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식의 계승자 EP.4 사냥꾼의 밤 3화 전조
Heleneker 2022-11-04 0
"단순 고장은 아닐 거예요. 리버스 휠의 통신기능도 마비됐거든요."
때마침 우리가 하던 이야기를 들은 감찰관은 상황을 조금 더 보강해 주었다.
"성에 차원종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지원을 요청하려 했었는데... 어째서인지 외부와 연락을 주고 받을 수가 없네요. 누군가 통신을 방해하는 것이 분명해요."
"보통 통신을 방해하는 차원종은 스내쳐 타입으로 알려져있는데... 막상 스내쳐 타입은 없었었죠? 생전 처음 보는 차원종들 뿐인데, 감찰관님은 좀 아시겠어요?"
"실은 저도 잘 모르는 개체들이에요. 그래서... 굉장히 불안하네요. 저들의 감정이 찌를 것처럼 따갑게 다가오는데도, 그 내면을 들여다볼 수가 없어요."
"마치 기계 같은 느낌.... 아니, 기계보다는 본능만으로 움직이는.... 그래서 지원을 요청하려 했던 건데, 굉장히 난처해졌네요...."
저들의 대해 뭐라고 말해주곤 싶었지만, 외부차원에서 한 번도 조우한 적 없는 차원종이라 씁쓸히 입을 다물었..... 응? 잠깐만. 아까 빅터가 뭐라고 말했었는데...?
[전부 해치운 줄 알았던, 닥터 호프만의 피조물들이 다시금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분명히 만들어진 존재라고 했어. 빅터와의 대화를 떠올리곤 말했다.
"그러고 보니 감찰관, 저 기분 나쁜 차원종들, 호프만이라는 자의 피조물이라고 했어요."
"호프만.... 이요...?
"호프만?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생물 다큐멘터리였던가....?"
"과연, 너희들은 닥터 호프만에 대해 모르는 건가."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약간 갸우뚱 거렸다. 그런데 어째 그 이름이 낯익은데 어디서 들었지....?
"모른다면 그걸로 됐다. 알아서 좋을 것은 없는 이름이지. 중요한 것은 이곳에 차원종들이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외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는 없지만, 너희들이 타고 온 비행정을 타고서 달아날 수는 있지."
빅터가 비행정 리버스휠을 바라보며 헥헥거렸다.
"....저 비행정이라면 나도 알고있다. 저것의 원래 주인들과 행동을 같이 했었지. 저것을 이용한다면 손쉽게 달아날 수 있을 터. 차원종들로부터 도망치겠다면 말리지는 않으마."
"당신은 가지 않을 건가요?"
"후후. 그럴 수야 있나. 이곳은 내 친구들의 집이다. 녀석들이 돌아왔을 때, 집이 엉망이 되어 있다면... 몹시도 안타까워하겠지."
"그렇군요.... 알겠어요. 원래는 상부와 연락해 방침을 정해야 하지만.... 통신은 연결되지 않고, 임시지부장님께서는 의식이 돌아오지 않으셨죠. 그러니 이곳에서는 임시로 제가 지휘관을 맡도록 할게요."
"어찌 되었건 차원종을 방치하면 큰일이니까요, 우선은 통신 장애의 원인을 조사하고, 해결되는 대로 지원을 요청하도록 해요."
"감찰관이 그렇게 하겠다면야 지시에 따를게요."
"빅터, 저는 이제 막 이곳에 와서 잘 모르는 것이 많은데,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상세히 알아볼 수 있을까요?"
"알겠다, 내가 아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르쳐주지."
"그동안 자온 씨는 현장에 나가 차원종들을 제거해주세요. 통신이 잘 되지 않으니, 위험하다 싶으면 곧장 돌아오셔야 해요."
"그럴게요."
대답하고 나가려는 순간,
두근!
"콜록! 콜록! 콜록!"
가슴 안쪽을 바늘로 후벼파는 듯한 통증에 순간적으로 기침이 연신 나왔다.
"형?! 왜 그러세요?"
"아, 아무것도 아니야. 먼지라도 들이마신 것 같아. 괜찮아."
황급히 입가를 훔치고 차원종을 섬멸하러 나섰다.
"킁.... 킁킁.... 이 냄새는....."
******
"아으, 기분 나빠. 자.... 대충 주변은 정리된 거 같고. 다음은 저쪽으로 가 볼까."
차원종을 다 처리하곤 다른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아까 그 통증은 뭐였지....? 그런 통증은 처음인데....
[....야, 너 어떻게 이런 몸으로 움직이고 있어?]
[너, 다리 근육이 많이 손상되어 있어. 하지만 더 심한게 폐인데?]
그러다 문득 유하나가 치료해주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리와 폐의 손상. 무슨 얘기인걸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부차원으로 돌아오고선 기능이 떨어지긴 했지만 뷜란트에게서 받은 재생 능력 덕분에 큰 부상도 몇 분내로 다 회복되는 마당에 손상이라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걸으며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지끈!
