멸의 눈이라 불리게 되었는지 아시오?"
"나의 왕의 주인, 위대한 의지께서 침식황을 잇는 자들을 근절하기 위해 그의 힘에 광기를 심어놓으셨지. 광기는 침식황에 대해 자세히 알수록 증폭되고 집요해지지."
"침식황을 잇는 자들은 힘을 쓸수록 그 힘에 심겨진 광기에 점점 미쳐가 폭주하고, 주변에 방대한 피해를 입히며 자신을 파멸시켜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
"자신의 눈이 새겨진 자는 반드시 파멸하여 비참히 사라지게 만드는 침식황의 눈. 그렇게 그 눈은 필멸의 눈이라 불리게 되었소."
"크윽..... 커, 커걱....!!"
쿠르마가 말을 거듭할 수록 머리 속에서 속삭이며 비웃는 목소리가 더욱 선명하고 크게 들렸고, 머리가 깨지고 찢겨나갈 듯한 통증은 더욱 크게 몰려왔다.
"컥..... 쿨럭!! 쿨럭!!"
덮친격으로 가슴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통증이 몰려왔다.
무거운 무언가에 짓눌리고, 동시에 한기를 잔뜩 머금은 철바늘 같은 무언가가 심폐를 찌르고 헤집는 감각. 단순히 짓눌리는 것을 넘어, 심폐가 으스러지고 뜯겨나가며 녹아내리는 감각이 가슴을 헤집기 시작했다.
푸확!
목 너머에서 역류한 무언가가 입 밖으로 흘러 넘쳤다. 이건 희망이와 같은.....!
피가 잔뜩 뒤섞인, 진득한 녹색 진액은 멈추지 않는 기침과 함께 목 너머에서 계속 역류했다.
<키히히히힛. 아프잖아. 그냥 포기해>
<그래. 우리가 알아서 해줄게. 아무 생각하지마>
<누구도 알아주지 못하는 노력 따위, 포기하면 네가 바라는 걸 해줄테니까>
<그러니까 몸을 주고, 쉬렴. 키키키키키키킥>
당장이라도 고통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데, 점점 더 선명하게 들려오는 환청이 머리 속을 더 어지럽지만.....!
"크.... 흐읍...!!"
퍽---!!
위상력을 한껏 쥐어짜서 머리를 후갈기자, 그제야 고통도 환청도 아주 조금이나마 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카..... 하아.... 이래서 영감이 뱀 새 끼는 바로 털어버리라고.... 한거였어... 와라, 두번째 창.....!"
단단해 보이는 쿠르마의 갑피를 뚫기 위해 관통의 창을 구현하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 와라, 두번째 창. 와라, 두번째 창. 두번째 창, 두번째 창!!"
아무리 힘을 불어넣어도 무기가 평소처럼 구현되지 않았다.
"와라, 칼날!! 와라, 첫번째 검!! 와라, 와라, 와라.....!!! 커, 쿨럭! 쿨럭!"
이상함에 다른 무기들의 구현을 시도했지만, 그 어느 것 하나 구현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효과가 확실하군. 광기에 침식 당하기 휘둘리기 시작하면 침식황의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게 되는 건 몰랐나보오?"
"이 뱀 새 끼가 알고서.....!!"
"당연한 것 아니오? 적의 약점을 명확히 알고 있는데 그것을 공략하지 않고서야 어찌 병법가라 할 수 있겠소?"
"참으로 재미있소. 그 기계왕과 대등히 겨뤄다들어 상당히 긴장했는데 이토록 쉽게 무너뜨릴수 있다니."
"크으...... 푸헉.....!!"
머리에 가한 통증으로 버텨봤지만, 가슴의 통증과 머리 속을 헤집는 환청을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 고꾸라져 버렸다.
"....생각해보니 침식황의 눈을 가진 인간은 아직 나의 왕께서도 수집하지 못 하신 물건이셨지. 무력할 때 사로잡아 진상해야겠구려."
쿵...... 쿵.......!!
쓰러진 나를 향해 쿠르마가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일어... 나야 하는...데....."
몸에 힘을 주었지만 손가락 하나 미동하지 않는다.
숨을 들이마시려고 해도 목 너머에서 넘쳐흐르는 피 섞인 진액이 호흡을 방해한다.
위상력을 짜내려고 해도 머리 속을 헤집는 환청이 그나마도 남은 집중을 흐트려 놓았다.
이대로.... 끝나는 건가.....
"이 망할 거북이 녀석! 어디 있는 거냐!"
끝인가 싶은 순간, 근처에서 흑지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자 쿠르마의 몸이 움찔거렸다.
"이런, 대량학살의 마녀를 닮은 자인가? 너무 시간을 끌었나 보군. 어쩔 수 없지. 이번에는 보내 드리리다."
쿵...... 쿵......
"오, 그렇지."
물러나던 쿠르마가 잠시 발길을 멈추더니 말했다.
"그대들의 손에는 불꽃왕께서 바라시는 수집품이 있소이다. 가서 그대의 동료들에게 전해 주시오. 그대들이 가진 기계왕의 일부를 나에게 넘기라고. 어짜피 그것은 그대들에게 후한거리만 물건이니, 조용히 건넨다면, 그대들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을 거라고 약속하지."
"다음에도 유익한 대화를 나눴으면 하구려. 또 만나지, 꼴 사납게 광기에 침식당하는.... 침식황을 계승하는 자여."
쿠르마가 어둠 속에 녹아들며 그곳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흑지수가 도착했다.
"**, 도망치는 건 빠르군.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이봐, 괜찮아?"
쓰러진 자온의 모습을 확인한 흑지수가 그의 어깨를 붙들고 흔들었지만, 그는 초록색 진액과 붉은 피가 뒤섞인 이물을 내뱉을 뿐, 어떤 대답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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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누구도 막지 못해. 네가 아무리 애써보고 발버둥쳐봤자야>
<안간힘을 쓰던 소모해온 몸둥아리도,>
<닳을대로 닳아 찢어져버린 마음도,>
<긍지를, 목적을 잃은 채 방황하는 의지도,>
<망가질대로 망가져 부서져가는 영혼조차도>
<우리에게 먹히고 침식되어, 이 세상에서 사라질 일만 남았으니까>
<그리고 그 자리엔.... 모든 세상을 침식했던, 가장 위대했던 우리의 가능성이 다시 부활할거다>
<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키득>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