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넌터리 - 죽음에서 돌아 온 소녀 [갯바위 마을.]
fithr 2022-12-12 0
뭐지…… 누구지….
누가… 나를 부르는 거지….
누군가의 재잘거리는 목소리.
아침에 재잘거리는 새 소리 같은 재잘거림에 소녀의 미간이 살짝 움찔거렸다.
“어, 이 누나 방금 움직였던 것 같은데.”
“뭐? 잘 못 본 거 아니야?”
계속 들려오는 아이들의 목소리.
실험실에선 거의 들어 본 적 없는 생소한 목소리기에 다시 한번 움찔거리는 소녀.
“어, 방금 또 움직였어.”
“이번엔 나도 봤어.”
“나도!”
“나도!”
계속해서 들려오는 재잘거리는 목소리.
아무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귀여워도 계속 들으면 거슬리기 마련.
“으… 으으….”
“어, 일어난다.”
“……어?”
정신이 들어 살며시 눈을 떠보니.
자신의 옆에서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
그리고 그 아이의 뒤로 보이는 여자아이보다 더 어려 보이는 다수의 아이가 모여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진 너무나도 낯선 광경에 소녀의 머리는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
‘뭐지…… 이번 실험에 환각제라도 투여한 건가….’
예전에 투여받았을 때 그것 때문에 한동안 고생했었는데….
그렇지만 생각보다 강한 환각제를 사용한 건지.
피부를 스치는 서늘한 바닷바람과 해안가 주변에서 맡을 수 있는 바다 짠 내, 귓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대화 소리. 그리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산만하게 움직이는 아이들의 모습까지 환각이라고 하기엔 꽤나 현실적이었지만, 처음 환각제가 투약되었을 때도 이런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었기에 현실이라 믿지 않았다.
“저기 언니.”
“으, 으응…?”
……어.
순간 자신의 옆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과 목소리에 깜짝 놀라 움찔거리며 입 밖으로 빠져나온 말.
하지만 자신의 입에서 목소리가 나왔다는 것에 소녀는 멈칫하더니 믿기지 않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손을 떨면서 자신의 목을 더듬거린다.
“목소리가… 목소리가…”
목소리가… 드디어 나와….
부모님을 잃은 수년간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목소리.
이제는 자신의 목소리가 어땠는지조차 가물가물했던 소녀는 수년 만에 들은 자신의 목소리에 감격해 눈물을 흘린다.
비록 이게 환각제로 만들어진 허상에 불과하지만, 그런 허상 속에서라도
“언니, 울어?”
“아…, 아아… 아니야.”
기쁨도 잠시 자신을 부르는 자신의 확각 속의 아이를 보려 눈물을 훔치는 소녀.
“있지… 언니는 섬의 바깥에서 온 거야?”
“어? …서, 섬의 바깥?”
“응. 언니는 여기 쓰레기 섬 밖에서 온 사람이야?”
순간 그녀의 머리를 강하게 후려치는 듯한 충격이 덮쳐왔다.
쓰레기 섬.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질린 소녀.
“여, 여기가 그 쓰레기 섬이라고!?”
“으, 으응… 맞아.”
“아… 안돼….”
화들짝 놀라 아이의 양어깨를 붙잡고 다급하게 되묻는 소녀의 모습에 아이는 조금 놀라 뒷걸음질 쳤다.
어릴 적 아직 시설에서 지내던 시절.
그때마다 말을 안 듣거나 하는 아이가 나타날 때마다 시설의 선생님이 굉장히 무서운 차원종이 어떤 클로저와 싸우다 죽어 그 시체가 잠들어 있는 곳이라며 말 안 듣는 애들은 그곳으로 보내버리겠다며 겁을 줄 때마다 언급했던 죽음의 섬.
그때의 암시가 아직도 그녀에게 꽤 강하게 남아있던 건지 환각이라 여겼음에도 죽음의 섬에 들어왔다는 두려움에 떨며 저주스러운 현실 속 그저 하룻밤의 환상이기를 바랄 수 밖에 없었다.
“어, 언니 괜찮아?”
“…어, 어어. 괘…, 괜찮아….”
자신보다 한참은 어린아이가 자신을 걱정한다는 사실에 애써 괜찮은 척 밝은 표정을 짓는 소녀는 일단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일으키자 뭔가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응? 뭐지… 뭔가… 몸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은데.’
그리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가벼워진 것뿐만 아니라 몸 전체에서 힘이 넘치는 것 같았다.
‘예전에 각성제를 투여받았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뭔가 감각이 한껏 예민해진 것 같다.
이전보다 더 잘 보이고, 더 작은 소리가 들리며, 더 많은 냄새나 더 다양한 촉각이 느껴진다.
‘뭐지… 신형을 투여한 건가?’
눈을 뜬 뒤부터 점점 더 선명해지는 위화감에 한 눈이 팔린 사이 아라의 뒤에 있던 아이들이 자신의 곁으로 몰려든다.