삐..... 삐.....
[폐가 다 녹아 내렸어요. 안타깝지만.... 마음의 준비를 해주세요.]
[제발, 제발 뭐라도 해주세....!]
두통과 함께 어떤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방금..... 뭐였지? 이런 기억은 없었다. 게다가 시점이 마치 내 시점이 아닌 것 같은 그 이질감은....?
폐.... 독..... 아폴....리온....
알 수 없는 이질감에 위화감을 느꼈지만, 그 기억을 곱씹어보니 기억조차 나지 않는 과거, 고향에서 있었던 재앙의 이름이 떠올랐....
섬뜩!
갑자기 느껴진 살기에 무심코 자세를 잡았다. 살을 에는 듯한 벼려진 살기. 대체.... 누구지?
"응? 뭐야. 못 보던 녀석인데....."
저 너머에서 검은 옷을 입은 연보랏빛 머리칼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넌 누구지? 이 성에 볼일이라도 있어?"
이 사람이다. 저 멀리서부터 자연스럽게 살기를 흘리는 사람ㅇ...... 어? 어어?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던 자온이 갑자기 안색을 새파랗게 질리더니 몸을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다, 다.., , 다, 당신이 왜 여기에 있어요오?!"
"....? 뭐라는 거야?"
갸웃 거리는 모습에 되려 놀란 자온이 허리를 완벽하게 접어 각잡힌 인사를 건네며 한껏 몸을 떨었다.
"아, 아니지. 자, 잘 지내셨습까. 서지수 누님.....! 무사히 돌아오셨군요.... 혹시 여긴 어쩐 일로 계신 건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뭐야, 너. 서지수랑 아는 사이인가? 미안하지만 사람 잘못 봤어. 난 서지수가 아니야."
"지, 진짜로요....? 하지만 외모도 그렇고 힘의 느낌도 거의 똑같은데...?"
만나본 적 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외모도 외모지만 힘의 근원은 바꿀 수 있는게 아니니까. 전에 봤을 때보다 출력은 줄었어도 파장이 똑같은데 다른 사람이라고....?
"아니라고. 내 이름은 흑지수. 사냥터지기 팀의 어시스턴트지."
"비, 빅터가 말하던 어시스턴트가 당신이였군요. 자, 자온이라고 합니다. 일단 무기 조금만 내려주실 수 있나요....?"
그 모습으로 그 무기 들고 있으면 트라우마 살아날 거 같으니 제발 좀 내려줬으면..... 안밖으로 간절하게 빌었봤지만, 오히려 그녀는 자세를 고치며 내게 무기를 겨누었다.
"호프만이 만든 놈일지도 모르는데 내려놓을 수는 없지. 수상하기도 하고. 일단... 한 판 붙어 **. 말보다는 그쪽이 더 편하거든."
"ㅈ, 저, 저는 싸, 싸우기 싫은데요....?"
"잔말말고 덤벼. 적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으면 힘으로 증명해 보라고."
"그러니까 저는 싸우기 싫ㄷ....."
[마녀의 가짜..... [이번 세상]에선 처음인가?]
[잘 됐다, 잘 됐어. 이 참에 실험해 보자. 우리의 의지를 반영해보자. 키득키득]
[싸움을 걸어 주었으니, 응해줘야지. 꺄륵, 꺄르륵]
우득
"응? 뭐지?"
갑작기 들려온 목소리와 함께 팔에서 느껴진 이질감을 손을 내려다 보았다.
뿌득, 우드드득----
"뭐야, 갑자기 왜 침식ㅇ...."
제멋대로 발동한 침식을 중단시키려 했지만,
[잘자. 키키긱]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이 툭 끊어진 것처럼 깊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시간 끌지 말고 덤비라니까.... 뭐야, 무슨 문제 있어?"
갑자기 축 늘어진 자온의 모습에 흑지수가 그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눈을 팍 뜨고 허리와 고개를 뒤로 한껏 젖힌 자온의 모습에 순간 움찔했다.
"아-------"
천천히 몸을 원래대로 돌린 자온이 가만히 흑지수를 바라보더니,
투쾅!!!!!
갑자기 흑지수에게 달려들어 급습을 시도했다.
"뭐야, ㄴ...... !!!"
건블레이드로 자온의 급습을 막아내고 그를 본 흑지수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몸의 반을 뒤덮은, 피처럼 검붉은 차원종 갑피. 검게 물든 눈 한가운데에 박힌 새빨간 눈동자. 조금씩 잿빛으로 탈색되어가는 머리칼.
그 모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원했던 것은 아니였지만, 자신도 겪어본 변화와 거의 유사했었기에.
"호프만이 다른 사람을 반차원종으로 만들리가 없을텐데....!! 넌 대체 뭐야!?"
"글쎄. 어떨까? 그것보단 지금은.... 싸움에 집중해주면 좋을텐데? 아하, 하하하핰!!!"