“아라 언니, 이 언니가 이번에 온 자원봉사자야?”
“그런데 자원봉사자 누나. 피부가 왜 그렇게 하얘?”
“어디 아픈거야?”
“머리카락도 우리랑 달리 회색이야….”
순식간에 몰려온 아이들의 질문 공세에 정신이 하나도 없던 순간.
짝-
“자, 애들아. 잠깐 진정 좀 해.”
소녀가 처음 본 아이.
아마 기억을 더듬어 보니 아라라고 불리던 아이가 손뼉을 한번 치자.
시끄러웠던 아이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집중되었고, 곧이어 아이들에게 그녀를 자원봉사자라고 소개하자.
하나같이 좋아하는 아이들의 반응에 그녀는 도저히 지금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겠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며 아라를 바라보자.
‘미안해.’라며 입술을 움직이는 아라의 모습에 애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된 그녀는 아라와 아이들을 따라 애들이 사는 갯바위 마을로 향하게 되었다.
이동하는 동안 그녀는 주변의 아이들과 아라를 통해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동시에 이곳을 들어갔다 나갈 수 있는 건 이곳에 오는 밀수업자를 통하는 것 이외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나가려면 밀수업자를 만나는 수밖에 없다… 라…….’
그렇게 생각하던 중 갑자기 뭔가 기괴한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아른거렸다.
“응?”
“어? 왜 그래 자원봉사자 누나?”
“맞아. 앞에 뭐라도 있어?”
갑자기 멈춰선 소녀에게 뭔가 있냐며 물어보는 아이들.
하지만 그녀의 온 신경은 아이들의 말이 아닌 방금 귓가를 맴돌던 기괴한 소리에 꽂혀있었다.
‘이… 이 소리는…’
그곳에 있는 동안에도 몇 번이고 들어왔던 그 소리.
키기기기….
키기…. 기긱….
“차, 차원… 종….”
검은색의 몸체에 사람과 비슷한 형체면서 팔이 있어야 할 부위엔 팔 대신 칼날이나 촉수. 혹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거대한 손이 달린 현 인류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생물.
그들의 등장에 소녀는 곧바로 아이들에게 빨리 도망치라고 소리쳤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말을 듣고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뒤에서 보이는 검은 형체를 보자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고, 도망치던 아이 중에 발을 헛디뎌 넘어진 아이나 걸음이 느려 뒤처지는 아이들을 그녀가 둘러맨 채로 서둘러 도망쳤다.
‘어째서.’
어째서 이런 환상에 불과한 곳에 차원종이 나타난 거지.
그것도 본 기억도 없는 것들로….
아무리 생각해도 이젠 환각이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너무나도 현실 같은 감각.
그리고 귓가에 다시 한번 맴도는 기괴한 울음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어.”
뒤에 혼자 떨어지고 만 아이, 그 아이의 앞에 나타난 차원종.
그 모습을 본 소녀의 머릿속에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살고 싶었을 텐데….
어떻게라도 살고 싶었을 텐데….
촤악-!?
*
봉지가 찢기는 듯한 소리.
그 소리와 함께 이젠 다 끝이라 생각해 눈을 감았던 아이가 조심스레 눈을 뜬다.
“……어.”
“괘… 괜찮… 니…?”
등에서부터 복부를 뚫고 나온 거대한 칼날.
몸을 뚫고 나온 칼날을 타고 흐르는 붉은 선혈.
그리고 힘겹게 열린 입에서 흘러나온 상냥한 말.
“자, 자원… 봉사자 누나….”
“어, 어서… 도, 도망… 쳐….”
자신의 몸을 날려 아이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
양손에 안고 달려가고 있던 아이들은 어느새 놓고 그 아이의 앞으로 뛰어가 차원종의 손에 몸을 관통당한 소녀는 힘겹게 아이에게 도망가라는 말과 함께 옆에 있는 동생 잘 챙겨달라 말하고 여긴 어떻게든 자신이 시간을 벌어보려 하였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몸이 관통당하면 과다 출혈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콰직- 촤악!!
“하…. 하아…. 하….”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몸에 커다랗게 뚫려있는 내장이 수복되고, 새로운 근육과 혈관이 몸의 구멍을 메꾸고, 그 위를 덮는 새로운 피부로 상처 자국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생긴 낯선 변화가 그녀에겐 두렵게 다가오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모습을 아이들이 ** 못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모습을 아이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흉측한 모습이었기에 아이들이 없어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소녀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죽지 않는다면 소녀 자신이 차원종을 막는다면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멀리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 뒤로는… 절대 못 가….”
방금과 같은 기적이 또 일어날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녀의 몸이 움직였다.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도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도망칠 수 있게, 시간을 끌려고 움직이는 그녀의 귓가(?)에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하아아…… 암-. …되게 답답하게 행동… 하네.
뭔가 뚝뚝 끊기는 되게 나른해 보이는 목소리.
그런 목소리가 들리자.
촤악!
끼에에에-!!
“!?”
갑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왼손.