흉흉하게 웃은 그것이 갑피를 두른 팔을 휘두르며 공격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투캉!! 카카캉!!! 카캉캉캉-----!!
"이게 진짜.....!!"
공격을 막고 피하기만 하던 흑지수가 계속된 공세에 열이 올랐는지 건블레이드에 위상력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철컥!
작렬!!!"
콰과과광!!!!
흑지수가 건블레이드를 휘두르자, 건블레이드에서 뿜어져 나온 커다란 불꽃이 인간도 차원종도 아닌 [그것]을 집어삼키며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불타는 것을 전혀 아랑곳 하지 않으며 달려들어 공격을 이어갔다.
"불꽃이 진짜와 제법 비슷하긴 하다만, 실망스러운걸? 마녀의 열화라고 해도, 좀 기대했는데 말이지."
저 놈은 뭐지? 반차원종이라기엔 제 3 위상력이 느껴지진 않는데.... [그것]을 떨쳐버린 흑지수가 깊이 주시하며 분석하기 시작했다. 조절하곤 있다지만 거의 전신이 불타고 있는데도, [그것]은 엄청난 속도로 상처를 재생시키며 웃어대고 있었다.
"넌 정체가 뭐지? 더스트가 만들어서 보내기라도 한 건가?"
"더스트? ....아, 열풍을 말하는 건가. 그딴 것과 우리를 비교하는 건 별로지만 지금 우리는 기분이 좋은 편이라 말이지."
"그러니 그런 걸 신경 쓸 시간에 집중 좀 해달라고. 모처럼 오른 흥에.... 찬물 끼얹지 말고!!!! 카하하하하!!!!!!"
재생을 마친 [그것]이 흉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흑지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점차 거세지는 공세에 흑지수도 조금씩 위력을 높여 폭렬적인 불꽃을 방출시키고 쏘아대며 제대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퍼엉!!!!!
콰각!!! 쾅!!! 드드드드-----!!!!
쿠구구구-------
두 사람의 격렬한 전투에 성 전체가 폭음으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고기가 구워지다 못해 타버린 재의 냄새가 주변을 진동하고, 불꽃과 격한 움직임에 먼지가 자욱히 깔리다가 다시 일어났다.
"카하하하하하!!!! 좋아, 좋다고!!"
포학한 웃음을 멈추지 않고 짐승처럼 거칠게 달려들며 덤벼드는 [그것]을 주시하던 흑지수는,
퍼억!
이를 악물고 가속해 태클을 걸어 [그것]을 넘어트리곤.
"거슬리니까 그 입 좀 다물어.....!! 폭발!!!"
불꽃을 휘감은 건블레이드로 [그것]을 후려치면서 폭발을 일으켰다.
"작렬,"
쾅!!
"작렬,"
쾅!!
"작렬,"
쾅!!
"작렬.....!!"
콰과광!!
"좋아, 드디어 이 육체의 제어권을 우리가 가져왔다!! 아하하하하학!"
"작렬!!!!"
뼈와 살점이 타들어가고 터져감에도, [그것]은 여전히 광소했다.
*****
....몸이 무거운 것이, 물 속에 가라앉고 있는 기분이다.
....고요하다. 이대로 영원히.... 쉬고 싶다.
.....콰앙!
...콰아아앙!!
시끄러워. 좀 조용히 해줬으면....
욱씬
아, 아파... 왜 이리 아픈거야....?
작렬....!!!
콰앙!!!!!
아.... 아, 아파... 아파..! 일어날 테니까 그만.... 그만 좀 때려요...!!!
****
"후우..... 작렬....!!!"
콰아아아앙!!!!
흑지수가 조금 지친 숨을 고르며 무기를 휘둘렀다.
투두둑...... 타닥, 타다닥.....
어느새 [그것]의 몸은 숯마냥 검게 불타있었지만....
"그하하....! 좋아, 가짜! 할 수 있잖아!"
머리가 거의 타들어 탁한 목소리가 나왔음에도, [그것]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자, 그럼 이제 더 본격적으로...."
덜컥
타버린 몸을 재생시키며 무언가 하려던 [그것]의 동작이 기계가 정지한 것마냥 움직임이 멈췄다.
"아.... 아까워라. 한창 즐거웠는데. 아직은 역시 이런 방식으론 오래 가지는 못 하는 건가."
"뭐, 상관 없어. 시간은 많으니까. 그러니 나중에 또 만나서 놀자고, 가짜. 키득키득"
[그것]은 끝까지 흑지수를 바라보며 웃더니 그대로 눈을 감았다. 동시에 자온의 몸에 생겨났던 갑피가 사라지고, 머리색도 선명한 주황빛으로 되돌아갔다.
"어떡할까..... 일단 끌고 가봐야겠지...?"
무기를 식히며 어떻게 처분할지 고민하던 흑지수는 기절한 자온을 들쳐 업으며 거점이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