너무나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놀라기도 잠시 휘둘러진 왼손의 움직임에 맞춰 눈앞의 차원종의 몸에 생긴 커다란 상처.
누가봐도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인 모습.
그리고 그제야 확인한 자기 왼손에 쥐어진 외날의 환도.
그 끝에 맺혀있는 차원종의 혈액은 조금 전 자신이 배어버렸다는 걸 선명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간단한데… 하아~ 암…. 왜 안 하고 맞고만 있었던 건지….
뭐, 이제부터는 혼자서 할 수 있게 해주자고.
그럼 하나만 더 도와줘 볼까.
연속적으로 들려오는 의문의 목소리는 각각 목소리의 톤과 억양이 달랐고.
마지막 목소리가 끝나자 갑자기 뇌를 불에 달구는 듯한 고통이 덮쳐왔다.
“-!?”
비명조차 지를 수 없을 정도의 격통에 소녀가 비틀거리자.
그 순간을 기회라 여긴 건지 일제히 소녀를 놔두고 아이들이 간 방향으로 이동하는 차원종.
그것들은 하나같이 아이들을 찾으려 혈안이 되어있었고, 그러던 중 우연히 뒤처진 아이들을 발견하자 곧바로 기다란 채찍 같은 촉수를 휘둘러 아이를 낚아채려 하자.
쉐에엥- 팍.
!?
갑자기 날아와 촉수를 끊고 바닥에 꽂힌 날붙이.
그것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극심한 통증을 견디느라 거칠어진 숨소리, 힘겹게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신음.
그리고 그 뒤로 들려오는 잔뜩 날이 선 목소리.
“하아…. 하…. 그…, 그 애들… 한테서 손… 치워!”
정신을 유지하기도 힘든 통증 속에서 힘겹게 뒤쫓아온 소녀는 고통을 견디면서 힘겹게 말하는 건지.
식은땀을 흘리며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손에는 아까 봤던 검이 아닌 국궁을 지팡이처럼 땅을 짚어 기대고 있었지만, 그 눈은 아까와는 다른 고통에 잔뜩 일그러진 사나운 눈동자로 변해 차원종을 노려보고 있었다.
키에에-
아까와는 달라진 그녀의 분위기에 차원종들이 주춤거리는 찰나 소녀가 빠른 속도로 시위를 당긴다.
쇄애애-!
분명 소녀의 손에는 활을 제외한 그 무엇도 들려있지 않은데.
소녀가 시위를 당길 때마다 날아드는 화살들에 당해 전신이 벌집이 된 차원 종.
날아드는 소리를 듣고 움직이는 건 이미 늦었기에 예고된 죽음을 기다리는 시한부 환자와 같은 상황에 부닥친 차원 종들은 날 때부터 포식자라 생각하며 눈앞에 사냥감을 짓밟던 그들은 그 순간 처음으로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저것은 사냥감이 아닌.
꾸드득-
자신들과 같은-
촤아악-
포식자라는 걸.
인식의 순간과 함께 날아든 예고돼 있던 죽음.
놈들은 도망쳐야 한다는 그런 당연한 생물이라면 당연히 새겨진 생존 본능이 발휘되기도 전에 날아드는 죽음으로부터 피하지 못하였다.
단 한발의 화살을 쏘았을 뿐인데 화살은 하늘로 올라가 수 갈래로 갈라져 하늘에서 떨어지는 소나기처럼 땅 위 차원종의 목숨을 거두어갔고, 개중 운 좋게 살아남은 일부는 어찌 된 영문인지 움직이지 않는 몸을 움직여 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서걱-.
화살로 목숨을 거두었던 소녀가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다시 들린 두 자루의 검으로 놈들의 목숨을 취해갔다.
챙-
어느 순간에 나타나 아이들을 쫓던 차원종 무리를 쓸어버린 그녀는 힘이 다한 건지. 아니면, 자신을 괴롭히는 통증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건지 무릎을 꿇고 두 손에 쥐어진 두 자루의 칼을 땅에 박아 거친 숨을 몰아쉰다.
하아…. 하…. 하아….
숨을 몰아쉬는 그 모습은 좀 전에 보여줬던 두려운 모습이 아닌 쉽게 깨질 것 같은 연약하고,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소녀는 그렇게 잠깐 숨을 고르더니 몸을 일으켜 보는 것만으로도 걱정될 만큼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한데 모여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의 앞에 다가간다.
“괘, 괜찮… 니…? 어디… 다친 데는… 없어?”
말하는 것도 힘겨운 듯 뚝뚝 끊기는 어투.
조금 전까지 차원종을 상대로 일방적인 학살을 선보인 탓에 그대로 얼어붙은 아이들은 소녀의 물음에 대답이 아닌 고개만을 움직였다.
“그래… 다행… 이… 다….”
그런 대답이어도 소녀는 그제야 안심한 듯 위태롭지만 따뜻한 미소를 보이며 실이 끊긴 인형인 마냥 힘없이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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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바위 마을 진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